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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81화 (81/217)

검향 81화

황현이 말했다.

“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부정적이지만 번천계를 위함이라 하니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곽호는 가면 속의 황현이 지금 웃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 녀석도 삼 년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이젠 호법신장 급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추천해 보거라.”

“흠. 사부님의 제자이자 수하인 우리 넷을 제외하면 다른 호법신장들은 다 거부할 것입니다. 적절한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니 너희 넷 중에 골라 보란 얘기다.”

“왜 하필 저보고 고르게 하십니까.”

“그래야 네가 안 갈 테니.”

황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스승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젠 직접 가겠다는 말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곽호가 다시 말했다.

“네가 가면 초운은 확실히 죽는다. 너는 네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싹을 살려 둘 리 없지. 그렇지 않느냐?”

황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역시 사부는 속일 수 없군요. 확실히 삼 년 전의 그날. 옆에 천응이 없었다면 반드시 죽였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녀석들로 추천해 보거라.”

“쩝…….”

황현은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울리는 이를 떠올리지 못했다.

원래 여덟이었으나 3년 전 자신이 합류하여 이젠 아홉으로 늘어난 호법신장들은 서로 친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수 있을 만큼 적대적이랄까?

지금은 같은 꿈을 꾸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엔 서로가 쌓아 올린 세력과 힘으로 천하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인 천상련은 그 같은 일을 묵과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그들 대부분이 천상련주의 힘에 굴복하여 호법이 되었을 뿐, 족쇄나 다름없는 천상련주가 사라진다면 미쳐 날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곽호가 가장 유리했다. 그것은 구대호법신장 중 넷이 바로 자신의 휘하였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넷 모두 그가 직접 마공의 늪에 빠트린 제자이며 수하였다.

황현은 자전마공의 본능에 의해 굴복하였으나 나머지 셋은 달랐다.

그들은 칭찬받기 좋아하는 어린애처럼, 그리고 어미를 따르는 오리 새끼처럼 막무가내로 곽호를 따랐다.

그들의 곽호를 향한 사랑과 집착은 병적일 정도라 다들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만약 곽호가 그들보다 약했다면 진작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미치광이들이었다.

황현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홉의 호법신장 중 가장 잔혹하며 가장 강력한 내공을 지니고 있다는 여인.

그들 중 가장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마인이기도 한, 곽호를 따르는 네 명의 호법신장 중 하나였다.

황현은 자신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이를 골랐다. 그 정도는 되어야 초운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떠올린 황현은 곽호의 눈치를 살폈다.

질투심이 강한 그녀를 보냈다가는 분명 초운은 죽는다. 그리되면 사부는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황현은 걱정을 오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일 걱정은 내일하자는 주의랄까?

그는 한 여인의 이름을 곽호에게 말했다.

이름을 들은 곽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의아해진 황현이 그에게 말했다.

“그녀를 보내면 초운이 위험할 겁니다.”

“그 아이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으니 괜찮을 게다.”

“그녀의 질투심을 모르시는군요.”

곽호에게 차를 나르던 시녀들이 가끔씩 실종되는 이유를 황현은 알고 있었다.

“넌 알면서도 추천하였다.”

“흠. 사부님의 생각을 읽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네 사부인 것이다. 이만 물러가거라.”

황현이 밖으로 나가자 곽호의 입에서 얇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번천계를 완성할 때까진 버텨 주어야 할 텐데. 큰일이군.”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면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물어뜯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바로 마인의 본성이니까.

그래서 마도(魔道)와 마인은 달랐다.

마도는 마(魔)에서 순리를 찾지만 마인은 마(魔)를 통해 순리에 역행한다.

때문에 그들은 인성이 뒤틀려 있다.

자신이 그런 그들을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똑같이 행동하려 노력해 왔기 때문이고 또 그만한 힘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봉인한 반작용으로 인해 힘을 조금씩 잃어 가는 지금은, 자신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 * *

오래된 사당.

초저녁의 소낙비가 사당 안의 거친 열기를 식혀 주는 듯했다.

세 명의 사내는 무림인이었는데 건장한 체구와 주변에 흐트러진 창칼이 그들의 신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 중 두 명의 사내는 사당 한가운데 누워 있는 여인의 양팔을 잡은 채 실실거리는 중이었고, 남은 한 명은 여인의 다리를 벌린 채 그 사이에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크흐흐, 이년 정말 석녀인가 본데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하다못해 울기라도 해야 하는데 돌처럼 조용하네요!”

왼팔을 잡고 있던 사내가 허리를 흔들고 있는 털북숭이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답했다.

“흐흐흐흐. 석녀는 석녀대로 깊은 맛이 있단다, 아우야.”

반각이 더 흐르고 털북숭이 사내가 일을 마쳤다.

그러자 여인의 오른팔을 잡고 있던 사내가 일어서서 바지를 내렸다.

“다음은 내 차례로군. 후후후후.”

이들의 대형인 듯한 털북숭이 사내가 사당 안에 피워 둔 모닥불 안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이, 어이, 저번처럼 죽지 않게 살살하라고. 셋째한테까진 순서가 가야 하잖아.”

“알겠습니다, 형님.”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여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천장의 대들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흐흐흐, 고것…….”

거칠게 허리를 흔들던 사내가 여인의 하얀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탐욕스럽게 가슴을 농락하던 그의 손바닥은 어느새 그녀의 목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는 그의 안 좋은 버릇이었다.

여인과 관계 시 흥이 돋으면 목을 조르는 것이다.

그때였다.

여태까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여인의 손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흐흐흐흐. 네년도 이제야 흥이 돋느냐?”

사내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릴 뿐이었다.

“잘 안 들리는군. 뭐라고 하는 거지?”

허리를 흔들던 두 번째 사내가 잠시 멈추며 물었다.

그러자 형식적으로 여인의 왼팔을 잡고 있던 세 번째 사내가 여인의 입술에 귀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따라서 말했다.

“너희들 따위…… 이제 지겨워, 라는데요. 형님?”

“뭐?”

그때 그녀의 오른손이 세 번째 사내의 얼굴을 잡았다.

“어……? 어어?”

우드득.

얼굴을 잡힌 사내의 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즉사였다.

“으, 으아아아! 뭐냐, 네년은!”

두 번째 사내가 급히 몸을 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가 양다리로 그의 허리를 강하게 압박하더니 재빠르게 혈을 짚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제야 그녀가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첫 번째 사내, 털북숭이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콰득!

그녀의 하얀 손이 사내의 가슴뼈를 꿰뚫더니 등 뒤로 튀어나왔다.

피로 범벅이 된 손에는 털북숭이 사내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털썩!

차례를 기다리던 세 번째 사내의 목을 부러뜨리고,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허리를 흔들던 두 번째 사내의 혈을 짚기까지가 한 호흡.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털북숭이 사내의 심장을 꿰뚫을 때까지 걸린 시간도 한 호흡이었다.

그녀의 살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새하얀 나신의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녀는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묻은 털북숭이 사내의 피를 황홀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혀를 내밀더니 손에 묻은 핏물을 살살 핥았다.

섬뜩한 모습임에도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했다.

혈이 짚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두 번째 사내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여인은 그제야 그가 생각났는지 차가운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몸을 다시 뒤집었다.

“무섭나 봐……?”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혈까지 제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린 것치곤 아주 건강한걸.”

그녀는 그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실제로 그의 하물은 여전히 힘차게 발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익힌 독특한 내공 때문이었지만 사내가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그녀가 사내의 볼을 핥으며 얘기했다.

“넌 죽을 거야.”

사내는 비명 대신 눈을 부릅떴다.

공포로 가득한 그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 죽기 전에 천상의 쾌락을 맛보여 줄 테니까.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다를 거야. 난 공포에 질린 사내의 얼굴을 보면 흥분이 되거든. 이젠 석녀가 아니니 너도 좋겠지?”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다.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은 아니었다.

사내는 생각했다.

‘마…… 녀……(魔女).’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듣던 마인들의 세상.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항상 등장하던 것이 바로 마공을 익힌 진짜 마녀였다.

왜 갑자기 그런 것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 올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녀를 떠올려야 했다.

나신의 그녀가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타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쾌락의 극치에 도달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점점 말라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소낙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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