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복귀(1)
82화. 복귀(1)
가만히 좌호법의 육신을 관조했다.
위장을 통해 흡수된 액체는 생기(生氣)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미꾸라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꾸물꾸물.
움직임이 여간 유연한 것이 아니라, 혹여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
너무도 유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로 빼내는 건 불가할 것 같았다.
‘일단 구체적인 성질이 어떤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군.’
이윽고 좌호법의 몸속으로 오행의 기운을 일부 주입했다.
오행의 기운은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기운.
사기(死氣)와 흡사한 모양을 만들어 그 액체를 유인해봤다.
촤라락-
그러자 뱀처럼 다가와 기운을 집어삼키는 액체.
이후 그 액체는 좌호법의 몸속을 유영하다 백회혈에 도달했을 때, 아까 삼킨 그 사기를 토해냈다.
두두둑.
토해낸 사기가 작은 둑을 만들었다.
둑은 곧 강시의 근본이 되는 정(精)이 되었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여, 강시가 되는 거로군.’
몇 번을 더 반복해보았다.
액체는 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소멸하는 것 같았다.
‘그렇담 이걸 반복해서 액체를 제거해야 하는 건가?’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으으, 구도자.”
문득 좌호법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 것.
열띤 숨을 뱉으며, 식은땀도 흘리고 있었다.
혈관도 톡톡 불거진 것이···.
‘강시가 되려는 건가, 백회혈의 정 때문에?’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백회혈에 있던 정에서 사기를 흩어냈다.
화아악-
곧 평안을 되찾는 좌호법.
그 모습에 잠시 고민을 했다.
액체를 빼낼 방법을 궁리하다 본의 아니게 강시가 탄생하는 방법만 알게 된 상황.
물론 이 또한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원리를 알아냈으니, 차분히 연구하다 보면 분명 해결책도 알아낼 수 있을 터.
이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백회혈에서 손을 뗐다.
이에 좌호법은 씁쓸하게 웃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역시 불가한 모양이군요.”
“그래도 시간을 들이다 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다행입니다. 저는 제가 이미 강시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일체 농담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던 모양.
그녀가 본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녀의 손등 피부는 마치 갑각류의 그것처럼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백회혈의 정을 흩어내도 강시로 변했던 부분은 돌아오지 않는 건가.’
그러고 보면 총해무관의 이설이란 아이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었다.
곧 축골공으로 그 흔적을 감추는 좌호법.
그녀가 중얼거렸다.
“···강시를 만들기만 해봤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착잡했다.
좌호법에겐 미안한 생각이지만, 어쨌든 신비한 발견이긴 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헌데. 놈들은 액체를 어떤 식으로 음식에 섞은 겁니까.”
추후 또 놈들과 이런 비슷한 상황으로 엮일 수도 있지 않나.
미리 알아둔다면 주변 인물들에게 주의를 줄 수 있었다.
내 의중을 알아낸 좌호법이 잠시 고민을 하다 대답했다.
“저도 명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리 쓸모 있는 말은 아니었다.
듣기론 지극히 평범한 식사자리였다고 했다.
개개인의 자리가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고.
음식 또한 서로 섞여 먹었다고 했다.
‘하긴. 그러니···.’
주변을 돌아봤다.
아깐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 못했는데,
강시로 변한 인물들 중엔 우호법의 수하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아군 적군 가리지 않은 건가.’
근처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우호법의 부하에게 물었다.
“너흰 너희가 죽으면 강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
혹시나 싶어 묻는 것.
“모, 몰랐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였다.
사실 우호법에게 강시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전력적인 측면에선 하등 문제가 없는 것이긴 했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몰랐다.
슬쩍 우호법의 시체를 바라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번에 죽일 게 아니라···.’
이것저것 좀 알아내고 죽일 걸 그랬다.
특히 어떤 식으로 강시를 조종하는지는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걸 그랬다.
아마 우호법이 특별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은 상황이니···.
‘만약 이를 알아낸다면, 추후 놈들과 싸울 때 큰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었다.
이후 장원 내부를 돌아다니며, 적이었던 놈들을 포박했다.
개중엔 나름 무공 수위가 나쁘지 않은 놈들이 몇몇 있었다.
이중엔 그래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인물일 터.
그들은 특별히 구석으로 부른 뒤 분골착근을 통해, 고문을 해보기도 했다.
“저, 저흰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나쁜 놈이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빙궁에서 따라오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들 중엔 우호법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된 놈도 있을 정도이니.
‘하기야 죽어서 강시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수뇌부들만 알고 있던 건가.’
이윽고 장원의 문을 열었다.
‘살궁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군.’
살궁은 정보 단체로서의 기능 또한 훌륭하다 하지 않았나.
어딘가에 우호법의 심복이 또 숨어 있을지 몰랐다.
개중엔 강시를 조종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놈도 있을지 모르니···.
더욱이.
‘이곳에 있는 놈들의 처분도 결정해야 할 테고.’
이들은 어찌 보면 포로가 아닌가.
좋은 협상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이번엔 우호법의 시체를 봤다.
‘저것도 운반을 해야 할 테지?’
잠시 고민했다.
시체의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상황이니.
‘필요한 놈이 있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라 해야 하나?’
그런데 그때였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묘한 이질감.
“잠깐 비켜보아라.”
시체를 지키던 마인에게 명령했다.
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켜나는 그들.
우호법의 시체를 향해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건.’
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상처가 아물고 있군.’
급히 놈의 백회혈에 손바닥을 올렸다.
***
우호법의 백회혈에 손을 올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대단한 놈들이군.’
절로 헛웃음이 났다.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 또한 강시로 변화하고 있었다.
결국 그 또한 ‘그 액체’를 먹었다는 의미.
대체 누가 놈에게도 이 액체를 먹인 걸까.
그리고 먹였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크게 두 가지가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는···.
‘부교주가 먹인 건가.’
몰래 먹였든,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놈이 자발적으로 먹었든,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다만 이러면 부교주 또한 강시를 조종하는 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썩 좋은 경우의 수는 아니군.’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둘째.
‘어쩌면 이번에 좌호법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본인도 섭취한 걸 수도 있지.’
아까 했던 첫 번째 가정보단 그래도 이게 맞길 바랐다.
부교주가 강시를 다룰 수 있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만약 둘째 가설이 맞다면···.
‘그럼. 설마 놈은 이 액체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으니.
응당 그렇지 않나.
세상 어느 정신 나간 놈이 죽은 다음 강시가 되길 바라겠나.
간혹 그런 정신 나간 놈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호법이 그런 놈이 아니길 바랐다.
급히 그의 품을 뒤졌다.
“좌호법, 장원 내부를 잠깐 수색해줬으면 하오.”
장원 또한 수색을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작은 자기병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구도자, 그게 무엇입니까.”
좌호법이 물어왔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하얀 액체의 해독약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다. 그저 추측을 할 뿐.
하물며···.
순간 좌호법을 비롯한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내 손에 있는 약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들 전부 그 액체에 중독된 상황일 테니···.’
일일이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다같이 ‘그 액체’가 든 음식을 먹었을 테니 그럴 테다.
결국 해독약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미.
'아쉽지만 이 한 병이 전부인 것 같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약을 복제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도 그게 최선의 수였으니.
비단 지금 놓인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마인들과 계속 부딪쳐야 하는 상황 아닌가.
이런 경우가 이번만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중원 곳곳에서 이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짐작한 것인지, 좌호법도 흔쾌히 해독약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건 구도자께서 얻으신 전리품이군요.” 이런 식의 말을 하며 내 소요물이란 걸 주장해줄 뿐이었다.
‘기특하군.’
이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쩌면 저 좌호법이란 여인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했을까.
문득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진표사에게 가져다준다면 복제할 수 있을까?’
약왕의 딸인 진희원.
그녀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지닌 패 중엔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다음 행선지는 표국이 되어야 할 것 같군.’
사실 이제 슬슬 표국으로 돌아가볼 때가 되긴 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품에 해독약을 챙겼다.
순간 근처 무인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당연히 좌호법도···.
‘생각보다 의연하군.’
좌중을 둘러보는 척 좌호법을 겨냥해 말했다.
“어떻게든 죽지만 말아라. 그럼 내 필히 방법을 강구할 테니.”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머지않아 좌호법이 말했다.
실로 구도자다운 말씀이라고···.
***
해독약을 챙긴 뒤, 다시 우호법의 시체를 봤다.
해독약을 챙겼으니, 이제 문제는 이것.
이대로 두면 곧 강시로 변할 테니.
어느덧 시체의 상처는 꽤나 아물어 있었다.
스르릉-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백회혈에 손을 올린 뒤 사기를 흩어내는 방식으로 처리했을 테지만.
이미 해독약을 찾느라, 시간을 꽤 허비한 상황.
언제 강시로 변해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었다.
'자칫 흩어내는 중에 강시로 변화하면.'
우호법이 강시로 변해 급습을 한다면 나 또한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정황상 놈이 강시로 변하면, 생전의 무공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상태에서 피륙이 보다 단단해질 테니.
'생전보다 더 강해진다는 의미이지.'
그래서 검으로 놈의 목을 단번에 쪼갤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강시를 죽이는 방법도 이러했다.
다만.
'솔직히 조금 아깝긴 하군.'
괜히 입맛이 다셔졌다.
여러모로 그렇지 않나.
강시로 변화하고 있는 시체를 확보한 것도 이번이 처음일 뿐더러.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놈 또한 생전의 무공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놈은 살아있는 빙공의 교본이 아닌가.
더욱이.
'강시를 조종하는 그 무공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고.'
이게 제일 중요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짐작하건데, 부교주 일행의 최대 전력은 머지않아 강시가 될 터.
그런데 내가 그 강시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최소한 놈들이 강시를 조종하는 것에 간섭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테지.'
그러나 그렇다고 놈이 강시로 변하게끔 두는 것도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그런데 그때였다.
문득 시야 한구석에 빙공으로 본인들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는, 우호법의 수하들이 보였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냉기를 뿜어 상처부위를 꽁꽁 얼리고 있었다.
'···빙공이라.'
순간, 한 가지 묘책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혹시 빙공으로 시체도 얼릴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든 것.
그리고 만약 우호법의 시체를 얼릴 수만 있다면?
'뇌옥에 가둔 뒤 녹일 수도 있을 테니. 괜찮을 것 같군.'
얼어있는 동안에는 강시로 변화하는 과정도 멈출 테니.
물론 저들의 내공으론 불가할 테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면?
이에 곧장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방금 상처 부위를 얼리는 그 무공. 내게 한 번만 사용해볼 수 있겠나?"
한 번만 직접 경험하면, 충분히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