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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94화 (94/133)

094화. 숨겨진 장소(5)

94화. 숨겨진 장소(5)

금태천의 검법 시연을 말린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태천아, 여기서 이러는 건 표국의 명예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구나.”

이러나저러나 그는 이 몸의 동생.

더욱이 금화표국 국주의 막냇동생이었다.

향후 살궁과의 교류를 고려할 때, 응당 체통을 지켜야 할 인물이란 의미.

‘그런데 이런 식의 추태라니.’

물론 금태천은 본인의 행동을 추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만류에 “설마. 내가 연적이 될까 견제하는 거야?” 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랬다.

사실 금태천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내 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 또한 나름 촉망받는 후기지수.

다른 평범한 무림세가의 여식 앞에서라면, 금태천의 무위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을 테다.

어쩌면 그간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을 때, 항상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여 환심을 샀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도평희는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태천이 정도의 무인은 수도 없이 보아왔겠지.’

도평희가 평범한 무림세가의 여식이 아니라는 게 문제.

살궁이 괜히 세외 2궁으로 통하겠나.

도평희는 그런 곳의 궁주의 수양딸이었다.

실제로도 그녀와 대화를 나눠본 바에 따르면,

그녀가 생각하는 고수의 기준은 무척이나 높았다.

일례로 영웅호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최소한 한 성(城)을 오시할 법한 사람들만 그녀의 입에 회자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별호도 없는 일개 무명소졸인 금태천이 본인의 숙소 앞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다?

그녀의 입장에서 얼마나 가소롭게 보이겠나.

‘그나마 태천이가 도평희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라면, 무인으로서의 금태천이 아닌 이 몸의 동생으로서의 신분을 강조하는 것일 터이거늘.’

이후 얼마간의 설득이 더 이어졌다.

물론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금태천은 끝내 본인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럼. 내가 옆에서 조금만 도움을 주겠다.”

이러한 도움 요청에도 그저 고개만 저을 뿐.

이후 금태천은 그렇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이 이상 살궁의 숙소 앞에서 금태천과 논쟁을 벌이는 것도 못할 짓.

그냥 못 본 척 외면하기로 했다.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망신을 당해보면, 태천이 또한 깨닫는 것이 있을 테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기적인 측면에선 잃는 것만큼 얻는 것도 있을 터.

‘이번 일을 계기로 태천이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면 좋겠군.’

뭐, 금태천이 깎아 먹을 금화표국의 명예야, 그냥 내가 더 잘해서 복구하면 될 테다.

물론 이 일을 계기로 도평희와 금태천이 이어지는 일이 영 요원해질 수도 있을 테지만···.

‘그건 제 복이지.’

정 안 되면, 국주인 금태강을 혼인동맹의 패로 사용하는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몸의 숙소인 청명각으로 향했다.

태천이한테 신경 쓸 시간에 종남산으로 향할 준비나 할 계획.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을 할 예정 아닌가.

더욱이 종남산을 거친 뒤 가능하면 모산도 바로 방문을 할 생각.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웅성웅성.

‘뭐지?’

문득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청명각의 정문 앞에 적잖은 수의 표사들이 어정쩡한 모양새로 뭉쳐 있었다.

정확히는 어정쩡한 모양새로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금태천은 살궁의 숙소 앞에서 그러더니, 저들은 또 왜 내 숙소 앞에서 저럴까.

절로 고개가 갸웃했다.

하물며.

‘대체 표정은 또 왜들 저런 거야?’

흡사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쭈뼛거리는 모양새가 꼭 죄를 지은 사람과도 같았다.

이쯤 되니 묻지 않고 베길 수 없었다.

‘근처에 소령도 있네?’

슬쩍 다가가 물었다.

“다들 왜 저래?”

그리고 그때였다.

“어? 공자님!”

소령의 말과 함께, 뭉쳐 있던 표사들이 일제히 이 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이제 보니 그들의 행색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기 보단, 차라리 굶주림에 허덕이는 거지처럼 보였다.

표사들 사이에 섞여 있던 일단의 무리가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비교적 이 몸과 관계가 가까운 표사들.

왜 나와 첫 표행을 함께 했던 무리 있지 않나.

마침 잘됐다 싶어 그들에게도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쭈뼛쭈뼛 다가온 표사들 중엔 장표사도 있었다.

그가 주변의 눈치를 보다 대표로 말했다.

“표, 표두님. 그게···.”

“기탄없이 말해보아라.”

근처에 있던 표사들 중 일부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장표사를 보고 있었다.

장표사는 누가 봐도 부담을 팍팍 느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전에 제갈세가에서 가르쳐주신 심법과 검법 있지 않습니까.”

제갈세가에서 가르쳐준 심법과 검법이라.

그때 분명 저들이 익힌 금화심법과 금화검법을 가볍게 손봐주었었다.

헌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나는 장표사의 뒷말을 기다리며 잠자코 표사들을 바라봤다.

이에 장표사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사실은 말입니다. 그거. 이 친구들이 자기들도 배우고 싶다고 생떼를 부려서요.”

***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아마 내게 가르침을 받은 표사들 중 누군가가 다른 표사들에게 자랑을 했나 보다.

어쩌면 표행 중에 자연스레 드러났을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내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 표사들이 가르침을 받은 표사들을 닦달했을 테다.

다만 원체 무공이란 것이 함부로 남에게 알려줄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니 만큼, 내 허락 없인 다른 표사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리 만무.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맺혔다.

‘여러모로 보기 좋군.’

괜히 살궁의 숙소 앞에서 엄한 짓을 하고 있는 동생 놈과 비교가 되었다.

놈보다 여기 있는 표사들이 백배는 나아보였다.

입가에 흐뭇한 호선을 만들며 눈앞의 표사들을 향해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 가능하다. 너흰 내게 가족과 다름이 없으니.”

순간 환해지는 주변의 분위기.

머지않아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연무장으로 집결해라.”

이후 표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없던 표사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금화표국 소속이 아닌 하오문도들이나 살궁의 무인들 또한 내게 양해를 구하고 견식을 요청해올 정도.

‘···태천이도 저기 보이는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뜩 풀이 죽어 있는 금태천도 살궁의 무인들과 함께 슬쩍 자리에 나타났다.

하물며 금태강까지 여러 가솔들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태산아, 나도 견식해도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형님.”

“고맙구나.”

문득 새삼 변화한 이 몸의 위상이 실감났다.

더불어 그 위상으로 말미암아, 한층 여유로워진 금화표국의 분위기 또한···.

천천히 주변을 돌아왔다.

‘과거의 금화표국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분위기였지.’

일 외적으로, 이처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금화표국은 침몰 직전의 배와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지금은?

‘보기 좋군.’

물론 과거의 금화표국이라고 항상 쫓기는 듯한 분위기였던 건 아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땐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조사전에 모셔져 있는 이 몸의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그래. 분명 과거에도 이런 분위기일 때가 있었지.’

그때는 표국 내에 항상 여유로움이 넘쳐났다.

표사들도 항상 단합이 되어 있었다.

괜히 입가가 흐물흐물해졌다.

어느덧 표사들은 눈앞에 가지런하게 도열을 해 있었다.

이윽고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준비 됐나?”

““네!””

표사들이 잔뜩 군기가 든 채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해왔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지막이 뇌까렸다.

“보기 좋구나. 앞으로도 항상 이런 모습이면 좋겠어.”

이후 금화표국엔 한참 동안 북적북적한 훈풍이 몰아쳤다.

***

연무장에 널브러진 금화표국의 표사들을 바라봤다.

“···가, 감사합니다, 표두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그들에게 그리 대단한 수련을 시키진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니, 최대한 압축적으로 행하는 수밖엔.’

전음을 통해 심법과 검법을 가볍게 다듬어준 뒤,

그들과 비무를 치러줌으로 인해 그들의 약점을 한두 개씩 짚어주었다.

물론 비무는 아무리 길어봐야 두어 초식을 넘기긴 힘들었지만,

“너는 하체가 부실한 것 같구나. 기수식을 취할 때 보다 자세를 낮게 잡도록 해보아라.”

그럼에도 정확히 핵심을 짚어준 까닭에 다들 적잖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근처에서 구경만 하던 살궁과 하오문도들 또한 자극을 받았는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나름대로 비무를 펼치고 있을 정도.

그렇게 어느덧 마지막 표사와의 비무를 마무리 지었을 때였다.

문득 금태강이 다가왔다.

“태산아, 나도 가르침을 청해도 괜찮겠느냐?”

순간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태강은 무려 금화표국의 국주 아닌가.

이는 상징하는 바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아무리 국주님이라고 해도 힘드시겠지?”

멀찍이서 이런 식의 속닥거림도 들려올 정도.

“···형님.”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금태강.

그리고 그때였다.

[이번 일로 태천이가 너를 보는 시선 또한 변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

금태강의 전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얼추 듣기론 살궁의 숙소 앞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전해들은 것 같았다.

[그런 뜻이 있으셨군요.]

[하물며 네가 떠난 뒤에 태천이가 살궁의 무리들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하더구나.]

[망신을 말입니까.]

[태천이의 행태가 너무 노골적이니, 저들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듣자하니, 도평희의 수하들 중 일부가 태천이가 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썼다고 했다.

태천이의 옆에서 검술 수련을 시작한 것.

물론 그 수하들이란 사람들의 무공 수위는 태천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그 모습에 태천이는 주눅이 들었다고···.

[나는 이 참에 태천이가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면 좋겠구나.]

금태강의 말에 따르면, 국주까지 이 몸에게 가르침을 청할 정도이니, 태천이도 얼마든지 내게 가르침을 요청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태천이가 그 수모를 갚아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하긴. 태천이의 성취가 높아진다면 표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으니.’

금화표국이 좋다면, 나 또한 좋았다.

슬쩍 금태천을 봤다.

비 맞은 강아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눈동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이 몸을 연적으로 생각하고 말고는 그에게 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국주님, 표두님. 그럼 두 분의 비무는 자리를 옮겨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옆에 있던 총관 팽사율이 끼어들었다.

이제 보니 팽사율과도 미리 이야기를 맞춰둔 모양.

“자리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국주실 지하에 국주 전용 연공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국주 전용 연공실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곳은 직계를 제외하곤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적당히 금태강의 명예를 보존하면서 금태천을 자극할 수 있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고.

금태강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금태강은 이런 말도 남겼다.

“태천아. 너도 따라오너라.”

이에 금태천은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그럼에도 별수 있겠는가.

이윽고 우리는 금태강의 안내에 따라 국주 전용 연공실로 향했다.

***

‘그러고 보니, 이곳엔 여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구나.’

국주 전용 연공실 입구 앞에 선 뒤 느낀 감상이었다.

이 몸의 아버지께서 국주일 땐, 무공에 취미가 없었고.

이 몸의 형님이 국주일 땐 망나니처럼 살았었다.

그 때문에 한 번도 그 공간에 발을 들여 본 적이 없었다.

‘감회가 새롭군.’

표국 내에서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라.

얼마 전 조사전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던 까닭에 괜히 긴장이 됐다.

그렇게 차가운 지하 연공실의 냄새가 비강에 익숙하니 들어찰 때쯤.

끼이익-

“둘 다 들어와라.”

금태강이 연공실의 문을 열었다.

금태강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우리가 따르는 형태였다.

철컥.

석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반원형 공간이 널찍하니 펼쳐져 있었다.

‘상당하군.’

곳곳엔 연공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수를 담당할 작은 셈도 있었고.

음식물을 보관하는 항아리도 있었다.

온갖 병장기는 당연했다.

그리고 천장에는···.

그때였다.

‘잠깐. 저게 왜 여기에?’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 것.

저도 몰래 마른침이 넘어갔다.

머리 세 개에 팔 여섯 개가 달린 인물.

그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듣기론 분명 마신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천마신교 포두지부에서 봤던 석상이 딱 저렇게 생기지 않았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묘하게 달랐지만, 틀림없었다.

급히 고개를 내려 금태강을 봤다.

금태강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표정으로 여상스럽게 이 몸과의 비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형님. 혹 천장에 있는 저 그림말입니다. 원래부터 저기에 그러져 있던 겁니까.”

금태강은 고개를 들고 내가 말한 천장의 그림을 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그는 여전히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며 여상스런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저도 몰래 울대를 타고 연신 마른침이 넘어갔다.

가만히 그런 금태강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대체 어째서 저토록 여상스러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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