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화. 동행(2)
70화. 동행(2)
진양상단(晉陽商團).
내게 말을 건 여인이 속해 있는 상단의 이름.
듣기론 산서성에 본부를 둔 채, 주로 세외에서 활동을 하는 상단이라는 것 같았다.
“저흰 현재 북쪽으로 가고 있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그녀가 내게 말을 붙인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행선지가 같으면 동행을 하자는 것.
그들은 동승과 포두를 거쳐, 궁(宮)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궁이라 하면, 내몽고 북쪽에 위치한 살궁이나 빙궁을 가리키는 말.
‘나쁘지 않을 테지. 마침 매화검이 있는 곳이 포두이니.’
동선이 겹쳤다.
더욱이 산서성에서 매복이 있었다는 건, 적들 또한 내 추적을 눈치 채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 사이에 섞여서 이동함으로 인해, 적들의 눈도 속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함께 이동을 했을까.
여인이 잠시 소피를 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상단의 무사 중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양해를 구해왔다.
“죄송합니다, 대협. 아기씨께서 워낙 무림인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셔서요.”
고개를 끄덕여줬다.
함께 동행을 하는 내내, 여인은 내게 이런저런 무림사를 물어왔다.
주로 본인이 들었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내 생각을 묻는 식이었다.
물론 전혀 귀찮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나 또한 자연스레 세외의 정세를 질문할 수 있었으니···.
특히 포두에 천마신교의 좌호법이 머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상당히 유익했다.
얼마 전 천산을 내려와 정착을 했다나?
‘천산을 내려온 건 신녀만이 아니었군.’
볼일을 마치고 온 여인이 물어왔다.
“헌데. 대협은 어떤 무기를 주로 쓰세요?”
마차에 올라타며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쓰는 편입니다.”
“저는 등과 허리에 검을 한 자루씩 매고 있어서, 주력 무기가 검인 줄 알았어요.”
“그렇습니까.”
내심 감탄을 삼켰다.
‘꽤 눈썰미가 좋은 편인가 보군.’
허리춤에 있는 검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등에 매단 검은 쉬이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장포 속에 덮여 있는 걸 알아봤다라.’
엄밀히 말하면 등에 매단 건 검도 아니긴 했다.
정확히는 봉황 무늬가 음각되어 있는 칼집.
여전히 그걸 등에 매고 다녔다.
머지않아 목적지인 포두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인은 즐거웠다는 말을 하며,
추후 진양상단을 방문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다 나 또한 몸을 돌렸다.
이윽고 기사(氣絲)를 펼쳐,
다시 한 번 매화검의 냄새를 더듬었다.
‘제대로 왔군.’
마침내 거대한 장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북적북적.
천마신교 포두지부.
天魔新敎 包頭支部.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현판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현판 앞엔 작은 책상을 펼치고 인명부를 작성하고 있는 마인들도 보였다.
그 앞으로 길게 늘어선 인파도 보였다.
얼핏 들으니, 무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걸 눈에 담으며, 근처를 배회했다.
신중하게 적의 규모를 가늠했고.
매화검을 탈취할 계획을 세웠다.
***
호북성 무한.
무림맹 본부.
대략 두어 시진 전,
무림맹에 도착한 백미려는 한 가지 고민에 잠겼다.
‘큰일이야. 루주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으니.’
하오문의 패권과 관련된 고민이었다.
철면야탑 진학주가 사라진 이후,
그녀는 하오문을 장악하기 위해 불철주야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로 초반엔 꽤나 많은 루주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학주가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평소 진학주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거나.
그에게 약점이 잡힌 걸로 알려진 루주들이, 하나둘 절연을 해오고 있었다.
표면상으론 절강성에 있는 루주를 하오문의 차기 문주로 추대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 하고 있지만···.
그는 진학주의 의동생.
입술을 깨물었다.
절강성의 루주가 세력을 불림에 따라,
다시 힘없는 기녀들이 공물처럼 마교에 바쳐지고 있는 상황.
‘어찌하면 좋을까.’
사실 그녀 혼자만의 힘으론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절강성의 루주에 비해, 세력을 모을 명분이 부족했으니.
전임 문주의 의동생이었던 그와는 달리,
백미려는 그저 평범한 루주이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미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소미는 소령의 아명(兒名).
그리고 진학주 이전 문주의 수양딸 아닌가.
그러나 이내 고개를 털어냈다.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였다.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백미려의 방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들어왔다.
소령이었다.
“왔구나. 소미야.”
백미려가 자리를 안내했다.
마침 무림맹에 있다고 하여 부른 것.
간단한 인사치레를 나눈 뒤,
백미려가 직접 차를 내어왔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화두는 자연스레 얼마 전 백미려가 건넸던 제안으로 넘어갔다.
“전에 건넸던 제안은 생각해봤니?”
얼마 전,
백미려는 소령에게 다시 하오문으로 돌아오는 건 어떻겠느냔 말을 건넸었다.
조금 혼란스러워도 원래 네가 있을 곳은 하오문이 아닐까 한다고.
“···전. 이제 소미가 아니라 소령이에요.”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강요하지 않으마.”
백미려는 굳이 다그치지 않았다.
아마 일상이 깨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리라.
소령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이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당분간은 무림맹에 머무시는 거예요?”
소령의 물음이었다.
“아니다. 조만간 감숙성에 가봐야 해.”
“감숙성이요?”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
“그곳을 총괄하는 루주를 설득해야 하거든.”
“···아.”
다만 백미려가 처한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일상의 대화도 줄곧 하오문의 이야기로 이어지곤 했다.
소령은 그럴 때마다 풀이 죽은 사람처럼 반응을 하곤 했다.
“그리고 산서성도 가봐야 할 것 같구나.”
“산서성이요?”
“내몽고로 향하는 선착장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것 같아.”
그런데 그때였다.
순간 소령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소령이 처음으로 하오문의 일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세히?”
살짝 당황했지만,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이후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니,
‘···기사로 표두님의 위치를 계속 가늠해보고 있었구나.’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금태산 때문이었다.
조금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벌써 다 컸구나 싶었다.
소령은 보다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고.
백미려는 차분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
천마신교 포두지부 앞.
“이름이 뭔가.”
인명록을 작성하는 마인이 물어왔다.
“소산입니다.”
가명을 썼다.
“소산이라. 익히고 있는 무공은?”
“가전무공입니다.”
마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출입증을 만들어주었다.
“들어가서 왼쪽으로 이동하면 연무장이 나올 거네. 거기서 시험을 치르면 돼.”
고개를 끄덕이며 내부로 들어갔다.
천천히 포두지부 담벼락을 둘러보며 놈들의 세력을 가늠해본 결과,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건 그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소란을 틈 타 놈이 매화검을 가지고 도망을 칠 수도 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연스럽게 마인들의 무리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마침 무사들을 모집하고 있으니.모집 공고를 보고 온 무사인 것처럼 들어간 뒤,
기회를 노려 매화검이 있는 건물로 몰래 잠입할 생각이었다.
안내에 따라 연무장에 도착하니, 수염이 덥수룩한 마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무사들의 선별을 담당하는 마인인 모양.
‘여기 와서 본 마인들 중엔 손에 꼽힐 만큼 강한 놈인 것 같군.’
그가 물어왔다.
“주 무기는 검인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보고 하는 말 같았다.
“그렇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서 진검을 가져왔다.
“주력 무공을 펼쳐보게.”
‘선별과정 한번 화끈하군.’
진검을 가지고 비무를 한다라.
쓰윽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지원자들이 보였다.
먼저 시험을 치른 자들도 있었고.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건.
‘···시험을 치르다 내상을 입은 건가.’
피를 토하는 무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
특히나 합격한 걸로 보이는 무인들은 하나같이 내상을 입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실전처럼 시험을 치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원자가 강하면 강한 만큼, 시험관 또한 힘을 낸다는 말과도 같을 테니.
탈락자는 애초에 내상을 입을 만큼 무공을 주고받지 못했다는 말도 됐다.
‘어찌하면 좋을까.’
잠깐 고민했다.
빠르게 상황을 가늠해본 결과 대충 상대할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전력을 드러내는 것도 말이 안 됐다.
그건 자칫 정체를 들킬 수도 있으니.
‘이참에 검법을 하나 창안해보면 좋을 것 같군.’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검법은 금귀검법에 바탕을 둔 채, 개량을 한 검법.
상당 부분 개량을 거쳤지만, 그래도 그 틀은 엄연히 금귀검법이었다.
이 또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근래 남궁세가의 검법도 수차례 견식을 했고, 환상 속에서 본 검법도 있으니.’
하물며 아수라파천권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검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는 상황 아닌가.
이왕이면 아수라파천권의 묘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검공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뭐, 당장 완성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수라파천권은 그리 간단한 무공이 아니었으니···.
그저 기틀 정도만 구상해볼 생각이었다.
“뭐하나. 안 들어오나?”
심사관이 어깨에 검을 걸치며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고민이 너무 길었던 모양.
심사관을 향해 말했다.
“먼저 들어오시지요.”
순간 주변에 있던 다른 지원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묘한 열기가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패기 있군. 그 입만큼이나 실력도 진짜면 좋겠어.”
수염 덥수룩한 심사관이 말했다.
본의 아니게 도발을 한 것 같지만, 내심 이런 상황을 바라기도 했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기습적으로 파고들어오는 놈.
좌측으로 크게 한 발 움직이며 검과 검을 맞부딪쳤다.
챙-
“···꽤 하는군.”
검을 비틀며 놈의 측방을 차지했다.
순간 횡으로 검을 뿌리며 뒤로 물러나는 놈.
쐐액- 챙!
참고로 놈에게 선공을 양보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놈이 판단한 내 겉보기 성취는 대략 이정도인 건가.’
일반적인 무림인들과 달리,
이 몸은 오행의 기운이나 선기를 비롯한 여러 기운을 함께 품고 있지 않나.
나름대로 근처에 있는 수험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기운만 발출을 한다곤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에게 어찌 보이는지 명확히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너무 튀는 것은 지양해야 할 테니.’
딱 필요한 수준의 힘만 보여주기 위함.
아까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합격자들은 하나같이 내상을 입고 있지 않나.
그 말은 결국 내상을 입지 않고 합격을 하려면, 놈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놈을 제압하면서 최대한 덜 튈 방법을 모색한 것.
‘놈이 방심을 하다 패배한 것처럼 꾸미면 좋을 테지.’
놈이 빠르게 검을 찔러왔다.
방향은 목젖.
당황한 척 뒤로 물러났다.
놈은 연신 찌르기를 전개했다.
엉거주춤 검을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윽고 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주변 수험자들도 “그럼 그렇지.”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정확히 원하던 반응이군.’
그리고 그 순간.
찔러오는 검을 향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일견 엉거주춤 휘두른 것처럼도 보이는 검격.
그러나.
‘멸화응취는 이런 식으로 응용하면 좋을 것 같군.’
담긴 검의는 남궁벽의 제왕검과 같았고.
도인된 진기의 흐름은 아수라파천권 멸화응취와 같았다.
한 마디로 엄청난 강검이란 뜻.
챙!
정확히 놈의 검면을 두드렸고.
지이잉-
놈의 검이 거칠게 진동했다.
“으윽!”
예상치 못한 충격은 놈이 손에서 검을 놓치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짐짓 발이 엉킨 것처럼 엉덩방아를 찧었다.
쿵.
순간 일대에 정적이 일었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놈을 제압했기 때문.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놈이 지그시 이 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거면 충분할 것 같군.’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격이란 말만 기다리며, 상황을 주시할 때였다.
놈이 말했다.
“너는···.”
그런데.
“시험을 한 번 더 치러야 할 것 같다.”
놈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말은 더욱이 놀라운 말이었다.
“일단 평무사로는 합격이다. 그러나···.”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상위 직위를 위한 시험을 치르라는 말이었다.
규칙상 자신을 이기면 그래야 한다나?
물론 자신이 방심을 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내 반응은···.
‘나쁘지 않은데?’
어쨌든 보다 심처로 무혈 입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윽고 놈의 안내를 따라, 보다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고.
마침내.
‘매화검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건가.’
목표에 상당히 근접할 수 있었다.
품속의 보옥 또한 오행의 기운을 보다 게걸스럽게 포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