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화. 화산파(2)
65화. 화산파(2)
우리는 잠시 말을 잃고 주변을 둘러봤다.
화산파는 꼭 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부서지고 망가져 있었다.
마침 목수 하나가 나무를 짊어진 채 망가진 전각의 지붕을 올라가고 있었다.
곧장 그리로 향했다.
맹주 남궁벽이 대표로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목수는 우리를 못 본 척, 묵묵히 지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그때였다.
“누가 감히 화산파에 마음대로 발을 들이느냐!”
전각 뒤편에서 꽤나 큼직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산문을 지키는 아이들이 누구냐! 철저히 통제하라고 했더니, 외인을 들여?”
곧 우리가 들어온 산문 쪽에서 몇몇 도사들이 부리나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 공교롭게도 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가 들이닥친 모양.
웅성웅성.
이윽고 주위는 화산파 도사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으로 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왜 안 그러겠나.
이들 또한 강호에 적을 둔 인물.
무림맹주 남궁벽과 종남파 장문인 청공의 외형은 익히 알 터였다.
침입자인 줄 알고 무기를 꼬나든 채 달려왔건만.
무림 명숙 둘이 떡하니 있으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닐 테다.
“장문인을 뵈러 왔네. 장문인은 어디 계시는가.”
남궁벽의 말에 그들의 뒤에서 지팡이에 몸을 지탱한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 인사가 늦었습니다.”
화산파 도인들은 그 노인을 중심으로 썰물 빠지듯 좌우로 갈라졌다.
“장문인!”
“몸도 성치 않으신데···.”
비교적 항렬이 높아 보이는 도사들이 다가와 노인을 부축했다.
“괜찮다.”
그는 심한 내상이라도 입었는지, 얼굴이 거무죽죽했다.
사실 이곳에 모인 화산파 도사들 사이에도 몸이 성치 않아 보이는 인물들이 몇몇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우리는 곧 화산파 장문인의 안내에 따라 화산파 심처로 걸음을 옮겼다.
***
화산파 장문인실.
딸깍-
맹주 남궁벽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장문인께서는 화산파 제자들과 비무를 벌이다 이리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이에 종남파 장문인 청공이 말했다.
“백현, 자네. 그걸 우리더러 믿으란 말인가.”
화산파 장문인 백현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무학에 심취해 있다 보니 그리 되었네, 청공.”
장문인실엔 차가운 침묵만 감돌았다.
나는 방금 말을 한 백현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상당히 단호해보였다.
이를 어찌 하면 좋을까.
머지않아 백현은 조금 쌀쌀맞은 투로 입을 열었다.
“헌데 우리 화산파엔 별안간 무슨 일인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
맹주 남궁벽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곧 내게 자리를 피해 달라했다.
‘종남파에서 그러한 것처럼 장문인과 비고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일 테지.’
알겠노라 포권을 취해보이곤 밖으로 나왔다.
이후 화산파 곳곳에 심어진 매화나무들을 구경하는 척 경내를 거닐었다.
혹여나 단서가 있을까 하여.
곧 늙수그레한 도사 하나가 찾아와 다짜고짜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무얼 안내하신다는 겁니까.”
“손님으로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럼 객실을 안내해드려야지요.”
더 이상 돌아다니지 말고, 객실에 얌전히 들어가 있으란 말처럼 들렸다.
절로 눈매가 가늘어졌다.
일단 그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이 몸을 안내했다.
왜 경내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삼키며 그의 뒤를 따랐다.
“헌데. 소협은 별호가 어찌되십니까.”
객실 앞에 도착하고서야 노인은 통성명을 해왔다.
노인은 본인의 도호가 백진이라고 했다.
“과분하지만 적린휘성이란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백진 도사님.”
그때였다.
순간 백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 것.
“···적린휘성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말이 없던 백진은 주변을 한차례 쓰윽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근처에 있던 화산파 도사들 또한 어느덧 이 몸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일단 잠자코 그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객실이라 불린 방은 창문조차 없는 밀실이었다.
벽과 천장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바닥은 돌이 깔려 있었다.
‘원래 객실로 쓰이던 공간은 아닌 것 같군.’
객실이라 하기엔 민망한 곳이었다.
아마 다급히 마련된 공간인 것 같았다.
근처엔 미처 청소하지 못한 돌이나 나무 조각들도 있었다.
‘원랜 창고로 쓰이던 공간인가.’
화산파 도사 백진은 곧 문간에서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 또한 움직였다.
우선 내부에 있던 탁자와 의자의 위치를 바꿔가며 음양의 균형을 맞췄다.
그 이후 몸속에 있던 오행의 기운을 끌어낸 뒤, 천마신기와 선기를 이용해 진법을 발동했다.
쏴아아-
투명해지는 벽.
바깥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간 도사는 다른 도사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입단속을 시키는 것도 같았다.
몇몇 도사들은 그럼에도 미련 가득한 눈망울로 내가 있는 밀실의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사라지는 방향을 살폈다.
‘장문인실인가.’
근처에 있던 다른 도사들도 곧 미련을 떨쳐내곤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엔 내 심부름을 위한 것인지, 나를 감시하기 위한 것인지, 딱 한 명의 도사만 존재했다.
그의 표정은 살필 수 없었다.
문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
잠시 고민하다 옷소매에서 천잠사를 꺼냈다.
묶여 있던 비도를 풀어내곤 대신 근처에 있던 뭉툭한 나무 조각을 하나 묶었다.
문을 살짝 열고 그 사이로 등을 지고 있는 도사를 봤다.
‘될까?’
잽싸게 천잠사에 묶인 나무 조각을 던졌다.
툭!
놈이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나무 조각으로 수혈을 짚었다.
잠에 빠진 도사를 벽에 기대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내 방문을 향해 미련 가득한 시선을 보내던 도사들이 보였다.
그들을 미행했다.
이윽고 그들은 지하로 난 계단으로 발을 들였다.
꽤 깊어보였다.
‘뭘 숨겨둔 곳이지?’
심지어 기관진식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을 따라갔다.
‘감옥처럼 보이는군.’
그리고 마침내.
“···사매. 물이라도 마셔.”
그들이 감추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
“크륵!”
“···사매.”
화산파 도복을 입고 있는 강시 하나가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대략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된 건가.’
그들이 우리를 배척한 건, 저 강시로 변한 화산파 제자를 감추기 위함일 테다.
‘극진히 대하는 걸 보면, 보호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
아마 여러 이해관계가 얽혔을 테다.
화산파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동시에 제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다.
아까 내 별호를 듣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던 백진이란 도사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혹여 내가 저 아이를 구해줄 수 있을까 싶었던 걸 테지.’
잠자코 바라보다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저벅.
인기척에 깜짝 놀란 화산파 도사들이 다급히 몸을 돌렸다.
“웬 놈이냐!”
반사적으로 외치며 검을 뽑는 그들.
그들의 검에 매화향이 어려 있었다.
‘화산파 무공의 상징이 매화라 하더니.’
그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곧 내 정체를 파악한 놈들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적린휘성. 여긴 어떻게.”
검 끝에 맺혔던 매화향이 흔들렸다.
그들은 나와 감옥 속 사매를 번갈아 봤다.
도사들의 얼굴이 상당히 혼란스러워보였다.
우르르-
다른 도사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란을 눈치 챈 것일 터.
눈앞의 도사들에게 말했다.
“명예와 실리, 두 가지를 한 번에 손에 쥘 순 없습니다.”
순간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도사들.
상당히 두루뭉술한 말이었지만, 말뜻을 이해한 것일 테다.
사매를 지키고 싶다면, 사문의 명예는 내려놓으란 말.
그들이 고민하는 사이 그들 뒤에 있는 강시를 살폈다.
‘···생강시인가.’
다만 여태 봤던 생강시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강시의 몸에서 매화의 향기가 풍기고 있던 것.
정확히는 강시로 변했음에도 화산파 무공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눈빛이 낮게 침잠했다.
그들에게 물었다.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어느덧 등 뒤의 계단으로 화산파 도사들이 내려왔다.
좁은 지하 뇌옥 안.
앞뒤로 화산파 도사들이 가득 찼다.
머지않아 망설이던 도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사, 사제! 안 돼!”
다른 도사 몇몇이 그를 말렸지만,
“···며칠 전 별안간 사매가 강시로 변했습니다.”
그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아까 강시를 극진히 대하며 물을 먹이던 그 도사였다.
이윽고 그 도사를 통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들을 수 있었다.
***
“···익히 알려져 있던 강시와는 달리, 이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매는 강시로 변한 뒤, 고통스러워하며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전각이 망가진 건 그 때문이라고 했다.
“한동안은 의사표현도 하더군요.”
“놀랍군요.”
때문에 누구 하나 독하게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장문인께서 직접 나선 뒤에나 사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장문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내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사매를 되돌리기 위해, 온갖 수를 썼다고 했다.
그러나 점점 사태는 악화되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걸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화산의 무공은 잊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던 참이라 했다.
“그럼 왜 무림맹에는 알리지 않은 겁니까.”
“사매의 상태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대략 이해가 됐다.
만약 무림맹에서 강시로 변한 제자를 죽이라고 한다면?
혹은 실험체로 쓴다면?
그들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었을 테다.
더욱이 화산파의 명예를 생각하는 몇몇 인사들의 반대도 있었을 거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마른침을 꼴깍 삼킨 도사들이 말했다.
“어찌 하시려는 겁니까.”
“살릴 수 있는 겁니까.”
“제, 제발. 희아를 구원해주세요.”
셋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었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같았다.
그들에게 말했다.
“믿어보십쇼.”
마침내 지하 뇌옥엔 나와 강시로 변한 화산파의 여제자만 남게 되었다.
저벅저벅, 뇌옥 속의 강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여태 봐온 강시들은 생전의 무공을 쓸 수 없었다.
백회혈에 구성된 정(精)을 통해, 강화된 육체를 바탕으로 싸울 뿐.
그러나 눈앞의 강시는 달랐다.
백회혈의 정을 통해 육신이 강화된 상태에서, 본신의 무공까지 쓸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발견은 상당히 위험한 발견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만약 이런 강시들이 대거 활개를 친다면···.’
무림은 분명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철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철컹.
순간 강시가 왼손을 뻗어왔다.
휘익-
고개 까딱여 피해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거리를 좁혔다.
팔을 뻗어 여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구해드리려 하는 것이오.”
휘익-
순간 코끝에 은은한 매화향기가 어렸다.
목을 쥔 손을 놓고 잠시 손속을 주고받았다.
휘익- 탁! 툭탁!
‘···더 이상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군.’
금귀수를 이용해, 매화꽃을 뜯어냈다.
꽃잎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나 또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 정도 무위를 가진 무인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인은 가슴이 훤히 열리자 발차기를 해왔다.
그걸 그대로 낚아챈 뒤, 뒤로 밀어 균형을 무너뜨렸다.
기우뚱.
발차기를 막아낸 왼손이 아릿했다.
여인은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몸을 띄우며 반대 다리로 머리를 노려왔다.
휘익-
고개를 젖혔다.
코앞으로 매화향이 스쳐갔다.
우당탕-
바닥에 엎어진 여인이 폴짝 뛰어 올랐다.
그대로 오른손을 뻗어온다.
제왕보를 밟으며 피해냈다.
품으로 파고들었다.
팔꿈치로 여인의 명치를 가격했다.
퍽!
휘청이는 여인.
잽싸게 후방을 점했다.
오른손으로 뒷목을 낚아채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쿵!
무릎으로 허리를 누른 채, 왼손을 백회혈에 올렸다.
“크르르.”
여인은 그르렁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을 쳤다.
슈욱-
그리고 머지않아,
‘됐군.’
여인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백회혈의 정을 흩어내고 그 안의 내공을 흡수한 것.
아마 시간이 흐른다면,
총해무관의 이설처럼 이 여인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테다.
조치를 마친 뒤, 밖으로 나왔다.
“의무실로 옮겨 회복을 도와주세요.”
밖에서 기다리던 도사들에게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흑흑. 희아!”
도사들이 우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 도사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여인의 백회혈에 올렸던 왼손을 바라봤다.
천마신교의 또한 강시술이 발전한 것일까.
이전과는 다른 여러 기운들이 섞여 있었다.
특히···.
‘···조만간 신녀를 찾아가봐야겠군.’
과거 산서성 대동현에서 모산파 법보 중 하나로 추정되는 붓을 얻었던 그날 밤.
신녀가 섭혼술을 통해 내게 직접 본인의 의사를 전달한 그날 밤.
그날 섭혼술을 통해 전달되었던 신녀의 기운과 꼭 닮은 기운이 강시의 백회혈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남궁벽을 비롯한 우리 일행들도 이곳으로 몰려왔다.
“적린휘성.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들을 향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윽고 화산파 장문인 백현이 고맙다고 머리를 숙여왔다.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네.”
곧 남궁벽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제가 지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맹주.”
이에 남궁벽이 씁쓰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더 숨기는 건 없으십니까.”
고개를 젓는 백현.
사실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했다.
아는 게 워낙 적었던 것.
남궁벽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혹 저 여인이 마인들과 접촉을 한 적이 있습니까.”
“모릅니다.”
“강시로 변한 까닭도 모르시겠군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잠시 고개를 돌려 의무실로 업혀 가는 여인을 봤다.
‘···추후 이성을 되찾으면 물어보면 될 테지.’
총해무관의 이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비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후 우리는 백현과 함께 화산의 심처로 향했다.
한바탕 소란은 있었지만,
백현은 본인이 짊어진 의무를 수행하고자 했다.
백현이 말했다.
“같이 비고로 가세나.”
“괜찮겠나, 백현.”
“그럼. 이게 내가할 일 아닌가, 청공.”
정확히는 나를 비고로 안내해주는 것.
화산파 장문인으로 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과업이 될 것 같았다.
그는 곧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테니···.
“내가 기관진식을 열면, 청공이 진법을 해제할 거네. 그럼 적린휘성 자네는 그 사이 안으로 발을 들이면 되네.”
그가 따스한 눈길로 말을 건네 왔다.
일견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이 거대한 석판 위에 손바닥을 올린 뒤, 내공을 주입했다.
쩌저적-
석판이 열리며 향긋한 매화향이 주변에 진동을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가 석판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침울한 표정으로 서있던 청공이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정면을 향해 뻗은 상태에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시작했다.
“···태상노군 급급여율령 봉칙(太上老君 急急如律令 奉敕).”
그의 검끝에 선기가 어렸다.
‘운공의 검 끝에서 보았던 그것과 비슷하군.’
다만 운공의 그것보다 훨씬 그 농도가 짙었다.
대략 눈앞의 기관진식과 진법은 하나로 어우러져 특정 공간을 봉인하고 있던 걸로 보였다.
쩌저적-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대나무 숲이 드러났다.
“오늘은 대나무 숲이군.”
남궁벽이 말을 하며, 눈짓으로 들어가라 했다.
대나무 숲 안으로 발을 들였다.
순간 세상이 뒤집히고 너른 평야와 작은 초옥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초옥 앞에···.
‘이곳이 비고이니, 저 노인은 사서(司書)인가?’
등이 굽고 수염이 허연 노인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순간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이 말했다.
“이게 얼마만의 손님인지 모르겠군. 다시 세상이 전란에 휩싸인 건가.”
동시에 노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체.’
눈을 비비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이윽고 초옥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꼭 어서 들어오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