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8화
팔을 앞으로 들어 올릴 수는 있었지만 상당히 힘이 들었다.
“팔 한쪽에 열다섯 근짜리다. 그건 그럭저럭 버틸 만하지? 하지만 곧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게다.”
뒤이어 그는 들고 있던 붉은색의 목검을 초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검을 들고 초식을 하나 펼치기 시작했다.
기초검식인 육합구궁검의 평범한 일초였다.
“따라하거라. 자세도, 속도도 정확하게 똑. 같. 이.”
초운은 검을 들었다.
아니, 들려 했다. 하지만 팔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세를 똑같이 하려고 하면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속도를 똑같이 하려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적오의 검초가 너무 빨라서가 아니었다.
지극히 느렸기 때문이었다.
검초 하나를 끝내는데 반 시진이나 걸릴 정도였다.
검을 들어 자세를 따라 하려고 하면 근력이 딸려 오래 들지를 못하고, 어쩌다 들더라도 적오의 느린 속도에 맞추려 하면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열다섯 근의 무쇠 고리를 팔목에 차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육합구궁검의 일초가 다 끝날 때까지 초운은 헛손질만 해 댔다.
초운은 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적오는 그러한 초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이제껏 잘 견뎌 온 너라면, 이번에도 아마 해낼 수 있겠지.”
여태까지 홀로 짐작만 했지 적오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던 말이었다.
적오에겐 아무 의미 없는, 아니 약간의 조롱마저 담겨 있는 말이었으나 그것은 초운의 입장에선 참으로 힘이 되었다.
“네, 꼭 해낼게요. 사부님!”
‘이놈은 정말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적오가 눈을 빛냈다.
“헉…… 헉헉…….”
땀을 비 오듯 흘리던 소년은 힘없이 무릎 꿇었다.
두 시진 만에 처음으로 쉬는 소년을 향해 소년의 사부가 말했다.
“일어나거라. 너무 많이 쉬는구나.”
호흡을 정돈할 틈마저 주지 않고 일어서라 독촉하는 사부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년은 일어섰다.
자신의 근육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댔지만 한편으로는 넘치는 활력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는 소년의 옥허공이 오단공에 이르렀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옥허공의 경지가 올라도 무쇠 고리의 무게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름에 한 번씩 더 무거운 것으로 바꿀 정도였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선 양 팔목의 고리는 각각 서른 근…….
다리의 고리는 각각 육십 근에 달했다.
이 모두 소년의 타고난 근성과 옥허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언제부턴가 소년의 사부는 매화 가지로 만든 회초리로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정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맞고 난 뒤엔 지옥과도 같은 근육통이 어느 정도 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몸에 상처도 많이 남았다.
어떨 땐 피멍이 너무 심하게 들어 피고름을 짜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부는 소년에게 백약당에서 지어온 특별한 탕약을 마시게 했다.
약은 몹시 썼지만 매질로 인해 생긴 몸의 상처나 부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소년이 사부를 만난 지도 이제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더불어 새로운 수련법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도 넉 달이 흘렀다.
팔다리의 고리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육합구궁검의 일초를 완벽한 자세로 두 시진에 걸쳐 아주 천천히 펼칠 수 있게 된 것과 키가 조금 자란 것이었다.
사부는 소년의 키가 자라자 새로운 목검을 주었다.
소년은 정이 든 목검을 바꾸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수련을 위해서 바꾸었다.
새 목검 안에는 철심이 박혀 있었다.
사부가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팔이 왠지 가벼워 보이더구나.”
소년, 초운은 해를 넘겨 아홉 살이 되었다.
* * *
“이젠 다 해 몇 근이지?”
중년의 숙수 곽호가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초운은 양손을 펴 손가락을 몇 개 꼽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백팔십 근이요.”
곽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웃는 낯을 지우지는 않았다.
아홉 살 아이가 팔다리에 이백 근에 가까운 무쇠 고리를 차고 저리 자연스레 움직인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도 저런 건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린아이에게 시킬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헌데 이 화산파엔 시키는 이도 있고, 해내는 꼬마도 있었다. 그것도 그의 바로 눈앞에…….
“무겁지는 않고?”
초운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헤헤…… 아, 맞다! 목검도 있었지!”
그때 뭔가 생각났는지 초운은 허리의 목검을 들어 곽호에게 보이며 말했다.
“아저씨! 이거, 이거 오십 근이요!”
“응?”
자기도 모르게 목검을 받아 든 곽호는 그 묵직함에 우선 놀랐다.
물론 그가 오십 근을 못 들을 리가 없다.
단지 목검 안에 박아 넣은 철심이 얼마 되지 않을 터인데 이리 무거운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가 아는 한 이렇게 적은 양으로 오십 근에 달하는 무게를 가진 금속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만년한철……?”
“네?”
“아니다. 아니야. 어이쿠, 무겁구나…… 아저씬 무거워서 휘두르지도 못하겠어.”
곽호는 무거운 척하며 목검을 여기저기 휘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초운이 아이답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나저나 손톱만 한 부스러기도 구하기 어렵다는 만년한철을 목검에 집어넣을 만큼 갖고 있다니…… 적오라는 도사는 대체…….’
* * *
육합구궁검의 일초가 완벽해지자 초운은 다음 초식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수련도사들은 육합구궁검을 불과 한 달여 만에 다 배우고 내공심법과 병행하여 반복 수련을 한다.
그 같은 점은 초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운은 여전히 사부에 대한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고, 적오 또한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적오는 새 초식으로 넘어갔다 해서 고리의 무게를 더 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초운의 몸에 금제를 걸었다.
옥허공의 공력을 오 할이나 막아버린 것이다.
“네 공력 중 오 할 정도를 단전이 아닌 전신의 경맥으로 돌렸다.”
가뜩이나 공력이 부족했던 초운은 이번 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겨우 익숙해졌던 무쇠 고리와 목검의 무게가 다시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순간 허탈했으나, 초운은 사부의 말을 경청했다.
“경맥으로 돌린 공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경맥에 잠재해 있는 것이지. 네가 해야 할 일은 경맥에 잠재된 공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일깨워요?”
“그래, 일깨운다는 것은 내가 너의 경맥에 돌려놓은 공력. 옥허공의 진기를 경맥이 완전히 흡수하게 만드는 것이지.”
적오는 확신에 찬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되면 훗날 생사현관의 타통에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경맥이 만들어진다. 단, 그때까진 네 옥허공의 공력을 단전에서 채우고 경맥으로 돌리는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즉 오 할의 공력을 복원하더라도 다시 경맥으로 돌리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공력을 더욱더 부족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지만, 이점도 있었다.
이론상 경맥이 튼튼해지는 만큼 몸도 튼튼해질 테니, 오 할의 공력을 잃는 만큼 육체라는 그릇은 더욱더 견고해지는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한 가닥의 공력도 없이 순수한 외공만으로 무쇠 고리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적오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
또래의 아이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아니 훨씬 연상이라도 불가능했을 수련을 우직한 노력으로 이겨 낸 제자였다.
그런데도 기대감은 없었다.
정확히는 기대하지 않으려 스스로의 마음에 벽을 쌓았다. 때문에 얼마나 걸리든, 그리고 얼마나 어렵든, 무서울 정도의 노력을 통해 보란 듯이 이겨 내는 초운의 저력을 확인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
초운이 스스로의 벽을 깰 때마다 동시에 적오가 쌓아 놓은 마음의 벽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적오는 기꺼운 마음을 애써 누르고 마음속에 더욱더 견고한 벽을 쌓았다.
사부로서 확실한 책임은 다 하고 제자의 성장에 놀라지만, 놀랐던 만큼 차가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마치 제자를 품에서 밀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더 힘든 과제를 내놓는다. 그럼 초운은 다시 그것을 해내고…….
둘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주 이상한 사제관계였다. 사부는 밀어내고 제자는 다가온다.
모든 원인은 초운의 상식을 벗어난 우직함 때문이었다.
이러한 우직함은 적오 또한 감탄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매일 초운이 떠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언젠가 올지도 모를 이별에 대비한다.
대비란 곧 상처받지 않을 준비.
정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요즘 초운은 하루가 너무도 모자람에 안타까워하는 중이었다.
자는 시간을 쪼개어 수련하지만, 사부가 원하는 목표는 요원하기만 했다.
이백 근에 가까운 무게를 몸에 달고 공력의 오 할을 포기해야 하며, 육합구궁검의 검초를 펼치면서 오행매화보가 자연히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새로운 수련…….
바로 사부가 추궁과혈이라 부르던 매질이 문제였다.
보통 몸의 울혈을 풀어주기 위해 사부가 가끔 하던 매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옥허공으로 만든 오 할의 공력이 경맥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초운이 수련을 시작한 이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온몸에 매질 자국이 없는 곳이 드물었다. 사부는 때리는 시간을 따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검초를 수련할 때와 오행매화보를 수련할 때 틀리거나 어색한 곳이 있으면 가차 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팍!
“악!”
“아프라고 때린 것이다. 왜 그곳에서 허리를 틀지 않은 것이냐. 이제 보니 순서만 외운 것이로구나. 일검, 일검 내뻗을 때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라.”
“네…… 네!”
팍!
“악!”
이번엔 조금 세게 맞았는지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지만 울지 않았다.
적오의 호통이 이어졌다.
“또 틀렸다. 발이 너무 깊어!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는 그렇게 꼴사나운 모습이 아니다!”
팍! 파팍! 팍!
초운이 발을 하나하나 뗄 때마다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세지고 빨라졌다.
초운은 맞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이 또한 경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련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오가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때리는 것은 무서웠다.
자신과 엄마 아빠에게 돌을 던지던 마을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