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아군(4)
118화. 아군(4)
내몽고에 위치한 어느 사당 안.
‘이상하군.’
번쩍 눈을 뜬 신녀가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의아함을 느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신녀님, 이번엔 어떠한 예언을 받으셨습니까.”
방금 마신으로부터 받은 예언에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
“천인에 대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헌데···.”
“혹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예언의 내용 자체는 전보다 명확해졌으나, 그에 따라 또 괴리가 발생했구나.”
근래 마신의 혼백이 점차 짙어져감에 따라, 예언의 선명도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
그러나 선명도가 올라감에 따라,
마찬가지로 여러 의혹도 생겨나고 있었다.
그간 보이지 않던 게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보다 정확한 말일 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신녀의 이런 반응에 근처에 있던 시비와 시동들은 숨을 죽이고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 정리를 마친 신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너희도 예언이 총 두 종류인 건 모두 알지?”
“그렇습니다.”
부교주가 주로 등장하는 예언과 금태산이 주로 등장하는 예언을 말하는 것.
작금엔 금태산이 천인과 구도자를 겸하고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있으니.
부교주가 중심이 되는 세상과 금태산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면 되었다.
헌데···.
“부교주가 중심이 되는 세상에 대한 예언에 묘한 괴리가 느껴지는구나.”
“···그 말씀은.”
“그 예언 속 부교주는 뇌옥에 천인으로 추정되는 아이를 가둔 채, 그로부터 은밀히 천마신공을 배우고 있었다.”
신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시비와 시동들이 일제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방금 신녀의 말은 강불해가 어떤 방법으로 마신의 혼백과 접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말이었기 때문.
마신의 혼백과 접촉하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가 바로 천마신공이었으니.
“그런데 그 예언 속에 등장하는 부교주의 외형이 지금보다 최소 오륙 년은 더 늙어 보이는구나.”
“네?”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
더욱이···.
“자, 잠깐만요, 신녀님. 그런데 그 말씀은···. 금태산 표두님께선 그저 구도자일 뿐, 천인은 아니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방금 신녀가 건넨 말은 이런 말 또한 될 수 있었다.
“내가 아까 여러 괴리가 느껴진다고 했지? 그 또한 괴리에 해당한다.”
“네?”
“보아라. 만약 부교주가 천인을 데리고 있다면, 구도자와 천인이 함께 등장하는 예언에 금태산 표두님과 부교주가 데리고 있는 천인이 함께 등장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그건. 분명 천인은 한 시대에 한 명밖엔 존재할 수 없으니···.”
“헌데 여전히 구도자와 천인이 함께 등장해야 하는 자리엔 금태산 표두님 혼자서만 모습을 드러내신다.”
신녀의 말에 주변에서 여럿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애초에 구도자와 천인이 한 사람이란 것 또한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니,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여전히 분간이 되질 않고 있지만···.”
신녀의 말에 좌중은 곧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마침내 한참 동안 고민에 잠겨 있던 신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구도자를 옆에서 직접 뵙고,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 같구나.”
“그 말씀은···.”
“채비해라. 그분을 직접 뵙기 위해 여정을 할 것이니.”
신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시동과 시비들이 곧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신녀의 말은 섭혼을 통한 만남이 아닌,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으니.
현재 금태산이 있는 감숙성까지 이동을 하려면, 꽤나 단단히 준비를 해야 했다.
더욱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금태산은 머지않아 금태강이란 자를 구하기 위해, 사천으로 이동을 할 터이니.
금태강이 마인들과 관의 방해를 받아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사실상 사천성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천은 감숙보다 더욱 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참. 위치는 북경으로 향할 것이다.”
별안간 들려온 신녀의 말에 채비를 하던 시비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신녀를 봤다.
“부, 북경 말입니까?”
당연히 감숙이나 사천을 목적지로 할 줄 알았거늘.
대체 왜 북경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신녀가 여상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방금 파악해본 바에 따르면, 금태강이란 자는 무사한 것 같더구나.”
“네? 그 말씀은···.”
“괜히 한 표국의 국주가 아니라는 듯, 일신의 무위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니 아마 구도자께선 사천을 방문하셨다가 머지않아 북경으로 향하지 않으실까 한다.”
신녀의 말에 주변인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하긴 구도자의 혈육이시니···.’ 이런 말을 중얼거리곤 마저 채비를 시작했다.
물론 신녀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꽤나 긴 여정이 될 것 같구나.’
어쩌면 이번 여정을 끝으로 세상의 운명이 판가름이 나지 않을까?
신녀의 얼굴 위로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정오의 그림자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
형님의 냄새가 사천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감지한 뒤,
나는 사람을 모아 재빨리 움직였다.
혹여 태천이에게 일어났던 일이 형님께도 재현되고 있지 않을까 하여.
분명 당시 태천이를 납치하고 있던 마인들이 그러지 않았나.
부교주의 명령으로 내가 북경으로 향하는 걸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고.
그런 측면에서 고려할 때, 그들이 형님을 습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살궁에서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당장 마교와의 전선에 여유가 생긴 만큼 따라가겠습니다."
살궁의 무인들과 무림맹 무사들이 적잖이 합류해준 덕분에, 상당한 규모로 움직일 수 있었다.
"헌데 전선에 여유가 생겼습니까?"
"적린휘성께서 금태천 표두님을 구출하시는 과정에 마교의 수뇌부들을 상당수 처리해주신 덕분에, 적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위축되었습니다."
"다행이군요."
경우에 따라, 수색작업을 펼쳐야 할 수도 있을 테니, 사람의 숫자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따름.
물론 일행엔 좌호법과 태천이, 소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태천이나 소령의 경우는 근처에 두고 지켜보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아 데리고 움직이는 격이었지만.
"형, 이거. 전에 알려준 쌍검술,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맞아?"
"공자님, 저도 같이 기사를 펼쳐볼게요. 국주님 외에 표국의 다른 식구들도 함께 이동을 하다 고립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함께 하다 보니,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무척이나 빠른 성장 속도로 한 사람 몫을 채워나가는 태천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고.
소령 또한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형, 나는 행렬의 후미에서 살궁 측이랑 혹시 적들의 추적이 없나 경계하면서 움직일게."
"그래. 믿고 맡기마. 동시에 간간이 도평희 처자와 교분을 나누는 것도 잊지 말고."
"어, 어? 교분?"
"지금 살궁과 친해지는 건, 당장 형님을 구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될 테니."
"···그래?"
"아무래도 도평희 처자와 네 관계가 깊어질수록, 저들 또한 형님을 찾는 데에 적극적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거라면. 믿고 맡겨!"
함께하니 마음도 놓이고 든든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마침내 접어든 사천성.
주기적으로 그래 왔듯 기사를 펼쳐 금태강의 냄새를 추적할 때였다.
'···잠깐. 이건?'
별안간 느껴진 묘한 괴리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괴리감의 정체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체 형님은 어디로 향하고 계시는 거지?'
형님의 목적지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까닭.
처음엔 감숙성으로 이동을 하던 중, 적들의 습격을 받아 부득이하게 사천으로 피신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무림 문파들이 모인 성도나 청성산, 아미산과 같은 곳으로 향하는 게 당연한 것이거늘'
면양으로 향하고 계신다라.
면양은 성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무림 문파보단 상대적으로 관료들이 많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황실이 저들의 편에 선 이상, 관료들이 모여 있는 면양은 호랑이굴이나 다름이 없을 터인데.
'어쩌면 적들에게 몰이를 당하고 있는 건가?'
헌데 몰이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기엔, 경로가 너무 투명했다.
중간중간 속도를 조절하며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일직선으로 그곳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
'대체 무얼까.'
어쨌든 우리 또한 곧장 그리로 향했다.
***
"형님!"
머지않아 한 무리의 사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태강과 금화표국의 표사들.
다행스레 납치를 당하거나 하진 않은 모양.
"쉿!"
그런데 그때였다.
내 부름에 깜짝 놀란 금태강이 별안간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
'대체 무슨 일일까.'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저도 몰래 멈칫했다.
일단 일행에게 금태강에게 받은 것과 비슷한 신호를 보낸 뒤 그리로 이동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도 이상하긴 했다.
때문에 조용히 다가간 뒤, 우선 이것부터 물었다.
"···여기서 무얼하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곧 손가락을 통해 정면의 구릉 너머를 가리키는 금태강.
"기감을 올려 살펴보아라."
갑자기 기감이라니.
물론 상시 퍼뜨리고 있는 천마신기에 의해, 이미 저 너머의 상황은 진즉에 파악하고 있는 상태.
하여 지체없이 물었다.
"저쪽엔 상단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곧 금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저들을 몰래 미행하고 있는 중이다."
미행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금태강을 봤고.
곧 금태강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 생각엔 태천이가 납치된 장소를 저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태천이가 납치된 장소를 말입니까?"
"너희도 그리 생각하고 이리로 온 것이 아니더냐?"
"······."
잠시 말을 잃고 금태강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자세한 사정은 추후 보다 면밀히 들어봐야 할 것 같지만, 일단 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
일단 그것부터 정정해줘야 할 필요를 느껴, 일행의 뒤편을 향해 손짓했다.
"태천아, 형님께서 네 걱정이 많으셨나 보다. 이리로 나와 보아라."
그러자 머지않아 살궁 측 무리에 섞여 있던 금태천이, 부랴부랴 인파를 헤치며 의아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 있어?"
그러곤 곧 금태강을 발견한 뒤 깜짝 놀라더라.
"형! 납치당한 거 아니었어?"
물론 그 모습을 발견한 금태강 또한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태천아, 너야 말로. 무사했구나?"
***
금태강과의 재회를 마친 뒤,
우리는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태천이가 납치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이동을 하던 중 수상쩍은 정황을 발견해 저들을 미행하고 있었다."
"수상쩍은 정황 말입니까."
금태강은 우선 황실에서 전 중원에 있는 모든 표국의 출정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는 말로 서두를 놓았다.
"그래도 막내가 위험하다는 전서가 도착한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순 없지 않겠느냐."
이러한 이유로 호북성의 현령을 감시해가며, 몰래 표행단을 꾸렸다고 한다.
물론 나름 성공을 했고.
그렇게 막 의창을 빠져나와 섬서로 진입을 하려던 무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별안간 표국에 남아있던 표사들로부터, 현령의 집에 수상쩍은 자들이 방문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는 것 아니냐."
"수상쩍은 자들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들이 저 구릉 너머의 상단이다."
곧 금태강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표국의 출장이 금지되었다면, 응당 상단의 출장도 금지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지요."
"그런데 저들은 너무도 자연스레 행렬을 시작하지 뭐냐."
"그랬습니까?"
그래서 무언가 있구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라 명령을 내렸는데.
"···사람을 운반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사람 말입니까?"
살펴본 바, 평범한 상단이 아니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인신매매를 하는 상단.
하물며 그들이 납치하여 운반하고 있는 이들은···.
"태천이 또래의 무림인들을 운반하고 있다더구나."
나름대로 무재가 뛰어나 보이는 동량들에게 금제를 가한 뒤 운반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물며 그들의 목적지가 감숙성과 그리 멀지 않은 사천성으로 추정되는 바.
그 순간, 금태강은 어쩌면 태천이를 납치한 무리가 저들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물며 어차피 감숙성으론 진즉에 내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만약 태천이가 감숙성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분명 구출하는 데에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는 저들을 미행하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까닭에 이곳에 온 것이라고 했다.
순간 긴장이 풀어졌다.
물론 긴장이 풀린 것과는 별개로 저들의 정체는 나 또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태천이 또래의 무인들을 납치하고 있다라.
"참고로 저들의 행렬엔 흑구도 포함되어 있으니, 혹시나 했지."
"흑구··· 말입니까?"
흑구라면, 내가 이 몸을 차지하기 전, 이 몸에게 약을 먹여 사경을 헤매게 만들었던 놈 아닌가.
이 몸을 얻은 뒤, 맨 처음 무공을 펼쳐 쓰러뜨렸던 그놈.
"보니 놈들은 흑구 그놈을 시켜, 중간중간 매음굴에 있는 아이들 중 무예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도 납치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과거에 네가 자주 방문하던 매음굴 중 하나에 들어가더구나."
"제가 자주 가던 매음굴이요?"
"그래. 사실 예전에 거기에 사람을 심어놨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쥐어주니, 쉬이 불더구나."
"···그랬군요. 잘하셨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불쾌한 기억이 하나 스쳐갔다.
전생에 천마신교에 납치를 당했던 기억.
구체적인 시점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지금 저 인신매매단에게 끌려가고 있는 아이들도···.
'과거의 내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심지어 저들의 목적지가 황실과 연이 닿아있는 누군가라면···.
'결국 저들 또한 부교주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있다는 걸지도 모를 테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대체 부교주는 어떤 연유로 납치를 하고 있는 걸까.
설마 이번에도 천마신공을 해석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잠깐 저들의 정체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저들의 목적지로 추정되는 면양은 여기서 코앞이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금태강을 향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저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나 살펴보고 가지요."
이윽고 일행과 함께 구릉 너머 상단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