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화. 조우(3)
61화. 조우(3)
벌컥-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봤다.
“···공자님?”
“표두님, 무사하셨군요.”
소령과 표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창고 한 쪽 구석에 둥글게 모여앉아 있었다.
저도 몰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물론 안도의 한숨이 나온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한시가 급한 상황.
언제 부교주가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내부로 급히 발길을 들이며 말했다.
“다들 채비해라.”
“채비요?”
“무림맹으로 향할 채비.”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장표사는 부상을 입은 건가.’
장표사가 희게 웃으며 “면목이 없습니다, 표두님.”이라고 말을 해왔다.
근처에 있던 다른 표사들에게 장표사를 부축하라 시키며, 재촉했다.
“당장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표사들은 서둘러 채비를 시작했다.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가타부터 이유를 묻지 않았다.
말 속에서 다급함을 읽은 것.
함께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굽이굽이 골목을 돌며 마인들을 피해 무림맹으로 향했다.
다만 장표사의 상태가 심각하여···.
‘생각보다 지체되는군.’
이윽고 청등과 홍등이 밝은 번화가로 진입했을 때쯤이었다.
순간 등골이 싸한 기분.
반사적으로 검을 뽑으며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챙!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튀는 불꽃.
검을 막아낸 마인이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여기 있었군.”
동공이 팽창했다.
여기 있었다니.
‘···설마.’
잽싸게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왼발을 앞으로 쭉 뻗으며 오른손에 있던 검을 왼손으로 옮겼다.
동시에 그대로 놈을 향해 뻗었다.
슈욱-
섬광과 같은 찌르기.
방향은 놈의 복부.
일단 정신없이 몰아쳐 놈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빼앗기 위함이었다.
‘그럼 그 사이 표사들을 대피시키고···.’
그런데.
푹!
“···?”
놈은 내 찌르기를 막지 않았다.
달빛에 비친 놈의 얼굴에 언뜻 웃음이 보인다.
동시에.
삐이이-
놈의 입에 물려있던 호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을 비틀며 수직으로 그어 올렸다.
두두두둑!
뼈와 살을 갈랐다.
반으로 갈린 놈은 이윽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호각소리 또한 멈췄음은 당연했다.
다만.
우르르-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그 짧은 소리로도 적들에겐 충분했나 보다.
다급히 소령과 표사들에게 명령했다.
“어디로든 몸을 숨겨라.”
뿔뿔이 흩어져 숨으라 했다.
그들의 무위론 놈들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
하물며.
‘···아니길 바라지만.’
만약 방금 그 호각이 강불해에게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강불해가 찾아온다면?
냉정하게 판단하여 혼자 있는 게 나았다.
혹여 표사들이 객기를 부릴까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밤이 어두워 혼자 싸우는 게 편하다.”
에둘러 말했지만, 다들 이해한 것 같았다.
소령이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왔지만, 애써 외면했다.
‘···소령아.’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금방 몸을 숨겼다.
번화가 한 가운데에 달빛을 받으며 섰다.
주변에 있는 가게들은 하나둘 등불을 꺼뜨리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에 오롯이 나와 달빛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어둠 사이로 하나둘. 흑의를 입은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당히. 익숙한 기운을 가진 놈들이군.’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전생에 뇌옥에서 많이 느껴본 기운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얼굴도 낯이 익었다.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
‘···강불해의 부하들.’
아까 섬에서 봤던 심복들과는 또 달랐다.
이들은 강불해의 그림자와 같은 자들.
개개인의 무위 또한 상당했다.
‘일단 넷인가.’
그럼에도 다행이라면 강불해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양손에 각각 비도를 두 자루씩 집어 들었다.
이들은 표사와 소령이 도망치는 걸 목격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제압해야 했다.
그들 중 한 놈이 입을 열었다.
“순순히 투항하고 물건을 내놓으면 고통 없이···.”
그 순간.
푹!
비도를 던졌다.
푹! 푹! 푹!
다만 애석하게도···.
넷 모두 단번에 목숨을 끊을 순 없었다.
“크윽. 비도다! 모두 주의해라!”
우르르-
이 순간에도 다른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일단 표사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할 테지.’
달빛 아래에서 춤을 췄다.
양팔을 벌리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천잠사 끝에 매달린 비도가 위태롭게 적들의 사이를 누볐다.
때론 물결 같고.
때론 바람같이.
천잠사를 당기고 풀어가며,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비도의 위치를 조종했다.
골목에서 방금 막 모습을 드러낸 마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푹!
그대로 천잠사를 당겨 반대편에 나타난 마인을 향해 시체를 던졌다.
붕- 우당탕탕.
이윽고 지붕 위로 비도를 던졌다.
푹! 푹! 푹!
세 구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쿵! 쿵!
모래먼지가 일었다.
투명한 금강석의 비도는 곧 핏물을 머금어 번들번들 변해갔다.
난전에서 비도는 매우 유용했다.
적의 접근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눈 먼 칼에 맞을 위험이 없었다.
‘이쯤이면 표사들도 적절히 몸을 숨겼겠지.’
적들을 상대하며, 슬슬 도망칠 순간을 노릴 때였다.
챙!
갑작스레 막히는 공격.
공중에 떠오른 비도를 천잠사를 이용해 급히 회수했다.
‘젠장. ···도망치는 게 너무 늦은 건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새까만 어둠 속.
저벅저벅.
걸음소리와 함께 가공할 마기가 느껴졌다.
좌호법 색골음마 이상의 마기.
마른침을 삼키며 네 개의 비도를 모두 던졌다.
···그리고.
챙! 챙! 챙! 챙!
모두 막혔다.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천잠사로 연신 비도를 휘둘렀다.
입술을 짓이겼다.
튕겨나가더라도 다시 비틀어 공격했다.
놈은 어둠보다 더 새까만 강기로 비도를 막았다.
가공할 조법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조법이었다.
그 사이 하나둘 마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둥글게 이 몸의 주위를 포위했다.
계속 비도를 휘두르며 탈출할 길을 모색했다.
더 늦으면 아예 가망도 없기에.
저벅저벅.
어둠 속의 마인은 계속해서 비도를 튕겨내며, 내게로 다가왔다.
놈이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달빛 아래,
마인의 정체가 드러났다.
달빛이 놈의 얼굴을 훤히 비췄다.
백발의 익숙한 외형의 노인.
어찌 잊을쏘냐.
그 노인이 말했다.
“듣던 대로 대단하구나.”
예상했던 목소리.
천마신교의 부교주 시산혈귀 강불해.
놈이 조법으로 내 비도를 막아내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
얼마나 더 공방을 주고받았을까.
강불해가 말했다.
“···칼집을 어디에 숨겼느냐.”
놈은 내가 칼집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을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칼집은 허리춤에 매다는 것이 일반적.
반면 나는 등에 매단 채, 장포로 덮어두고 있었다.
낮이라면 볼록하니 티가 났을 테지만, 밤이라 다행이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죽이지 않고 제압을 하려 하는 걸 수도 있었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럼 당연히 그에 응해줘야 할 터.
“내가 미쳤다고 알려주겠나?”
동시에 재차 비도를 던졌다.
챙! 챙!
역시나 막아내는 강불해.
문득 전생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천마신교에 납치를 당하던 날.
그때도 지금처럼 야심한 밤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전생과 달리 지금은 강불해가 직접 나타났다는 것?
비도로 놈의 접근을 막는 것도 점점 여의치 않아지고 있었다.
포위한 마인들의 수가 늘어나며, 행동에 제약이 생겼기 때문.
등골이 서늘하며 동시에 억울했다.
결국 또 이처럼 최후를 맞는 것일까?
입술을 짓이겼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얻은 새로운 삶인가.
계속 탈출의 방법을 모색했다.
‘어찌어찌 무림맹까지만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곳엔 제갈천소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기관진식도 있었고.
만약을 위해 설치해둔 수많은 진법들도 있었다.
충분히 맹주 남궁벽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테다.
무엇보다.
그냥 살고 싶었다.
그때였다.
‘···저긴?’
그런 간절함이 빛을 바란 것일까.
문득 우측 담벼락에서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작은 틈이라 평범한 사람은 발견할 수 없을 수준.
그러나.
‘제갈천소와 기관진식에 대해 논의를 나눈 보람이 있는 건가.’
분명 저건 제갈천소가 설치해둔 기관진식이었다.
듣기론 만약을 대비해 무림맹 인근에 여러 기관진식을 설치해뒀다고 했으니···.
비도를 뿌리며 저곳으로 돌진하면 어찌 될까 생각했다.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물며 아수라파천권의 불길을 다리에 두른 뒤, 내달리면?
경공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갈 테고.
‘어쩌면 탈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몸속의 오행(五行)의 기운들을 있는 힘껏 쥐어짰다.
오행을 순환시켜 화기(火氣)를 북돋았다.
몸속에서 검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천마신기란 거대한 강줄기 위로 화기(火氣)가 넘실댔다.
그 화기를 바탕으로 아수라파천권을 운용했다.
멸화응취.
滅火凝聚.
세상을 멸하는 지옥의 겁화.
이제 잠시 후, 이걸 다리에 옮길 거다.
속으로 숫자를 셋 세기로 했다.
‘···하나. 둘.’
그런데 그때였다.
화르륵-
순간 불길이 비도를 조종하던 천잠사에 옮겨 붙은 것.
정확히는 지옥의 겁화 중 일부가 천잠사로 옮겨간 것.
실수였다.
아직 이런 식의 기운의 운용이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
비도는 흡사 불의 채찍과 같이 변했다.
헌데.
‘나쁘지 않은데?’
당황한 강불해가 보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강불해의 주특기는 조법.
맨손으로 비도를 막아내고 있던 중 비도에 불이 붙으니···.
방심하고 있던 놈의 옷소매에 불이 옮겨간 것.
그러니.
‘지금이군.’
바로 지금.
탈출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
하여 하체의 근육을 팽팽히 조인 뒤.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히고.
발바닥 아래로 멸화의 기운을 얹어 추진력을 더할 때.
“주인님 전부 잡아왔습니다.”
별안간 강불해의 등 뒤에서 들려온 마인의 목소리.
밟으려던 진각을 멈췄다.
어쩔 수 없었다.
동시에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쓴웃음이 지어졌다.
“말씀하신 대로 도망치던 놈들을 전부 잡아왔습니다.”
입술을 짓이겼다.
그곳엔.
“···죄송합니다, 표두님.”
우리 표국의 표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뒤론, 차마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었다.
***
‘그래도 소령은 무사한 건가.’
그나마 소령은 잡히지 않은 모양.
어쨌든 이건 표사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마인들이 생각보다 영리하게 움직인 것.
그들로선 어쩔 수 없었을 터.
강불해가 말했다.
“내 이들은 살려주겠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칼집을 순순히 넘긴다면 저들은 살려주겠다는 말.
다만 칼집을 넘기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으리란 말이었다.
‘결국 나는 죽인다는 말인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지금이라도 표사들을 포기하면, 도주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사들이 잡힌 뒤로 마인들의 포위망이 조금 느슨해졌기 때문.
그때 표사들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표두님,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뒤로 다른 표사들도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절대 자신들 때문에 희생하지 말아달라고.
마인 하나가 표사들의 아혈을 짚었다.
표사들은 벙어리가 된 뒤로도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사실 표사들은 왜 자신들이 잡혔는지도 모를 거다.
왜 이들이 나를 쫓는지도 모를 거고.
···칼집의 존재는 더더욱 모를 테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주먹에 땀이 났다.
혼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열심히 궁리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동이 터올 것 같았다.
그 말은 남궁벽의 도착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의미.
만약 충분한 시간을 끌 수 있다면?
남궁벽을 비롯한 지원군이 올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그러던 그때였다.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
'···이 방법이면.'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짐짓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칼집으로 만족하나?”
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강불해.
"무슨 말이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거래를 하자.”
“거래?”
마인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실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
'실컷 비웃으라지.'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일 테니.
마인들을 쭈욱 둘러보곤 강불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 원래 목적은 모산파의 죽간본 아니었나?”
순간 팽창하는 강불해의 동공.
마인들 또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을 뱉어냈다.
“그 죽간본. 내가 얻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
이후 그들에게 차분히 말했다.
대신 표사들을 먼저 무림맹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이윽고 강불해와 내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강불해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일단 들어나 보자꾸나."
이후 그를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