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4화
적오는 싫다 싫다 해도 제자를 가르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게 남들 눈엔 학대로 보일 만큼 강도가 심해서 그렇지, 적어도 가르치는 이치에서 벗어난 적은 없는 것이다.
청연은 초운과 처음 인연을 맺어 화산으로 데려오는 기간 내내 친 조손과도 같은 정을 느꼈다.
그러니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하물며 적오의 악명은 위로는 장로들부터 아래로는 저 멀리 속가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아, 다시 일어선다! 암, 그렇지그래, 우리 초운이가 쉽게 포기할 아이가 아니지. 화산의 도맥을 살릴 아이가 아니던가.’
기특함을 가득 담은 눈빛을 초운에게 보내던 청연은 적오가 숨어 있는 나무를 향해 살기를 담아 보내며 중얼거렸다.
‘오냐, 지금은 초운이를 너 같은 놈에게 맡긴다만, 나중에 두고 보자.’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했다.
초운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대부분 좋지 않은 소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제자들은 대부분 고르고 골라 뽑은 기재들이었다.
그들은 피 말리는 경쟁을 강요하는 수련도사 시절을 견뎌 내어 이대제자가 된 것이다.
한데 난데없이 웬 모자란 아이가 고(古)장로의 눈에 들어 자신들과 같은 항렬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심지어 수련도사 과정도 스승에게 독립적으로 배운다 하지 않던가, 그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보통 수련도사 시절에 사부가 정해지기는 하지만 그 사부에게 개인적으로 수련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부뻘인 일대제자들이 돌아가며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나마 사부에게 개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심법뿐이다.
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검식이 틀리면 시간을 들여 고칠 수 있지만 심법이 틀리면 엄청나게 돌아서 가야 한다.
이들이 사부에게 모든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기는 수련도사에서 이대제자로 승격되었을 때뿐이었다.
그 승격이라는 것도 아주 사람 피를 말릴 만큼 까다로워서 오 년, 십 년이 넘도록 수련도사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고 속가로 돌아서는 이들도 많았다.
헌데 초운은 다른 수련도사들처럼 피 말리는 평가도, 경쟁도 없이 스승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얻는다 하니 수련도사들이나 이대제자들이 초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다.
물론 그 스승의 정체가 적오라는 소문이 돌자 질투심이 약간의 동정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미움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대제자인 황우(黃宇)는 그런 이들 중에서도 가장 소심하고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런 이가 도사가 되는 일은 과거의 화산이었다면 있을 수 없었지만, 인성보다 재능을 중시하는 측면이 강해져 이런 자들까지 도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초운에게 꽤 고통스런 일이었다.
퍽!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내려왔던 초운은 누군가의 주먹에 맞고 쓰러졌다.
얼얼한 볼을 감싸고 자리에서 일어선 초운은 자신을 때린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형을 보았는데도 인사를 하지 않다니, 버릇없는 놈이구나!”
그저 앞만 보고 가던 초운을 뒤에서 불러 세워 다짜고짜 주먹질부터 하고, 실컷 때린 후에 뒤늦게 이유를 설명한 황우였지만 초운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반항을 하든가, 아니면 기가 죽어 수그리든가.
그것은 어른이든, 어린아이이든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아이는 전혀 억울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뭔가 깨달았다는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은가.
“사형이셨군요! 저는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규율이 있는지 몰랐어요. 앞으로 사제 된 입장에서 반드시 사형께 예의를 차릴게요.”
“……그래.”
뭔가 비꼬는 것 같기도 한데 눈빛을 보아하니 진심인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황우는 결국 포기했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다…… 다음부턴 조심해라.”
“네에!”
황우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때려 놓고도 뭔가 손해를 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황우도 초운의 눈을 보며 느꼈듯이 초운은 지금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어리고 너무 우직한 나머지 자기표현에 좀 서툴렀다.
사실 초운이 이렇게 별 쓸데없는 이유로 수련도사나 이대제자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벌써 입문한 지 열흘이 넘었다.
사부에게 밥을 해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사문으로 내려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내려올 때마다 누군가와 마찰이 있었다.
오늘 황우의 손찌검은 오히려 덜 아픈 편이었다.
어떤 때는 기절할 만큼 맞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지나가던 사백이나 사숙들이 나서서 도와준 적도 있지만 그들 역시 그리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주먹밥 하나를 받아 든 초운은 혹시나 또 시비에 휘말릴까 두려워 급히 수련처로 올라갔다.
툭. 투툭.
“어? 비다! 주먹밥 젖으면 안 되는데…….”
산을 오르던 중에 소나기를 만난 초운은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매화가 가득 핀 나무 아래 큰 바위가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봐도 평평한 것이 나무를 가져다 지붕을 세워 보기 좋은 정자를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나무 주변엔 꽤 큰 공터도 있어서 무공을 수련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바위에 걸터앉아 비를 피하던 초운은 품에서 주먹밥을 꺼내어 한 입 물었다.
“아야야!”
황우에게 맞아 터진 입술이 아려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밥알을 뱉어 내진 않았다. 밥알을 애써 씹어 삼킨 초운은 버릇처럼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무성한 매화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매화나무라는 것은 아무리 잎이 무성해도 비를 다 막아주진 못하는 법이라 얼굴 위로 소낙비가 떨어졌지만 초운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비에 맞아 힘없이 떨어지는 매화 잎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도 아닌데 초운의 눈엔 그게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예쁘다.”
문득 예전 사부의 검술 시연이 떠올랐다.
왜 떠올랐는지는 이해를 못했다. 그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그때와 유사했다.
“그래, 예쁘구나.”
“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한 노인이 초운의 옆에 걸터앉아 있었다.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선풍도골의 노인에게 초운은 경계심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허허. 할아버지? 오랜만에 듣는 소리로구나.”
“얼마나 오래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대답하였다.
“글쎄…… 한 삼십 년쯤 되었지 아마?”
“와! 정말요? 무지 오래됐네요!”
“허허허. 오래되긴 했지. 그래, 보자…… 네가 초운이지?”
노인이 초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초운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어? 절 아세요?”
“알다마다. 적오의 제자가 아니더냐.”
초운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 사문의 어르신인 건가요?”
노인은 대답 대신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흘려 보였다.
“…….”
“…….”
초운과 노인은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았다.
침묵이 오래가자 노인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운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갸웃거렸다.
노인은 그제야 초운의 의도를 깨달았다.
초운은 노인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침묵을 깬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 맞다. 너에겐 태사조가 되는구나.”
보통은 분위기만으로도 눈치챘을 일이나 초운은 눈치가 너무 없어서 끝끝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노인이 사문의 어른임을 알아챘다.
그런 이유로 수행이 깊은 노인도 약간 당황한 것이다.
초운은 배운 대로 벌떡 일어나서 노인을 향해 절을 올렸다. 아니,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인이 손을 뻗어 저지했기 때문이었다.
“허례허식은 되었느니라.”
“그래두…….”
“허허. 혹 나를 아느냐? 이전에 나를 본 일이 있더냐?”
초운은 잠시 기억을 더듬는가 싶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까진 몰랐지만 이젠 알아요.”
“그럼 나를 존경하느냐?”
존경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엔 초운의 인간관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인구도 몇 안 되는 화전민촌에서 살았다.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점에선 오히려 화산파와 같은 도문보다 더 심했다.
결국 오랜 가뭄으로 땅이 죽어 화전도 꾸릴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부모와 함께 이 산, 저 산을 떠돌다 나쁜 일을 당했다.
이후 청연자와 인연이 닿아 이곳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 무슨 경험이 있어 존경을 알 것이며, 사형제 간의 법도나 규율에 대해 알 것인가.
청연자가 사문의 존장임에도 그저 가족의 큰할아버지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초운은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저는 존경이 뭔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허례허식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지…….”
“마음(心)이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매화나무를 가리켰다. 어느새 소나기는 멈춰 있었다.
“누가 비에 젖어 힘없이 떨어지는 매화 잎을 예쁘다 할 것인가. 그러나 너는 그것이 예쁘다 하였다. 왜냐?”
“예뻐서요. 마치 우리 사부님의 검 같았거든요.”
“그렇다면 잎사귀가 정말 검이었느냐?”
“아뇨. 잎사귀는 잎사귀죠. 어찌 검이 될 수 있겠어요.”
“네가 떨어지는 잎사귀에서 스승의 검을 느꼈다 하지 않았느냐.”
초운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잎사귀는 잎사귀에요.”
노인이 다시 말했다.
“그러나 검을 보던 마음으로 매화 잎을 보았으니 그 잎사귀에는 네 마음이 담겨 있는 게 아니더냐.”
“웅…… 너무 어려워요.”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민에 빠진 초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네가 매화 잎에서 검을 느꼈듯, 훗날 검에 매화를 담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구나.”
“네에…….”
노인은 여전히 고민하는 초운을 두고 너털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허허허. 재능이 없다 하였던가? 어찌 재능을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만 판단한다던가. 허허허허.’
초운은 멀리 사라지는 노인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화산엔 이상한 할아버지가 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