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화표국 천재 아들-132화 (132/133)

132화. 길(12)

132화. 길(12)

갑작스런 마신과의 대면.

순간 붕- 하고 몸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귓가로 이런 말이 들려오더라.

[너흰 역시 대단하구나.]

···별안간 너흰 대단하다라.

마신의 세 개의 머리는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나는 흡사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려는 듯 뚫어져라 이 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웃고 있는 건가?’

굉장히 유쾌하단 표정이었다.

어쨌든 내게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 내게 날려보냈던 초승달 모양의 강기도 이제 보니, 공격의 의도가 아니었던 것 같고···.

내가 마신의 공격을 방어한 이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 것 같으니.

아마 나와 대화를 할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흥미롭군.'

이후 마신과 나는 꽤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인과 구도자에 대한 이야기.

전생에 대한 이야기.

향후 내가 지향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묻더라.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마신과의 대화는 영원과 같은 찰나였다.

머지않아 현실로 돌아왔고.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 구도자. 방금 마신께서 현신하신 것이지요?”

신녀였다.

등 뒤에서 그녀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몸을 돌린 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마신의 흔적이 나타나자마자 곧장 튀어온 모양이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신녀가 눈을 똥그랗게 뜬 채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라.

워낙 간절하게 묻기에, 일단 간단하게라도 대답을 해주어야겠다 싶었다.

"모든 시험을 통과했으니, 세월을 넘어 너희의 길을 응원하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너희의 길이요? 그리고 시험이요?"

"···제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의도적으로 대답을 아꼈다.

이후엔 바로 말을 돌렸다.

"헌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 그게 사실. ···제 신력이 전부 사라져서요."

"···그랬군요."

"그러니 어떤 말씀을 나누셨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순 없겠습니까."

잠시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묻는 말 대신 에둘러 대답했다.

"···신력을 잃으셨으니. 이제 보다 본인의 삶에 충실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

"제가 바라는 세상의 구성원들은 매 순간 스스로에게 충실했으면 좋겠어서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대꾸를 하진 않았다.

대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엔 신녀와 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무림맹 소속 무인들도 있었고.

소령이나 금태강과 같은 내 측근들도 있었다.

이 이상은 이들 앞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단 무언의 표시였다.

“자세한 이야긴 다음에 나누지요.”

더욱이 나 또한 방금 마신과 나눈 대화의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으니···.

대표적으로···.

'내가 이 몸으로 빙의한 게, 전부 운명과 같은 일이었다라.'

이에 대한 것들.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듣는 건 또 달랐다.

이후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신녀는 곧 눈치를 살피더니, 나중에 꼭 알려달라고 하더라.

이에 나는 너무 늦지 않게 기별을 주겠노라 대답해주었다.

이후엔 빠르게 전장을 수습했다.

***

부교주와 싸우는 도중, 놈이 데리고 온 강시들은 싸움에 휘말려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이니.

'이 일대는 그냥, 강시의 시체들만 따로 처리하면 될 것 같군.'

더욱이 무림맹 무사들이 그 뒤처리를 도맡아 하겠노라 자원을 한 상황이었다.

옆으로 다가온 무림맹 소속 무인들 중 하나가 물어왔다.

"적린휘성, 부교주의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고개를 돌리니 제갈천소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마 그의 배려가 담긴 물음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음, 다른 시체들처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면 될까요?"

잠시 고민에 잠겼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간단히 염습을 한 뒤, 따로 보관해주세요. 제가 나중에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땅에 묻는다면, 누군가 그의 묘지를 훼손하고,

놈의 시체를 탈취해 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화장을 해버리기도 아쉽고.'

마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체가 아닌가.

따로 신경 써서 처리함이 마땅했다.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부교주를 처리했다곤 하나 누구 하나 휴식을 취할 시간은 없었다.

원래 전쟁이라 함은 그 뒷수습이 훨씬 중요한 것이었으니.

이윽고 무림맹 무인들은 중원 각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강시들을 처리하느라 불철주야 돌아다녔다.

진희원도 내게 허락을 받고 그들과 함께 다녔다.

그녀는 주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결국 그녀는 저절로 그녀의 아버지인 약왕의 유지를 따르게 된 것 같다.

중원을 돌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약을 연구하는 일.

종남파도 그녀를 돕기로 했으니, 여러모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 그리고 좌호법."

"부르셨습니까, 구도자."

좌호법과 신녀에겐 부교주의 죽음으로 와해됐을 천마신교를 수습해 달라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천마신교의 좌호법으로 일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좌호법은 이번 일이 끝나면, 천마신교에서 나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전에, 내가 갈 곳이 없으면 표국으로 오라는 말도 했었고···.

때문에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사과를 표했다.

그래도 좌호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

"대신 일이 다 끝나면 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런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부탁이요?"

"그렇습니다. 무리한 부탁은 드리지 않을 겁니다."

교태로운 웃음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뭐, 그래도 그간의 공로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부탁이라면,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후 하나둘 나머지 사람들도 만나고 다녔다.

"태산아, 나는 바로 표국으로 가봐야 할 것 같구나."

금태강은 곧 본연의 임무인 국주로서의 일을 다시 시작하겠노라 선언했다.

"형, 나도 큰형이랑 같이 가볼게."

금태천도 마찬가지. 표국의 표두로 돌아가겠다는 말이었다.

"저희 살궁도 호북황성과 함께 금화표국의 재건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더욱이 이전에 이야기 나눴던 혼인 동맹에 대해서도···."

물론 금태천과 도평희의 혼인 동맹에 대한 이야기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마침 백미려도 나름의 여정을 위해 말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옆엔 소령이 있었다.

"소미야, 정말 함께하지 않겠느냐?"

백미려가 말머리를 돌리며 소령에게 물었다.

이에 곧 소령이 그러더라.

"네, 전 공자님 옆이 더 좋아요."라고.

괜히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래. 알았다. 그럼 간간이 연락하자꾸나."

백미려는 거의 해산되다시피한 하오문의 기틀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보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면, 초대를 하여 거하게 대접을 하겠다나?

나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느덧 소령은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몰래 포근한 웃음이 지어졌다.

"···공자님."

"왜?"

"아, 아니에요."

"뭐야."

"···음. 저 계속 옆에 있어도 되죠?"

"나야 말로. 계속 옆에 있어 줄 거지?"

물론 이처럼 포근함을 느낀다고 내가 한가하단 건 아니었다.

이후 나는 소령과 함께 황실을 찾아갔다.

황실에 있는 거대한 계단 앞.

"내가 황제를 만나고 일을 보는 동안, 황궁에 있는 봉황진검들을 회수해줄 수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께서 쓰시던 봉황진검들이 황실 안에 있는 것 같더라고."

"물론이죠, 공자님!"

소령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참고로 소령을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소령 또한 따라오고 싶어하는 눈치이고···.

소령에게 일을 맡기고, 황궁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 황제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누, 누구십니까."

다만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긴히 나눌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대명제국의 황제폐하이시죠?"

강불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황궁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비록 황제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딱할 뿐이었다.

황실을 나왔다.

'어차피 상황이 이처럼 된 이상, 더 이상 대명제국의 황실은 힘을 쓰지 못할 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결국 마신의 의도대로 세상이 뒤집어지긴 뒤집어졌군.'

머릿속에 마신과 나눴던 대화의 일부가 떠올랐다.

마신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인과응보이니. 너의 치세가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면, 또 다시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라고.

황제도 아닌 내게 치세라는 단어를 사용한 걸 보면,

그의 혜안으로 봤을 때에도 명제국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일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황궁에서 바깥으로 나있는 계단을 내려왔다.

뚜벅뚜벅.

그리고 그때.

"공자님!"

소령이 품에 한아름 봉황진검을 끌어안은 채 나를 불러왔다.

내 부탁대로 전부 찾은 모양.

'품에 있는 보옥이 진동을 하는 걸 보면, 저 검들은 전부 진품이 맞을 테지.'

이후 소령이 도도도 달려왔다.

이후 그녀는 검을 내게 건네도 되는지 안 되는지 망설이기 시작했다.

"표국에 가서 줘. 여기서 기절하면 소령이 골치 아프잖아."

"네? 네!"

물론 지금 저 봉황진검들을 만진다고 이전처럼 마신을 알현하진 않을 테다.

다만···.

'아마 내 전생들에 대한 기억을 얻게 되겠지.'

실제로 마신도 그런 말을 했었다.

전생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봉황진검들을 수집하여 만져보라고.

내기에서 진 선물이라고.

내기는 또 뭐냐고 물으니···.

그 또한 봉황진검을 만지면 알게 될 거라고 하더라.

"그럼 이제 갈까?"

이후엔 이동을 하며, 강불해에게 납치되었던 아이들 또한 전부 풀어주었다.

그리고 개중 달리 갈 곳이 없다는 아이들에겐,

"당분간 우리 표국에서 지내도 괜찮다."

이리 말을 해주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무재가 나쁘지 않은 아이들이니,

표국에도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후엔 소령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표국으로 향했다.

표국에 도착하니, 신녀가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천마신교를 수습하는 일은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고 하더라.

실질적인 무력이 없는 자신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상징적인 역할만 하기로 했다는 말도 함께였다.

'좌호법이 임시 교주가 되어 마교를 재정비하고 있다라.'

이후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구도자, 그보다 전에 말씀하셨던 이야기···."

부교주를 처리한 뒤, 내가 마신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분명 내가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했었지 않나.

기다리고 기다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찾아온 것 같았다.

"결례를 용서해주세요, 구도자. 이는 천마신교의 교리가 될 내용이라···."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긴. 말을 해주긴 해줘야 할 테지.'

이에 내 옆에 있던 소령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려 하더라.

"···그럼 말씀 나누세요."

그런데 그때였다.

"소령도 같이 들을래?"

저도 몰래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네?"

사실 정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인지는 모르겠다.

언제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으니까.

"그냥 소령은 항상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서."

살포시 웃어주었다.

소령의 얼굴이 새빨게지더라.

이후 소령과 신녀를 데리고 표국 내에 있는 청명각으로 향했다.

'보자.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주면 좋을까?'

잠시 말을 고른 뒤, 그들에게 마신과 나눈 대화에 대해 하나둘 이야기해주었다.

"우선. 다들 알다시피, 나는 천인과 구도자를 겸하고 있어."

이 말로 시작하여, 천인과 구도자에 대한 이야기.

전대 천인과 마신이 내기를 했던 이야기.

천뇌의 정체.

그리고 마신이 내게 남긴 당부의 말 등을 전달했다.

내 전생에 대한 이야기만 쏙 빼고 다 전달했다.

이에 신녀와 소령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지더라.

그런 놀람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여, 나는 도무지 말을 멈출 수 없었다.

하늘에 떠오른 초승달을 배경 삼아, 옛날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처럼 하나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느덧 새벽이 찾아와 일대에 자욱하게 물안개가 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는 정말, 바라마지 않던 일상이라고.

실로 모든 게 좋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