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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72화 (72/133)

072화. 매화검(2)

72화. 매화검(2)

매화검을 집은 뒤 마주한 환상 속.

“사형은 꿈이 뭐예요?”

“그저 지금처럼 우리 사형제들과 도란도란 지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사형이라 불린 청년은 상당히 고운 심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야망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런 인물이 어쩌다 천마신공을 익히고,

어쩌다 자신의 사제와 목숨을 걸고 싸움을 했던 걸까.

왜 마신을 강림시키려 했던 걸까.

‘대체 마신이란 무엇이지?’

특히 이 또한 너무도 궁금했다.

아까 낮에 본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석상이 떠올랐다.

심사관의 말에 따르면, 마신이라고 했던 석상.

‘···역시 조만간 신녀를 찾아가서 물어봐야겠어.’

다른 마인들에겐 물어도 제대로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화악-

머지않아 환상에서 빠져나왔다.

반사적으로 뽑았던 매화검을 다시 칼집에 넣었다.

척.

그런데 그때.

‘···?’

문득 매화검 칼집에 새빨간 얼룩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모습을 살폈다.

‘핏자국?’

광채로 번들거리던 매화검의 칼집이 그 광채를 잃고 곳곳에 피 얼룩을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흡사 부식이 진행되는 것처럼도 보였다.

찰나의 순간, 칼집 구석에 붙어 있던 작은 부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르륵-

이윽고 불타 없어지는 부적.

마침내 부식이 멈췄다.

이유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종의 봉인이 되어 있던 건가.’

이 봉인을 통해, 매화검으로 둔갑을 하고 있던 모양.

심지어 부적이 어떤 원리로 이 검을 봉인하고 있었는지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두통이 왔다.

지끈지끈.

저도 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더 스며들었다.

‘이 매화검, 망가진 상태인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서글펐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재차 검을 뽑아보았다.

스릉-

날카로운 예기가 닿기만 해도 베일 것 같았다.

머릿속에 스며든 기억과 달리 검은 멀쩡했다.

색깔이 새까맣게 변했다는 것뿐.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보다 면밀히 살펴봐야겠군.’

검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

깜깜한 밤.

어느 작은 기루.

평소라면 한창 영업을 하고 있을 술시(戌時; 19시~21시) 무렵.

오늘 따라 문을 꽁꽁 닫고 손님을 일절 받지 않고 있는 이 기루의 꼭대기 층.

화려한 술상을 앞에 두고, 철면야탑 진학주가 눈앞의 사내에게 말했다.

“···부교주님께 말씀 좀 잘 전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진학주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천마신교 부교주 강불해의 대리인.

“알겠습니다. 하오문의 인적 자원은 저희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진학주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좌호법 산하에서 부교주 산하로 이적을 하기 위함.

···그리고 매화검을 대가로 부교주 휘하의 장로 자리를 꿰차기 위함.

염소수염을 가진 대리인이 말을 이었다.

“다만 장로의 자리는···. 저도 이게 참 난감합니다. 모산파의 물건을 소지하고 계신다는 걸 제가 어찌 믿어야 할지.”

“하오문이 가지고 있던 정보들을 조합해서 찾아낸 것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자리에 물건을 가지고 오지 않으신 건, 저희를 믿지 못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헌데 저희더러는 여러분을 믿으라니. 이거 참.”

“허허. 대인. 저희 사정도 좀 헤아려주세요. 이후 섭섭지 않게 대접하겠습니다.”

진학주는 적절히 아부를 섞어가며 상황을 풀어갔다.

이후에도 둘은 한참 동안 대화를 더 나누었고.

결국 조만간 진학주가 천산으로 강불해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을 잡고 자리를 파했다.

“···그땐 물건을 가지고 오시리라 믿습니다.”

진학주는 알겠노라 대답을 한 뒤,

떠나는 염소수염의 남자를 배웅했다.

염소수염의 남자는 곧 한 무리의 마인들을 이끌고 기루를 빠져나갔다.

그의 얼굴에선 언뜻 아쉬움이 스치는 것도 같았다.

진학주는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

‘만약 오늘 물건을 가져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물건만 탈취 당했겠지.’

그 과정에서 살인멸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염소수염 노인의 탐욕적인 눈빛을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원래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납치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건가.’

피식 웃었다.

실제로 진학주는 만약을 대비해, 하오문도들을 상당수 이곳으로 데리고 왔던 상황.

물론 때문에 하오문 포두지부 내에 있는 본인 소유 전각은 경계가 조금 허술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처럼 행동하는 게 최선이었다.

매화검 자체는 하오문 포두지부에 숨겨둔 채.

부하들을 끌고 와서 협상을 하고.

부교주와 직접 대면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

물건은 부교주의 얼굴을 보고 직접 건넬 계획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문주님.”

하오문도들이 하나둘 진학주를 위로했다.

그들과 진학주는 운명 공동체와 다름이 없는 바.

진학주는 부하들을 향해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후 하오문 포두지부로 복귀를 하며, 부하들과 대화를 나눴다.

“회의 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느냐?”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좌호법의 동향은?”

“예정보다 한나절 정도 빨리 귀환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방금 부하로부터 조금 찜찜한 말을 들은 것.

좌호법은 현재 세외 2궁인 빙궁과 살궁을 방문하고 귀환하는 길.

사실 진학주가 오늘 이런 만남을 추진했던 것도 좌호법이 자리를 비웠던 덕분이었다.

헌데 별안간 복귀가 빨라진다?

“···이유는 무엇이라느냐.”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진학주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 일이니 만큼.

작은 변화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복귀를 서두르자꾸나.”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곳에서 포두지부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

진학주는 부하들을 재촉하며 말했다.

“일단 전서구부터 띄워라. 아이들을 시켜 물건을 밖으로 빼놓도록.”

“물건을 말입니까.”

물건이라 하면, 매화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물건을 챙긴 뒤 곧장 천산으로 향한다.”

일을 예정보다 조금 서둘러 진행해야겠다 싶었던 것.

푸드득- 야밤에 전서구가 떠올랐고.

진학주와 하오문도들의 신형은 그 전서구를 따라, 밤의 어둠을 갈라나갔다.

***

푸드득-

매화검을 챙겨 밖으로 나오는 길.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보였다.

비도를 던져 떨어뜨릴까 하다 멈추었다.

‘···어지럽군.’

몸이 여전히 무거운 상황.

몸속을 흐르는 기의 흐름 또한 평소와 달랐다.

일단 몸을 살피는 것이 먼저.

그저 눈으로 비둘기가 향하는 곳을 쫓았다.

‘내가 나온 건물이군.’

잠시 후,

우르르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정확히는 하오문 무사들이었다.

그들이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의 품엔···.

‘도검 보관함?’

하마터면 일이 어려워질 뻔했다.

···만약 저들보다 늦게 도착했다면?

닭 쫓던 개 지붕만 보는 꼴이 될 뻔했다.

물론.

‘재미있군.’

지금은 전혀 상황이 반대였다.

사실 단순히 매화검만 탈취해간다는 점에서 적잖은 아쉬움이 있긴 했다.

만약 이곳이 적진 한복판만 아니었다면, 진학주를 처단할 매우 좋은 기회 아닌가.

그런데 작금의 상황으로 짐작해 보건데···.

‘진학주한테 가지고 가는 걸 테지.’

나쁘지 않았다.

기사를 통해 놈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 검과 몸을 살폈다.

우선은 매화검.

칼집에서 검을 넣었다 뺐다 몇 차례 반복을 해봤다.

자신이 어떠한 연유로 붙어 있던 부적의 정체를 알고 있고.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환상을 보며 기억이 스며든 건가?’

그저 추측을 할 뿐이었다.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다른 법보들도 찾아봐야겠어.’

그래야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몸을 살피기로 했다.

‘···기혈이 엉킨 건가.’

보통 주화입마라고 부르는 과정과도 조금 흡사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느꼈던 두통 때문에 내심 충격을 받은 듯.

잠시 고민했다.

어찌 하면 좋을까.

문득 품에 있던 대환단이 떠올랐다.

무림맹주 남궁벽에게 받은 대환단.

‘이게 요상의 효능이 뛰어나다고 했지.’

내공 증진은 물론 요상의 효과까지 뛰어난 걸로 알려져 있는 영약.

사실 이걸 언제 먹어야 좋을지 내심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이 딱이겠군.’

이곳 숙소에서 복용하면 될 것 같았다.

괜히 이런 몸으로 외출을 하는 것도 위험했다.

진법을 치고 기관진식을 조작해둔 뒤 먹으면 안전할 것 같았다.

‘···더욱이 대환단을 섭취한 뒤엔 좌호법이 와도 해볼 만하겠지.’

그런 생각도 있었다.

솜처럼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은 채, 숙소에 진법과 간단한 기관진식을 설치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했다.

영약을 흡수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만큼.

이후엔 보다 빠르게 움직일 계획이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사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건, 두통을 잊기 위함도 있었다.

‘우선 신녀를 찾아가 마신에 대해 물어야 할 테지.’

신녀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걸로 추정되니···.

가까운 곳에 있는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좋았다.

이후엔 다른 법보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기회가 된다면, 화산에 다시 들러 사서 노인에게 이 검에 대해 물어보기도 할 생각이었다.

‘화산파에 매화검을 돌려주는 건 조금 늦춰지겠군.’

어쩌면 영영 불가할지도 몰랐다.

검의 외형이 변하지 않았나.

어느덧 영약 섭취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품에서 대환단이라 쓰인 목함을 꺼낸 뒤,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딸깍-

목함을 열고 새까만 빛깔의 단환을 꺼내들었다.

***

내몽고 포두의 작은 장원.

한 여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때 그 여인을 향해 늙은 여인이 다가왔다.

“신녀님, 아이들에게 영혼을 열어두라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신녀는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섭혼을 실행하기 위함.

구리로 만들어진 작은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리가 세 개이고. 팔이 여섯 개인 동상.

이윽고 신녀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녀가 눈을 떴다.

“괘, 괜찮으십니까.”

늙은 여인이 급히 신녀를 부축했다.

신녀는 괜찮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신녀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늙은 여인이 물었다.

“···어찌 되셨습니까.”

‘그분’에 대한 물음이었다.

신녀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과 같더구나.”

좌호법은 그분이 포두지부에 도착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그럼 그분이 그곳에 오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늙은 여인의 물음에 신녀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하여 사람을 보냈다.”

“사람을 말입니까.”

‘그분’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말.

“직접 여쭤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 다행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니.”

고개를 끄덕이는 늙은 여인.

신녀의 말이 이어졌다.

“···하물며 좌호법이 포두지부 지척까지 도착한 것 같으니.”

“그 말씀은?”

“이대로 두면 곧 둘이 마주할 것이란 얘기지.”

순간 방 안에 고요한 침묵이 깔렸다.

“그건 안 되지 않습니까. 좌호법은 그분의 정체를 모르니, 채양보음을 시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칫 그렇게 됐다간···.”

이윽고 신녀가 말했다.

“채비해라.”

“네?”

“내가 직접 움직여 시간을 끌 것이다.”

좌호법의 시선을 분산시킨 뒤,

금태산에게 따로 기별을 넣어 도망칠 길을 열어주겠다는 말이었다.

"여차하면 그분의 정체에 대해 언질을 주는 수도 있겠지. 그럼 좌호법도 알아서 처신할 테고."

비장한 표정을 한 신녀가 장원을 나왔다.

그리고 그 시각.

금태산은 방금 흡수한 대환단으로 인해, 머리가 맑아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정도면, 좌호법이 와도 거뜬할 것 같군.'

절로 이런 생각이 들 정도.

이 또한 일종의 기연이라면, 기연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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