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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85화 (85/133)

085화. 복귀(4)

85화. 복귀(4)

소령과 마주앉아 있는 한 여인.

‘축골공으로 외형을 바꾼 건가.’

좌호법은 축골공으로 본디의 외형에 약간의 변화를 준 상태였다.

이윽고 이 몸을 발견한 좌호법이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도 몰래 미간이 꿈틀거렸다.

‘왜 웃는 거지?’

머지않아 소령 또한 이 몸을 발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다가와 내 외투를 받으려 했다.

“공자님, 일은 다 보고 오신 거예요?”

자연스레 외투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별일 없었지?”

말을 하며 슬쩍 좌호법을 봤다.

좌호법이 묘한 웃음을 짓는 걸 제외하곤,

우려했던 것만큼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소령의 반응이 너무도 태연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건가?’

살짝 이와 같은 의구심이 들 무렵.

좌호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좌호법의 말이었다.

소령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배웅을 나갔다.

철컥.

방문을 닫고.

가만히 좌호법을 봤다.

“모습까지 바꾸고 여긴 어쩐 일입니까.”

넌지시 물었다.

이에 엷게 웃으며 대답하는 좌호법.

그냥 지나가는 길에 인사차 들렀다고 하더라.

‘인사차 들렀다라···.’

모습을 바꾼 건, 당분간 이 모습으로 지낼까 생각 중이라 그런 것이라 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중원에 머물 게 될 것 같으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나?

뭐, 그녀의 외형이 어떻든 내 입장에서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그와 관련된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안에서 소령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별안간 쓴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뱉었다.

“···걱정하시는 이야긴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얼 걱정하는지 아는 걸까.

잠자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눈치를 보니 저분은 저희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적당히 둘러대며 숨겼습니다.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구도자.”

천마신교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다만 왜인지 말을 하는 좌호법의 눈빛이 조금 씁쓸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럼 구도자라는 말은?”

“이 또한 적당히 둘러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후 그러더라.

구도자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실 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여기서 우리끼리 이처럼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

오히려 안에 계시는 분이 괜히 오해를 하는 것 아니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좌호법에게 말했다.

“추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도자.”

다음을 기약하고 배웅을 마쳤다.

방문을 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소령은 창가에 기댄 채,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는 소령.

그녀의 눈동자에 별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성숙해진 것 같네.’

백미려와 감숙성을 다녀왔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보다 주체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소령이 말했다.

“오셨어요?”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이후 넌지시 물었다.

“별일 없었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령.

실제로 좌호법의 말처럼 천마신교와 관련된 대화는 나누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요. 아까 그분 조금 특이하신 분인 것 같아요.”

다만.

“특이하신 분?”

소령이 좌호법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다.

의아한 얼굴로 소령을 봤다.

곧 소령이 말했다.

“보통은 은공이라고 하지, 구도자라는 말은 잘 안 쓰잖아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대략 몇 마디 말을 더 나눠보니, 좌호법은 정말 적당하게 둘러댄 것 같았다.

내가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라 구도자라고 부르기로 했다나?

조금 어설픈 감도 없지 않았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다 대화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좌호법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나눌 이야기는 많으니.

그간의 근황이라거나.

강호의 정세 같은 것들.

그래. 특히 강호의 정세.

“아, 공자님. 그 얘기 들으셨어요? ···화산이 또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이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이곳에 오기 전 신녀가 섭혼술을 통해 들려준 내용에 따르면.

부교주가 모산파의 죽간본을 탈취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에 성공했다고 했었다.

다만 신녀의 말에 중간중간 빈 부분이 있어, 따로 알아보자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소령과 신녀의 이야기가 묘하게 다르군.’

정확히는 서로 조명하는 부분이 다랐다.

어쩌면 정보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녀가 부교주의 목적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한 것에 반해,

소령은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으니.

소령이 말했다.

“화산파 장문인께서 중태에 빠지셨고, 웬 노인 한 분이 실종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웬 노인?”

“잘은 모르겠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부교주를 맞아 싸우셨던 기인이 한 분 계셨대요. 근데 패퇴하고 홀연 자취를 감추셨다고···.”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 인물.

그 사서 할아버지를 말하는 걸까.

괜히 찝찝했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가 화산이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근데 부교주는 왜 화산을 습격한 걸까요?”

"글쎄?"

소령은 부교주가 왜 습격을 감행했는지까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소령이 비록 과거 하오문에 적을 뒀었다곤 하지만···.

‘아직 독자적인 정보 단체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마 이 정보 또한 감숙성 지부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들었거나, 백미려가 이야기해줘서 알게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습격 이후로 강시의 출몰이 잦아졌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강시의 출몰이 잦아졌다고?”

이 또한 처음 듣는 내용.

“네, 부쩍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부교주가 무언갈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애초에 모산파 죽간본에 쓰인 내용이 주로 강시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고···.

충분히 그런 추측이 가능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밤이 깊었다.

"못 다한 이야기는 내일 마저 나눌까?"

그리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눌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았다.

소령에게 밤인사를 하고 내게 주어진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다시 분주히 움직여야 할 테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잠깐 창가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봤다.

'저쪽이 동쪽인가.'

저곳에 화산도 있고.

금화표국도 있고.

무림맹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림맹 수색대에 대한 이야기는 못 나눴네.'

아차 싶었다.

그래도 뭐 딱히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 이야기하나 내일 이야기하나 큰 차이는 없으리라.

고개를 들고 다시 창문 밖을 봤다.

바람이 선선하니 불어와 장포 안을 훑고 지나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유도 오랜만이군.'

실로 평화로운 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그런 고즈넉한 밤이라고 생각했다.

***

다음 날 아침.

화산으로 향하는 길.

다그닥. 다그닥.

말 위에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동행하는 인원이 많아졌군.'

소령과 백미려를 비롯한 하오문도과 함께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거늘.

우선은 좌호법.

그녀가 합류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어째서 합류를 하려는 것이냐는 내 물음에···.

"제가 강시로 변하면 무림에 큰 환란이 닥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이런 식으로 답을 했다.

강시로 변한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으니···.

유사시에 나더러 죽여달라는 말이었다.

어지간히도 비장하게 말을 해서 달리 반대를 하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다음으론 진양상단의 도평희.

그녀는 백미려와 함께 일행에 합류했다.

이유를 묻는 내 물음에 백미려가 대신 대답했다.

"···살궁에서 하오문의 재건을 도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재건이라곤 하지만, 아직 진학주의 세력이 곳곳에 남아 있는 상황이니 탈환이란 표현이 보다 적합할 터.

'탈환을 하려면 무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걸 테지.'

어쨌든 어젯밤에 백미려와 도평희 둘이 긴히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물론 상황을 바라보는 백미려와 도평희의 시각에 약간의 차이는 있어 보였지만···.

"궁에서 대협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도평희가 여정 중에 따로 내게 다가와 슬쩍 이런 말을 건넨 걸 보면 분명 그럴 테다.

결국 하오문을 돕는 이유가 나 때문이란 말이었다.

"···대협의 시비를 중심으로 하오문을 재건할 것이라 들었어요. 그럼 결국 하오문은 대협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니."

소령을 평범한 시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보다 정확한 사정을 설명하려면, 소령의 과거사를 들먹여야 하지 않는가.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결국 다같이 함께 말을 몰아 동쪽에 있는 섬서성으로 이동했다.

이러나저러나 이 또한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좌호법도 살궁도 당장 이 몸의 전력이 된 것이니···.

상당한 전력이 보강된 셈이었다.

하물며.

'정말 소령의 말처럼 강시가 상당히 자주 출몰하는군.'

세월이 수상하기도 했으니.

평범한 민가는 물론이요, 묘지, 관아···.

정말 어느 한 군데 빼놓지 않고 강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호법이 죽은 뒤 강시로 변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강시로 변하기 전에 목을 끊어주셨으면 합니다, 구도자."

좌호법이 몸 안에 '그 액체'를 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도 같았다.

결국 저들은 저들도 몰래 '그 액체'를 먹게 된 것일 테다.

그래서 강시로 변할 것이라 알지 못하다 죽은 뒤 강시가 된 것.

'강불해의 짓일 테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무공 수련은 여한없이 하는군.'

얼마 전 익힌 빙공을 아수라파천권과 섞는 것에 대해 연구하는 데에 활용을 하는 것.

비록 불과 얼음이란 상극의 조합이지만, 매화검이란 매개체를 활용하면 함께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마침내.

'도착했군.'

화산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눈앞의 앙상한 화산을 봤다.

화산의 상태는 좋은 말로라도 양호하다 할 수 없었다.

일전에 크게 산불이나 한 차례 훼손된 상황에서 강불해의 습격을 받은 것이니···.

초입은 거의 민둥산과 다름이 없게 변해 있었다.

'전각들도 거의 초토화되었군.'

어지간히도 휑했던 까닭에, 시야는 오히려 탁 트여 있었다.

"우선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일행에겐 잠시 기다려달라 했다.

아무리 휑하게 변했다고 해도 화산파는 화산파.

'이럴수록 예의를 지켜야 할 테지.'

결국 대표로 출입 허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비교적 화산파 도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산스럽군.'

그들은 무너진 전각을 새로 짓기 위해 이런저런 자재들을 나르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두 번의 변고를 당했으니.

응당 그럴 법했다.

짐짓 인기척을 내며 말했다.

"흠흠. 계십니까."

제자들의 시선이 순간 일제히 내게 쏠렸다.

무표정하던 그들의 얼굴에 여러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적린휘성이십니까?"

개중엔 울분과 반가움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꼭···.

'다시 목표가 생긴 사람들 같군.'

어떤 목표인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추측하자면···.

'강불해에 대한 복수를 바라는 건가.'

이렇지 않을까 했다.

그들에게서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이 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머지않아, 그들의 안내에 따라 화산파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중태에 빠져 있는 화산파 장문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그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움직여, 힘겹게 이 몸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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