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조우(1)
59화. 조우(1)
깜깜한 밤, 무림맹 본부.
금태산과 모종의 대화를 나눈 소령은 부지런히 표사들을 깨우러 다녔다.
“장표사님, 일어나세요! 공자님께서 집합하시래요.”
“어, 어? 집합? 설마. 밤사이 전쟁이라도 난 거야?”
잠에서 깬 표사들은 하나둘 본인의 무구를 챙겨, 비몽사몽 밖으로 나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밖은 이미 꽤나 많은 무림맹 무사들이 도열해 있는 상태.
다만 그들 또한 갑작스런 집합 명령에 어안이 벙벙해하긴 마찬가지였다.
표사들은 곧 한쪽 구석으로 가 무리를 이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장표사가 어리둥절해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들려오는 무림맹 무사들의 대화 소리.
“···별안간 나타난 남자가 군사님한테 집합해야 한다고 했다던데?”
경계 근무를 서던 무사를 통해 들은 말이라 했다.
“별안간 나타난 남자? 그 사람이 누군데?”
“몰라. 밤이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대.”
아마 별안간 나타난 남자란 건, 표두님을 지칭하는 말일 터.
‘정말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건가?’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고, 고요하던 밤의 무림맹은 순식간에 북적북적하게 변해갔다.
잠시 자리를 이탈했던 소령이 다시 나타나 표사들을 불러 모았다.
“곧 공자님께서 이리로 오신대요.”
이에 표사들이 소령 주위로 둥글게 모여들었다.
“소령아, 대체 무슨 일인 거냐.”
소령이 대답했다.
“마인의 거점을 발견했대요.”
순간 일대가 조용해졌다.
비단 표사들만이 아니라,
무림맹 소속 무사들까지 소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밤이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 또한 이쪽을 향하고 있을 터였다.
소령은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선제 타격을 하실 거래요.”
“선제 타격? 그게 정말이냐?”
깜짝 놀란 장표사가 소리쳤다.
동시에 무림맹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두들 선제 타격이란 단어를 톡톡히 들은 것.
여기저기서 성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허 참. 군사님도 동의한 작전이 맞아?”
“적들이 비고를 노리는 게 뻔한데 무림맹을 비운다고?”
갑작스레 사나워진 분위기에 표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흉을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의 표두님이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무엇보다 장표사의 표정이 무척이나 난감했다.
‘내 잘못인 거 같은데, 뭐라도 해야 하나?’
자신이 소리친 이후로 무림맹 무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기 때문.
반면 소령은 표사들과 조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셔서 말하긴 했는데···’
이처럼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금태산이 자신에게 부여한 작전이었기 때문.
공자님은 마인들을 속여 큰 피해를 줄 계획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인들을 속이기 위해선,
‘적들이 우리의 출정을 알아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소령은 심장이 두근거려 손이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내가 뭐 실수한 건 없겠지?’
그런데 그때였다.
장표사가 문득 일행을 향해, 갑자기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 아닌가.
“흠흠. 적린휘성께서 짜신 작전이고, 군사께서도 납득하신 작전 아닌가! 우린 그냥 군말 말고 따르자고!”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일견 표사들을 향해 하는 말인 것처럼 보였으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무림맹 무사들 들으라고 하는 말.
표사들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면, 굳이 이처럼 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었을 테니.
아마 자신이 “선제 타격? 그게 정말이냐?”라고 말한 이후, 일대가 소란스러워진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뱉어낸 말인 것 같았다.
물론 무림맹 무사들 또한 그 의도를 알아챘는지,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 저들의 눈빛엔 적의가 가득하지 않을까?
소령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공자님께서 이런 것까지 바란 건 아니실 텐데.’
표사들은 어느덧 각자 병장기에 손을 올리곤 바짝 경계심을 세우고 있었다.
이에 소령은 울상을 지었다.
공자님께서 내리신 임무를 이렇게 실패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때였다.
“뭐야? 적린휘성이 짠 작전이었던 거야?”
갑작스레 근처에 있던 무림맹 무사 하나가 실실 웃으며 말을 해왔다.
소령은 저도 몰래 귀가 쫑긋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인 것.
“아까 그 야간 경계 서던 놈 누구야. 아무리 밤이어도 그렇지. 적린휘성도 못 알아본 거야?”
“적린휘성, 그 친구가 짠 작전이면 틀리진 않겠지.”
웅성웅성.
한껏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던 장표사를 비롯한 표사들도 당황스러워하긴 마찬가지. 어느덧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이들은 몰랐지만,
실제 무림맹에서 금태산의 입지는 벌써 꽤나 상당했던 까닭.
세운 공도 어마어마했고.
얼마 전엔 마교의 좌호법과 대결을 펼치기도 하지 않았나.
하물며 항상 맹주인 남궁벽과 붙어 다니니.
평무사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때문인지, 몇몇 무림맹 무사들은 표사들에게 다가와, “밤이 어두워서 못 알아봤네. 금화표국 표사들이었구먼.” 이런 식의 이야기를 건네며 호의적인 태도로 통성명을 해오기도 했다.
문득 장표사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소령아, 이거 기분이 참 이상하다.”
“네?”
“엄청 뿌듯해.”
다른 표사들의 분위기도 장표사와 비슷했다.
금태산이 표국 내에서 인정을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던 것.
물론 소령 또한 같은 감정이었다.
가슴속에서 뭉클, 무언가가 샘솟았다.
그렇게 다들 흐뭇하게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다들 모이셨습니까.”
마침내.
‘···공자님.’
정면에 마련된 작은 단상 위에 금태산이 나타났다.
***
단상 위에 올라, 천천히 좌중을 둘러봤다.
‘소령이 훌륭히 작전을 수행해줬군.’
이 정도 소란이면, 충분히 적들도 우리가 출정을 준비하고 있단 걸 알아챌 터.
이번 작전의 핵심은 적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적들이 우리의 동향을 놓쳐선 안 됐다.
물론 예상과 달리, 좌중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 보이기도 했지만.
‘소령과 표사들이 무언갈 한 것 같군.’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지금부터 펼쳐질 작전은 자연스러움이 생명.
“지금부터 저와 군사님의 지휘 아래, 마인들의 거점을 습격할 예정입니다.”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다.
그때 옆으로 다가오는 제갈천소.
“적린휘성의 말이 맞습니다.”
기관진식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하고 오는 길일 터.
제갈천소는 곧 무림맹 무사들을 통솔하여 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군사께서 도움을 주니, 편하군.’
가만히 편성되는 부대를 바라보며, 이곳에 오기 전 세운 계획을 한 번 더 상기했다.
불과 일 식경 전.
“그러니까, 출정을 하는 시늉만 하고 돌아와, 무림맹 내부에 매복을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무창상단의 창고로 출정을 했다 다시 돌아와 달라는 내 말에 제갈천소는 이처럼 반응했다.
“그렇습니다.”
납득을 시키기 위해, 현재 놈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었다.
적들이 그곳에 덧을 놓은 것 같다고.
물론 그 꼬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가 그 창고를 공격하는 틈에, 무림맹을 습격하려 하는 것 같더군요.”
고개를 주억인 제갈천소.
이후 그에게 나름의 작전 또한 설명했다.
“따라서 저희는 그걸 역이용했으면 합니다. 적들 몰래 무림맹 내에 매복을 하고 있다 놈들이 무림맹에 들어오면 그때 기습을 하는 것이지요.”
“확실히 적들은 우리가 자리를 비운 줄 알 테니, 꽤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더욱이 진법과 기관진식을 활용한다면, 수월하게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물론 무창상단의 창고에 있는 마인들도 처리를 하긴 할 테다.
다만 그건 소령과 표사들이 맡을 일.
비교적 무위가 뛰어나 보이지 않는 마인들로 구성된 집단이었으니.
소령과 표사들로도 충분할 테다.
솔직한 심정으론 소령과 표사들을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곳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놈들의 본부에 잠입하는 거지.’
무림맹을 습격하느라, 상대적으로 병력이 빠져 있을 본부를 습격한다는 말.
현재 난 신녀의 부하였던 노인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노인의 위치가 동호 위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걸 보면, 분명 그곳이 놈들의 본진일 터.
‘실제 아까 동굴에서 심문한 마인들에게 들은 정보에 따라도 대략 그쯤이었고.’
그곳에 도착해, 남아 있는 잔당들을 처리하고.
강불해의 심복으로 보이는 놈들을 납치하여 심문할 예정이었다.
그들로부터 얻어내야 할 정보가 무척이나 많았으니···.
정말 신녀의 말처럼 봉황 무늬의 검 때문에 강불해가 부모님을 습격한 것이 맞는지부터.
그게 대체 무엇이길래 이 사달이 난 것인지.
그리고 천마신교 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까지.
‘향후 놈들의 계획도 알아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테지.’
생각의 정리를 마친 뒤, 슬쩍 무림맹의 정문 근처로 다가갔다.
‘···꼬마의 움직임이 분주해졌군.’
기사를 펼쳐 꼬마의 냄새를 추적해보았다.
상대적으로 냄새가 진해졌다 옅어졌다 하는 빈도가 늘어난 걸로 말미암아, 놈은 우리의 출정 준비에 맞춰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일 터.
이후 작전대로 움직였다.
무림맹 내에 이런저런 진법을 설치하고.
무창상단의 창고로 진군하는 척을 했다.
그 뒤엔 소령과 표사들만 계속 무창상단의 창고로 진군하도록 두고.
무림맹 무사들은 슬쩍 빠져 빠르게 무림맹 내로 복귀. 그 뒤에 매복.
물론 이 과정에서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진법을 사용해,
표사들의 숫자를 부풀려 보이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들에겐 우리가 퇴각 후 매복을 준비한다는 걸 들켜선 아니될 테니.'
왜 음양굴을 습격할 때 사용했던 방법 있지 않은가.
그걸 조금 응용했다.
진법을 이용해 흡사 거울과 비슷한 막들을 잔뜩 설치한 뒤, 그 사이로 진군을 하게 하는 것.
이러면 무림맹 무사들이 빠진 것이 티가 나지 않을 테다.
“표두님, 진법은 언제 봐도 신기합니다.”
옆에서 장표사가 “흐흐흐.” 웃으며 말해왔다.
고개를 끄덕여준 채, 무창상단의 창고로 일행을 보냈다.
“절대 흩어지지 마라. 꼭 뭉쳐서 싸워야 한다. 또한 적들을 섬멸하는 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너희의 목숨이 우선이다.”
표사들에게 이런 식의 진심어린 충고를 건네주었다.
물론 소령에게도 충고를 주었다.
“만약 도망치는 적들이 있다면, 굳이 추적하기보단, 기사로 냄새를 기억하는 데에 집중해줘.”
“네, 공자님.”
"어차피 나중에 처리하면 되니까."
사실 그리 어려운 작전은 아니었다.
이후 나는 동호를 향해 경공을 밟았다.
혹여 눈에 띌까 소령에게 배운 월묘보를 이용해, 밤의 어둠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윽고 동호에 도착한 뒤, 무림맹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기가 피어오른 걸 보니, 벌써 싸움이 벌어진 모양.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눈앞의 동호를 봤다.
곧 동호 위에 있는 노인의 냄새를 추적했다.
이윽고 작은 섬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고.
스리슬쩍 그 섬에 잠입했다.
***
‘역시 여기 있었군.’
노인을 통해 신녀에게 받았던 초상화 속 강불해의 심복들은 상당수가 이곳에 있었다.
‘강시를 만들고 있는 건가.’
그들은 강시를 만들기 위해 마인들에게 이런저런 약물을 주입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건 명확치 않았다.
잠시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할지 고민할 때였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꼬마.
‘역시 여기 있었군. 근데 뭐하는 거지?’
그때 그 꼬마였다.
이 몸을 배신했던 그 꼬마.
쫙!
그 꼬마는 곧 뺨을 맞고 바닥을 굴렀다.
꼬마를 때린 건, 뚱뚱한 여인.
여인이 말했다.
“네놈! 설마 우릴 속인 것이냐?”
대화의 내용을 들어보니,
무림맹에 무사들이 매복하고 있던 것에 대한 보고를 듣고,
그에 대해 추궁을 하는 것 같았다.
‘제갈천소가 작전을 잘 수행했나 보군.’
만족스러웠다.
쫙!
그때 한 차례 더 가해진 타격.
꼬마는 이내 기절을 해버렸다.
여인이 말했다.
“이놈을 당장 가둬라! 놈의 할아비와 함께 실험체로 써야겠구나.”
헌데.
‘실험체?’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이상한 말을 들었다.
하물며.
“할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은 진심인 줄 알았거늘. 무림맹에 협조를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군.”
그 뒤에 하는 말의 내용 또한 이상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다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선 조금 더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정확히는 습격을 벌이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려는 것.
‘우선 꼬마를 심문해볼까?’
기절한 상태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꼬마.
그 뒤를 따랐다.
‘감옥?’
그곳엔 동물 우리와 같은 감옥이 있었다.
그리고···.
‘···노인도 저기에 갇혀 있군.’
천장 위로 올라, 감옥의 구조를 살폈다.
대략 여섯 명의 마인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월묘보를 통해, 내부로 잠입한 뒤, 그림자 속에서 비도를 꺼내들었다.
‘4명은 비도로 처리하고, 두 명은 검으로 죽이면 될 것 같군.’
현재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비도의 숫자는 4개뿐.
비도를 사용하면서 느낀 바에 따르면, 이 12자루의 비도를 모두 사용하려면, 특별한 무공을 익혀야 가능할 것 같았다.
‘···비도의 구조를 통해, 어떤 무공일지 대략 짐작은 되지만.’
아무래도 이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빠르게 비도를 뿌렸다.
슈슈슉!
소리 소문 없이 간수들의 목을 꿰뚫었고.
순식간에 네 명이 허물어졌다.
나머지 두 명은 소리를 지르기 전에 검으로 목을 베었다.
촤악- 푹!
이후 진법으로 시체를 숨긴 뒤, 열쇠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 설마? 왜 당신이 여기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신녀의 부하였던 노인이었다.
초췌한 몰골의 노인이 깜짝 놀란 얼굴로 이 몸을 보고 있었다.
꼬마와 노인을 번갈아보다 노인에게 다가갔다.
꼬마는 아직 기절해있는 상태.
노인에게 물었다.
“왜 배신한 겁니까.”
물론 배신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리 묻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노인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다, 당장.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십쇼.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고개가 갸웃했다.
이윽고 노인은 눈을 홉뜬 채 말을 이었다.
“신녀님께 내림을 받았습니다.”
“내림 말입니까.”
내림은 영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 했다.
“부교주가, 부교주가 지금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가고 손이 떨렸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물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후 노인의 말이 다급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