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향-58화 (58/217)

검향 58화

四章

석운자는 과거 곽호와의 협상이 끝나자마자 청성파와 종남파 그리고 형산파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들 또한 제자들의 목숨이 걸린 터라 당연히 요청에 응했다.

구파의 나머지 문파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두었다.

그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소림이 운 좋게도 가장 먼저 초운 일행의 위치를 알아내었고, 때마침 호북에 있던 사대금강을 보내었다.

하지만 뭐가 틀어진 건지 그들은 모조리 살해당하고 말았다.

호북에서 안휘로 향하는 길목인 악서에서 구파의 무인들을 만나 합류한 석운자는, 소림의 제자들에게서 놀라운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대금강의 사인이었다.

“……자전마공이라고?”

“네, 사백조님들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쫓는 이들은 화산의 제자들일세. 그 아이들이 사대금강을 죽였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 마당에 마공이라니…… 그것도 상위마공이라는 자전마공을.”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천상련이 끼어든 것일 수도 있네.”

그러자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종남파의 제자 진겸이 그에게 되물었다.

“호북에서…… 말입니까?”

“음…….”

호북에는 무림맹과 무당파가 있다.

그것뿐이라면 모르겠는데 무림맹에 이름을 올린 아흔 개 문파와 일곱 개의 지부가 존재했고, 무당의 속가제자들이 세운 문파와 표국만 해도 서른 개가 넘었다.

무당뿐만이 아니었다.

호북에 있는 일곱 개 사찰들도 소림과의 인연이 깊었다.

사대금강만 하더라도 죽기 전 호북의 대사찰인 금정사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이처럼 많은 힘이 집약되어 있는 호북은 정도무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상징적인 곳이었다. 그러한 곳에 천상련의 인물들이 넘어와 함부로 활개 친다면 이는 곧 전쟁을 의미했다.

석운자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은 추측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결국 화산의 제자들 중 하나가 마인(魔人)이라는 뜻이로군.”

“어쩌면 둘 다 마인일 수도 있겠지요.”

이 같은 발언을 한 자는 청성파의 제자로 이름은 종리수였다.

하지만 소림의 제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살해 흔적은 한 명에게서 비롯된 듯하더군요.”

“음…….”

석운자가 침음성을 흘렸다. 운현 진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인이 출현하면 정사를 막론하고 합심하여 섬멸한다. 이는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일행의 수장 격인 석운자로서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정 둘 중 하나가 마인이라면 척살하는 수밖에.”

“마인…… 사냥입니까?”

진겸이었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흥분한 듯 보였다.

석운자는 그 같은 흥분이 상당히 위험한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진정하게. 이것은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마인을 섬멸하는 일일세.”

진겸은 창피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석운자가 각 파의 대표들을 한데 모았다.

“이제 우리의 목적을 조금 바꿔야겠네. 분명 오대검파의 제자들과 화산을 구하는 것은 중요하네. 하지만 마인이 각성하여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하는 것을 막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일이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힘을 지닌 자로서의 사명감.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또 그 제자에게서 제자에게로 전해지는 오래된 책임이었다.

석운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정의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석운자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그는 죄 없는 화산 제자들을 쫓는 것이 싫었다.

일월신마와의 협상 자체가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그는 여기 모인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수치스러워 할 날이 올 것이라 여겼다.

때문에 그는 자전마공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배들이 미래에 느낄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줌과 동시에 사명감을 일깨워 사기를 올려야 했다.

자전마공이라는 네 글자가 가진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문의 장로들에게 마공에 대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자전마공이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장로들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 쫓는 중인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나이가 어린 편이니 누가 익혔든지 간에 아직 미숙할 것이다. 아니, 미숙하기만을 바랐다.

만약 완성 단계라면 후기지수들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 절정경에 달한 운 자배 장로들이 스무 명 이상은 하산해야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석운자는 들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이들을 돌려보내고 새롭게 인원을 충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되면 목표물을 놓치거나 육대세가와 같은 경쟁자들에게 빼앗기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한시가 급했다.

“자, 자. 마인사냥은 장난이 아닐세.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고 방심하지 말게.”

그리 말한 석운자가 앞장서서 경공을 펼쳤다.

목적지는 안휘의 안경(安慶). 안휘에서 가장 많은 배를 볼 수 있는 포구였다.

* * *

구파에서 곤륜과 화산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문파는 초운 일행을 잡기 위하여 조를 수십 개로 나누었다.

화산파의 배분을 기준 삼아 말하자면 경험 많은 일대제자가 각각 열 명 정도의 이대제자들을 인솔하여, 목표물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설사 놓치더라도 상관없었다. 전서구를 이용해 미리 정보를 주고받아 도주로를 차단하면 될 테니까.

결국 사냥감은 사냥꾼이 의도하는 곳으로 도망가게 되는 법이다.

수로를 이용하기 위해 안경으로 향하던 초운 일행이 첫 번째 추적자를 만난 것은 안경까지 불과 하루거리를 남겨 두었을 때였다.

덜컹! 덜컹!

마차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았으니 조종이 편할 리가 없었다.

팍! 파파팍!

검기가 마차 뒤편을 파고드는 소리가 귀에 박힐 듯했다.

“젠장! 합!”

고삐를 더욱 세차게 휘둘렀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이 비명을 질렀다.

마차 안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서평이었다.

“아직도 쫓아와!?”

“집중 안 되니까 조용! 넌 초운이나 안 흔들리게 잘 잡아! 그리고 밖에 목 내밀지 마라! 그러다 잘리면 버리고 갈 테니까.”

“히익!”

몰래 머리를 내밀었는지 서평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검기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만약 마차를 모는 말들이 힘 좋고 빠른 대완구가 아니었다면 추적자들에게 진작 따라잡혔어도 잡혔을 것이다.

이대로 마차를 멈춰 싸울 수도 있었지만, 이번 추적자들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한 수, 한 수가 모조리 살수였다.

초반에 자신을 쫓던 마인들이 오히려 착했다고 여겨질 만큼 살기 넘치는 검격들이었다.

적어도 그때의 마인들은 초운을 건드리지 않아서 자신이 마음껏 싸워 볼 수 있는 여유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마차 뒤를 쫓는 이들은 과격했다.

그들과 싸운다면 서평이나 초운이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엄청난 경공으로 마차를 넘어와 막았다.

그는 종남의 인물로 청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천하도도!”

파파파파파파---!

당연하지만 진짜 천하도도는 아니었다.

제대로 복원된 천하도도는 일월신마에 의해 인질이 된 종남삼협만이 펼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황현도 피하기 힘들었다. 그는 말을 포기하고 마차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히이이잉!”

말들의 비명이 그의 귀를 때렸다.

천하도도의 검기는 말들을 도륙 내는 것으로 모자라 마차 안까지 파고들었다.

매류통천(梅流通天)!

황현의 왼손에 들린 검 끝에서 십사수매화검이 터져 나왔다.

매류통천…… 제대로 펼쳤다면 검기가 허공을 무수히 메울 정도인 초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천하도도를 막는 정도가 한계였다.

콰콰콰!

서로의 검기로 인해 마차가 반파되고 말았다.

“쿨럭! 젠장…….”

청구라는 이름의 종남 제자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며 기절했다.

그래도 그는 쫓아오는 동료들을 위해 마차를 부숴 놓는 활약을 펼쳤다.

황현은 서평이나 초운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마차가 멈출 때의 충격으로 기절만 했지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황현은 그들을 마차의 잔해 아래 밀어 넣고 일어섰다.

그사이 아주 다양한 복색의 인물들이 그를 포위했다.

모두 열네 명 정도였는데 그중엔 소림의 승려와 아미의 비구니들도 있었고, 청성, 형산, 종남의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물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얘기했다.

“자네가 초운인가?”

“아니오.”

“그럼 저기 마차 밑에 있는 두 사람 중에 하나겠구만.”

“…….”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청성의 일대제자인 벽풍이라고 하네.”

“적풍객!”

황현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청성의 일대제자 벽풍이라면 그 이름보다 적풍객이라는 별호로 더 유명했다.

그의 무공 수위는 절정. 앞서 만난 적이 있는 사대금강보다 더 강하다는 평을 받는 자이기도 했다.

“나에 대해 잘 아는가 보군, 그럼 피곤하게시리 오래 얘기하지는 마세나. 우리가 원하는 건 초운이라는 화산 제자 하나일세. 건네주겠는가?”

“싫소.”

황현은 단칼에 거절하였다. 그들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초운의 현 상황은 강소성에 있다는 그 ‘신의’가 아니면 고칠 수 없었다.

이대로 이들에게 끌려가게 되면 초운은 죽고 말 것이다.

“왜 좋은 길을 두고 진흙탕을 걸으려 하는 거지?”

“살기가 담긴 검기를 날리는 이들에게 사제를 넘기는 짓을 할 멍청이는 아니오.”

“아까 검기가 그리 신경 쓰였나? 그렇다면 미안하네. 아무래도 자네 일행 중에 마공을 쓰는 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알다시피 마인은 죽여야 하는 게 규칙 아닌가.”

황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대금강이 떠오른 탓이었다.

분명 그들은 자전마공에 당해 죽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마공을 알아보는 이가 저쪽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소문이 퍼졌나 보군.”

지지지직!

자색의 뇌기(雷氣)가 순간적으로 황현의 전신을 삼켰다. 곧이어 눈과 머리카락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같은 현상은 자전마공이 육성에 도달하였음을 뜻했다.

순간적으로 바뀐 황현의 기세 때문일까. 주변을 포위한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황현의 신형이 순간 사라지는 듯하더니 고속으로 이동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자는 유일한 절정고수인 벽풍밖에 없었다.

“젠장! 멈춰라!”

그가 황현의 신형을 쫓았다. 황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퍼퍼퍼퍽-!

짧은 타격음과 함께 앞날이 창창한 후기지수들의 머리통이 잘 익은 수박 쪼개지듯 잘려 나갔다.

이들 대부분이 이제 갓 일류에 이르렀고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악독한……!”

벽풍의 검기가 황현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하지만 맞출 수 없었다.

황현이 이미 시체가 된 청년 하나를 방패 삼아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경험 많은 벽풍이라지만 이런 방어법은 상상도 못했다. 그가 본능적으로 검기를 틀었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시체와 함께 베어버렸어야 했다.

황현이 그런 그를 비웃었다.

“멍청이.”

“……?”

촤학!

벽풍의 다리가 허벅지 아래로 잘려 나갔다.

“커헉!”

황현은 그가 비명을 지를 기회도 주지 않고 입에 검날을 쑤셔 박아버렸다. 그리고 잠잠해졌다.

남아 있는 적은 더 이상 없었다.

황현은 조용히 일어서서 버릇처럼 눈을 감았다.

마성이 들끓었다. 아직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신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터라 더욱 그러했다.

본능이 유혹했다.

당장 시체의 심장을 파내어 뜨끈한 피를 마시라고. 아니…… 마차의 잔해 밑에 숨겨 놓은 사제의 심장도 괜찮을 듯했다.

“헉!”

순간 이성이 돌아온 황현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짝---!

정신을 차리자 눈동자에 깃들었던 자색의 광체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의 색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한 대로는 모자랐는지 황현은 또 한 번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입술 안쪽이 터졌는지 비린내가 확 올라왔다.

“퉤!”

입안에 가득한 피를 뱉어 내었다. 핏덩이 속에 하얀 어금니가 하나 끼어 있었다.

겨우 마성을 진정시킨 황현은 마차로 다가갔다. 잔해를 살짝 걷으면 서평과 초운이 누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우지 못했다. 좀 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마차에 등을 기대어 앉은 그는 곧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깨가 가끔씩 들썩이며 짧은 흐느낌이 이어졌다.

툭…… 투툭…….

그를 위로라도 하듯,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황현은 그렇게 한참을 비와 함께 흐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