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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74화 (74/133)

074화. 좌호법(2)

74화. 좌호법(2)

‘···당장 좌호법을 말려야 한다.’

신녀의 눈동자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섭혼술을 실현하기 위함.

자칫 이대로 두었다간, 좌호법이 그분의 양기를 모조리 빨아들일 테니···.

어쩌면, 섭혼술을 실현하자마자 민망한 광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사명.

포두지부 내부의 마인들 중, 적당한 대상을 물색했다.

번쩍!

마침내 마땅한 영혼을 찾아 눈을 떴다.

이윽고 흐릿하게 보이는 포두지부 내부의 풍경.

뿌연 시야가 점차 초점을 찾아갔다.

대략 좌호법의 기세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말해야 한다.’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좌호법, 잠깐 기다리···. 음?”

그런데.

쐐액- 쐐액-

좌호법의 부채에서 뿜어지는 새까만 강기와 그걸 거뜬하게 피해내는 금태산.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광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좌호법과 대등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니.’

대체 언제 이토록 강해졌단 말인가.

···아무리 예언 속 그분이라고 해도.

아니.

‘예언 속 그분이기 때문인 건가.’

저도 몰래 마른침이 삼켜졌다.

사실 예언이란 것은 으레 그렇듯 조금 두루뭉술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꿈속에서 본 몇몇 장면들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때문에 정말 그분이 맞을지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 가슴 한 편에 있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이처럼 빠르게 강해진다는 건, 그분이 아니면 불가할 테니.

‘역시 틀리지 않았어.’

마음속에 있던 일말의 의구심마저 사라진 것.

괜히 심장이 박동 속도를 올렸다.

그분을 보며 생각했다.

‘···천인을 이끌어 천마신교를 구원해 줄 인물. 구도자.’

신녀가 짐작하는 ‘그분’의 정체였다.

예언에 따르면 천인은 그분이 인도하는 길을 따를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의 무공은 천인과 더불어 하늘에 닿을 것이라 했다.

참고로 이따금씩 꾸는 예지몽 속에서 천인의 실체는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다. 천인의 존재는 그저 천기를 보고 짐작할 뿐.

대신 천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어김없이 구도자가 등장했다.

그분은 항상 천인과 함께한다는 두루뭉술한 예언과 함께 말이다.

‘사실 구도자라는 명칭도 좌호법 비롯한 몇몇에게만 말한 상황이지.’

당연히 부교주 무리에겐 알리지 않았다. 좌호법에게 알린 것도 최근이었다.

물론 구도자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진, 좌호법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금태산이 좌호법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진각을 밟으며, 허리를 비트는 것이 보였다.

일체의 군더더기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움직임.

어느덧 그의 오른 주먹엔 신녀인 그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검붉은 불꽃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안개.

흡사 구름 속을 노니는 붉은 용을 보는 것도 같았다.

쐐액-

황홀한 일격.

다만 그 황홀감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그분이 아니라, 좌호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군.’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

부교주에게 쫓겨 천산을 내려온 그녀와 좌호법 아닌가.

둘은 전략적 동맹 관계였다.

서로를 온전히 믿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유사시엔 한 편이 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런데 만약 이곳에서 좌호법이 죽는다면?

‘가뜩이나 세력의 규모가 부교주에 한참은 밀리는 판국이거늘.’

물론 그분이 목내이가 되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깜깜한 밤하늘이 환해졌고.

뿌연 운무가 수증기처럼 주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검붉은 용(龍)은 운무 속에서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운무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깜깜한 밤하늘로 승천했다.

쏴아아- 후끈!

열풍이 몰아쳤다.

열풍의 소용돌이가 모두 가시고.

뿌연 안개 속엔 멀찍이 떨어진 두 개의 그림자만 존재했다.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그분과 바닥에 널브러진 좌호법.

‘···다행히 죽진 않은 건가.’

좌호법 향해, 그분이 걸음을 옮기셨다.

저벅저벅.

걸음걸음이 묵직했다.

그분의 오른손엔 여전히 뿌연 안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아까보다 훨씬 더 신비로웠다.

‘···안개가 그분 주먹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고 있어.’

꼭 실로 꿰매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느덧 좌호법 앞에 도착한 그분.

좌호법은 간신히 상체만 일으킨 뒤, 힘겹게 그분을 보고 있었다.

그분은 오연한 모습으로 좌호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말을 하면 일단 듣는 게 어떻겠나.”

나지막하지만,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감정이 북받쳤다.

문득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마인들이 정신을 차렸다.

“···좌호법님을 지켜야 한다.”

사 장로가 으드득-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의 마인들이 하나둘 무기를 꼬나 쥐었다.

모닥불에 달려드려는 부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내가 나설 차례로군.’

더 이상의 전력 손실은 바라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멈추어라!”

심령을 때리는 목소리.

달려들 태세를 하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마인들.

그분도 이쪽을 보고 계신 것 같았다.

모두를 향해 마저 말을 이었다.

“저분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재차 마인들의 심령을 때리며 입을 열었다.

이후엔 저분을 무어라 소개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저분의 정체를 감추는 것이 불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

저분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의 눈길을 잡아끄실 테니.

‘차라리 지금 내 입으로 확언을 해주는 게 나을 테지.’

더욱이 이 이상 그분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주어진 여러 상황이 그런 걸 허락하지도 않고 있었다.

때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저분은, 우리의 구도자이시다.”

신녀로서 뱉어내는 예언이었다.

순간 마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후 구도자에 대한 신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긴 설명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를 지옥에서 구해줄 인물이라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포두지부 내부엔 알 수 없는 열기가 휘돌기 시작했다.

***

좌호법을 제압한 이후,

나는 신녀의 주도에 따라 객실로 모셔졌다.

천마신교 포두지부 객실.

“신녀님께서 곧 이리로 오실 겁니다.”

마인 하나가 쭈뼛쭈뼛 다가와 주전자와 찻잔을 들이 밀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곧 도착한다라.’

그녀에겐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마신과 천인은 물론이요, 구도자가 대체 무엇인지도 물어야 했다.

머지않아 마인 하나가 더 들어왔다.

‘내게 검을 빼앗긴 문지기로군.’

상급 무사 시험장에서 내 공격을 받아냈던 문지기 있지 않나.

검을 빼앗기고 토라진 내색을 팍팍 내던 문지기.

“아깐 죄송했습니다.”

쌀쌀맞게 반응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러 온 모양.

적당히 웃으며 괜찮다 대답해주었다.

이윽고 문지기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남겼다.

부교주를 비롯한 대호법과 우호법의 패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꼭 징치해달라고.

그리고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내게 빼앗긴 검.

집안의 가보와 같은 물건이라고.

그래서 그리 반응을 했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도리어 영광이라고.

'집안의 가보였다니.'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게 지금, 하오문도들 손에 있다는 걸 알면 적잖이 섭섭해 하겠군.’

그걸 매화검과 바꿔치기했지 않나.

물론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내 잘 쓰겠습니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문지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구도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부를 건네는 문지기.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르륵-

차가 미지근하게 식어갈 무렵이었다.

객실의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

청초한 인상의 여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신녀로군.’

창백한 안색과는 달리, 이목구비에 굉장한 강단이 있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가볍게 묵례를 하며 말했다.

“좌호법의 상태를 살피고 오느라,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인사였다.

다만.

‘첫 만남과는 기세가 많이 달라졌군.’

그땐 상당히 고압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 또한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좌호법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상대가 예의를 갖춰 물어오니, 나 또한 예의를 갖췄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그리 심각하진 아니합니다. 곧 옷을 추스르고 이리로 오겠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상대로군.’

애초에 좌호법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니.

때문에 후속타도 가하지 않았지 않나.

멸화의 기운 또한 최대한 그녀의 몸이 아닌 외부로 발출했고.

···뭐, 그럼에도 워낙 강맹한 공격이었던 탓에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정도 배려면 충분할 테다.

‘놈은 이제 진학주를 잡으러 움직여야 할 테니.’

오랑캐를 오랑캐로 잡는다는 말.

여전히 유효했다.

곧 이곳에 온다고 하니, 그때 대화를 나누면 될 테다.

잠시 생각 정리를 마치고 신녀를 봤다.

어느덧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신녀는 내 뒷말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짝 과하군.’

어쩌면 그들만의 숨겨둔 패와 같았던 구도자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작금의 상황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할 테니···.

‘우선 구도자가 뭔지 물어볼까?’

어차피 좌호법이 올 때까지 시간도 비어 있는 상황.

“아까 나를 두고 구도자라고 하던데, 그게 무엇입니까.”

그녀가 상체를 기울이며 경청했다.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천인께서 마신을 강림시킬 때에 꼭 필요한 인물이죠. 예언에 따르면 길잡이와 같다고 합니다.”

듣기론 초대 천마가 마신을 강림시킬 때에도 구도자와 비슷한 존재가 옆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고···.

“천인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사실 내심 천인이란 단어를 들으며, 이 몸이 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마신에 대해 특히 더 궁금했던 것.

천인은 운명적으로 마신을 불러낼 수밖에 없다고 했었으니···.

그런데 구도자라.

차라리 이게 나은 것 같았다.

“헌데 마신은 무엇입니까.”

“···그건. 조만간 직접 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직접 보여주신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신녀.

‘섭혼을 이용한다는 건가?’

듣기론 이곳이 아닌, 본인의 신당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성화(聖火)가 있는 곳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엔 신녀가 물어왔다.

“···헌데. 좌호법과 얼핏 대화를 나누기론 진학주를 이야기하셨다지요?”

고개를 끄덕였다.

좌호법의 상태를 살피는 과정에서 들은 모양.

“안 그래도 지금 막 좌호법이 도착한 것 같으니, 그 이야기부터 나누면 좋을 것 같군요.”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아까 내게 차를 내왔던 마인이 말했다.

“좌호법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마침내 넝마가 된 새빨간 옷 위로 긴 장포를 두른 색골음마가 객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색골음마 또한 순한 양처럼 변해 있었다.

확실히 구도자라는 게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

물론 그럼에도.

‘···눈동자엔 여전히 욕정이 그득하군.’

얼핏 더욱 심해진 것도 같았다.

호흡도 조금 달뜬 것 같고.

앞섬도 의도적으로 살짝 풀어헤친 모습.

“···구도자께서 주신 공력이 여간 매서운 게 아니었지 뭡니까.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노골적인 행태에 저도 몰래 쓴웃음이 나왔다.

이후 나는 그들에게 매화검을 바꿔치기한 것에 대한 이야기만 쏙 빼놓은 채, 진학주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하여 저와 좌호법이 함께 그들의 접선 장소를 습격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을 계획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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