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강림(1)
109화. 강림(1)
모산 내부에 마련된 임시 거처.
소령과 백미려를 비롯한 하오문도들이 머물고 있는 곳.
소령은 가만히 앉아,
얼마 전, 대호법이란 작자와 공자님께서 벌인 전투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생각을 거듭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자신과 하오문도들만 모르는 무언가가, 공자님을 비롯한 주변사람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
‘그 언니는 대체 뭘까. 진표사도 계속 무언가를 감추는 것 같고.’
물론 소령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하오문도들 또한, 소령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
“분명 대호법이랑 표두님이 모셔온 여성분이랑 잘 아는 사이 같았지?”
소령은 저도 몰래 귀가 기울여졌다.
“그러니까. 그 여성분이 대호법한테 그랬잖아. ‘너는 여전히 사람 목숨을 도구로 여기는구나.’라고. 이건 예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지. 그리고 그 여성분 실력 봤지? 애초에 그 정도 무위를 가진 사람이 무명인 것도 말이 되질 않아.”
남들 또한 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 드는 의구심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보였다.
“하긴. 난 무기로 사용한 부채도 꺼림칙하더라. 내가 아는 한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는 여자는 한 명밖에 없는데.”
“누구? ···그. 마교 좌호법 말하는 거지?”
이에 소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창가로 이동했다.
창틀에 기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저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에휴.”
사실 공자님께 여러 비밀이 있다는 건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천인이라는 이야기도 그렇고.
자꾸 기절을 하시는 것도 그렇고.
더욱이 소령 또한, 굳이 입밖으로 내진 않고 있지만, ‘그 언니’의 정체에 대해 이곳에 있는 하오문도들의 말처럼 마교의 좌호법일 수도 있겠다고 추측을 하고 있는 상황.
‘···그럼 설마. 좌호법을 부하로 부리시는 거면. 천인이 천마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겠지?’
이래저래 혼란스러웠다.
‘···이번 일이 끝나면 슬쩍 여쭤볼까?’
지금까진 공자님께서 먼저 말씀하시지 않으시니, 굳이 묻진 않았지만···.
괜히 소외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창틀에 팔을 올린 채, 창밖으로 펼쳐진 모산의 풍경만 쓸쓸히 바라볼 때였다.
북적북적.
갑작스레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모산파 경내.
우울감으로 가득하던 심상 속에 퐁당- 찬물이 끼얹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대략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에 무엇이 있나 가늠해보니···.
‘···저긴 거북이 바위 쪽인데?’
동시에 묘한 불편감이 엄습했다.
창틀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거북이 바위엔 봉황무늬의 검이 꽂혀 있고···.
‘분명 그 물건은 공자님께서···.’
정황상 공자님은 현재 그 검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모양새 아닌가.
그런데 그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괜히 가슴이 콩콩 뛰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지?’
저도 몰래 경신술을 밟고 있었다.
어느덧 발길은 거북이 바위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정신없이 이동을 했을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고, 공자님?”
금태산 공자님께서, 자박자박한 피 웅덩이 위에 쓰러져 계셨다.
심장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황급히 인파를 헤치고 그리로 다가갔다.
***
내몽고에 있는 작은 사당 안.
신녀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신께서 왜, 예언을 내리시던 중 갑자기 모습을 감추신 걸까.'
신녀는 천인과 구도자에 대한 예언을 보던 중이었다.
정확히는 여전히 구도자 한 명만 존재하는 예언을 보던 중.
다만 마신의 혼백이 중원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보다 깊은 소통을 할 수 있었고.
이 기회에 "혹시 구도자가 천인이기도 하는 겁니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려 할 때였다.
별안간 마신과의 접촉이 끊어진 것.
'급한 일이라도 생기신 걸까?'
무려 마신께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예언을 거를 정도의 급한 일이라면···.
'강림?'
역사적으로 볼 땐 이것밖에 없었다.
다만 이건 말이 되질 않았다.
마신의 강림은 천인만이 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일단 지금은 천인이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상황 아닌가. 아니 정말 너그럽게 추측을 하여 천인과 구도자께서 한 몸이라고 해도.
이렇다고 해도 말이 안 됐다.
물론 부교주의 농간으로 인해, 세상이 사기로 들어차 마신께서 강림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 되고 있긴 했지만.
'구도자께선 보유하고 계신 법보의 개수도 매우 적으시고···.'
오히려 봉황진검만 놓고 따지면, 부교주 쪽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설마?'
문득 떠오른 불길한 생각.
'···부교주 쪽에서 강림을 시도한 건가?'
전에도 말했지만, 예언은 총 두 갈래였다.
그중 부교주가 중심이 되는 예언도 있다는 건, 그쪽에서 마신을 강림시키는 데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
부교주가 천인을 데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에 신녀는 황급히 섭혼을 통해, 중원 곳곳에 있는 그녀의 수하들과 접촉을 했고.
'부교주의 수하들이 황실로 모여들고 있다?'
마침내 부교주의 행방에 대해 한 가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신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황급히 재차 심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눈앞에 나타난 삼두육비의 거대한 형상.
익히 한 번 본 적 있는 마신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내려온 거대한 빛무리.
빛무리가 몸에 닿는 순간, 몸이 붕 하고 떠올랐다.
공중으로 부유하더니, 머지않아 발밑에 중원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꼭 하늘 위를 두둥실 날며 중원을 살펴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게 중원 어딘가를 보여주기 위해, 검을 잡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환상 속으로 끌고온 걸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하여 일단 여전히 눈앞에 있는 마신을 잠자코 살폈다.
총 세 개의 머리 중 두 개가 이 몸을 보고 있는 상황.
그 두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헌데. 왜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군.'
참고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머리만 이 몸이 아닌, 엄한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른쪽 머리는 대략 북경 쪽을 보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였다.
종남산에 있던 봉황진검이 북경으로 향했단 이야길 들었으니.
어쩌면 저기에 있는 봉황진검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곧 세 개의 머리 중 왼쪽에 있는 머리가 입이 열었다.
[천륜이 닿아 있는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시선을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갑자기 뭔 소리일까.
반사적으로 입을 움직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데 왜인지 그리 좋은 말투는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씨익-
세 개의 머리 중 이번엔 가운데에 있는 머리의 입꼬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그가 곧 내게 말했다.
[여전히 당당하구나.]
아까부터 자꾸 알 수 없는 소리만 반복을 하다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다 쉽게 말해봐라.”
[그건 차차 알게 될 거다. 다만 지금 너희는 선택을 해야 할 뿐.]
“선택?”
순간 대화에 끼어드는 왼쪽에 있던 마신.
[내 안배에는 없던 놈이 개입을 하였으니···.]
그러더니, 북경을 바라보고 있는 오른쪽 머리에 눈길을 주는 왼쪽 머리.
‘안배에 없던 놈이라는 건, 부교주를 말하는 것일까?’
과거 신녀 또한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지 않나.
물론 그걸 물을 시간은 없었다.
막 입을 열려는 차에, 지끈- 별안간 두통이 몰려왔고.
왼쪽 머리가 불쑥 이런 말을 뱉었기 때문이다.
[우선 너희에게 기억을 하나 살려주겠다.]
그리고 그때였다.
화악-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기 시작했고.
꼭 과거 모산파 죽간본을 보았을 때 접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환상이 펼쳐졌다.
***
거북이 바위 앞.
“···그냥 잠이 드신 것 같아요.”
금태산이 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진희원이 금태산의 몸을 진찰한 뒤 꺼넨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변의 분위기는 대략 둘로 나뉘었다.
“그럼 바닥에 있는 이 핏물은 뭐지? 표두님이 흘리신 건 아니라고 했지?”
금태산의 상태에 일단 안도를 하고,
대신 거북이 바위로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핏물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무리.
그리고···.
“···정말 공자님 괜찮으신 것 맞아? 사실 저번에 종남산에서도 이러셨거든. 얼마 전 표국에서도 그러셨고.”
방금 소령의 말처럼, 반복되는 금태산의 실신에 걱정을 하는 이들.
물론 이러나저러나 두 집단 모두 부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진희원은 공자님을 깨우기 위해서라며, 한 번 더 진찰을 시작했다.
다들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타난 정체불명의 언니도 진희원의 옆에서 공자님을 살피고 있었다.
진희원은 불편해 하면서도 그 언니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당장 무공적인 측면은 여기서 그 언니가 제일 나을 거라나?
헌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소령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네.’
어쩌면 진희원과 언니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어떠한 진실을 보고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괜히 입이 바짝 말랐다.
하여 심부름이라도 시켜달라고 진희원에게 다가갈 때였다.
“모두들 잠시 비켜보게.”
별안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늙수그레한 목소리.
깜짝 놀랐다.
얼마나 대단한 고수이길래 다가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한 걸까.
물론 그의 정체는 그리 머지않아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어르신. 여긴 어쩐 일로···.”
“몸은 괜찮으세요?”
근처에 있던 도사들이 어르신이라고 하며 극진히 모시는 모습.
그리고 직접 눈으로 바라본 그의 모습이···.
‘이분이 그분인가?’
공자님께서 묘사하셨던, 사서 노인이 딱 이 사람처럼 생겼었다.
그러니 아마 맞을 것이다.
경계를 하고 있는 일행을 향해 설명을 해주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적 있는 분이라고.
곧 노인은 잠시 정체불명의 언니-작금엔 좌호법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언니-에게 슬쩍 눈짓을 주곤 공자님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두들 뒤로 물리고 차분히 공자님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하는 노인.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분 또한 의학에 조예가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잠자코 기다려보기로 했다.
노인은 공자님을 살펴본 뒤, 바닥에 흐른 핏물 또한 차분히 둘러봤다.
다만 그런 과정이 거듭될수록 그의 얼굴은 착잡하게 가라앉아 갔으니.
'설마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걸까.'
마침내 노인의 입이 열렸다.
“···벌써 늦은 건가.”
소령은 저도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때 노인 근처에 있던 모산파 도사 하나도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대체 이게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이에 노인이 소령과 그 도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과거 마신의 강림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마신의 강림이라니.'
소령은 어릴 적 하오문에 있을 때 들었던 기억들을 부지런히 떠올려봤다.
다만.
'갑자기 무슨 소리지?'
그럼에도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노인의 입이 재차 열렸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찾아본 적 있을 테지."
모산파 도사들을 향해 하는 말.
"이 붉은 핏물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느냐?"
그리고 그때였다.
"서, 설마."
모산파 도사들이 하나둘 경악을 하기 시작했다.
곧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아둔하구나."
그러더니 그러더라.
이 핏물이 바로 마신이 강림하려는 징조라고.
순간 일대에 화탄이 떨어진 듯한 당혹스러움이 퍼져나갔다.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칫. 이대로 두었다간 세상이 파멸하고 말 테지.”
그러더니 곧 그러더라.
이대로 두었다간 공자님께서 이성을 잃고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으실 거라고.
소령은 급하게 입을 열어 물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저도 몰래 나온 말이었다.
어느덧 소령은 근처에 있던 금태산 무리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었다.
노인은 잠시 소령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강림이 이뤄지기 전에 생명을 빼앗는 걸 테지."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모산파 도사들이 공자님을 애워싸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안 됩니다."
"안 돼요!"
좌호법으로 추정되는 언니를 비롯한 일행이 그 앞을 막아섰지만 말이다.
당연히 소령은 제일 먼저 움직여 공자님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덮고 있었다.
이에 노인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는 게 어떻겠나. 가장 쉬운 방법이 그거라고 했지.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러더니 곧 그러더라.
도술을 이용해 강제로 환각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라고.
모산파 도사들이 주위를 애워싼 건, 이들 또한 마신의 강림을 막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 그걸 어떻게 믿죠?"
죽이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고 들은 마당에, 온전히 믿음을 줄 순 없었다.
이에 노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소령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
마신이 기억을 하나 살려주겠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이후.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환상.
'여긴?'
너른 평야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익숙한 노인이 하나 들어서고 있었다.
묵빛 장포를 입고 손에 봉황진검을 들었으며, 몸에서 선기와 사기가 섞인 천마신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노인.
그가 새까만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인의 뒤로는 무수히 많은 수의 강시들이 있었으니.
'마인들의 수도 적지 않군.'
그렇게 노인이 강시들을 이끌고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마침내 노인이 도달한 곳엔···.
‘저건?’
황실을 깃발을 든 무사들이 있었다.
더욱이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무인들.
‘황실과 무림맹이 손을 잡은 건가?’
그렇게밖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곧 죽을 자리에 온 사람들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말에서 내린 노인이 놈들을 마주봤다. 그러더니 곧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제들의 복수를 하려고 왔다.”
명확한 대화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왜인지 나 또한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솟구쳤다.
노인의 말을 들은 연합군은 진군을 멈추고 투항을 하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이미 다 처벌을 내린 상태란 말도 함께였다.
괜히 가슴이 뜨거워졌다.
노인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노인의 눈가를 타고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곧 노인의 봉황진검에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가공할 마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흡사 마신과 버금가는 수준의 마기.
그리고 그는 그걸 횡으로 휘둘렀다.
쐐액-
검 끝을 따라 만들어진 초승달처럼 길쭉하고 새까만 강기.
그 일렁이는 강기는 곧 하늘과 땅을 가르며 연합군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고.
번쩍!
마침내 섬광과 함께 연합군과 충돌했다.
곧 섬광 사이로 이리저리 핏물이 튀어댔다.
이곳이 지옥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강기는 톱으로 나무를 자르듯, 연합군을 차근차근 썰어갔다.
그그그극-
곧 연합군의 팔다리, 부러진 검. 이따위 것들이 붉은 핏물을 머금은 채, 톱밥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저도 몰래 구역질이 올라올 무렵.
머릿속에 한 가지 음성이 스며들었다.
[힘을 원하느냐?]
분명 마신의 목소리였다.
다만···.
홀린 듯이 입이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하다고.
힘을 원한다고.
그런데 그때였다.
"안 돼요!"
문득 귓가를 파고드는 현실감 넘치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소령인가?'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다시 눈앞이 반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