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화. 종남산(2)
96화. 종남산(2)
청해성과 신강을 잇는 길목에 있는 이름 없는 매음굴.
정확히는 천마신교 청해지부.
그곳의 심처에 천마신교 대호법 혈소도사(血笑道士) 노도성이 굽은 등을 두드리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엔 청해지부 소속 마인들이 시립해 있었으니···.
노도성이 그들 중 비교적 연장자로 보이는 인물을 보며 말했다.
“일을 치르고 꽤나 시간이 흘렀지 않느냐. 그간의 경과를 보고해봐라.”
지목을 받은 이는 청해지부 부지부장.
우호법의 시신을 회수하기 위해 감숙성으로 향한 지부장 정관율의 동생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오며, 깍듯한 모양새로 포권을 취해보였다.
“···우선. 감숙성에서의 일입니다. 정관율 지부장이 그곳에서 살궁의 흔적을 대거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청해지부에서 벌이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해 소상한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 추정하기론 이번 일에 살궁이 깊게 개입된 바. 곧 우호법의 시체를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노도성.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좋다. 그럼 다른 일들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
참고로 현재 청해지부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는 방금 말한 우호법의 시체를 회수하려는 일이었고.
둘째는···.
“중원을 마신께서 강림하기 좋은 땅으로 만드는 일은 계속 진행 중이라 합니다.”
그의 말에 노도성은 곧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무언가 이상하구나.”
되묻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저번에 듣기론 섬서성에선 이미 그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어째 그에 대한 보고는 누락이 된 것 같구나.”
일을 치렀으면 응당 그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 말을 쏙 빼놓고 있으니···.
“···그, 그건.”
이에 부지부장이 말꼬리를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내가 우스운 모양이구나.”
노도성으로부터 강렬한 기파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이에 부지부장은 황급히 읍소를 해보였다.
“외, 외부의 개입이 있어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패라는 단어와 함께 삐릿-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리고.
부지부장의 옆에 있던 마인 하나가 오공에서 피를 쏟으며, 풀썩- 바닥에 허물어졌다.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죄, 죄송합니다. 대호법님.”
이는 일종의 경고였다.
다음엔 네 차례일 수도 있으니, 똑바로 하라는···.
부지부장은 등 뒤로 식은땀이 또르르 흐르는 걸 느끼며,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 그래도 강시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니, 해독약을 통해 교도를 모집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방금 말한 해독약을 통해 천마신교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세 번째 임무.
그리고 네 번째 임무는···.
“그래? 그럼 그건 어쨌느냐. 봉황진검을 비롯한 모산파의 법보들을 회수하는 일말이다.”
이는 대호법뿐만 아니라,
부교주까지 직접 챙기고 있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으니.
물론···.
‘이건 자신 있지.’
부지부장이 처음으로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냈다.
“일단 종남산에 있던 봉황진검은 습득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호오. 그래?”
방금 전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이미 절반 이상 성공을 했다고 하는 상황.
“물건 탈취는 진즉에 무사히 마쳤고. 지금은 강시술을 익힌 아이들이 그곳에 남아, 일대에 사기(死氣)를 퍼뜨리는 작업을 수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지부장은 이후에도 한참동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이에 대한 보고를 이어갔다.
습득한 봉황진검의 현재 위치와 향후 계획과 같은 것들을 풀어놓은 것.
그리고 마침내, 부지부장이 손을 싹싹 문지르며 말했다.
“대호법께선 마음 놓고 기다리시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부지부장의 보고에 대호법이 만족스럽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이번엔 절대 실망시켜선 아니될 것이야.”
***
종남산 초입.
“넋을 놓고 있다 기습을 당했지 뭡니까.”
종남파 도사들의 말이었다.
깜깜한 밤. 종남산 내부에 보이는 횃불을 따라,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우리는 종남산의 초입에서, 부상을 입은 한 무리의 도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필 장문인을 비롯한 장로님들께서 무림맹으로 자리를 비우신 와중이라.”
진희원이 주도적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사이,
나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도사들을 불러 모아 사건의 경위를 캐물었다.
“그래서 적은 누구였습니까.”
“가, 강시이긴 한데···.”
헌데 도사들이 서로 쭈뼛쭈뼛 눈치만 볼 뿐, 적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어놓지 않는 것 아닌가.
“강시면 강시이지, 강시이긴 한 건 뭡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셔야 저희가 도울 수 있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리고 그때였다.
“표두님, 잠깐만요.”
한 차례 병자를 돌아본 진희원이 내게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이분들 전부 ‘그 액체’에 중독 당하신 것 같아요.”
‘그 액체’라 하면, 죽은 뒤 강시로 깨어나게 만드는 액체.
동시에 대략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강시로 변했다곤 하나, 자신의 사형제들이 적이라 말하긴 쉽지 않을 테니.’
이후 차분히 그들을 설득했다.
이런 사례가 이곳이 처음이 아니라고.
그러니 말씀을 해달라고.
그래도 다행히, 그리 오래지 않아 보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표두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경계를 서던 사형들이 갑자기 강시로 변해 습격을 해왔거든요.”
그 과정에서 몇몇이 죽음을 맞았고.
그렇게 죽은 제자들은 또 강시로 변화했고···.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 강시를 피해 달아나고 있던 겁니까.”
“···저흰. 자칫 죽은 뒤 사문에 피해를 끼칠까. 산을 내려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혹시 단체로 이상한 액체를 복용한 기억이 있습니까.”
“네? 그, 그건 잘···.”
이후 우리는 다시 빠르게 종남산을 올랐다.
방금 들은 정황상, 종남산 안에도 상당한 수의 부상자들이 있을 터.
‘더욱이 아직 이 소요가 계속 되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따금씩 종남파의 도복을 입은 강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검을 뿌려 놈들의 백회혈을 파괴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쐐액- 퍽!
‘헌데 이상하군. 생각보다 강시의 수가 많지 않아.’
회음현에서 봤을 땐 구석구석 강시가 없는 곳이 없었거늘.
문득 이러한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마침내 도착한 종남파.
“···처참하군.”
무너진 전각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도사들이 보였다.
몇몇이 시체를 모아 불을 지피고 있었고.
또 다른 몇몇은 부상을 입은 제자들을···.
그런데 그때였다.
“···소, 소원아?”
별안간 옆에 있던 진희원이 이런 말을 하며 다급히 경내로 발을 들이는 것 아닌가.
‘소원? 설마···.’
이윽고 그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을 봤다.
그리고 그곳엔 아니나 다를까.
‘···저 아이도 이번 일에 휘말려 부상을 입었나 보군.’
진희원의 동생 진소원이 있었다.
나 또한 급히 걸음을 옮겨 그리로 향했다.
***
종남산에 임시로 마련된 회복실.
손에 물수건을 든 진희원이 복잡한 얼굴로 이제 대여섯쯤 되었을 법한 아이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녀가 간호하고 있는 건, 그녀의 동생인 진소원.
얼핏 살펴본 바에 따르면, 적잖은 내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상태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생명에 지장은 없어보인다고 하니, 천만다행.
그 모습을 잠시 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저 아이가 삼대제자들을 이끌고 선봉에서 강시들을 막았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종남파 도사에게 물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당시 일대제자들과 이대제자들은 회의를 하고 있던 터라.”
이는 진희원의 동생인 진소원이 부상을 입은 까닭이었다.
마침 강시들이 처음 출몰한 곳이 삼대제자들이 수련하던 연무장 옆이었고.
비록 삼대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무공 실력만큼은 수위에 드는 진소원이 근처에 있던 언니 오빠들을 이끌고 강시들과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
“하필 또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자리를 비우신 상황이라···.”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시 잠자코 진희원과 진소원을 봤다.
머지않아 옆에 있던 도사가 어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그래도 그나마 운공 사형께서 경내에 남아 있었기에 이정도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봤다.
“운공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마 현재 종남파에 남아 있는 제자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 운공인 모양.
“산에 숨어 있는 잔당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놈들이 워낙 신출귀몰하여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장 운공을 만나 사정을 묻기도 애매하겠군.'
어쨌든 총체적으로 난국인 상황이었다.
'일단 상황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수습하는 게 먼저겠어.'
최소한 산에 숨어 있는 잔당들의 위치를 특정하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여기서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낼 순 없을 듯.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도사를 향해 잠시 회복실 밖으로 나가자 눈짓을 준 뒤, 함께 밖으로 나왔다.
***
회복실 밖으로 나온 뒤, 보다 자세한 상황에 대해 캐물었다.
“혹 놈들에게 도난 당한 물건이나, 놈들이 이곳을 습격한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는 게 있으십니까.”
왜 화산파에선 매화검을 탈취하기 위해 습격을 벌이지 않았었나.
이 또한 그와 비슷한 맥락일 수 있었다.
'만약 그게 무엇인지 알면, 그 냄새를 추적하여 놈들의 위치를 쉽게 특정할 수 있을 테지.'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도, 놈들이 무언가를 탈취하기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사서 노인이 만들었던 진법 속에서 봤던 공간 중 하나가 이곳 종남산 내에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그 진법 안에서 봤던 공간 중 한 군데인 금화표국의 조사전에선 향 연기를 통해 환상을 봤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도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어쩌면 그게 형태를 갖춘 물건일 수도 있지.'
그러나.
"···그, 그게. 놈들이 무얼 노리고 이런 일을 벌였는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종남파에선 아직 그게 무엇인지 파악하진 못한 것 같았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그는 곧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그래도 지금 생포한 마인들이 몇 있으니, 그들을 심문하면, 밝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결국 전부 직접 해결해야겠군.'
나중에 운공을 보면 한소리해야겠다 싶었다.
마침 옆에서 함께 도사의 말을 듣고 있던 하오문도들과 살궁 소속 무인들이 보였다.
각각 그들에게 말했다.
"우선 하오문은 종남산에 남아 있는 마교의 잔당들을 추적하는 일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령과 백미려가 대표로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살궁은···."
"저희는 생포한 마인들을 심문하는 걸 돕도록 하겠습니다, 대협."
막 살궁이 해야 할 일을 말하려 하던 찰나에, 도평희가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마침 내 생각도 그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들에겐 분골착근을 비롯한 여러 심문 수법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들은 죽으면 강시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각별히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이후엔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주지시켜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조금 난감한데. 대협도 아시겠지만, 놈들이 워낙 독해서요. 고문을 하려 들면 자칫 그냥 죽어버릴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피하는 수밖에."
"조금 아쉽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표국에서 해독약을 몇 개 챙겨왔어도 좋을 뻔했어요."
잠시 입맛을 다시던 도평희가 슬쩍 진희원이 있는 회복실에 눈길을 줬다.
어쨌든 결국 주의하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할 일을 분담한 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우선 하오문과 합류하여 적들의 흔적을 쫓았다.
"공자님, 아직 밖으로 나간 마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종남산 초입 부근을 넓게 돌아본 결과, 대규모 이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그래도 이정도면 손 쓸 수 없을 만큼 늦은 건 아니군.'
가볍게 종남산 주위에 진법을 둘렀다.
일종의 거대한 벽과 같은 진법이었다.
놈들이 이곳을 지나가려면 아마 적잖이 고생을 해야 할 테다.
그리고 그 고생을 하는 사이에 우리가 들이닥칠 수 있을 테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든 뒤, 이번엔 산 안쪽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강시를 비롯한 마인들의 흔적을 쫓아 산을 올랐을까.
'계속 느끼는 거지만, 특히 이 근처가 선기의 농도가 짙군.'
꽤나 큼지막한 동굴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여기서 놈들의 흔적이 뚝 끊겼습니다."
동굴 안쪽을 살피고 온 하오문도 하나가 말했다.
"이러니 종남파 도사님들도 그들을 수색하는 데에 애를 먹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곳은 몇 번이고 놈들의 흔적을 추적하다 도착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상 흔적을 발견할 수 없어 번번이 아쉬움을 삼키고 되돌아갔던 곳.
"어쩌죠, 공자님?"
이번에도 돌아가느냐는 소령의 물음이었다.
하오문도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일종의 한탄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으니.
'잠깐. 땅으로 꺼져?'
그러고 보니, 과거 종남산에서 약왕의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때도 그걸 발견한 곳은 이런 동굴과 연결된 비밀 공간이었다.
선기가 모여 대맥을 이루던 곳.
'설마.'
놈들이 그런 곳을 발견하고 숨어 있는 걸까.
"내가 한 번 더 살펴보겠다."
그런 말을 하며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진법을 이용해 동굴을 투시해보기도 하고.
아수라파천권으로 괜히 땅을 파보기도 했다.
쿠구구-
다만.
'그저 내 착각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동굴을 둘러볼 때였다.
지잉-
'음?'
갑작스레 허리춤의 봉황진검이 묘한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한 것.
아수라파천권으로 만들어낸 커다란 구덩이. 그 구덩이로 다가갈수록 검명이 선명해졌다.
더욱이··.
'품속의 보옥도 진동을 하고 있군.'
재빨리 걸음을 재촉해 구덩이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