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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72화 (72/217)

검향 72화

바로 석운자를 위시한 구파와 육대세가의 사람들이었다.

초운은 약 기운이 칠 할 이상 사라지고 난 뒤라 힘이 없었지만 억지로 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마공을 익힌 마인은 절대 구원할 수 없다는 말일세. 차라리 마성에 먹히기 전 제정신일 때 죽여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네!”

“사형은 마공 따위에 질 리가 없어요! 비키세요! 만약 나와 사형을 막는다면 당신들을 모조리 베겠습니다.”

이미 구파나 육대세가도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시적이나마 협력하기로 입을 맞춘 상태였다.

모든 것은 초운을 제압하고 난 뒤에 계산하기로 한 것이다.

“자네야 말로 비키게. 마인은 죽어야만 하네. 마인을 옹호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야! 자넨 무림공적이 되고 싶은 겐가?”

“…….”

초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뒤에서 사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들의 말이 옳다…… 초운아……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시끄러워요! 왜 다들 제멋대로야! 왜 다들 날 두고 가 버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건데! 왜!왜!”

초운의 절규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석운자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을 띤 붉은색의 구슬이었다.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이걸 써야 하는가.’

그는 초운의 몸 상태를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차륜전을 펼쳐서 제압했겠으나, 이미 황현과의 엄청난 싸움에서 초운이 보인 실력에 기가 죽어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협상 조건을 제시했던 일월신마는 초운을 죽여서 데리고 와도 상관없다고 했었다.

명문 정파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이 구슬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님을 알았다.

마인을 척살하지 못한다면 세상이 위험해질 것이고, 초운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사문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힘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마인을 옹호하는 한, 세상에 발붙일 곳을 찾기 힘든 법이다. 차라리 함께 죽여 주는 쪽이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하니 결론을 내리기 쉬웠다.

그는 구슬에 자신의 양기를 조금 불어넣고는 초운을 향해 던지며 외쳤다.

“모두 오 장 이상 물러나거라!”

그러자 육대세가와 구파의 무인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이를 본 초운도 심각함을 알고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황현이 눈에 걸렸다.

남은 진기는 고작 삼 할…….

그는 그 모든 힘을 방어에 쏟았다.

곧이어 붉은 구슬에서 흉악한 기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운태산을 흔드는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사 장 안을 확.실.하.게 박살 냈다.

땅거죽이 뒤집어진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바위며 나무며 할 것 없이 모조리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초운과 황현이 있던 폭심지는 그 정도가 가장 심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이 장여 깊이의 구멍이 뚫리고 만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게 다진 고기 조각처럼 사방에 그 피와 육편이 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초운은 죽지도, 폭사하지도 않았다.

황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초운의 방어가 폭발을 막아 낸 것이다. 그러나 대가는 아주 컸다.

“커헉!”

안면이, 아니 상반신이 피로 물든 초운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검으로 땅을 짚었다.

어느새 다가온 석운자가 그에게 말했다.

“벽력혼(霹靂魂)이라는 것이네…….”

벽력혼.

이는 강호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한 가문의 유산이었다.

마인사냥이 한창이던 시절, 마인들에 의해 몰살당한 벽력철가(霹靂鐵家).

그들은 예로부터 화탄 제조에 능하였는데 그 기술 하나만으로 사천당가와 천하제일가의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그러나 가문 내에서 마공을 익힌 반도가 나타나 마인들을 끌어들였고, 이후 철가는 세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마인들을 끌어안고 장원 그대로 모조리 폭사하는 것을 선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이 남긴 유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석운자가 지닌 붉은 구슬.

벽력혼은 그들이 남긴 얼마 안 되는 유산들 중 하나였다.

그것도 상급에 해당하는 아주 무서운 물건이었다.

폭심지로부터 사 장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확실하게 파괴하는 화탄.

폭발력이 압축되어 그 안에서만큼은 생명체든, 무엇이든 모조리 찢어발겨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절정의 고수라 해도 죽일 수 있는 화탄…….

그 때문에 이 화탄은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초운이 새롭게 얻은 환검의 무리는 남다른 것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변화의 중심이자 근원으로 만든 덕분에 폭발력을 중화시켜 자신과 황현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떨어진 약 기운으로 인해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잘되었네, 자네가 죽지는 않았으니. 마음은 편하구만.”

죽이려고 던진 것인데, 오히려 제압만 하고 끝났으니 도사 된 입장에서는 좋았다.

비록 마인을 죽이지 못했으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던 초운이 저 꼴이니 죽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구파와 육대세가의 무인들은 초운과 황현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초운은 절망한 얼굴로 황현을 돌아보았다. 황현은 의식을 잃은 듯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휴, 너무 한심해서 못 봐주겠군.”

언제 나타난 것일까…… ? 아주 깨끗한 백의를 입은 소년은 쓰러진 황현의 곁에 서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구파와 육대세가의 무인들은 초운과 황현을 둥글게 포위한 상태로 다가가던 중이었다.

한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소년이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몰랐다.

모두가 일류고수였고 그중 석운자는 절정의 고수였다. 그런데도 목격한 이가 없는 것이다.

초운이 그런 소년을 향해 물었다.

“너…… 는…… ?”

백의 소년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나? 천응이라고 해. 남들은 나를 두고 괴뢰장(傀儡將)이라고도 부르지.”

이에 주변을 둘러싼 모든 무인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물러서며 외쳤다.

“팔대호법신마!”

“괴뢰사!”

천응이라는 소년이 그런 그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웃어주었다.

“정답!”

十一章

천응은 정말 지루했다.

산 아래의 녀석은 이미 자전마공이 십성에 달했건만 각성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죽어 가는 중이기까지 하였다.

천응은 머릿속에서 저울질을 해 보았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강제 각성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자신을 너무 지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후자가 당겼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곽호 때문이었다.

타인에 대해서는 지독히 냉혹한 소년이었으나 곽호의 명만큼은 하늘처럼 따랐다.

모든 호법신장들은 서로 간에 동등하다. 이는 곽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천응은 그를 아비처럼 생각했다.

물론 언젠가 제거해야 할 존재임에는 분명했다.

팔대호법신장은 같은 방파에 속해 있으나 한편이 아니었다. 일종의 경쟁하는 관계랄까?

비록 곽호가 그들을 발굴하고 만들어 냈다고는 하나 각각이 아주 독립적인 존재였기에 서로 반목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것은 오직 천상련주 하나뿐이었다.

곽호가 그들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천상련주가 그에게 호법신장을 다스릴 전권을 위임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자존심 강한 호법신장들이 곽호에게 진정한 충심을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천응만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껍질을 깨준 곽호를 병적으로 좋아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아끼는 제갈청처럼 ‘인형’으로 만들어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의 인형술, 아니 괴뢰술이 그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에 소용없는 꿈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천응은 결국 황현을 강제 각성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곽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응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노예인 제갈청을 불러내며 바위산 아래로 몸을 던졌다.

제갈청이 돌아오는 느낌이 감지되었다.

* * *

천응의 미소는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어느 누구도 그리 느끼는 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괴뢰사 천응의 잔인함은 무림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경험이 많은 석운자가 천응을 향해 물었다.

“오늘은 데리고 다니는 인형이 없나 보군.”

천응 자체는 엄청난 고수라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익힌 사술은 크나큰 문제였다.

늘 상당한 숫자의 고수들을 인형처럼 조종하여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모두의 눈을 피해 갑자기 나타난 경신공부는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과거 곽호를 만났을 때와 같이 무림에 떠도는 팔대호법신장, 아니 신마들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석운자의 그 같은 추측은 옳았다.

천응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더니 석운자의 등 너머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석운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안력을 돋워 살피던 석운자는 회색의 안광을 번뜩이며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는 한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인이구나!”

석운자의 한마디에 모든 무인들이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초운이 나서기 전까지 황현 한 명에게 농락당하지 않았던가.

석운자는 절망도 절망이었지만 마인마저 ‘인형’으로 만들어버린 천응의 가공할 만한 사술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천응의 능력은 일류고수를 인형으로 만들어 조종한다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무림맹 놈들…… 역시 정보를 숨기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그들도 몰랐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제 와 따지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회안의 마인이 천응의 곁에 내려섰고 석운자는 새로운 마인의 능력이 황현을 훨씬 능가함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이 자리가 내 묏자리가 되겠구나.’

천응이 자꾸 살기를 흘리던 제갈청을 향해 말했다.

“여기 네 먹이는 없어, 제갈청. 저 사람들은 다 새로운 마인을 위한 거야.”

그러자 제갈청에게서 풍기던 살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덕분에 무공이 약한 몇몇 무인들은 답답하던 가슴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석운자는 마치 황현이 다시 살아날 것처럼 말하는 천응을 향해 말했다.

“그 청년은 이미 늦었네. 육신이 붕괴되기 시작했으니 대라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할 것이야.”

천응이 석운자를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가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보면 바보 같다니까?”

“뭣이?”

울컥한 석운자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어찌할 수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회안의 마인 앞에서 지쳐 버린 자신들은 양 떼나 다름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천응이 다시 말했다.

“당신들은 마인(魔人)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천응은 쓰러진 황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그에게 초운이 기다시피 다가오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사…… 사형…… 을…… 건드리지…… 마.”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막말로 저 녀석은 너 때문에 저리된 거야. 모르겠어?”

“……아니야…… 아니야.”

“귀찮군.”

퍽-!

“욱!”

천응의 짧은 한마디에 제갈청의 무릎이 초운의 명치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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