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화. 동행(1)
69화. 동행(1)
내몽고 포두(內蒙古 包頭)에 있는 이름 없는 기루.
금침이 깔린 어느 방 안에서,
철면야탑 진학주가 면포를 들고 정성스레 검을 손질하고 있었다.
칼집에 매화꽃이 곱게 양각되어 있는 검. 매화검.
그리고 그런 진학주의 눈엔 탐욕이 짙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걸 가지고 부교주와 협상을 벌이면 될 테지.’
현재 진학주는 공식적으로 좌호법 색골음마 산하 타격대 대주를 맡고 있는 상태.
그러나 그는 그 대주라는 직위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정확히는 더 높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게 맞았다.
‘더욱이 부교주가 천산을 장악했으니.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줄을 갈아타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일 테지.’
듣기론 부교주 휘하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은퇴를 생각 중이란 소문까지 있으니···.
‘그 자리를 달라고 해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검신을 가만히 쓰다듬을 때였다.
“문주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문 밖에서 들려온 부하의 말에, 그는 손질하고 있던 검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들어오너라.”
딸깍.
곧 평범한 점소이 행색을 한 남자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개중 왼쪽에 있던 남자가 대표로 말했다.
“주신 명령에 대한 경과보고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진학주는 매화검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꼬리에 붙은 놈들을 떼어놓는 일에 대한 명령을 내려놓았던 상태.
“말해보아라.”
남자가 말했다.
“···우선. 무림맹주 남궁벽과 종남파 장문인 청공을 유인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저희가 조작한 흔적을 쫓아 남궁벽은 현재 감숙성으로 향했고. 청공은 하북성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저희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하리라 판단됩니다.”
가짜 흔적을 만들어 그들의 추적을 떨어뜨렸단 말.
이에 진학주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학주는 이번엔 오른쪽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찌 됐느냐.”
남궁벽과 청공 이외에도 그들을 추적하고 있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으니.
이에 오른쪽에 있던 남자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별도의 추적술을 익히고 있는지, 떨어뜨려놓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학주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추적술?”
“정확하진 않지만, 저희가 사용하는 기사와 흡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산서성에 매복을 심어놓았으니, 문제없지 않을까 합니다.”
“자세히 말해봐라.”
진학주의 물음에 남자는 주눅 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황하와 내몽고를 잇는 선착장에 저희 쪽 사람들을 심어두었습니다.”
이에 진학주는 잠시 말없이 남자를 봤다.
이윽고 그가 불편한 기색을 담아 입을 열었다.
“심어두었다라. 그건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도 섞여 있단 말일 텐데? 선착장 하나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이냐.”
질책이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주눅 들었던 건 괜히 그랬던 게 아닌 모양.
“죄송합니다.”
남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변명을 이었다.
“그래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적린휘성의 무공은 선박 위에서 싸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
참고로 남궁벽과 청공 이외의 한 명이란 것은 적린휘성 금태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더욱이 갑판 곳곳에 역청도 뿌려두었습니다.”
“역청? 호오. 꽤 기발한 발상이구나. 보고에 따르면 놈은 화기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역청은 인화성 물질.
“그러니 못해도 함께 침몰하는 결과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에 진학주는 나쁘지 않은 작전인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다. 믿어보마.”
***
황하.
도강선 위.
“꺅!”
소리가 난 곳을 봤다.
한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달리 무공을 익히지 않은 걸로 보아, 평범한 양민인 모양.
하오문도들은 그 여인을 인질로 잡으려 했다.
“적린휘성. 네가 반항하면 무고한 사람들을 하나씩···.”
잽싸게 비도를 던졌다.
쐐액- 푹!
하오문도들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꿰뚫었다.
천잠사를 당겨 비도를 회수했다.
우르르.
그 사이, 갑판 아래에서 나름의 무림인들이 올라왔다.
그들이 하오문도들과 대치를 하며, 양민들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호위무사인가.’
양민들 중 호위무사를 고용할 만큼 재력을 갖춘 사람이 있는 모양.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쐐액-
마침 찔러오는 검을 피하며, 방금 검을 내지른 놈의 멱살을 잡고 배 밖으로 던졌다.
부웅- 풍덩!
동시에 주변을 봤다.
적지 않은 수의 하오문도들이 검을 뽑은 채, 이 몸을 포위하고 있었다.
‘무위가 뛰어난 놈들도 꽤나 섞여 있군.’
그들 중 한 놈이 말했다.
“다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투항하는 것이 어떻겠나.”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놈은 품에서 기름이 든 죽통을 꺼내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역청을 더 뿌려라. 다 같이 죽는 수밖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수라파천권의 불길에 의해, 검게 그을리고 타들어간 갑판이 보였다.
‘화기에 이런 단점이 있었을 줄이야.’
처음엔 역청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마음껏 화기를 뿌렸었다.
그리고 그 결과,
‘불을 진화하느라 놈들을 진압하는 게 늦어졌군.’
그나마 아직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자칫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번진다면,
배가 침몰하고.
다 같이 죽는 수가 있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됐다.
사실 이는 아수라파천권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챙! 챙!
호위무사 하나가 하오문도와 검을 나누고 있었다.
검끼리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화르륵-
이처럼 검과 검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불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호위무사들에게 말했다.
“이놈들은 최대한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최소한의 수만 호위를 담당하고.
나머진 불길이 번졌을 때를 대비해 물을 길러오라 했다.
그들은 내 말을 따라야 하나 의구심을 품는 것도 같았지만.
“무얼 하느냐. 저 청년의 말을 따르거라.”
그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 말에 동조를 해준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좋아.’
여자를 향해 목례를 보내주었다.
상황이 이러니, 당장은 눈앞의 하오문도들에게만 집중을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오문도들도 직접적인 방화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눈빛에 담긴 망설임으로 보아, 이들 중 상당수는 천마신교에 투신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보였다.
어쩌면 별다른 선택권 없이 강제로 투신한 놈들도 섞여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전부 죽일 수밖에.’
그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헌데. 마침 환상 속에서 본 무공을 시험해보기 딱인 상황인 것 같군.’
화기 대신 선기를 이용하는 아수라파천권. 그럼 화재의 걱정도 없을 테니.
사실 애초에 배에 오를 당시,
환상 속에서 보았던 무공을 흉내내볼 생각을 하며 오르지 않았나.
다만 다룰 수 있는 선기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에 보다 놈들의 숫자를 줄여놓은 다음에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지. 적절히 분배해서 사용하는 수밖엔.’
적들을 둘러보며 골격 속에 깃들어 있던 선기를 움직였다.
스믈 스믈.
몸을 빠져나온 선기가 주변에 안개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놈이 진법을 쓰려한다! 모두 경계해라!”
하오문도들은 내가 진법을 쓰려 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놈들이 애먼 곳에 신경을 쓰며 경계를 하는 동안.
나는 흘러나온 선기를 양 주먹에 모았다.
뭉게뭉게.
천마신기를 이용해 뭉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리로···.’
흡사 양 주먹과 발에 옅은 구름이 깔린 모양새가 되었다.
다만.
‘마냥 쉽지만은 않군.’
화기만큼 자연스레 움직이진 않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아수라파천권의 구결을 연신 외웠다.
‘우선 멸화응취.’
그제야 적들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에게 여유를 주지 마라!”
달려오는 적들.
발끝에 힘을 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찔러오는 검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 그대로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퍽!
주먹 끝에 걸린 하오문도의 가슴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동시에 권풍이 일며 정면의 적들이 일제히 나동그라졌다.
갑판 위에 뿌연 피안개가 내렸다.
주먹과 발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선기의 안개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한바탕 춤을 추었다.
피하고.
휘두르고.
여차하면 비도를 던지고.
쐐액- 푹!
천잠사를 당겨 시체를 적들 사이로 던졌다.
“으악!”
우왕좌왕.
출렁이는 갑판 위에서 적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면 안 된다! 당장 놈을···.”
발끝에 힘을 준 채 곧장 달려들었다.
‘우두머리들부터 없앤다.’
검을 꼬나 쥔 채 맞서는 놈.
수직으로 그어오는 검을 보법을 밟아 유려하게 피해냈다.
쐐액-
한끝 차이로 장포를 스쳐가는 검풍.
순식간에 다가가 왼손으로 놈의 골통을 깨부쉈다.
퍽!
그렇게 하나둘 적들을 제거했다.
몇몇 놈들이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지만.
화르륵-
촤악!
아까 내 명령에 따라 물을 길러온 호위무사들이 해결했다.
‘훌륭하군.’
나는 그 사이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퍽! 퍽!
하나둘 시체가 쌓여가고.
쌓인 시체의 양이 너무 많이 거치적거리게 됐을 즈음엔.
“으악!”
멱살을 잡고 밖으로 던졌다.
부웅- 풍덩!
불어난 황하의 강물이 거칠어 저들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다.
그렇게 한바탕 몸을 풀었을 때쯤.
‘완전히 비가 그치려는 건가.’
하늘을 봤다.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갑판을 둘러봤다.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였다.
이윽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습격자들은 전부 처리했다고.
그러니 다시 배를 몰아 목적지인 내몽고로 향하자고.
***
이후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황하를 건널 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북적북적.
천천히 선착장을 둘러봤다.
‘여기가 내몽고로군.’
곳곳에 마인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은 세외이다 보니,
비교적 마인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신녀의 본거지도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신녀의 부하였던 노인의 냄새 또한 내몽고에 묻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사(氣絲)를 펼쳐 재차 매화검의 방향을 가늠했다.
지금은 매화검을 찾는 것이 먼저.
하물며 적의 수괴가 철면야탑 진학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철면야탑 진학주는 소령의 원수나 다름이 없고···.
‘매화검은 북쪽인가?’
이번엔 향의 농도로 말미암아 거리 또한 추적했다.
‘포두(包頭) 쪽인 것 같군.’
참고로 품속의 보옥 또한 흡수하는 오행의 양이 보다 더 많아졌다.
매화검이 모산파의 법보일 것이란 가능성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
흡족했다.
여러모로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착장을 벗어나며 주변을 둘러봤다.
‘말을 한 필 구하면 좋을 것 같은데.’
빠르게 가는 것도 좋을 테지만.
지금은 보법을 밟아가며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보단,
말을 하나 구해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내공을 아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게 더 좋을 테지.’
다만 이 몸이 외지인이라 그런지, 쉬이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아쉽게 생각하며 이리저리 마방을 돌아다닐 때였다.
“저기요!”
문득 등 뒤에서 익숙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 소리도 함께였다.
고개를 돌렸다.
‘저 여자는?’
아까 배에서 호위무사들을 부리던 여자가 마차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깃발을 보니 상단인가?’
이윽고 다가온 여자가 말했다.
“대협.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여자는 곧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을 이었다.
"혹 행선지가 어떻게 되세요?"
행선지? 갑자기 행선지는 왜 묻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