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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78화 (78/133)

078화. 잠입(1)

78화. 잠입(1)

서서히 구름이 몰려오고, 공기가 습해질 무렵.

진양상단은 마적의 습격으로 인해 망가진 본인들의 마차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 또한 적당히 옆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저흰 마적들의 시체를 치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그렇게 대략의 수습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기씨, 어서요.”

뒤쪽에서 진양상단 무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묵례를 건네 오는 도평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도평희의 등을 떠미는 진양상단의 무인들.

“···여기 보셨다. 얼른요!”

어느덧 옆으로 다가온 도평희가 물병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대협,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다 똑같이 고생하고 있지요.”

적당히 대꾸를 해주었다.

‘긴히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도평희가 그들이 속한 살궁이란 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식이었다.

“···대협께서도 아시겠지만, 살궁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은신술과 독, 비도술에 능통합니다. 사실 이뿐만 아니라, 추적술이나 고문술도 저희의 특기 중 하나이고요.”

대략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꼭 무언가 도움을 요청하려는 사람 같군.’

상인들 중 이런 식으로 흥정을 하는 사람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자신들이 건넬 수 있는 걸 먼저 제시하고.

상대가 관심을 보일 때, 은근히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

‘뭐 내 입장에서도 관계를 두텁게 하는 것이 나쁘진 않으니.’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가주었다.

“살궁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보다 자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에 도평희는 반색을 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본인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차분히 본론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그래서 말입니다. 저희가 알기론 우호법과 좌호법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좌호법은 대협의 수하인 것 같고요. 그런데 마침 저희도 우호법과의 관계가 별로이지 뭡니까. 정확히는 우호법의 연원인 빙궁과 사이가 별로이지만 말입니다.”

재차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씀하시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아까 이들이 그러지 않았나.

하서회랑에 빙궁의 세력이 집결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빙궁과 살궁은 원수지간으로 알려져 있으니.’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랬다.

어쨌든 이들은 자신들과 힘을 합쳐 빙궁을 공격하자고 제안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사실 빙궁의 무인들이 하서회랑에 집결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맨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골치 아플 것 같다고.

전에 좌호법이 그러지 않았나.

우호법의 세력이 어마어마하다고.

다만 그들이 이곳에 모일 일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헌데 이들의 말에 따르면 하서회랑에 세력이 모이고 있다고 하니···.’

가능하면 적의 전력을 미리 줄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더욱이.

‘비까지 내리려 하고 있고.’

비가 내리면 빙공의 위력이 강해진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

곧 도평희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입니다. 저희와 함께 합공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역시 예상대로였다.

“합공 말입니까.”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헌데. 지니신 병력이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라면 이건 합공이라기 보단···.”

일종의 사실 확인이었다.

협력을 하기 위해선 먼저 아군의 규모를 파악해야 했으니···.

그리고 이에 재빨리 말을 잇는 도평희.

“실질적인 병력들은 감숙성에 모아둔 상태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저흰 빙궁의 무리가 숨어 있는 장원의 위치를 정확히 꿰고 있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급했다.

‘혹여 내가 거절할까봐 그러는 것 같군.’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수락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애태우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행과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후 그녀는 내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뭘 그리도 감사할 일인지···.’

그녀는 곧 하서회랑 인근 지리에 대한 간략한 언급을 마친 뒤, 다시 일행에게 돌아갔다.

“아기씨, 어떻게 되셨어요?”

진양상단의 무인 중 하나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마 저들 또한 상당히 간절했던 모양.

이내 그녀가 답했다.

“꼭 돕고 싶다고 하는구나.”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부하들 앞이라고 생색을 내는 건가 싶었다.

물론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충분히 저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부하들 몇몇이 그녀 몰래 묵례를 건네 왔다.

‘그들 또한 도평희라는 여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는 걸 테지.’

그들 또한 앞에선 도평희의 장단에 맞춰주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보기 좋았다.

‘그러고 보니, 소령도 도평희처럼 문주의 수양딸이었지.’

도평희는 살궁 궁주의 수양딸 아닌가.

소령은 전임 하오문주의 수양딸이고.

방금 도평희와 주변 무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문득 소령이 생각났다.

금화표국의 시비가 되기 전까지 그녀 또한 도평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떠받들여지지 않았을까?

‘기사로 소령의 위치나 확인해볼까?’

시간적 여유도 있겠다, 손가락 사이에 기사를 만들었다.

하늘하늘.

가만히 소령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군.’

이 정도 거리면 감숙성인가?

감숙성엔 왜 갔을까.

근래엔 많이 성숙해진 것도 같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믿기로 했다.

막 그런 생각을 하며 입가에 흐뭇하니 호선을 만들 때였다.

토독. 토독.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려는 모양이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군.’

사막의 비는 그 규모가 상당했으니.

마침 바람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쌔앵-

이에 기사를 거두고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잠깐.’

문득 바람을 타고 익숙한 기의 흐름이 기사에 걸려든 것.

소령에게 무공을 지도하며 느껴본 적 있는 종류의 흐름이었다.

정확히는 월묘보라고 알려진 보법을 쓸 때 느껴지는 기의 흐름.

‘갑자기 이런 흐름이 느껴진다는 것은···.’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근처에 하오문도가 있다는 건가?’

이것밖엔 없었다.

그리고 하오문도라 하면···.

익숙한 흐름이 느껴진 곳으로 슬쩍 시선을 줬다.

아니나 다를까.

대략 백 장정도 떨어진 곳일까?

백양나무 그늘 아래, 몸을 감추고 있는 하오문도들이 얼핏 보였다.

***

아수라파천권 멸화충천.

阿修羅破天拳 滅火衝天.

아수라파천권 2초식으로 육체의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주는 무공.

발바닥의 용천혈로 기운을 보냈다.

스악-

하체가 후끈해지는 걸 느끼며, 제왕보를 밟았다.

희끗. 희끗.

“뭐, 뭐야? 갑자기 사라졌어.”

하오문도 하나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하오문도들도 마찬가지.

현재 내 위치는 그들의 뒤 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은신에 특화된 놈들인가.’

때문인지 일신의 무위는 그리 강하지 않아 보였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놈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도망을 치려 했다.

퍽! 퍽! 퍽!

칼집 째로 놈들의 머리를 두들겼다.

멸화충천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니.

이정도 쯤은 너무도 쉬웠다.

놈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허물어진 상태.

그들의 행색을 보며 생각했다.

‘진학주가 보낸 걸 테지.’

그들을 짊어진 채 일행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미행이 들킨 걸 수도 있으니.’

만약 미행이 들킨 거리면, 한시가 급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심문을 해야 효과적일까 싶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살궁이 고문술도 쓸 줄 안다고 했지?’

이후 그들의 도움을 받아 하오문도들을 심문했다.

“끄아!”

살궁의 고문술은 확실히 뛰어났다.

분골착근이란 수법.

‘뼈와 근육을 가르는 무공이라.’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중간 중간 독도 사용하는 건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처, 천지에 천막을 친 채, 우호법과의 접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리고 미행이 있을 거라곤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마적과 상단의 싸움이 있었다고 하여···.”

고문의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구체적인 접선 장소는 모르는 거냐?”

그들에게 물었다.

“그, 그건. 아직 모릅니다. 우호법께서 기별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제, 제발 죽여주세요. 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하오문도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말해왔다.

얼굴이 잔뜩 뭉개진 것이, 독과 분골착근의 부작용으로 얼굴의 골격이 허물어진 것 같았다.

그때 옆으로 다가온 좌호법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보기 흉하구나. 그러니 왜 배신을 해가지고. 구도자,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잠시 고민했다.

‘최소한 우호법과의 접선 장소는 파악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사실 아까까지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들을 통해 얻어낸 정보도 썩 쓸모 있진 않았다.

아까와 달라진 것이라면, 진학주의 부하로 추정되는 놈들을 잡은 것?

아, 잡아서 죽인 것?

그리고 진학주 일행이 숨어 있는 곳의 매우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것.

'다만 이들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학주가 의심을 할 텐데···. 잠깐.’

그때였다.

문득 기발한 생각이 하나 머릿속을 스쳐간 것.

정확히는 이들의 뭉개진 얼굴과 옆에서 혀를 차는 좌호법을 보고 떠올린 것이었다.

여전히 옆에서 혀를 차고 있는 좌호법을 향해 물었다.

“좌호법.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게 말입니까. 무엇이든지, 말씀해보시지요.”

“···그. 축골공 말입니다. 좌호법이 직접 이들의 모습으로 변장도 가능한 겁니까.”

***

작전은 간단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지요, 구도자."

"간단히 말해, 좌호법께서 이들인 척 진학주 무리에 숨어드는 겁니다."

좌호법의 특기 중 하나가 축골공이지 않는가.

축골공은 골격과 외형을 변형하는 무공.

"숨어들어서요?"

"숨어든 뒤, 우호법과의 접선 장소를 미리 알아내 주셨으면 합니다."

차분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그 이후 일부러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먼저 그 접선 장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도착할 즈음엔 진학주를 죽인 뒤, 그로 분장을 해주세요. 좌호법이 진학주인 척 우호법과 접선을 하는 겁니다."

좌호법의 무위가 진학주를 상회하니 할 수 있는 작전.

'더욱이 그 사이 살궁이 빙궁을 공격하게 해서 혼란을 유발하면···'

모든 게 완벽했다.

잠시 고민하던 좌호법이 말했다.

"호오.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윽고 좌호법의 입가에 농염한 미소가 어렸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설명한 뒤, 우리는 함께 진학주가 숨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좌호법이 이런 물음도 건네왔다.

"아, 헌데. 제가 축골공을 익혔다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물론 부하들 중 평소에도 축골공을 펼치고 있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더욱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몸은 천마신교에 합류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 않나.

이런 내부 정보를 아는 게 신기했던 모양.

'전생의 기억 때문이지.'

전생에 듣기론 좌호법이 천마신교에 내려오던 축골공을 재정립했다고 들었었다.

뭐, 굳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대충 둘러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좌호법도 적당히 납득을 했다.

이윽고 우리는 놈들이 숨어 있는 파단길림사막 천지에 도착을 했고.

"그럼 작전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구도자."

좌호법을 비롯해 축골공을 펼친 마인 몇이 진학주가 머물고 있는 천막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쏴아아-

우리는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토독토독.

빗방울 소리가 머지않아 펼쳐질 혈겁을 암시하듯, 시위를 스산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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