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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65화 (65/217)

검향 65화

각자 사문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여기서 또 저들을 놓친다면 언제 또다시 찾아내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순식간에 합의를 마친 이들이 추격을 시작했다.

어차피 천라지망이다.

마을을 벗어난다고 해서 끝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초운은 바깥이 더 위험함을 알 수 있었다.

인원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깥의 인원이 오히려 네 배는 더 많았다.

촤학---쨍!

소림의 승려로 보이는 이를 쇄골에서부터 가슴까지 갈라 버린 황현은 검이 부러지는 소리에 미련 없이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등 뒤에 찬 검을 한 자루 뽑았다.

초운도 검을 들고 있긴 했지만 장식이나 다름없었다. 공력이 부족하여 경공을 펼칠 힘도 아껴야 했다.

결국 모든 공격을 황현이 막아 주고 있었다.

마을에서부터 겨우 이 리(二里:785미터) 정도 전진했을 뿐이다.

하지만 황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다.

“헉…… 헉…… 헉…….”

황현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두리번거리다 초운을 향해 말했다.

“초운아,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선 방법이 없겠구나. 적들이 너무 많아.”

초운은 안쓰러운 얼굴로 황현을 바라보았다.

“사형…….”

“걱정 말아라. 아직…… 아직은 괜찮으니.”

사실 황현 또한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다.

한데도 사형 된 입장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자기 때문에 팔을 잃었고, 자기 때문에 마공에 취했다.

잃어버린 팔을 채 아쉬워하기도 전에 죽어 가는 자신을 업고 도망쳤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장력에 격중당하고 칼에 베였다.

초운은 문득 밀려오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다.

눈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 낸 황현이 초운의 팔을 잡고 말했다.

“혹 공력이 다 되어서 그래? 그렇다면 업혀라.”

초운은 대답 대신 뿌리치듯 팔을 빼고 앞서서 달렸다. 황현은 지친 듯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초운의 뒤를 따랐다.

적들의 기척이 또다시 가까워지고 있었고 밤은 너무도 길었다.

* * *

“헥! 헥! 헥!”

“너무 힘든 티 내지 마라. 열 받는다.”

진명의 낮은 목소리에 형호는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런 그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진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장 일 어렵지?”

형호는 극렬히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전혀 안 힘듭니다. 재밌습니다. 완전 재밌네요. 으아! 재밌어라.”

라고 소리쳐 보지만 사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현장 일이야 경험이 꽤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남이 쳐 놓은 천라지망을 이동해야 한다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이동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구파와 육대세가가 혹시나 초운 일행을 잡을까 봐 다른 곳에다 수상하게 보이는 흔적을 남겨 혼선을 줘야 했고 때로는 은밀하게 몇 놈 죽이기도 해야 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피곤하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녀석들은 어디로 도망갈 생각일까요? 앞뒤가 다 막히고 가까운 포구에도 적도들이 드글드글할 텐데…….”

“쯧쯧. 아직 멀었구나.”

“뭐가 말입니까?”

“이놈들이 천라지망을 뚫고 다시 잡히고 뚫고 다시 잡힌 것이 벌써 여섯 번째다.”

형호는 어찌하여 진명이 당연한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그 천라지망에서 도망치게 만들어 준 것도 형호를 비롯한 천이각의 은밀 요원들 덕분 아니던가.

모를 리가 없는 정보였다.

“이쯤 되면 짐작해야지. 강도 안 되고 바다도 안 되고 평지는 더더욱 안 된다. 너라면 어디로 가겠느냐?”

잠시 고민하던 형호가 곧 답을 말했다.

“음…… 산(山)?”

“정답이다. 녀석들이 향하는 곳 중에 그나마 숨을 곳이 많은 산이라면 어디가 있겠느냐.”

요원에게 있어서 지도와 지형을 외우고 지역의 특색을 외우는 일은 기본 소양이었다.

때문에 강소성의 지리 정도는 이미 다 꿰고 있는 형호였다.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운태산(雲台山)입니까?”

“한 번에 못 맞춘 게 아쉽다만, 그럭저럭 합격 점수를 주마.”

“그곳에서 판가름 나겠군요, 뭐가 되었든.”

“그래,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운태산에 먼저 도착해야 하니.”

두 사람은 곧 자리를 떠났다. 한가롭게 지체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명과 형호가 떠난 자리에 얼마 후 소년이 하나 나타났다.

눈부신 백의를 입고 섭선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이 나는 듯했다.

그리고 소년의 곁에 나타난 회색 눈동자의 인물…….

그는 감정 없어 보이는 회안(灰眼)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좋은 것을 들었어. 그렇지?”

“…….”

“그 눈빛은 왜 둘 다 죽이지 않았냐고 묻는 것 같네.”

“…….”

늘 그렇듯 이 회안의 마인은 대답해 주지 않는다.

소년 또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쫓다 보니 무림맹 같아서 놔뒀어. 신마께서 무림맹은 아직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거든.”

이쯤 되면 자문자답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소년 천응(天鷹)은 계속 얘기했다.

“피가 그립지? 곧 많이 먹을 수 있게 해 줄 테니 기다려. 우리의 새 친구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든.”

“…….”

“그래, 우리도 운태산으로 가야 해. 제갈청.”

천응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제갈청이라 불린 회안마인은 그를 등에 태우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국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 *

청해!

중원의 입장에서 청해는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중원과 세외의 접점이라는 특수한 지리 탓에 온갖 세력들이 공존하는 괴이한 곳. 옛 천산마교의 후예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파의 종주라던 혈교가 밀려 터를 잡은 곳.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영원히 지배할 수 없는 힘의 땅.

그러한 곳이다 보니 이곳의 방파들은 늘 중원을 꿈꿨다. 이곳에서 세를 불리고 힘을 모아 중원을 침공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다.

몇 년 전 혁련수가 이곳에서 세를 불려 운남으로 건너가 평정해 버린 일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힘을 토대로 무림맹을 향해 매서운 진격을 하지 않았던가.

결국 한 사내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 의해 멈춰야 했고, 도주하여 실종되었지만.

청해의 저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귀천무단(歸天武團)의 단주이자 무림맹 귀주 지부의 지부장인 적오자가 청해까지 원정을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명분은 실종된 혁련수와 그 잔당들을 쫓는 것. 그리고 청해의 불순 세력들을 힘으로 제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파견을 끝내고 사문으로 돌아갈 공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져 버렸다.

그저 혁련수의 잔당들을 잡고, 청해의 문파 중 약한 몇 곳을 본보기 삼아 박살 내거나 복속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그저 그렇게 공적을 올리려 했을 뿐인데 문제는 그런 식으로 복속시켰던 작은 문파가, 혈교의 것이었다는 데 있었다.

결국 한참 세력을 늘려 가던 혈교와 맞부딪혔고, 그 결과 다시 중원으로 진출하여 백월성과 성천궁에게 복수하려던 혈교주 도호성의 야망을 깨부수고 말았다.

이 정도뿐이었다면 반년 만에 중원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청해는 말했듯 힘이 곧 모든 것인 땅.

혈교를 부쉈더니, 혈교의 모든 것이 귀천무단에 흡수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나름 명문정파 출신으로 이루어진 단원들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었으나, 따르지 못할 바엔 죽겠다고 나서는 혈교의 무리들을 도사인 적오자는 거부할 수 없었다.

일단 혈교가 손에 들어오니 이번엔 혈교와 대치 중이던 네 곳의 방파가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연합하여 반무맹(反武盟)이라는 거대 세력을 만들고 말았다.

공을 세우려 왔다가 오히려 더 큰 위험 세력을 일으키고 말았으니 적오자나 귀천무단의 입장에선 난처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곳도 부숴 버렸다.

조금 쉽게 얘기하는 듯하나 쌍방 간의 피 튀기는 혈전이 있었다.

만약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혈교도들이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반무맹 또한 귀천무단에 복속되고 말았다.

그렇게 귀천무단은 청해 제일의 집단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결코 적오자나 본래의 단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처음 중원에서 건너온 단원들이나 단주인 적오자의 무공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싸움 탓에 몇 배나 늘어난 것이다.

또 반년쯤 더 지났을 땐 옛 천산마교의 후예라는 조 씨 일족들과 화친을 맺을 정도로 강성해져 버렸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이만한 업적을 이루고 나서 목에 힘이 들어갈 만도 했으나, 적오자나 귀천무단의 단원들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설득력은 별로 없는 말이었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하지만 청해가 약해서였을까? 그건 아니었다.

청해는 분명 패도(覇道)의 땅.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불문율이 지배하는 땅인 것이다.

무공의 살상력이나 실전 경험은 중원의 무인들보다 뛰어났으며 수준이 높았다.

그들이 중원보다 부족한 건 오직 하나, 머릿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귀천무단은 초반에 혈교를 제압하는 천운이 따랐다.

만약 제압하지 못했다면 청해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적오자가 있었다.

청해 오대고수 중 하나이며 절대경에 입문하였다는 혈교주 도호성을 도발하여 일대일 대결로 꺾어버린 덕분에 다 졌던 싸움의 양상이 뒤집어지고, 혈교가 귀천무단에 복속된 것이다.

이제 청해의 힘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천산마교의 후예라 불리며 많은 문파들 위해 군림하는 청해의 정신적인 지주. 조 씨 일족.

곤륜과 맞닿은 신비지문인 검해(劍海).

그리고 귀천무단이었다.

적오자는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밑의 수하들은 더 나아가고자 했다. 청해 일통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림은 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조 씨 일족.

이 조 씨 일족과 화평을 맺었으니 검해를 정복하는 것만 남았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수하들의 힘과 사기는 충천하였고, 검해에 대한 파악도 어느 정도 끝나 있었다.

아직 무림맹엔 보고를 올리지 않았으나 검해마저 장악하고 돌아간다면 아마도 경악하게 되리라.

그러나…….

운명은 청해 일통을 턱 앞에서 멈추어 서게 만들었다.

“단주!”

자신의 거처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적오자를 부관인 마영이 급히 불렀다.

적오자는 읽던 책을 덮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마영.”

“단주, 큰일이 났습니다.”

마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의 손에는 네모반듯한 갈색의 가죽이 들려 있었는데 이는 종이 대신 사용하는 전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영이 떨리는 손으로 가죽을 건넸다.

“……이것은?”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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