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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123화 (123/133)

123화. 길(3)

123화. 길(3)

수천의 강시 떼를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구도자의 뒷모습.

신녀는 그 거대한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마침 구도자께서 싸우시는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거늘.’

참 잘되었다 싶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구도자를 살펴,

그분이 정녕 천인을 겸하고 계시는지 알아내기 위함이 아닌가.

사용하는 무공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만큼, 적합한 방법도 없을 터.

그런데 그때였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저. 신녀님이라고 하셨죠?”

소령이었다.

구도자의 최측근이라 사료되는 인물.

그녀가 사슴 같은 눈망울에 초조함을 담은 채 말을 걸어오는 것 아닌가.

'갑자기 무슨 일일까.'

신녀는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곤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간에서 저를 신녀라 부르더군요.”

이후 신녀는 다시 재빨리 시선을 넘겨 무공을 펼치는 구도자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구도자는 그 사이에도 온갖 무공을 펼치며, 가공할 신위를 보이고 있었으니···.

신녀는 그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 익히신 건지 알 수 없는 쌍검술은 분명 익히 알려진 구도자의 무공과 비슷하고.

온갖 무공을 섞어 사용하는 모습은 만물을 이해할 수 있는 천인의 특징이었으니.

그렇게 신녀가 얼마나 금태산의 무공을 보고 있었을까.

옆에 있던 소령이 재차 물어왔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거든요.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여쭤보고 싶은 것 말입니까.”

신녀는 곁눈질을 하며 대답했다.

“네. 공자님에 대해서요.”

“···구도자에 대한 질문 말입니까.”

다만 질문의 내용이 마냥 무시하긴 힘들 것 같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도자에 대해서라···.

더욱이 어느덧 소령의 뒤로 구도자의 가족인 금태강과 금태천도 슬쩍 다가온 상황.

그들과 구도자를 번갈아 바라보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꾸했다.

“말씀하시지요.”

이윽고 소령의 말이 이어졌다.

“아까 공자님과 말씀 나누시는 걸 들었는데요···.”

상당히 고심을 하다 다가온 것인지, 꽤나 질문의 길이가 길었다.

어쨌든 그렇게 이어진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그러니까, 금태산 공자님을 자꾸 구도자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그들은 그간 금태산 공자님을 천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구도자라 부르느냐는 물음.

물론 구도자라는 말을 신녀에게 처음 듣는 건 아니라고 했다.

좌호법을 통해서도 그간 들어왔다고.

다만 그동안은 구도자라는 말을 들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신녀를 비롯한 일행이 천마신교의 인물이란 걸 알게 된 이상,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했다.

애초에 천인이란 단어 또한 천마신교에서 유래한 단어이니.

구도자 또한 별다른 의미가 있을까 하여 묻는 것이라나?

신녀는 잠시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일단.

"구도자가 무엇인지는 아시는지요."

이게 먼저일 것 같았다.

"음···."

이에 잠시 침음을 삼킨 소령.

과거 좌호법에게 듣기론 공자님께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까닭에 그리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고 답했다.

"근데 상황을 지켜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이에 신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역시 그렇죠?”

"네."

"···물론 이건 좌호법, 그 언니한테 먼저 묻는 게 맞을 테지만, 보다시피 그 언니는 지금 공자님이랑 같이 강시들을 상대하고 계셔서요."

신녀는 대답을 하기 전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덧 대화에 집중을 하는 인원이 몇 배는 늘어난 상황.

소령과 금태강, 금태천뿐만 아니라,

금화표국의 표사들도 상당수 몰려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구도자를 향한 적잖은 염려를 품고 있는 것 같았으니.

'아무 말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낼 것 같은 분위기군.'

결국.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은 불가하나, 그래도 짧게나마 설명은 해줘야지 싶었다.

더욱이 거듭 생각을 해 보니, 꼭 이게 나쁜 상황 같지도 않았다.

원래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그 주변을 먼저 공략하라 하였으니.

얼마 전 구도자와 간신히 화해를 한 상황 아닌가.

하여 여전히 시선의 절반쯤은 구도자의 뒷모습에 둔 채, 입을 열었다.

"구도자는 천인을 세상 밖으로 인도하는 인물을 뜻합니다."

"세상 밖으로요?"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구도자는 천인이라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와 같습니다."

"등대라면···."

"천인은 밤의 기운을 타고나시는 까닭에 항시 어두운 세상만 볼 수 있거든요."

"···그 말씀은. 천인의 최후가 항상 참혹했다는 말과도 같은 말인 건가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때문에 천인은 등대가 없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 사그라지는 천인 또한, 적지 않고요."

물론 이는 천인이 한 시대에 여럿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라고 해주었다.

분명 천인은 한 시대에 한 명뿐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그 천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그 시대에 구도자가 함께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천인이 밤의 기운을 타고 난다면, 구도자는 낮의 기운을 타고 나는 인물이니까요."

"···어렵네요."

"그렇지요.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설명을 드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이후 신녀는 금태산을 왜 구도자라 부르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맨 처음엔 그분이 구도자인 줄 알고 접근을 했다는 말로 서론을 열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 부르던 호칭이 굳어져 여전히 그리 부르고 있는 것이라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럼 공자님은 천인이면서 구도자라는 말씀이신 건가요?"

"물론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그분이 천인을 겸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 그녀 또한 비교적 최근에 알게된 사실이니.

"저 또한 미심쩍으니까요."

"그래요?"

"추측하기론, 이번 시대는 과거와 무언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라면···."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서 어쩌면 천인이 둘일 수도 있고.

천인과 구도자가 한 명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이곳에 온 것도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고요."

"음, 그래요?"

말을 마친 신녀는 다시금 금태산의 무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일단 설명은 마쳤지만, 그들이 이해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 그녀 또한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말은 곧 그런 의미가 아닌가.

'그러니 더욱 열심히 구도자의 모습을 살펴보는 수밖엔 없을 테지.'

절로 쓴웃음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의 생각처럼, 소령 일행은 그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소령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만들고 있었지만 말이다.

소령이 희미한 미소를 만든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럼 공자님께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는 말이겠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신녀는 몰랐지만,

소령이 구도자라는 단어에 대해 질문한 이유는 단순히 공자님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천인의 운명이 기구한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니.

혹여 공자님이 그런 운명을 벗어나실 수 있을까 하여 그랬던 것.

그런데 이번 시대는 과거와 다를지도 모른다고 하니.

"휴."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 주위에 함께 하고 있던 금화표국의 인물들 또한 소령과 생각하는 바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후 소령을 비롯한 일행은 신녀와 마찬가지로, 강시를 상대하는 금태산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었다.

왼손에선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을 뿜어내고.

오른손에선 태양처럼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모습.

그런 위풍당당한 모습.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들의 마음은 어느덧 한 결 편안하게 변해 있었다.

금태산에게 특별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금태산은, 어느덧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인물이 되어 있었으니···.

소령을 비롯한 일행이, 연신 속으로 '다행이다.' 라는 말을 속삭이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

"다, 다행입니다!"

멀찍이서 들려오는 도사들의 목소리.

양손의 봉황진검을 들고 적들을 썰어내는 와중에 들려온 목소리였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내가 등장한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수천의 강시들의 사이를 누볐다.

왼손 검으로 얼음을 뿜어내고.

오른손 검으론 불을 뿜어냈으며.

중간중간 비도를 던지기도 하는 모습.

워낙 다양한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니,

흡사 팔이 수십 개가 되는 것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마신의 무공인 초승달 모양의 강기를 흉내내기 이전에,

기존에 내가 익히고 있던 무공들을 먼저 차분히 점검해보잔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때문에 눈앞의 적들을 수련용 허수아비 삼아, 그 모든 무공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중.

"저, 적린휘성! 염치없지만, 서둘러 주십쇼!"

"걱정 마십쇼, 도사님들!"

물론 이게 여유를 부리고 있단 말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사서 노인과 봉황진검을 찾기 위함.

아직 구체적인 경위를 모르는 상황이니,

최대한 빠르게 적들을 제압한 뒤,

누각 위에서 위태로이 부적을 던지고 있는 모산파 도사들을 구출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어야 했다.

사서 노인과 봉황진검은 어디에 있느냐고.

때문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아무리 내 무위가 뛰어나다곤 하나, 이 많은 강시들을 전부 다 처리하는 건 시간이 꽤 걸리는 일.

따라서 강시 사이에 숨어 있는 마인들을 제거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곳곳에 숨어 음공으로 강시들을 통제하고 있는 놈들.

놈들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였으니.

미세한 공명음을 들으며, 보법을 밟았다.

이윽고 마치 자신이 강시인 것처럼 분장을 한 채, 방울을 흔들고 있는 마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코앞까지 다가간 상황에서도 여전히 태연하게 강시인 척 행동하는 그들.

그래서 나 또한 태연하게 검을 뻗어 놈들의 몸통과 머리통을 분리해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목을 썰었을까.

그제야 놈들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혼비백산하며 도망다니기 시작했다.

"네놈! 대체 어찌 알았느냐?!"

이런 소리를 지껄이더라.

아마 내가 놈들이 강시가 아닌 걸 어찌 알았는지 궁금한 모양.

아마 이들은 내가 대호법을 처리할 때 강시들을 음공으로 제압했던 적이 있단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결국 놈들은 강시들을 내게 집중시키며 연신 뒤로 빠지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그런 게 내게 먹힐쏘냐.

촤라락-

왼손으로 바닥을 얼리고.

화르륵!

오른손으로 불덩이를 던지니.

펑!

놈들은 그리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절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간간히 운이 좋아 살아남은 몇몇 놈들은 비도를 던져 목숨을 끊어주었다.

마침내 마지막 한 명의 마인까지 처리한 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순식간에 통제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강시들.

'이제 끝났군.'

비록 그 수가 여전히 백 단위를 가뿐히 넘고 있었지만···.

'문제없지.'

지잉-

강시들을 보며, 가볍게 검명을 일으켜 주었다.

쿵!

동시에 강시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음공을 통해 강시를 통제할 수 있는 건 마인들뿐만이 아니었으니.

통제권을 잃은 강시들은 내게 더 이상 위협이 될 수 없음이었다.

이윽고 나는 강시들에게 스스로 자진하란 명령을 내린 뒤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곧 곳곳에서 머리통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억! 퍼억!

핏물이 옷자락에 튀었다.

강시들이 내 명령에 따라 자진을 하는 모양.

그 소리를 들으며, 마침내 누각 위에 있던 모산파 도사들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적린휘성."

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내 등 뒤의 강시들의 모습에 경악을 하고 있더라.

나는 곧장 그들을 향해 물었다.

"봉황진검과 어르신은 어디 계십니까?"

그들이 곧 화들짝 정신을 차리더라.

지금 중요한 건 이것이었으니.

물론 사실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나 또한 대략 노인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을 하고 있는 상황.

누각 꼭대기 한 편에 기이한 일렁임이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도사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이, 이쪽입니다. 여기 진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은 이 안에서 적린휘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법이군.'

다만 기다리고 있다라.

더욱이 왜 진법 안에 들어가 있는 걸까.

멍하니 강시들을 보고 있던 도사 하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다가왔다.

"지, 진법은 저희가 해체하겠습니다."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궁!

이윽고 진법이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진법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나는 왜 사서 노인이 진법에 숨어들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그, 그게. 봉황진검이 멋대로 공명을 시작하여···."

빼꼼하니 열린 진법의 틈새엔 새빨간 핏물이 강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동시에 등 뒤에서 신녀의 헛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 마신, 마신의 혼백입다!" 라는 목소리도 들려오더라.

아마 진법 속의 핏물은 봉황진검에서 뿜어진 핏물인 모양.

순간 핑- 하고 현기증이 왔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때,

"와, 왔는가?"

진법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서 노인의 목소리.

노인은 힘겨운 표정으로 그 강물의 한 가운데에서 연신 주문을 읊고 있었다.

도사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할 것을 요구했고.

곧 그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 아마. 시산혈귀 그놈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시산혈귀라면, 부교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불해 때문이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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