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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117화 (117/133)

117화. 아군(3)

117화. 아군(3)

비무 약속을 잡은 뒤, 이틀 후.

그러니까 정확히는 비무 당일 아침.

금태천은 퀭한 얼굴로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옆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둘째형을 봤다.

살궁의 무인들과 비무를 잡고.

자신에겐 그저 자신을 믿으라고 했던 둘째형.

방법론을 묻는 말엔, "그 깨달음. 지금부터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나." 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틀 동안 얻은 깨달음이 없는데. 어쩌지?’

상황이 이러하니, 밤에 잠을 설칠 수밖에.

실제로 금태천이 이틀 동안 한 것이라곤,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금귀검법을 펼치는 일뿐이었다.

심지어 그건 일반적인 금귀검법도 아니었다.

공격 일변도의 금귀검법.

전에 분명 본인의 입으로 금귀검법은 방어와 기습에 특화된 무공이라 했으면서.

하물며 오른손에는 검 대신 검집을 들고 있으라 했으니···.

물론 그럼에도 금태천은 여전히 둘째형을 믿고 있긴 했다.

그간 보아온 것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는 것.

다만.

'비록 내겐 말하지 않았지만, 둘째형은 다 생각이 있겠지?'

얼마 전 납치를 당했던 까닭인지, 괜히 신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 됐구나. 가자.”

둘째형을 따라 침실을 나왔다.

쭈뼛쭈뼛.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간이 비무대가 마련된 공터.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하겠는데?”

그곳 주위로 무림맹과 살궁의 무인들이 빙 둘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 적린휘성이 그랬지? 호북황성이 이번 납치를 기점으로 또 깨달음을 얻었다고?”

귓가를 타고 들어오는 말소리에 금태천은 괜히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우리의 등장을 발견한 무인들이 좌우로 좌악- 갈라졌고.

구적하란 노인이 간이 비무대 위에서 멀거니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둘째형이 앞장 서서 걸음을 옮겼고.

마지못해 그 뒤를 따랐다.

마침내 간이 비무대 앞에 턱 하니 도착한 순간.

'이쯤 되면 작전을 말해주겠지?'

고개를 돌려 슬쩍 둘째형을 봤다.

입모양으로 말했다.

‘형,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러나.

'왜 아무 말 않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형을 믿는다지만, 이쯤 되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할 정도.

그러나 이미 어쩌겠나.

기호지세.

호랑이의 등 위에 탄 것과 같은 상황이니.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쿵쿵 뛰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얼떨결에 비무대 위로 올랐다.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곧 눈앞의 구적하가 비무의 규칙을 제시했다.

“금태천 공자께서 십 합 이상을 버틴다면, 내 인정하겠소.”

십 합이라.

총 열 번의 공방을 넘기면 된다는 말.

둘째형과 미리 합의를 본 내용인 것 같았다.

다만.

‘진짜 어쩌지?’

솔직한 심정으로 금태천은 십 합은커녕 다섯 합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눈앞의 노인은 얼핏 봐도 상당한 수준의 고수.

반면 자신은 그저그런 무인···.

곧 노인이 말했다.

“선공은 양보하겠네.”

비로소 비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들려오는 둘째형의 두 번재 전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절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역시 형은 생각이 있었구나.'

[내색은 하지 말고.]

마른침을 삼켰다.

[우선 오른손으로 금귀검법을 펼쳐라. 물론 이번에 수련한 공격 일변도가 아닌, 기존에 사용하던 방어 일변도여야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이틀 동안 수련한 건 어쩌고 원래대로 싸우란 말인지.

물론 믿는 것 외엔 여전히 선택지가 없었다.

'큰형 보고 싶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

다만 큰형은 아마 아직 호북성에 있을 터이니.

일단 시키는 대로 검을 뽑았고.

익히 알고 있는 금귀검법의 기수식 대로 중단세로 눈앞의 구적하를 향해 겨눴다.

구적하 또한 허리춤에서 본인의 곡도를 뽑았다.

[이제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을 때까지 전력을 다해 방어해라.]

'음?'

[그러다 위기를 느끼면, 왼손으로 검을 옮겨라. ]

'설마 이게 작전이라고?'

[그 뒤엔 이틀 동안 수련한 대로 오른손으로 검집을 잡은 뒤 동귀어진을 목표로 달려들면 될 것이다.]

다만 그 내용 이상했다.

동귀어진이라니.

설마 동생이 죽길 바라는 걸까?

그러나 이어진 둘째형의 말에 그런 생각은 차마 지속할 수 없었다.

곧 둘째형이 좌중을 향해 말했기 때문이다.

"아참. 비무 시작하기 전에 살궁 측에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태천이는 이번 비무를 함에 있어 선공을 양보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그쪽에서 먼저 공격하시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이 몸을 낮잡아 보는 겁니까."

불쾌한 어조로 입을 연 구적하가 머지않아,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챙!

일단 재빨리 검을 움직여 공격을 막았다.

***

챙! 챙!

벌써 세 번의 검격이 교환된 상황.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죽을둥 살둥 구적하의 공격을 받아내는 금태천.

사실 금태산이 금태천에게 가르쳐 준 건,

얼마 전 모산에서 얻은 금귀검법의 새로운 깨달음에 대한 것이었다.

쌍검술에 대한 것.

다만.

'이틀 안에 온전히 익히기엔 무리가 있을 테지.'

그래서 온전한 쌍검술 대신, 일종의 편법을 쓰기로 했다.

의외의 수를 노리는 것.

처음엔 기존의 우수검으로 방어를 하다, 상대의 방심을 유발한 뒤, 기습적으로 쌍검술로 전환을 하는 것.

태천이에게 구체적인 작전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일부러 상대편에게 당황한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되었다.

일종의 허허실실.

물론 이는 비무라서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생사결이 아닌 까닭에, 처음 몇 합 정도는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데 쓰일 테니.'

하물며.

'애초에 살궁 또한 태천이의 성장 속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게 목표이고.'

아니나 다를까.

태천이가 오른손의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는 순간.

태천이를 향해 검을 찔러넣던 구적하는 돌연 공격을 멈춘 채 훌쩍 뒤로 물러났다.

'이로써 한 합을 더 벌었군.'

"재미있군요. 이게 적린휘성께서 말한 그 깨달음입니까?"

구적하가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마 그는 앞으로 태천이의 쌍검술을 확인하는 데에 몇 합을 더 사용할 것이다.

실제로.

챙! 챙!

벌써 일곱 합이 흘러간 상태.

"놀랍군."

구적하가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슬쩍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비무의 승패와 상관없이 태천이의 성취에 놀란 모양.

그의 입장에선 이 쌍검술이 내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태천이가 혼자 터득한 것처럼 생각될 것 아닌가.

애초에 태천이가 깨달음을 얻은 상태란 표현을 사용한 뒤, 비무를 잡았었으니. 간단한 속임수였다.

결국 태천이의 오성에 감탄하고 망설임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나를 선택할 것인지, 태천이를 선택할 것인지.

'이 또한 나쁘지 않아.'

챙! 챙!

그 사이 벌써 두 합의 공방이 더 오갔다.

물론 실제 태천이의 오성도 나쁘진 않았다.

쌍검술도 이틀 동안 배운 것 치곤 나쁘지 않은 편.

애초에 과거 내게 조언을 받기 전까진, 공격 위주로 금귀검법을 펼쳤던 금태천 아닌가.

비록 검을 쥔 손이 왼손이었지만,

이미 과거 공격적으로 금귀검법을 펼쳐본 적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오른손에 쥔 검집으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거야, 근래 계속 해오던 방어를 검 대신 검집으로 한다는 것만 바뀐 상태이니, 하등 문제될 것도 없었고.

하물며 태천이는 지금 동귀어진을 목표로 달려들고 있지 않나.

아무리 정당한 비무라고 해도 살궁의 입장에선, 태천이를 죽이기 쉽지 않을 터.

아무래도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태천이는 원래도 근성이 대단하였으니.'

비록 근래 납치를 당하는 둥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만한 일들이 많아 조금 주눅이 들긴 했지만,

검을 잡고 목숨이 오가는 비무를 시작하니, 다시 예전의 투지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재차 뒤로 훌쩍 물러나는 구적하.

방금의 공방으로 벌써 아홉 합이 흘러간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곧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거 내가 너무 불리한 제안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잠깐 쓴웃음이 맴돌았다 뿐이지, 표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재 태천이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니.

그리고 그런 사람이 궁의 아기씨와 혼례를 올릴 수 있을 테니.

곧 그의 입이 열렸다.

"내기는 제가 진 걸로 하지요."

더 이상 그에게 이 내기는 큰 의미가 없을 터였다.

그를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시겠습니까."

"애초에 제가 이길 수 없는 제안 아니었습니까."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곧 포권을 취해보였다.

"적린휘성께선 무위뿐만 아니라, 지략도 보통이 아니시군요."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태천이 또한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아마 기분이 상당히 이상할 테다.

어쨌든 우리는 이 비무를 통해, 총 세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살궁과의 혼인동맹이고.

둘째는···.

"훌륭한 동생을 두셨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무림맹 무사들 사이에 퍼져 있는 금화표국의 인상이 바뀐 것.

마침 내가 또 맹주령까지 허리에 두르고 있으니.

노골적으로 내게 접근하는 무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축하한다, 태천아. 이제 도평희 처자와 혼약을 하는 일만 남았구나."

"어, 어? 고마워, 형."

태천이의 자신감이랄까?

납치 사건 이후 바닥을 기던 태천이의 자존감이 다시 빼꼼 새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물론···.

"당분간 내가 알려준 검법. 밤낮없이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엔 여러모로 요행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 뒤 쳐지는 순간 살궁에서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그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선 태천이의 향후 노력이 동반되야 할 테지만.

"걱정 마! 나 예전에도 수련 게을리한 적 한 번도 없어."

"안다."

절로 흐뭇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

태천이와 살궁의 비무를 치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주변엔 어느덧 적잖은 수의 무인들이 상시 몰려 있게 되었다.

"저는 하북팽가의 팽모혁이라고 합니다, 대협."

남궁벽이 은근히 제안했던 것처럼, 나름의 세력을 만든 것.

물론 그 세력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확실히 괜히 살궁이 아니야. 든든하군.'

혼인 동맹으로 보다 두터운 관계를 형성한 살궁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는 나쁘지 않다 뿐이지,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

이곳에 왔던 건, 단순히 태천이를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 아니었나.

헌데 세력이 구축될 만큼 시간이 흐른 것 아닌가.

실제로 당장 내겐 해야 할 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대표적으로 모산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사서 어르신도 있는 상황.

그와 봉황진검도 회수하러 움직여야 했고.

황실로 이동한 마신의 혼백의 행방에 대해서도 나름의 조사를 해봐야 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형님이 많이 늦으시는군.'

단지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을 형님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백미려는 벌써 도착을 하여 인사를 나눈 상황이거늘.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전날 기사를 통해 냄새를 추적해본 결과,

금태강은 섬서성에 발이 묶여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

금화표국이 호북에 있으니.

감숙으로 오기 위해선 분명 섬서를 지나야 하는 건 맞지만···.

'아무래도 너무 늦는군.'

아무래도 한 번 더 기사를 이용해 추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주변 사람들을 물린 뒤, 재차 기사를 펼쳐 보았다.

'이곳이 감숙성 하서회랑의 주천이니까. 이 정도 거리면?'

그런데 그때였다.

저도 몰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기사에 잡힌 금태강의 냄새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

분명···.

'저긴 사천인데?'

별안간 왜 사천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순간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꼭 태천이가 납치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

설마 형님께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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