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길(10)
130화. 길(10)
강불해의 유년은 불행, 그 자체였다.
그는 부모도 모른 채, 다리 아래에서 성장했다.
하물며 버려진 지역도 그리 평화롭지 못한 곳이어서,
약과 술에 취한 왈패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것만 해도 수십 번은 되었을 정도였다.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환멸만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에 대한 환멸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환멸로 변질되어 갔음이다.
마침내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스스로 삶을 끊어내고자 결심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천지 그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본인의 목숨뿐이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바꾸는 대신,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산을 올랐고.
안개 자욱한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한 또래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썩은 생선처럼 눈빛이 죽어버린 걸로 말미암아, 자신처럼 세상을 향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한 아이였다.
물론 눈빛 외엔, 그와 자신은 모든 것이 달라보였지만 말이다.
그는 거적때기를 걸친 자신과 달리,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귀한 집의 자식인지, 때깔도 무척이나 고왔다.
자신에게 부족한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그와 자신이 같은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니···.
그 순간, 강불해의 눈빛에 처음으로 생기가 감돌았다.
일종의 호기심이었고.
놈의 처사에 대한 분노였다.
저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놈이 뭐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움직였다.
손을 뻗어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진 그 아이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때부터 강불해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구출한 아이의 정체가 천마신교의 소교주였던 까닭이다.
이후 강불해는 그 소년과 흉금을 터놓고 지낼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었다.
둘은 묘한 부분에서 닮아 있었으니···.
비슷한 사람끼린 끌린다고 하지 않는가.
타고난 출생 때문에, 삶이 결정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출생의 한계 때문에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했다는 것.
강불해가 불공정한 세상을 향한 반항심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했던 것처럼,
그 또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진을 하려 했던 것이었다.
추후 시간이 흘렀고.
둘은 각자 부교주와 교주가 되었다.
정확히는 교주인 그가 강불해를 이끌어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 강불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역시나, 세상은 내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더군.”
제갈천소를 향한 강불해의 말이었다.
제갈천소는 이에 크게 연민을 느낀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위인들을 강시로 살려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었건만.
갑자기 아련한 얼굴로 과거사를 읊어대다니.
물론 이러나저러나 바라던 대로 시간은 끌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맞장구를 쳐줄 필요는 있었다.
강불해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도 소문을 들어 알 것 아니냐. 황실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무림맹의 군사쯤 되니, 어쩌면 숨겨진 비사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당시 황제와 황후를 시해한 게 누구이며,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렇습니다.”
실제 제갈천소는 당시의 비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황후마마의 핏줄이, 황제가 아닌 타인의 발아래에 있다는 걸 납득할 수 없었던 황실이 교주를 유인해 감금했지.’
감금 후 죽였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황실에 혈겁이 일어나지 않았나.
더욱이 추후 교주가 감금되어 있던 뇌옥이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그 두 가지로 말미암아, 그 혈겁을 일으킨 주체가 누구일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당시 황실을 상대로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무척이나 제한적이었고···.'
물론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그나저나 지금 부교주의 말을 들어보니, 그때 교주가 죽은 것 같군.’
무림맹은 그럼에도 여전히 교주가 살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소문으론 황제폐하 내외를 시해한 무인이 스스로 자진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무인의 정체가 교주라면, 그가 자진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갈천소의 입장에서, 자진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으니.
그저 놈들이 천인이란 인물을 공공연하게 찾아다니는 걸로 말미암아,
교주의 신변이 썩 평안하진 못하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강불해의 회한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당시, 내게 혈육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기뻐했었다.”
황후마마와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잃어버린 아이였다는 것에 내심 감사함을 느꼈었다. 더욱이 그들이 내게 황실로 들어오라는 말을 건넸을 땐, 비록 내가 천마신교를 떠날 수 없어 거절을 했지만, 이게 가족의 정인가 싶기도 했다.”
“···그랬습니까.”
“그런데 그 혈육의 존재가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주군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느냐.”
강불해의 눈엔 과거를 향한 환멸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 강불해의 말이 이어졌다.
어느덧 그의 말은 푸념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교주께선 이런 말도 하더구나. 본인이 황실의 뇌옥에 감금당해 있던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제갈천소는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그게 무슨.”
“황실과 교섭을 했다나?”
“교섭 말입니까.”
“그래. 내가 교주의 자리에 오르면, 그땐 나를 흔들지 않겠다고. 황후의 부산물 중 하나가 아닌, 하나의 주체로 존중을 해주겠다고. 당시 교주께서 보시기엔 내가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
이후에도 제갈천소는 그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그의 말에 공감을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말을 이해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전히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교주께선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 자책하지 말라고. 지금 이 선택이야 말로 자신이 처음으로 운명을 향해 반항을 하는 것이라고. 더욱이 모든 죄는 자신이 뒤집어쓰겠다고···.”
“···그 말씀은.”
“당시 황궁 한복판에서 기혈이 뒤틀려 죽어가던 내게 본인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면서 그리 말씀을 하셨지.”
“···.”
“이후 천산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는 나로 인해 자진을 실패한 그날 이후로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
“···그랬습니까?”
"그래. 그러고 보면, 그날 이후 내 인생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천마신교의 소교주였고. 주변의 바람대로 결국 교주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강불해의 말은 결국,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깨어났다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게 되자 세상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
이윽고 강불해로부터 가공할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울분을 토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시의 일이 생각나 기분이 언짢아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미쳤기 때문일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잘도 맞장구를 치는군.”
돌연 정색을 하는 강불해.
“하하.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실제 내가 교주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황실에 쳐들어갔었던 것도 모르지 않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적지 않은 수의 황군을 죽이고. 황제와 황후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도 모르지 않나?”
“···교주가 그런 게 아니었습니까?”
“···정확히는 함께 한 일이지.”
강불해가 과거를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이후엔 허공을 향해 무어라 혼잣말을 하더라.
그리고 그 사이, 제갈천소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제갈천소가 느끼기에 강불해는 이제, 이곳에 온 원래의 목적대로 제갈세가를 파괴하고 현재 금태산에게 있는 봉황진검을 빼앗으려 하는 것 같았으니.
‘어찌 해야 할까.’
제갈천소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뒤쪽에선 어느덧 적린휘성의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 소령이란 처자와 함께 있던 전각에선 나온 모양.
다만 아직 모든 준비가 끝나진 않은 것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음이었다.
‘조금 더 말로 시간을 끌 수 있다면 무척이나 좋을 텐데.’
그게 안 된다면, 지금 담벼락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림맹 무인들의 목숨을 이용해 시간을 벌어야 할 테니···.
'일단 뭐라도 화두를 던져봐야겠군.'
제갈천소가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듣기로 부교주께선 교주의 희생으로 이미 복수를 이루신 것 아니십니까?”
일부러 강불해의 심기를 건드릴 말들을 조금씩 섞어가며, 대화가 이어지길 은근히 유도했다.
“헌데 어째서 여전히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계시는지요. ···작금엔 현 황제폐하마저 이리저리 휘두르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일인지하 만인지상. 아니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계시지 않습니까.”
동시에 뒤쪽의 무림맹 무인들을 향해 신호했다.
여차하면 나와서 합류하라고.
그런데 그때였다.
번뜩.
순간 눈을 홉뜬 강불해가 반쯤 들어 올렸던 손을 거두며 대꾸했다.
“···복수를 이미 이뤘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갈천소의 의도대로 꽤나 자극적으로 들렸나 보다.
제갈천소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이 기회를 놓칠 새라 잽싸게 대답했다.
“더 이상 복수할 대상이 남지 않았지 않습니까. 모두 죽었습니다. 황제폐하도, 황후마마도, 그리고 심지어··· 교주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이에 강불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네가 내게 왜 강시로 위인들을 살려내고 있느냐 물었지?”
제갈천소는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하다 대답했다.
"아마 이게 답이 될 것 같군."
이에 강불해의 말이 이어졌다.
“단순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타인에게 고통을 유발했다면, 죽어서라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씀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시가 되어 본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직접 뜯어고쳐야지.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아무래도 작금의 강불해는 자신과 교주의 고통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위인들을 강시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광기로군.’
제갈천소의 눈엔 일종의 광기로 보일뿐이었다.
아마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테다.
이번 일로 인해 무고하게 죽음에 이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에 대해 당장 물을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이어진 강불해의 말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고···.
“물론 너흰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며, 원망을 할 수도 있을 테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내 입장에선 그들 또한 전부 공범이다. 그들 또한 세상이 썩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럼에도 실제 바꾸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 몇이나 되지? 다리 아래에 있는 거지들에게 값싼 동정이라도 건네는 사람이 몇이나 있냔 말이다. 그러니 그들 또한 전부 물갈이가 되어야지. 강시가 되어 책임을 지어야지."
"그럼 세상은 누구와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내 따로 납치해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면 충분할 터."
"···그렇습니까?"
"그래. 난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전부 무너뜨린 다음,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갈 것이니···."
말을 마친 강불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윽고 그의 손바닥 위로 새까만 강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과거 무림맹주를 초주검으로 만들었던, 초승달 모양 강기의 전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무리인 건가.'
이에 제갈천소가 뒤쪽을 향해 신호했다.
"당장 나와 저와 검진을 구축합시다!"라고.
우르르- 무림맹 무사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안쪽에 계신 분들은 담벼락에 기운을 불어넣어주세요."
제갈세가의 담벼락 속 기관진식과 무림맹 무인들과 함께 구축할 검진으로, 강불해의 초승달 모양 강기를 막아내겠다는 의도.
'적린휘성께서 성취를 이뤄내실 때까지만 붙잡아 놓을 수 있다면···.'
사실 이 또한 굉장히 막연한 희망이었지만, 그럼에도 기대할 건 이것밖에 없었다.
제갈천소가 막 그런 생각을 하며 죽음을 각오할 때였다.
쿠구궁!
마침내 강불해의 손바닥 위엔 지옥을 빼닮은 초승달이 떠올랐다.
초승달은 영겁과 같은 찰나를 거쳐, 일행이 만든 검진을 향해 기울어졌다.
기우뚱! 쐐액-
일행은 검진에 가해질 충격을 각오하며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그런데 그때.
쐐액-
등 뒤에서 마찬가지의 거대한 기운이 쏟아져나왔으니.
일행의 정수리 위를 스쳐가는 희끄무레한 강기였다.
정확히는 초승달 모양의 강기.
이윽고 두 개의 강기가 눈앞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쿠구궁!
버섯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만들어졌다.
콜록. 콜록.
땅이 뒤집어지고 모래 폭풍이 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갈천소가 모래 폭풍 속에 모습을 드러낸 한 인영을 향해 소리쳤다.
"쿨럭! 적린휘성!"
적린휘성의 널찍한 등판이 모래 폭풍을 배경으로 그들과 강불해 사이에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거대한 방패와 같았다.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철갑을 두른 현무와도 같았다.
그만큼 든든했다.
이윽고 적린휘성이 화답이라도 하듯 강불해를 향해 말했다.
"네 딱한 사정은 잘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 너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을 텐데?"
딱딱 끊어지는 것이 내면의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였다.
꿀꺽.
제갈천소의 울대를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입가의 창백한 미소가 걸렸다.
마침 옆에 있던 무림맹 무인들 중 하나가 말했다.
"···군사, 적린휘성의 등짝이 상당히 거대합니다."
그 또한 창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감입니다."
'역시 무림의 미래를 맞기기에 충분한 위압감이야.'
곧 적린휘성이 강불해를 향해, 오른손의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러니 군말 말고 덤벼라. 만약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네놈의 잘린 머리통과 나눌 테니."
이윽고 적린휘성의 검에서 뭉게뭉게 하얀 안개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는 곧, 초승달 모양의 강기로 모습을 바꾸었으니.
쐐액-
적린휘성으로부터 비롯된 초승달 모양의 강기가 지평선을 가르며, 강불해에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