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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87화 (87/133)

087화. 하오문(1)

87화. 하오문(1)

별안간 나타난 종남산의 풍경을 얼마나 살폈을까.

‘···여러 개의 진법이 중첩되어 있는 모양이로군.’

비로소 이러한 풍경이 나타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도 이곳엔 내공을 밀어내는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지 않았나.

헌데 그 위에 누군가가 새로운 진법을 덧씌운 모양.

‘기존의 진법 위에 특정 공간을 비추는 진법을 추가한 건가.’

그래서 종남산이 보이게 된 것 같았다.

더불어 사기(死氣)나 마기(魔氣)를 배척하는 진법도 얹어져 있었으니.

때문에 나 또한 지니고 있는 천마신기로 인해, 진입할 때 꽤나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결국 총 세 개의 진법이 조화를 이룬 상태인 듯.

‘재미있군.’

어떤 진법인지 가늠했으니. 이젠 누가 왜 이런 진법을 만들었는지 고민할 차례.

계속 진법의 내부로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우선···.

‘사기와 마기만 콕 찍어 배척하는 건, 이곳에 강불해와 강시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테고.’

그리고 이어서 특정 공간을 비춘다는 건?

‘그들이 아닌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일 테지.’

그렇다면 누구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일까.

‘···난 것 같군.’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곳을 자유로이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

그리고 그런 식의 추론을 하다 보면, 이 진법을 만든 사람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때 그 사서 할아버지.

정황상 분명 맞을 테다.

과거 말씀을 나눠본 결과, 그분 또한 진법에 상당한 조예를 가진 것 같았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아직 불명확한 것들도 적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체 그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서 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한 것.

이곳에 진입하기 전, 화산파 장문인에게 물었지만, 그 또한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장문인이 되기 한참 전부터 이곳에 살고 계셨던 분이라나?

어쨌든 당장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추후에 사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진득하니 물어봐야겠군.’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머릿속 한 편에 미뤄놨다.

그럼 이제 둘째로 고민할 것은···.

‘그분의 정체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분은 왜 종남산의 풍경을 내게 보여주는 걸까.’

턱.

걸음을 멈추었다.

진법의 끝에 도달한 모양.

눈앞의 진법을 완전히 해체한다면 더 나아갈 수 있을 테지만.

그러진 않았다.

'신비롭군.'

어느덧 하늘과 땅은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후방과 측방엔 투명한 얼음벽이 솟아나 있었다.

이제 보니 정면에 나타났던 종남산의 풍경 또한 얼음벽을 투과하여 비춰지는 모습이었다.

솟아난 얼음벽들은 각기 다른 공간을 비추기 시작했다.

사아아-

정면엔 기존에 있던 종남산의 풍경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나머지 삼 면은···.

‘이곳들은?’

삼 면 중 무려 두 군데가 눈에 익은 공간이었다.

우선 왼쪽에 있는 공간은 환상 속에서 익히 보았던 협곡이었다.

‘···분명 모산파 죽간본의 원본을 집었을 때 보았던 공간인 것 같은데?’

그때 봉황진검의 주인과 그의 사제로 보이는 백의인이 마신을 운운하며 싸운 곳 있지 않나.

비록 환상 속에서 본 공간이라 실제 이곳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인 것은 틀림없군.’

이윽고 고개를 돌려 이번엔 오른쪽 풍경을 봤다.

사실 이곳은 환상 속 공간보다 더 아리송했다.

‘사당이군.’

너무도 평범한 곳이었기 때문.

하물며···.

‘그것도 금화표국의 사당.’

조사전이란 이름의 사당.

왜 이곳을 보여주는 걸까.

어차피 해독약을 만들기 위해선 표국을 방문해야 하니.

'그때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면 좋을 테지.'

아쉽게도 마지막 남은 한 곳인 뒤편에 나타난 공간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곳이었다.

울창한 수풀이 가득한 공간인데, 이 몸의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정면에 있는 건, 종남산이고. 우측엔 금화표국의 사당. 좌측엔 환상 속에서 본 공간. 후방에 있는 건 어딘지 모를 수풀인 건가.’

그리고 이런 공간을 제시했다는 건, 여길 찾아가라는 걸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사서 노인은 내게 이곳을 가보라 제안을 하는 걸까.

이어 고개를 돌려 왼쪽 공간을 봤다. 환상 속에서 본 공간과 꼭 닮은 풍경.

‘···그리고 이 공간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물론 당장 고민한다고 알 순 없었다.

‘결국 한 군데씩 찾아가보는 수밖엔.’

그러다 보면 단서를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나씩 풀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그 사서 노인도 저 중 한 군데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공간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은 뒤, 진법을 나왔다.

***

비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벌써 깜깜하게 변해 있었다.

'다들 이 몸을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던 것.

곧장 화산파 경내로 향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그림자로 가득한 산길을 걷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백미려와 도평희는 진법 속 공간들이 어디인지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들은 각각 하오문과 살궁 아닌가.

그들은 모두 수위를 다투는 정보 단체이니.

'왼쪽에 나타난 협곡과 뒤쪽에 나타난 대수림이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았다.

한번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러려면 비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직접 보게 하는 게 제일 좋겠지?'

내일 아침 화산파 장문인과 상의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원랜 비고에 외부인을 들이는 건 아니 될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 아닌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 안 된다고 그러면,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여주는 수밖엔.'

오랜만에 품에 있는 붓을 써보는 걸까.

일전에 부적을 그리며 나름 그림 실력 또한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부우우-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덧 일행이 머물고 있는 객당에 도착했다.

'조용하군.'

벌써 다들 잠자리에 든 모양.

조심스레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부드럽진 못하군.'

열악한 화산파의 상황이 여기서 대변되고 있었다.

이윽고 달빛에 의지해 내부를 둘러봤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지?'

이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행이 누구도 보이지 않았던 것.

잠시 외유라도 나간 것일까.

이 밤 중에?

고개가 갸웃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화산파 제자가 있어 그에게 물었다.

"다들 어디 갔는지 혹 아십니까."

아쉽지만 그 또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몇 명에게 더 물어봤지만, 모두 마찬가지.

그나마 수확이라면 하오문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대략 한 시진쯤 지나서 살궁이 뒤따라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도?

청소를 하던 시동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군.'

하물며 좌호법 또한 보이지 않으니···.

워낙 세월이 뒤숭숭하지 않나.

잠시 고민하다 기사를 만들었다.

우선 소령과 도평희의 냄새를 추적했다.

솨아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함께 있는 것 같군.'

냄새의 농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걸 보면, 아직 잠이 들지도 않은 모양.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보자. 여긴?'

얼핏 아까 오는 길에 백미려에게 들었던 하오문 섬서지부가 위치한 곳 근처이지 않을까 싶었다.

'회음현에 있다고 했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설마 벌써 하오문 재건 작업을 시작한 건가.'

이 몸에겐 별다른 말도 없이?

물론 내게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소령이라면 내게 말할 줄 알았는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오문과 살궁의 힘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내게 부담주기 싫어 말하지 않은 걸 수도 있었다.

'그럼 좌호법도 같이 있나?'

이번엔 좌호법의 냄새를 추적해보았다.

그런데.

'따로 있는 것 같군.'

얘는 대체 뭘하고 다니는 걸까.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냄새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는 걸로 보아 좌호법은 곧 이리로 도착을 할 듯싶었다.

방을 나와 좌호법을 마중나갔다.

물론 특이점도 있었다.

'근데 왜 경공을 써서 이동하고 있는 걸까.'

평범한 걸음걸이라고 하기엔 이곳으로 오고 있는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

어쨌든 머지않아 좌호법이 나타났고.

"무슨 일 있습니까?"

대체 어딜 다녀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구도자, 마침 잘 나와계셨습니다."

좌호법이 곧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독 사기가 짙은 곳이 있어 잠시 살펴보고 오는 길입니다."

유독 사기가 짙은 곳이라.

저도 몰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조금 자세히 말씀해보시겠습니까."

***

좌호법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얼마 전부터 유독 사기가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본인의 육체 중 일부가 강시로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다만 저도 이런 감각이 워낙 생경하여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 이처럼 따로 움직인 것이라 했다.

이에 나는 "소득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좌호법은 "따라오시지요, 구도자.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답을 건네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좌호법, 이리로 가는 게 맞습니까."

현재 나와 좌호법은 경공을 밟아가며 화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좌호법의 말에 따르면, 회음현에 있는 공동묘지 하나가 통째로 강시 소굴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걸 발견하고 이리로 곧장 온 것이라고.

혼자 싹 쓸어버릴까도 싶었지만,

아무래도 구도자께 직접 보여드린 뒤 처우를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나?

'바람직하군.'

산을 내려와 회음으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지붕 위를 달렸다.

슈욱- 슈욱-

"좌호법, 경공을 밟을 때 조금만 앞쪽으로 중심을 옮긴 뒤 밟아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좌호법의 경공 또한 간단하게 보완을 해줬다.

이윽고 도착한 회음현.

"정말 이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까?"

사실 이처럼 경공의 속도를 올린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하필 회음현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고 있었지만, 하오문 섬서지부가 위치한 곳도 회음현이 아닌가.

하물며.

'소령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군.'

좌호법에게 물었다.

"혹 오는 길에 소령이나 도평희와 마주치진 않았습니까."

"···못 봤습니다."

"그래요?"

뭐 서로 길이 엇갈렸을 수도 있으니.

굳이 더 이상 캐묻진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공동묘지 인근 마을.

'처참하군.'

이미 상당히 많은 수의 강시들이 민가로 내려와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후 보이는 족족 강시들을 처리했다.

봉황진검을 뽑아 베고, 찌르고.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땐 비도를 던져 백회혈을 파괴했다.

"이쪽입니다. 이쪽에 특히 강시들이 많았습니다, 구도자."

고개를 끄덕이고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듯이.

'소령과 도평희도 이곳에 있군.'

정확히 좌호법이 가리키는 방향에 소령과 일행이 있었다.

하오문 섬서지부를 방문하러 왔다가 사건에 휘말린 건가.

지금으로선 이런 추측이 최선.

마침내 눈앞에 거대한 기루가 눈앞에 들어왔다.

흘깃 좌호법을 봤다.

'정말 소령과 도평희를 마주치지 못했던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으니···.

쩌저적-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강시를 그대로 얼려버리며 좌호법에게 말했다.

"바로 진입하죠."

이후 우리는 곧장 문을 열고 눈앞의 기루를 향해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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