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71화
“콜록……!”
입에서 나오는 핏물엔 이제 내장 조각이 섞여 있는 듯했다.
이미 부상에 주화입마까지 겹쳐 황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마공의 성취는 시간이 갈수록 오르고 있었다.
그의 뇌기가 만든 전격의 창은 이제 자색의 빛이 뭉쳐 있는 것으로 보일 만큼 진했다.
그가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용서해다오. 어서 날 용서해다오.”
초운은 여전히 대답치 못했다. 대답한다 해도 그의 목소리는 황현에게 닿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운의 검이 바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형……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화산이 자랑하는 환검의 오의가 그의 검 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검 끝을 휘돌며 담겼다.
‘이대제자라 들었거늘…… 저 나이에 검 끝에 바람을 담는단 말인가?’
지켜보던 석운자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절정의 고수인 것은 보아 알고 있었지만, 검 끝에 바람을 담는 것은 환검에 대한 이해가 상당함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황현의 반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가 치켜든 전격의 창 주위로 뇌기로 이루어진 구체(球體)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체였으나 커다란 나무도 일시에 태워 버릴 뇌기를 담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황현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는 자전마공이 십성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다는 벽뢰구(霹雷球)였다.
정확히 일곱 개의 벽뢰구가 초운의 주변을 둘러싸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져갔다.
하지만 초운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그저 깊은 눈빛으로 황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초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내가 용서하더라도 사형은 스스로를 용서치 못할 테니까요.”
그때 황현의 입에서 괴성이 울려 퍼지며 벽뢰구들이 초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순 초운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검 처로가 이끄는 바람이 일곱 개의 벽뢰구를 감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을 따라 흐르던 바람이 벽뢰구를 부드럽게 속박하는가 싶더니, 검을 쥔 초운의 가벼운 손놀림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벽뢰구는 춤을 추듯 초운의 곁을 맴돌다 하나둘씩 사그라지며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누구도 이런 것을 본 일이 없을 것이다. 상쇄도 아니고 남의 기운을 부드럽게 끌어 들여 힘을 다하게 만들어버렸다.
화산의 검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뜻[意]은 화산의 것이었다.
이는 바로 환검(幻劍)의 무리 그 자체였다.
변화[幻]의 중심에 자리 잡은 초운은 그 자체로 이미 부드러움[柔]이며 강함[强]이었고, 또한 차갑고[冷] 뜨거운[熱] 것이기도 했다.
이 격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변화의 근원 속에서 벽뢰구의 강력한 기운조차 초운에겐 그저 또 다른 변화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에 대한 깨달음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던지라 초운의 입에선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만약 황현의 경지가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초운의 이 같은 무리도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리라.
“사형 보셨어요? 사형이 저를 구해줘서 얻은 거예요. 아파 누워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게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뿐이었거든요.”
“…….”
황현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를 가득 메운 자광(紫光)은 더욱더 진해져 있었다.
어느덧 십성에 달한 자전마공의 마기는 이미 포화 상태, 그의 기경팔맥을 비롯하여 세맥 한 가닥까지 모조리 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황현의 이성과 자전마공의 마성은 머릿속에서 여전히 서로 간의 영역을 다투고 있었으나, 몸은 이미 마공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 증거로 황현의 몸은 돌처럼 경화되어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마음[心]과 기(氣)가 하나가 되지 못해 생긴 부작용이었다.
기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자 정신.
마음이 일면 기가 움직이고 그다음 육신이 움직인다.
무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 가지를 완벽히 합일하여 시간차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조화를 이루게 된다면 결과는 주화입마였다.
황현의 마음[心]을 마성이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려는 정신은 끊임없이 혹사당하는 중이었다.
외적으로 보이는 그는 폭주하여 미쳐 버린 듯 보이지만 내면의 그는 마성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모습은 마성에 빠진 것이 아닌 본능적인 파괴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솟아나는 마기를 제어해야 할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더욱더 강력한 뇌기가 쏟아져 나왔다. 얼굴 한 귀퉁이의 껍질이 모래처럼 바스러져 바람에 흩날렸다.
초운은 그 모습을 고통스러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파아아앙---!
땅이 시커멓게 타오르며 뇌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초운은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허공을 향해 솟구치며 검을 들어 매화검을 뿌려댔다.
십사수매화검과 이십사수매화검의 초식은 서로 상충되지 않고 이어졌다. 화산의 누구도 이처럼 매화검류의 초식을 자연스레 연결할 수 없을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일어나 초운의 몸을 띄웠다.
그와 동시에 암향표가 쉴 새 없이 펼쳐지며 황현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황현은 일곱 개까지 뽑을 수 있던 벽뢰구에서 둘을 더 늘려 아홉 개를 만들고 초운을 향해 날렸다.
그러나 초운은 또다시 환검의 무리를 적용한 검공으로 그것들을 받아 내며 공격하는 걸 잊지 않았다.
수십, 수백초의 초식이 연이어 펼쳐지며 황현을 검기의 바다에 가둬 버리는 듯했다.
그들은 삼 장 단위로 거리를 벌리고 다시 붙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그로 인해 반경 십여 장은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육대세가와 구파의 무인들은 이미 이십 장 밖으로 피한 지 오래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피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각이 흐르자 초운은 진기가 조금씩 끊기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약효가 다 되어 가는 듯했다. 그가 작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약효가 이대로 사라져 버리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이다.
자신을 쫓아온 무인들이 죽는 건 물론이고, 강소성 전체가 큰 혈겁에 휩싸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황현의 파괴 본능은 모든 것을 소진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초운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전에 자신이 멈추어줘야 했다.
초운은 실전에서 거의 써본 일이 없는 한 가지 검초를 떠올렸다.
오직 십사수매화검의 극의에 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스승뻘인 적 자배의 일대제자들 중에서도 제대로 펼치는 이가 드문 초식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은 완성시키지 못했다.
하나 십사수매화검만큼은 완성에 이르렀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에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행하려 하는 중이었다.
자고로 초식을 합일한다 함은 단순히 연달아 펼치는 것을 뜻함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먼저 각 초식에 담긴 무리를 아는 것이 첫 번째였다. 무리(武理)를 알고 나면 무리를 이루는 근간에 기(氣)를 담아 합일해야 하는데, 이는 절정경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다.
초운의 검첨에서 자줏빛 광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검이 바람을 부르고 바람은 검에 담겼다. 화산의 검은 환검의 길을 따른다.
그리고 변화의 뜻[意]을 알고 스스로 근원이 되는 법을 얄팍하게나마 깨달은 초운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 내뱉을 수 있었다.
즉 그는 화산 십사수매화검의 정수라 불리는 초식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검첨에 흐르던 자줏빛 검기가 변하여 매화 잎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산(華山). 매화검류(梅花劍流).
십사수매화검(十四手梅花劍).
오의(奧義)…….
매화란구주(梅花亂九州)!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석운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것이 진짜…… 검강(劍剛)이로구나.”
자신이 모든 힘을 짜내야 겨우 유형화시킨 검강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석운자는 비참해졌다.
수십 년을 일로매진하였건만 제자뻘인 아이만도 못한 자신의 검(劍)이 너무도 초라했던 것이다.
황현 또한 본능적으로 기운을 늘려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 전격의 창을 두 배나 키웠다.
쩌. 저적.
어깨의 피부가 가뭄에 마른 땅처럼 갈라지며 피부가 떨어져 나갔다.
이는 어깨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초운의 검에서 시작된 매화 꽃잎은 너무도 많았다. 천지 사방이 모조리 매화로 뒤덮이는 듯했다.
그런데도 황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본능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다.
전격의 창이 얇은 뇌기의 조각으로 갈라지며 수백 개의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치이이익---!
검기로 이루어진 매화꽃의 환영을 모조리 태워 버릴 듯 뻗어 나가던 번개였건만 얼마 가지 못해 수많은 꽃잎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황현의 눈은 초운의 모습을 좇았다.
하지만 매화 잎에 가린 초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매화 잎의 폭풍은 조금씩 황현을 좁혀 오고 있었다.
황현은 미친 듯이 번개를 뿌려 댔다. 그런데도 매화란구주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매화 잎을 늘려만 갔다.
점점 고립되어 가던 황현의 몸이 이윽고 초운이 검강을 쪼개어 만든 매화 잎에 모조리 가려져 버렸다.
그리고…….
푸욱---!
황현의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초운의 검이 박혔다.
울컥!
황현의 입에서 한 사발은 되어 보이는 피가 흘러나왔다.
피는 초운의 검.
처로의 몸을 적시고 땅에 떨어졌다.
초운이 슬픈 어조로 그를 불렀다.
“……사형.”
그가 미친 듯이 뿜어 대던 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의 몸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절명하지 않은 이유는 초운의 검 끝이 아직 심장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 초운은 망설이고 만 것이다.
황현의 눈빛에 섞인 자광이 점점 약해지며 그의 이성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쿨럭, 쿨럭…….”
기침을 하여 피를 몇 번 더 쏟아 낸 그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초운을 바라보았다.
그가 떨리는 손을 들어 초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했다…… 초운아…… 이…… 제, 마무리를…… 해야지…….”
“사형!”
초운의 입이…… 눈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젖은 음성으로 자신의 불쌍한 사형을 불렀다.
그러자 황현이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 피부가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살짝 박힌 초운의 검날을 붙잡으며 말했다.
“약…… 속…… 을 지켜다오…… 초운아…….”
초운은 깜짝 놀랐다.
황현이 검날을 잡아당겨 심장 쪽으로 더 깊숙이 찌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 돼요! 사형! 사형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요!”
“해야…… 해…….”
“안 돼요!”
초운이 절규하듯 소리치며 검을 뽑아버렸다.
황현이 안타까운 얼굴로 쓰러졌다.
가슴의 검상에서 피 대신 자색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사형…… 이제 정신이 돌아왔으니 분명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그런 그의 희망을 반대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건 안 될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