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목적(1)
119화. 목적(1)
구릉 너머 상단의 뒤를 쫓으며,
소맷자락에 넣어둔 살왕의 비도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총12자루의 투명한 비도.
각각의 손잡이에 천잠사가 여전히 잘 묶여 있나 확인했다.
혹여 풀려 있거나 헐겁게 변한 것들 위주로 다시 조여 주었다.
이처럼 비도를 점검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직 놈들의 목적이 명확치 않으니, 가급적 소란을 피우지 않고 처리하는 게 좋을 테지.’
정확히는 면양 어딘가에 있을 놈들의 일당이, 이번 일에 대해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구릉 너머의 상단을 처리한 다음엔, 그들 또한 붙잡아 심문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리고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적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비도만한 것이 없었다.
"공자님, 비도술 수련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비도를 만지작거리는데, 이내 소령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간단히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잠시 후 적들을 습격할 때, 비도를 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이에 소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러더니 본인 또한 슬쩍 비도를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피식-
저도 몰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해, 저러는 걸 테지?'
본인 또한 비도를 사용할 줄 아니,
추후 있을 습격에 얼마든지 활용하라는 무언의 표현이리라.
잠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 들어 소령의 비도술을 점검해주지 않았던 것 같네.'
쌍검술을 익히게 된 뒤, 나름 비도술에 대한 깨달음을 더 얻지 않았나.
실제로 총 열두 자루의 비도 중 무려 열 개에서 열한 개 정도는 너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비도술이나 봐줄까?'
물론 무공이란 건 원래 아무에게나 알려주는 게 아니지만···.
소령은 내게 가족과 다름이 없으니.
"소령, 앞으론 비도를 던질 때, 양 손에 각각 두 개씩 쥐고 던져볼래?"
"두 개씩이요?"
"응, 파지법은 이런 식으로···."
직접 손을 잡고 비도 쥐는 방법을 다듬어주었다.
이에 소령의 얼굴이 새빨갛게 무르익더라.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흠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마 소령의 얼굴이 빨갛게 무르익음으로 인해,
무공을 가르쳐주는 행위에 다른 의미가 부여된 까닭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그게 나쁘단 말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내 앞에 놓여 있는 위기가 너무 거대해, 애써 외면해야 할 뿐.
곧 소령이 어색하게 비도를 던지며 물어왔다.
"이,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음.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잘 봐둬. 알겠지?"
분위기도 전환할 겸,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쓰윽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멀찍이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줄기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모습이, 각각 과녁으로 사용하기에 무척이나 적합해보였다.
소맷자락에 있던 비도들을 늘어뜨렸다.
오른손에 여섯 자루, 왼손에 다섯 자루.
소령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무인들도 내 행동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함께 싸우려면 내 전력이 어떤지 적당히 보여줄 필요가 있을 테니.'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곧 손에 쥔 비도에 냉기를 주입했다.
이전까진 아수라파천권의 화기를 주입하여 사용했지만,
이번처럼 은밀히 적들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에선···.
'아무래도 냉기가 보다 적합할 테지.'
이윽고 빠르게 비도를 뿌렸다.
슈욱- 슉!
무려 11자루의 비도가 각기 한 마리의 매처럼 날아갔다.
천잠사를 꼬리처럼 달고 있으니.
멀찍이서 보기엔 흡사 별똥별과도 같았다.
비도가 지나간 자리엔 얼음 알갱이가 하늘하늘 흩날렸다.
푸부부북!
과녁으로 지정한 느티나무 줄기에 각기 비도가 틀어박혔다.
동시에.
쩌저저적-
냉기를 머금은 비도가 느티나무를 꽝꽝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이후 천잠사를 당겨 빠르게 비도를 회수했다.
휘리릭- 착!
어느덧 소맷자락 안으로 숨어버린 비도들.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꽝꽝 언 느티나무와 내 소맷자락을 경외 섞인 시선으로 번갈아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금화표국의 표사들은 괜히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내 대신 우쭐한 표정을 짓더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히 그들을 둘러봤다.
이윽고 내 무공 시연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머지않아 함께 이동 중이던 무사들 중 여럿이, 각자 나름대로 무공 연마를 시작했다.
물론 말을 타고 이동하며 하는 수련이다 보니, 일정이 지체되거나 하진 않았다.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 봐주면 될 것 같았다.
이윽고 멍한 표정의 소령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곤, 말을 몰아 다시 선두로 나아갔다.
멀찍이 면양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행 중이던 상단과의 거리도 꽤나 가까워진 상태.
이제 저들도 우리의 존재를 슬슬 의식하기 시작할 테다.
마침내 하늘엔 물에 염료라도 탄 듯, 주황빛 노을이 내리기 시작했다.
'···때가 되었군.'
일행을 이끌며, 가벼이 잠시 후 있을 습격을 점검했다.
"우선···."
눈앞의 상단을 습격하여 알아내야 할 것들부터 명확히 했다.
대표적으로 대체 왜 저들이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알아내야 했다.
개인적으론 가장 중요한 게 이거였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예상대로 강불해가 있는지에 대한 것도 알아봐야 했다.
부차적으로 황실의 어느 선까지 개입을 한 것인지도 알아볼 생각이었다.
곧 깜깜한 밤이 되었고.
일행을 향해 구체적인 습격 계획을 전달했다.
"작전명은 삼면초가(三面楚歌)입니다."
"삼면초가요? 사면초가가 아니라?"
근처에 있던 살궁의 무인이 물어왔다.
이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몰이 사냥을 생각해보시면 될 겁니다."
"몰이 사냥이요? 혹 이유를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가급적 놈들을 면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포획하려고 합니다."
"···아. 혹여 내부에서 소란을 눈치 챌까 봐 그러시는 거군요."
고개를 끄덕이곤 곧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비도를 사용할 줄 아는 이들로 구성된 습격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머지 분들은 제가 지정한 곳에서 매복을 하고 계시면 됩니다. 저희가 그곳으로 놈들을 몰아가면, 한 명도 빠짐없이 포획해주세요."
참고로 나는 당연히 습격조에 포함되었다.
마침내 일행 중 누구 하나 작전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우린 곧 밤의 어둠 속으로 스르륵- 몸을 숨겼다.
***
하늘에 내린 노을빛 염료가 새까만 먹물로 바뀌어갈 즈음.
흑구는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젠장. 무림맹 놈들한테 들킨 건가?'
자신을 포함한 일행의 뒤를 추격하는 무리를 발견했기 때문.
실제로 몇몇은···.
쩌저적-
'···대체 저게 뭐야.'
요상한 비도에 얻어맞고 그 자리에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사람이 산 채로 얼어붙다니!
물론 평범한 비도에 맞고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슈슉- 푹! 푹!
어쨌든 결론은 죽어나가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것.
절로 몸이 벌벌 떨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물론 흑구를 비롯한 일행은 마땅히 죽을 만한 짓을 하긴 했다.
하물며 무림맹에 추격당할 일도 하긴 했다.
일행이 납치한 아이들 중엔, 평범한 무가의 자식들도 종종 섞여 있었으니···.
'젠장. 내가 미쳤지. 그때 발을 뺐어야 하는데···.'
죽음을 직감한 탓일까, 순간 머릿속으로 지난날의 기억들이 스쳐갔다.
개중에 특히, 자신이 이번 일을 맡게 된 계기가 된 일이 인상깊게 스쳐갔다.
바로 금화표국의 둘째 공자인 금태산 그 망나니와 엮였던 일.
당시 흑구는 금태산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은 뒤, 순식간에 모든 걸 잃었다.
흑도 왈패에게 제일 중요한 체면이란 것도 몽땅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온갖 잡놈들이 자신에게 덤벼들기 시작했고.
더욱이 금태산에게 두들겨맞은 곳의 뼈도 부러져 반쯤 불구가 되었으니.
심지어 매음굴 주인들도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관아에서 직접 그를 찾아온 것 아닌가.
그러더니 그에게 일을 주겠다고 하더라.
"일이요?"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일의 내용을 듣고 납득할 수 있었다.
"매음굴에 팔려간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작적이네."
생각해보니, 자신만한 적임자가 또 있을까?
하물며 어차피 막장인 인생.
가뜩이나 할 일도 없고.
심지어 관에서 맡긴 일이니 얼씨구나 하고 받았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매음굴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무가의 자제들도 납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뿐만 아니라, 종종 마교도로 추정되는 사람들과도 마주했었다.
회상에서 빠져나온 흑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발을 뺐어야 하는 게 맞아."
그러나 지금 후회해봐야 무엇하랴.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빗발치는 비도를 피해 부리나케 도망다녔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비도가 여간 섬뜩한 게 아니었다.
하물며 적들은 직접 다가오지 않고 비도만 던지고 있으니.
구체적인 적의 규모도 파악되지 않아, 맞서 싸우겠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계속 도망은 칠 수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 중 꼭 한 군데는 비어 있었으니.
그래서 계속 그리로 도망쳤다.
사실 너무 노골적으로 도망칠 길이 눈에 보인다는 게 약간 의심이 되긴 했지만···.
'뭐,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도망을 쳤을까.
하필 목적지인 면양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내심 불길함을 느낄 즈음이었다.
문득 흑구의 머릿속에 지난날의 기억 중 하나가 재차 스쳐갔다.
정확히는 아까 떠올렸던 금태산과의 기억.
'이놈 생각은 왜 자꾸 나는 거야. 불길하게.'
금태산에게 두들겨 맞던 날의 기억이 아까보다 세세하게 풀어졌다.
과거 금태산의 도발에 궁지에 몰려, 놈의 의도대로 어쩔 수 없이 놈을 공격했던 기억.
그리고 그게 명분이 되어, 놈에게 실신이 되도록 두들겨맞았던 기억.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놈에게 놀아난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그때일이 생각나는 걸까.
모르겠다.
왜 자꾸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걸까.
물론.
'따돌린 건가?'
그저 기우에 불과했는지,
그때와 달리, 지금은 무림맹의 추격은 무사히 따돌릴 수 있었다.
비록 놈들에게서 도망치느라, 목적지인 면양에선 한참은 멀어진 상태였지만···.
그렇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일행의 선두에 있던 관인이 흑구에게 말했다.
"저기 앞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다시 출발하지."라고.
흑구도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음? 왜 느티나무가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지?'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
반짝이는 느티나무라니.
물론 그리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깐. 냉기?'
그리고 그 순간.
"흑구야, 오랜만이다."
꿈에서도 보기 싫은 인물이 나타났다.
"···너는? 금태산?"
이후 근처에 매복해 있던 무인들이 우수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흑구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
포획한 놈들을 심문하는 건,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개인적으로 개량한 분골착근도 있었고.
근처에 살궁의 무인들도 잔뜩 있으니.
하물며 흑구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놈도 있으니, 별다른 수고없이 그들의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흑구야, 그게 다 사실이냐?"
"어? 어! 그럼.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거짓말 하겠냐?"
고문을 당한 흑구는 내게 온갖 아부를 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말이 짧다."
"어? 어···. 죄송합니다."
이후 놈에게 들은 정보를 종합하면 이랬다.
이들은 금태강이 조사한 것처럼,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었다.
더욱이···.
'배후에 황실이 있다라.'
하물며 종종 마인들과 마주쳤다고 하더라.
어째 예상이 점점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나 이런 일을 했냐."
"어? 꽤 됐을 걸···요. 꽤 됐습니다. 왕복한 기억만 해도 수십 번이니까···."
이후엔 특이사항은 없나 캐물었다.
"그래? 뭐 특별한 건 없고?"
"그··· 없어···요. 아, 맞다!"
그런데 그때였다.
"특별한 거 있어?"
곧 흑구가 말했다.
"이런 사내아이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어."
"이런 사내아이?"
곧 흑구는 눈치를 보며, 품에서 초상화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대체 뭘까.
그리고 그 순간.
'이건.'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상화 속엔···.
마른침을 삼키며 흑구를 봤다.
"이 그림은 누가 건네 준 것이냐."
초상화 속엔 전생의 내가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