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매화검(1)
71화. 매화검(1)
“간부 시험은 이 건물 지하에서 이루어진다.”
수염 덥수룩한 심사관을 따라, 건물의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옆 건물에 있는 매화검은 일단 간부 시험을 치른 뒤, 탈취할 계획이었다.
듣기론 간부 시험을 통과하면 이 건물 내부에 숙소가 주어진다고 했으니···.
‘곧 날이 어두워지니, 그때 움직이면 더 좋을 테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자로 뻗은 칙칙한 복도를 통과하니, 나무로 된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을 지키는 두 명의 문지기.
심사관은 개중 한 명의 문지기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시험을 통과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로군.’
꽤나 자세하게 풀어놓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문 옆에 있는 석상이 유독 눈에 띄었다.
팔 여섯 개에 머리가 세 개 달린 석상.
특이하게도 세 개의 머리 어디에도 얼굴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지기와의 대화를 마친 심사관이 다가와 말했다.
“마신이시다.”
석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순간 저도 몰래 흠칫 몸을 떨었다.
심사관과 석상을 번갈아봤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묵념을 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나는 고개를 들고 석상을 유심히 살폈다.
저도 몰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묵념을 마친 남자가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 장로님을 비롯한 간부님들이 계실 거다.”
사 장로는 이곳 천마신교 포두지부에서 좌호법 바로 다음 가는 서열의 마인이라고 했다.
실질적으론 이곳의 이인자라는 말.
이후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어디 한 군데 불구가 될 지도 모른다고.
특히 내부에 있는 건, 무엇 하나 하찮게 여겨선 안 된다고.
툭툭.
한 차례 내 어깨를 두드린 남자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평무사들의 심사를 하기 위함일 것이다.
고개를 돌렸다.
남자와 대화를 나눈 문지기가 이 몸을 빤히 보고 있었다.
“따라와라.”
문지기가 말했다.
이후 문지기가 열어준 문을 따라, 내부로 발을 들였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각양각색의 외모를 가진 마인들이 원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쪽에 밀어둔 지도와 서류 뭉치를 보니, 방금까지 회의를 하고 있었던 모양.
냐옹-
구석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도 보였다.
‘영물인가?’
고양이의 몸에서 상당한 양의 내공이 느껴졌다.
다만 워낙 은밀하여,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 챌 수 없는 종류의 기운이었다.
그때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을 건넸다.
“왕묘를 알아본 건가?”
왕묘. 저 고양이의 이름인 것 같다.
재빨리 포권을 취해보이곤 적당히 대답했다.
“지닌 기운이 특이하여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상석의 노인은 곧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좀 제대로 된 놈이 들어온 것 같군.”
아마 이 노인이 심사관이 말한 사 장로인 모양.
근처에 있던 다른 마인들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옆에 있던 문지기가 아까 심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고했다.
“···검면을 두드려 검을 손에서 놓치게 했다고 합니다.”
심사관이 방심을 했었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 말을 할 때엔, 왜인지 문지기의 입꼬리가 살짝 비뚜름했다.
‘비웃는 건가.’
심사관과 이 몸, 둘 중 한 명을 비웃는 것 같았다.
어쩌면 둘 모두 비웃는 걸지도 모르겠다.
원탁에 앉아 있는 마인들 몇몇도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상석의 노인이 내게 말했다.
“우선 그 검을 한 번 보고 싶은데···.”
곧 옆에 있던 문지기가 검을 뽑았다.
문지기는 자신에게 시연을 보이란 말을 건네 왔다.
잠시 고민했다.
일단 아까 심사관에게 한 것처럼 눈앞의 문지기 또한 제압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상위 직급을 얻으려면 최소한 어설픈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게 좋을 테지.’
방금 본 그 비웃음을 떠올려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상단세로 문지기를 향해 겨눈 뒤,
심장어림에 있는 오행의 기운을 움직였다.
슈욱-
손바닥을 타고 검에 전달되는 기운.
검 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기나 검강과 같은 부류의 것은 아니었다.
이는 멸화응취를 펼칠 때 손에 화기가 모이는 것과 같은 부류의 무엇이었다.
‘굳이 검기나 검강을 보일 필요는 없을 테지.’
물론 선기를 보일 생각도 없었다.
검을 보다 치켜들고 부드럽게 내리그었다.
사악-
검의(劍意)에 담긴 제왕검이 아까보다 고요했다.
멸화응취는 화기(火氣)를 배제한 채, 고요 속에 숨어들어 있었다.
쾅!
검과 검이 충돌했다.
당황한 문지기의 얼굴이 보인다.
문지기의 얼굴은 어느덧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주르륵-
곧 문지기의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리라.
나름 힘 조절을 한다고 했지만,
워낙 강맹한 초식인 탓에 어쩔 수 없었던 것.
부들부들. 챙그랑-
문지기가 손에서 검을 놓쳤다.
그의 손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어느덧 내 검 끝은 문지기의 코앞에 있었다.
놈의 콧잔등을 살짝 베었다.
사각-
일대에 침묵이 깔렸다.
쩌저적-
초식을 펼친 이 몸의 검에 기다란 균열이 생겼다.
초식의 파괴력을 견뎌내지 못한 것.
멸화응취를 쓰면 주먹이 부서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적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파쇄 해버리는 초식이라.’
문지기의 얼굴엔 어느덧 공포가 어려 있었다.
검이 깨지면, 그 파편이 얼굴을 덮칠 수도 있으니.
검을 내렸다.
상석의 노인이 물어왔다.
“초식 이름이 뭔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아직 안 정했다.
“···파쇄일검(破碎一劒)입니다.”
일단 되는 대로 말을 했다.
헌데.
‘나쁘지 않은 것 같군.’
급하게 지은 것 치곤 괜찮은 이름 같았다.
“훌륭하군.”
노인의 말이었다.
검을 갈무리하고 포권을 취해보였다.
***
노인이 옥으로 만들어진 패를 하나 던졌다.
휘리릭- 척!
가뿐하게 받았다.
“임시 신분증이네.”
상급 무사라는 직책이 쓰여 있는 옥패였다.
“감사합니다.”
“정식 직위는 내일 좌호법님이 정해주실 거네.”
어차피 내일까지 이곳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에 좌호법님이 오시면, 방금 보인 그 검법을 시연할 자리를 만들 것이네. 그러니 밤새 단단히 준비하고 있도록.”
참고로 몰래 기감을 펼쳐본 바에 따르면, 현재 좌호법은 자리를 비운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노인의 말에 따르면, 내일 돌아온다는 것 같다.
‘굳이 놈과 대치할 필요는 없겠지.’
원탁의 다른 간부들이 깜짝 놀라며 노인을 만류했다.
“장로님, 아무리 그래도 호법님 앞에서 직접 시연을 보일 기회를 주는 건···.”
상석의 노인은 단호했다.
“이건 내 권한일세.”
이후 그 방을 나왔다.
내상을 입은 문지기의 안내를 따라, 내게 주어진 숙소로 향했다.
“···여길. 쓰면 되오.”
침상과 옷장, 탁상이 마련된 1인실이었다.
“고맙···.”
문지기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보기보다 소심한 성격인 것 같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어떠랴.
문득 허리춤에 있는 검이 보였다.
상석의 노인이 쥐어준 것.
‘정확히는 문지기의 것을 빼앗아 준 것이지만.’
내 검이 망가진 걸 보곤 내게 패배한 문지기의 것을 빼앗아줬다.
어깨를 으쓱였다.
여러모로 나쁘지 않았다.
‘나름 명검인 것 같군.’
더욱이 이따 매화검을 탈취하는 과정에서도 검이 하나 있으면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다.
내부로 들어가 문을 닫고 실내를 둘러봤다.
기사를 펼쳐 매화검의 냄새를 추적했다.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창문을 통해 노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곧 밤이 될 것이고.
그럼 매화검을 탈취해 이곳을 벗어나면 되었다.
창문을 열었다.
의자를 가지고 와 창문 앞에 앉았다.
바깥을 살폈다.
건물의 배치를 살피고.
마인들의 위치를 살폈다.
‘저건 쥐인가?’
특이한 쥐도 한 마리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이 새까만 쥐였다.
미약하지만 마기도 느껴졌다.
나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하는 생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 녀석도 아까 그 왕묘라는 고양이처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쐐액-
왕묘라 불렸던 고양이가 나타나 잽싸게 그 쥐를 채어갔다.
쥐를 입에 문 왕묘와 눈이 마주쳤다.
그르릉거린다.
창문을 닫고 돌아앉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저 고양이, 나를 경계하는 건가.’
이유는 알 수 없다.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방금 살핀 건물 구조와 마인들의 배치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걸 바탕으로, 차분히 매화검 탈취 계획을 점검했다.
***
내몽고 포두에 있는 어느 작은 장원.
“헉!”
“시, 신녀님! 괜찮으십니까?”
신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엷게 웃었다.
“그래. 괜찮다.”
늙은 여인이 잽싸게 신녀를 부축했다.
신녀는 힘겹게 방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임시 거처.
늙은 여인이 말했다.
“설마 또 왕묘가 방해한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신녀.
늙은 여인은 버르장머리 없는 왕묘라며 구시렁거렸다.
천산에 함께 있을 땐 종종 밥도 챙겨줬었다고···.
헌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
평소보다 신녀님의 분위기가 훨씬 더 근엄했다.
늙은 여인은 구시렁거리기를 멈추고 잠자코 신녀를 침상으로 안내했다.
침상에 걸터앉은 신녀가 머지않아 말했다.
“그분이 있었다.”
늙은 여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분이라니. 설마.
“그분이라 하면? 설마···.”
고개를 끄덕이는 신녀.
근래 신녀님께서 그분이라 칭하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엔 없었다.
늙은 여인의 눈이 화등잔 만해졌다.
“서, 설마. 그럼 그분이 좌호법한테 포섭된 겁니까?”
고개를 젓는 신녀.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네?”
늙은 여인은 손에 땀을 쥐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곧 신녀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그랬다면, 그렇게 대우할 리 없지.”
늙은 여인의 고개가 갸웃했다.
신녀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좌호법은 아직 ‘그분’의 정체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성적으로 매우 탐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러니 만약 그분을 포섭했다면, 훨씬 극진히 모셨을 거라고.
그런데 그분은 현재 평범한 상급 무사들이 쓰는 숙소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고.
섭혼을 통해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렇다고.
“···그게 대체.”
“···어쩌면. 아직 좌호법이 외출 중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
“그렇군요. 그럼 시간이 얼마 없는 것 아닙니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늘 밤에 복귀한다고···.”
늙은 여인은 저도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이윽고 신녀가 말했다.
“급히 사람을 시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아봐야 할 것 같구나.”
“사람을 말입니까?”
“좌호법 산하에 심어둔 아이들 중 섭혼이 가능한 아이들이 몇이나 되지?”
잠시 고민하던 늙은 여인의 말이 이어졌고.
신녀는 곧 그들에게 지령을 전달하라 했다.
언제든 섭혼을 할 수 있게 영혼을 열어두라고.
늙은 여인은 신녀의 명령을 따르며 생각했다.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
깜깜한 밤.
슬그머니 숙소를 나와 움직였다.
밤이라 그런지, 낮보다 경계가 한참은 한산해져 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군.’
심지어 매화검이 있는 건물에도 특출 난 마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술이라도 한 잔 하러 간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
때문에 별다른 싸움도 없이 쉽게 매화검이 있는 방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보법을 밟아 그림자 속에서 이동하는 걸로 충분했다.
끼이익-
방 안엔 자개장이 하나 있었다.
기사(氣絲)를 조작해 조심스레 잠겨있던 자개장을 열었다.
딸깍-
내부엔 고급스러운 도검 보관함이 있었다.
‘매화검은 이 보관함 안에 있는 건가.’
손가락 사이에 있던 기사(氣絲)로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물론 품속의 보옥 또한 저 보관함 안에 찾는 물건이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슬그머니 보관함을 열었다.
내부엔 비단에 둘러싸인 도검이 있었다.
‘맞는 것 같군.’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냥 가져가는 대신, 바꿔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마침 아까 문지기에게 받은 검이 있지 않나.
그걸로 바꿔치기를 한다면?
현재 매화검은 비단에 꽁꽁 둘러싸인 채 보관이 되고 있는 상태이니,
바꿔치기를 한다면, 놈들이 비단을 풀어헤쳐 확인하기 전까진,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는 내가 이곳을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처럼 경계가 허술하다면, 어차피 별 걱정 없이 벗어나도 될 테지만.
‘경계가 너무 한산하다는 게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니고.
이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비단을 풀어헤쳤다.
잽싸게 바꿔치기를 했다.
화산에서 기관진식을 탈출할 때 썼던 기사(氣絲)를 만들었다.
매화향 가득한 기사.
바꿔치기한 검에 매화향을 묻혔다.
보관함을 닫고 자개장도 닫았다.
‘완벽하군.’
이윽고 손에 쥔 영롱한 자태의 매화검.
은색 칼집에 매화꽃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가만히 검을 뽑아보았다.
스릉-
동시에 어김없이 눈앞에 환상이 펼쳐졌다.
***
뿌연 안개 아래,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몸이 깃들어 있는 육신이 말했다.
“사형, 무언가 보이십니까?”
“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냐.”
사형이라 불린 남자가 뱃머리에서 뿌연 안개 너머를 보며 말했다.
헌데.
‘···목소리가 꼭 어디서 들어본 것 같군.’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했다.
‘살짝 어리다는 느낌만 빼면···.’
그때 사형이라 불린 남자가 몸을 돌리며 이쪽을 봤다.
그가 말했다.
“보다 화후가 깊어지면 너 또한 보일 것이다.”
이 몸이 깃든 육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형.”
사형이라는 남자의 허리춤부터 시작을 해서 가슴팍, 목, 마침내···.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눈앞의 이 사형이란 인물은···.
‘이 사람, 얼마 전 죽간본 원본을 쥐었을 때보았던···.’
그때 천마신기를 사용하며 마신의 강림이 머지않았다고 말하던, 그 마인이었다.
정확히는 그 마인이 수십 년쯤 어려진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