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화. 습격(1)
75화. 습격(1)
내몽고와 감숙성을 잇는 길목, 파단길림사막.
그곳 천지(泉地) 인근에 작은 마을이 하나 조성되어 있다.
천산이 있는 신강으로 향하기 위해선, 꼭 지나쳐야 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둥근 주거용 천막이 하나 있었다.
“문주님, 말씀하신 물건 찾아왔습니다.”
천막 상석에 앉아 있는 진학주를 향해, 하오문도들이 고풍스러운 도검 보관함을 들이밀었다.
“수고했다.”
이에 물건을 받아드는 진학주.
딸깍-
보관함 안에는 고운 천에 싸인 도검이 있었다.
‘매화향이 참, 향긋하군.’
진학주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매화향이 여전한 걸 보면, 틀림이 없었다.
이처럼 매화향을 뿜어내는 검은 세상에 하나밖엔 없을 테니.
보관함을 다시 봉인했다.
‘이거면 충분히 장로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테지.’
얼마 전 천산에서 온 서신의 따르면 분명 그랬다.
- 물건만 정확하다면, 부교주께서 그대가 원하는 자리를 내어주겠다 하셨소.
발신인은 천마신교의 우호법 빙혈마수(氷血魔獸) 북천휘. 빙공을 쓰는 구척장신의 괴물로 알려져 있었다.
‘비록 원래 계획대로 부교주를 직접 대면한 채 물건을 전달할 순 없을 것 같지만···.’
우호법도 나쁘지 않았다.
우호법은 부교주 휘하의 세력 중 손에 꼽힐 만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
더욱이 잔꾀를 부릴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진학주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순조롭군.’
내심 좌호법이 귀환을 서둘렀다고 하여 어찌나 놀랐던가.
‘대체 놈이 어쩌다 우리의 배신을 눈치 챈 건진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그 또한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대규모 인원 이동이 없는 걸로 보아, 좌호법은 포두지부에서 저희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렴. 지난 십여 년 우리가 저들의 눈과 귀 아니었나. 갑자기 앞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게 되었으니, 자기들끼리 무얼 하겠어.”
진학주의 입가에 진한 호선이 만들어졌다.
정말 모든 게 순조로웠다.
좌호법과 함께 천산에서 쫓겨났을 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거늘.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래도 경계는 늦추지 마라.”
“당연한 말씀입니다.”
이후 진학주는 부하들과 함께 늦은 저녁을 해결하며, 앞으로 펼쳐질 찬란한 미래를 상상했다.
“헌데. 오늘은 끼니가 왜 이리 부실한 것이냐.”
“마을 인근에 마적 떼가 성행을 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고 했다.
괜히 소란을 피워 이목을 끌었다간 자칫 날파리가 꼬일 수도 있는 상황.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뭐, 당장 끼니는 조금 불편할지라도 천마신교의 장로 자리를 얻기 위한 가벼운 고행 정도로 여기기로 했다.
***
신녀로부터 구도자라는 말을 전해들은 그날.
나는 신녀와 좌호법과 함께 작전 회의를 한 뒤, 곧장 움직였다.
“구도자, 대체 무얼 하는 겁니까.”
“하오문도들이 여러분의 냄새를 추적할까 흔적을 조작하는 작업입니다, 좌호법.”
몇 가지 조치를 한 뒤, 포두지부를 벗어난 것.
진학주와 부교주 일행의 접선 장소를 알아내고, 습격을 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되었다.
좌호법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부교주 일당에게 투신을 하러 가는 것이었으니···.
‘좌호법과 합공을 한다면, 부교주도 패퇴시킬 수 있을 테지.’
사실 접선 장소에 부교주가 직접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과거 무림맹 앞에서 싸울 때 기억해둔 그의 냄새가, 근방에서 아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그러니 아마 대리인을 보낼 테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믿을 만한 대리인이란 건, 그의 수족과 다름이 없을 테니.
손발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을 테야.’
변수를 하나씩 줄여나가며 그의 숨통을 조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여 도착한 파단길림사막 초입의 백양나무숲.
이번엔 기사(氣絲)로 매화검의 냄새를 추적했다.
‘진학주 일행은 아직 사막의 천지를 벗어나지 못한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여전히 매화검이 바꿔치기 당했단 걸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
‘너무 순조롭군.’
주변의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이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놈들이 부교주 일행과 접선할 때를 노리면 될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하늘하늘 흩날리던 기사(氣絲)가 바람결에 흩어져 흔적을 감췄다.
이에 좌호법 색골음마가 본인의 새빨간 입술을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기의 실. 묘하게 익숙합니다.”
어쩌면 기사를 사용할 때 활용하는 채양보음의 원리를 어렴풋이 간파한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하오문도들이 하는 걸 봤기 때문이겠지요.”
적당히 둘러댔다.
원리만 같을 뿐, 이미 전혀 다른 방식의 운용이었다.
색골음마는 묘한 기색으로 본인의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이후 적당히 자리를 고른 뒤,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육포를 물에 불려 탕을 만들고.
여기에 곡물가루를 추가해 허기를 달랬다.
식사를 나누며, 신녀의 부하인 늙은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천산 인근의 상황은 어떤 것 같습니까.”
이에 잠시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노인.
곧 늙은 여인의 입이 열렸다.
“···신녀님께 듣기론 우호법이 움직인 것 같다고 합니다.”
“우호법이 말입니까.”
참고로 신녀는 포두지부에 계속 남겨둔 상황.
애초에 몸이 허약하기도 했고.
성화(聖火)가 옆에 있을 때 보다 능력을 잘 발휘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녀는 포두에 둔 채 정보원으로 쓰는 게 더 유용할 테지.’
섭혼을 통해 부하들과 원거리에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녀 아닌가.
중원 곳곳에 있는 그녀의 부하들과 지금 옆에 데리고 온 늙은 여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조율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마 이번 접선은 부교주 대신 우호법이 움직일 생각인 것 같군요.”
내 말에 주변의 마인들이 내심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수좌가 좌호법이었지.’
우호법과 좌호법.
최소한 둘이 호각지세이지 않을까?
주변 마인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 옆에 좌호법이 있어 넌지시 물었다.
“우호법은 어떤 인물입니까.”
뇌옥에 갇혀 있을 때, 비교적 우호법과 대호법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
그들은 천산에 자리를 할 때보다 자리를 비울 때가 더 많은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대호법은 실존하는 인물인지도 모호했지.’
곧 그녀가 아련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글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보단 훨씬 강합니다.”
“좌호법보다 강하다고요?”
“그렇습니다. 특히 그는 세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조금 충격적인 말이었다.
“만약 그가 본인의 세력을 전부 끌고 온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심입니까?”
“근데 아마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일단 잠자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그녀 또한 내 온전한 힘을 알진 못했다.
그녀와 싸울 때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니.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이야.
‘긴장을 해야 하는 건가.’
이어진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우호법은 빙공을 쓰는 구척장신의 거인으로 북해에 있는 세외 2궁 중 하나인 빙궁에 적을 뒀던 인물이라고.
물론 여기까진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이어진 말에 따르면···.
“얼마 전 접한 정보에 따르면, 궁주의 혈육인 것 같더군요.”
이건 새로운 정보였다.
‘궁주의 혈육이라.’
어쩌면 이 때문에 세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 근처에 있던 마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꽤 많았는지, 몇몇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이후 좌호법은 자신이 얼마 전까지 포두지부를 잠시 비웠던 것도 빙궁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발버둥이었지요.”
정확히는 빙궁을 통해 우호법을 설득해보기 위함이었다고.
“성공하셨습니까.”
“그랬다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쓴웃음을 짓는 좌호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근처에 있던 살궁도 방문을 하여 조력을 요청했다고 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이 또한 고개를 젓는 좌호법.
살궁에서는 아예 문전박대 당했다고 했다.
살궁과 빙궁이 적대 관계이니, 혹여 통할까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고.
잠시 침묵이 일었다.
이후 좌호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침묵을 깨뜨렸다.
“괜찮습니다.”
얼마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녀는 침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보다 더한 선물을 얻지 않았습니까.”
곧 좌호법의 시선이 끈적끈적하게 변화했다.
그녀는 이내 교태로운 얼굴로 은근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구도자님께서 저희 편을 들어주시는데, 이제 그런 게 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런.’
그녀의 손이 허벅지에 닿으려 할 때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내가 구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줄곧 저런다.
‘이게 장난인지 진심인지 분간이 안 가니···.’
색골음마는 어느덧 앞섬을 반쯤 풀어헤치고 있었다.
“여전히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생각 없습니다.”
“정혼을 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잠시 멈칫했다.
···물론. 그래도 생각이 없었다.
색골음마의 말이 이어졌다.
“말씀드렸다시피, 채양보음을 당하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닙니다, 구도자.”
이후 그녀는 오늘만 해도 몇 번이고 들었던 채양보음의 장점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빠져나간 만큼 들어온다는 말, 들어보셨을 테지요. 내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채양보음으로 구도자의 양기를 쪽 빨아들인다면···.”
오히려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나?
한 번에 다량만 빨아들이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 했다.
가만히 들어보면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다만 좌호법이 순간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채양보음이 시작되는 순간 기운의 통제권이 오롯이 좌호법에게 넘어갈 테니···.’
애초에 그런 무공이었다. 채양보음은.
다시 한 번 사양했다.
좌호법과의 거리를 벌린 뒤, 식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가만히 모닥불을 보고 있노라니, 왜인지 소령이 생각났다.
그녀는 잘 있을까?
고개를 털었다.
‘잘 있겠지.’
지금은 지금 처한 상황에 집중을 해야 했다.
부교주와 엮인 일 아닌가.
그리고 우호법이 온다지 않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었다.
‘···자기 전에 가볍게 몸이 나 풀어볼까?’
머리도 비울 겸.
근래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 적당한 공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등 뒤로 좌호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을 하실 생각이라면, 저쪽 바위 뒤편에 공간이 있더군요.”
요 얼마간 함께하며 내 생활 습관을 파악한 모양.
고맙다 인사했다.
마침내 찾아낸 널찍한 공터.
흡사 집터처럼도 보이는 공간이었다.
주변을 빙그르 두르고 있는 백양나무들이 달빛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스으으- 백양나무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런 경치를 감상하며 기운을 움직였다.
우선 얼마 전에 흡수한 대환단의 기운.
천마신기 속의 노란 물고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하얀 물고기 떼가 따라 움직인다.
머릿속으로 좌호법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선기가 안개처럼 뿜어져 상처를 치유했지.’
아수라파천권 멸화응취를 쓴 이후, 망가진 주먹을 선기가 치유했었다.
꼭 환상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다만 환상 속에서 보았던 것보단 회복 속도가 느렸어.’
숙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심상을 통해 반복했다.
노란 물고기를 움직여 하얀 물고기의 행동을 유도하고.
안개로 만들어 주먹에 분출.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이후 계속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좌호법의 강기 폭풍을 막아냈던 진법의 묘리 또한 떠올랐다.
환상 속 노인이 부적을 통해 강기를 막아내는 걸 보고 따라해 봤던 것이기도 했다.
문득 품에 있는 붓과 봇짐에 있는 괴황지, 빨간 경면주사 가루가 떠올랐다.
‘한번 부적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
봇짐을 풀었다.
‘···근래 본 부적은 총 두 종류인가.’
하나는 환상 속에서 강기를 막아내던 부적이고.
또 하나는 매화검을 봉인하고 있던 부적.
두 가지 부적 모두, 스치듯이 본 것들이었지만,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선 강기를 막아내던 부적부터 그렸다.
스윽- 스윽-
달빛에 의지해 한 획 한 획 신중하게 그었다.
순식간에 수북이 부적이 쌓였다.
실제 효과가 있을 진 내일 좌호법에게 부탁해 시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만약 이게 효과가 있다면 활용법은 무궁무진할 테다.
‘이젠 다음으로···.’
매화검을 봉인하고 있던 부적.
이건 아직 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괜히 긴장이 됐다.
사실 이 긴장 때문에 강기를 막아냈던 부적부터 그린 감도 없지 않았다.
조금 더 공을 들이기 위함.
‘매화검을 취하는 순간, 내상을 입은 것도 그렇고. 환상 속 인물의 감정과 기억이 고스란히 흡수된 것도 그렇고···.’
더욱이 흡수된 기억에 따르면 현재 매화검은 망가진 상태.
매화검을 봉인했던 부적 또한 달빛 아래에서 신중하게 그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익숙했다.
완성된 부적을 봤다.
굉장히 기괴한 문양이 그러진 부적.
···그런데.
‘왼쪽 구석에 있는 문양이 상당히 낯이 익는군.’
보옥을 고쳤던 부적에서 봤던 문양이었다.
작은 부적을 망가진 보옥과 함께 뒀더니, 얼마 후 보옥이 수리되지 않았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매화검에 다시 붙여보면 어떻게 될까.'
날이 밝으려면 시간도 있겠다.
한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이후 조심스레 매화검을 챙겨와 완성된 부적을 얹어놓았다.
사르륵-
부적이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칼집을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