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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7화 (7/217)

검향 7화

불교로 따지면 일종의 공양이랄까. 아침과 점심때 잠깐 와서 무보수로 식사를 지어주는 사람이었다.

손맛이 좋고 성격이 호탕해서 수련도사들과 이대제자들은 모두 다 그를 좋아했다.

초운 역시 그러한 이들 중에 하나였다.

그가 초운을 향해 솥뚜껑 같은 손을 펴 내밀었다.

“자 받아라, 너 생각나서 남겨 놓은 거다.”

“와! 감자주먹밥!”

소금 간을 한 감자를 으깨 밥알과 섞어 만든 주먹밥이었다.

남는 재료를 싹싹 긁어 만들어서인지 그 크기가 거의 초운의 얼굴만 했다.

“초운아, 전에도 말했지만 말이다…….”

초운이 한쪽 손을 높이 들며 곽호가 할 말을 대신 했다.

“많이 먹어야 아저씨처럼 크고 강해진다!! 였죠?”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남기지 말고 꼭 다 먹어야 한다. 알았지?”

“헤헤, 돼지 될지도 몰라요.”

“너는 손발이 커서 먹으면 다 키로 갈 거다. 그러니 걱정 말고 먹거라.”

“감사합니다. 곽 아저씨. 내일 봬요!”

초운이 떠나자 식당이 조용해졌다.

곽호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초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의 오른 손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치 맥동하듯 거세어졌다.

그가 자신의 오른손을 붙잡고 기운을 진정시켰다.

기운이 세어 나오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제어가 되지 않는 군…….”

* * *

적오는 양 발목에 합이 이십 근이나 되는 무쇠 고리를 차고도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초운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여섯 달…….

피죽도 못 얻어먹은 듯 보이던 초운의 마른 몸은 이제 제법 살이 차올라 봐줄 만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골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신체였다.

신체는 그렇다 치고 저 둔한 신경은 어떠한가.

눈치도 없고 빠릿빠릿하지도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반년이나 버텨줬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맞는지 모르겠으나 이게 혹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일 가 싶었다.

뭔가 알게 되면 제자에게 먼저 선보이고 싶다거나 가르쳐 주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가 된 건 지도 몰랐다.

적오는 초운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족적에 맞게 보법을 펼쳐 보아라.”

“네, 사부님.”

초운은 몰랐지만 이 보법은 오행매화보라는 것으로 화산파의 단 하나뿐인 보법이자 경공이었다.

화산에는 하나의 바람(風)과 하나의 향(香)있어.

하나의 바람은 매화 잎 허공을 노닐 듯 부드러운 유(柔)의 극의(極意)라.

그 일보(一步) 무당의 유수행(有水行)에 버금가고.

그 바람 타고 퍼지는 매화향(梅花香) 있어.

한 번 펼치면 떠난 자리 향기만 남으니 이는 신선(神仙)의 걸음이며 인세에 남은 축지(縮地)의 비의라…….

원래는 예로부터 화산에 전해 내려오는 시구였으나,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화산의 보법을 칭송할 때 주로 쓰고 있었다.

이 시구에서 하나의 바람이란 오행매화보를 뜻했다.

그리고 속가와 정식제자를 가리지 않고 전수되는 유일한 무공이기도 했다.

화산의 검식에 맞추어 함께 펼쳐지는 오행매화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림일절로 개인의 무공경지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지는 보법이었다.

당연하지만 수련도사나 이대제자가 펼치는 오행매화보와 일대제자나 장로들이 펼치는 오행매화보는 천지차이였다.

나머지 하나의 향(香)은 전설의 보법, 암향표(暗香飄)다.

암향표는 과거 일백 년 전 마교대전 때 등천마교주와 양패구상한 당시 화산 장문인 및 매화검수들을 끝으로 실전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오행매화보가 화산의 유일한 보법임은 틀림없었다.

초운은 사부가 만들어 놓은 족적에 따라 발을 옮겼다. 그러나 그저 걷는 것과 심오한 보법을 펼치며 걷는 것은 천지 차이.

더구나 양 발목에 이십 근이나 되는 무쇠 고리를 차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다.

발이 꼬이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발이 너무 무거웠다.

무쇠 고리를 차고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발을 복잡하게 쓰는 보법을 펼치고 있으니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초운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적오의 말을 하늘처럼 믿고 항상 믿고 따랐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모든 수련을 이겨 낸 이유가 사부의 가르침 덕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가끔 얼굴을 마주치던 사형제들은 초운을 보고 재능이 없으니 견디지 못할 거라 말했지만 사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언젠가부터 발목에 찬 무거운 무쇠 고리도 아주 무겁지는 않았고, 마보 또한 한 시진이 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초운은 그 모든 게 기적 같았다. 하루하루 체력이 느는 게 느껴지고, 무쇠 고리의 무게가 줄어드는 듯했다.

사부는 분명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해내지 못할 일을 시킬 리가 없다!

초운의 사부에 대한 신뢰는 적오의 내심과는 달리 점점 확고해져만 갔다.

더불어 초운은 자신이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력이 부족해서라 여기고 좀 더 노력하기로 맹세했다.

초운의 눈에 떠오른 자신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이글거리는 열망을 발견한 적오는 왠지 거북한 기분에 거리를 두었다.

* * *

오행매화보의 구결대로 걷는 걸음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여전히 발목에는 사부가 채워준 무쇠고리가 차여 있었지만 그것도 익숙해지자 견딜만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신기했고 사물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얼굴에 닿는 바람은 시원했다.

일보일보(一步一步)모든 게 새롭게 다가왔다.

초운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이쯤 되니 적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지독한 수련을 시킨다 해도 저 아이는 견뎌내고 말 것이다.

재질이 모자라다 하나 성장속도가 딱히 느리지도 않다.

자신의 모자람을 성실함과 우직함으로 메우기 때문이다.

결국 성실함이나 우직함도 재능이 될 수 있음을 적오는 깨닫고 말았다.

“가르치며 배울 거라 하시더니…….”

문득 사부의 말이 떠올랐다.

물론 그의 사부인 백송 진인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귀찮은 짐을 적오에게 넘긴 것 뿐이었다.

헌데 적오는 초운이 자신을 오해하여 무한한 신뢰를 보내듯, 사부인 백송 진인을 오해하여 마음속으로 조금이나마 존경하게 되었다.

적오는 오행매화보를 여섯 번째 펼치는 초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어쩌면…… 녀석이라면 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군…….”

무쇠 고리를 채우고 옥허공을 시킨 지 이제 겨우 다섯 달인데 그 사이에 이대제자들의 평균적인 수준에 근접한 사단공(四團功)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옥허공에 대한 이해도. 그러니까 경지를 뜻했지 공력의 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력의 질과 양이 균형을 이루어야 심법의 공(功)이 제대로 쌓인다 할 수 있건만, 초운의 옥허공은 질은 좋으나 양이 부족했다.

이는 초운이 심법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그 경지가 제법 높으니 경지에 걸맞는 그릇을 갖게 되었고 공력이 쌓이는 속도 또한 제법 빨라졌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내공은 턱 없이 부족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옥허공의 도움으로 쌓은 놀라운 체력이랄까.

옥허공을 운용하며 무쇠 고리를 차고 쌓은 그 체력 덕분에 몸은 튼튼해졌고, 부족한 내공을 적게나마 보완 할 수 있었다. 이는 적오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육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

완벽한 내외(內外)공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신체 말이다.

내공은 외공을 보조하고, 외공은 내공을 지켜준다.

서로가 커질수록 강해지며 어느 한쪽이 약해지거나 죽어도 남은 하나가 살려준다.

어찌보면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가깝고도 먼 무당파에는 그러한 심공이 존재했다.

바로 양의분심공 말이다.

마음을 둘로 나누듯 내공도 둘로 나누어 상호 보완을 시키는 게 양의분심공의 특징이다.

하지만 몸이라는 그릇 자체에 큰 타격을 입으면 결국 깨지고 마는 것이 약점이었다.

적오는 그러한 약점마저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내외일체(內外一體)의 완벽한 육체였다.

자신은 이미 나이가 들어 익힐 수 없으나, 이 아이라면 아주 이상적이었다.

적오의 눈빛에 굳은 결의가 피어올랐다.

초운은 왠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四章

청연자는 오랜만에 만난 초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청연자는 초운의 다리에 걸려 있는 무쇠 고리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겁지는 않으냐? 전부터 말하려 했다만…… 수련이 과한 것 같구나.”

초운이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하나도 안 무거워요!”

실은 너무 무거워 밤에 침상에 눕기만 해도 근육통 때문에 끙끙거리기 일쑤였지만 초운은 청연자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아닌가.

청연자는 초운이 하는 말이라 일단 믿었지만 미심쩍은 표정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도 힘들거든, 꼭 이 할아비한테 말해야 한다. 알았지?”

“네, 할아버지!”

청연자는 다시 한 번 초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놈이 그래도 제법 신경 써서 가르치나 보군. 비쩍 말랐던 아이가 이렇게 살이 올라 있다니…….’

아직은 조금 더 두고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오르는 청연자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네 개의 고리가 초운의 발 앞으로 떨어졌다.

“다리에 찬 것을 풀고 그것들을 차거라. 작은 것은 팔목에도 차야한다.”

적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컥. 철컥.

이번에도 아무런 의문 없이 고리를 발목부터 채운 초운은 시험 삼아 한 발짝 움직여 보려 했다.

“윽…….”

움직일 수 없었다. 채울 땐 몰랐는데 무게가 두 배…… 아니, 적어도 세 배는 더 나가는 듯했다.

그 모습에 적오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리 하나에 삼십 근이다. 양쪽 발목을 합하면 육십 근이지.”

이번만큼은 초운도 놀랐다. 겨우 산 하나를 넘었다 싶었더니 더 높은 산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사부는 초운이 할 수 있는 것만을 시키는 것일 테니.

“어서 팔목에도 차거라.”

“네, 사부님.”

팔목의 고리는 다행히 크게 무겁진 않았다.

물론 직접 차고 난 뒤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철컥.

역시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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