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신녀(2)
52화. 신녀(2)
‘천마신교의 신녀라.’
신녀라 하는 건, 일종의 제사장과 같았다.
눈앞의 묘사문 제자는 아마 신녀가 술법으로 꾀어낸 꼭두각시일 듯.
‘···일종의 섭혼인가.’
섭혼술. 상대방의 영혼에 간섭을 하는 것.
이런 것도 가능한 인물이라니.
비록 신녀를 마주하는 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위험한 인물이란 것.
더욱이 워낙 두문불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강불해를 비롯한 다른 마인들도 그녀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었다.
딱 한 가지 뇌옥에서 들었던 신녀에 대한 정보는···.
‘그녀는 천마신교와 운명을 함께한다고 하지.’
성화가 꺼지면 그녀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성화는 교세가 기울면 꺼진다고 들었다.
물론 그녀는 성화 덕분에 여러 주술을 쓸 수 있고.
이따금씩 예언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어쨌든 누구보다 천마신교에 충성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의미.
묘사문 제자의 목에 댄 칼을 조금 더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날 보고 싶다고 한 이유가 무어냐.”
놈은 입꼬리에 진한 호선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글쎄. 나름대로의 대업을 위해서라고 할까.”
“대업?”
썩 기분이 좋은 단어는 아니었다.
이후 놈은 마치 신기한 생물을 관찰이라도 하듯.
그 새까만 눈으로 뚫어져라 이 몸을 훑기 시작했다.
“···역시. 훌륭하구나. 아름다워.”
무언가 달리 보이는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다만 언뜻언뜻 보이는 탐욕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문득 천마신교 뇌옥에서 보낸 처절한 10년이 생각나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나 또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놈의 눈동자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놈의 눈에서 터져 나온 새까만 안개가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상황 아닌가.
‘···일종의 진법을 펼친 건가.’
외부로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계를 한 것 같았다.
물론 깨뜨리려 하면 얼마든지 깨뜨릴 수 있었다.
다만 지금 진법을 깨뜨리는 건, 그저 이 순간을 회피하는 꼴밖엔 되지 않을 터.
아직 왜 놈이 내게 접촉해온 것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그걸 먼저 알아낸 뒤, 깨뜨려도 늦지 않았다.
놈의 목에 겨누었던 칼을 거두었다.
“왜 칼을 거두느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놈에게 말했다.
“만약 내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진법을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테지.”
놈의 눈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곧 그녀는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과연. 역시나 다르구나.”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고르는 놈.
잠시 천하의 정세이니,
기운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두로 늘어놓더니,
마침내 본론을 밝혔다.
“나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꾸나. 내게 오너라.”
목소리에 탐욕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도 몰래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익숙한 말이군.’
놈에게 말했다.
“좌호법이 한 말과 같군.”
“아니. 다르다.”
“다르다고?”
“나는 분명 함께 세상을 만들자고 했을 텐데? 좌호법이 네게 그랬더냐.”
절로 미간의 골이 잡혔다.
그러고 보니, 좌호법은 그런 식의 이상향을 밝히지 않았다.
잠시 놈의 말의 무게를 곱씹었다.
조금 더 놈의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함께 세상을 만들자는 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함께 마교천하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그럼 내게 한 자리를 준다는 의미일까.
물론 마교천하에 협조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의아한 것이···.
“그걸 혼자 결정할 수는 있는 것이냐. 천마가 가만히 있을까?”
과연 그녀에게 인사권이 있느냐 하는 것.
일전에 제갈천소가 했던 말이 떠올라 꺼낸 말이었다.
분명 그때 그가 그러지 않았나.
천인은 다음 대의 천마와 같은 단어인 것 같다고.
그리고 그런 인물을 공개적으로 찾아다는 건,
당대의 천마가 온전하지 못한 상황인 걸로 추측이 된다고.
그러니 만약 정말 그렇다면···.
아니나 다를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니 걱정 말거라.”
잠시 당황을 하는 것도 같았다.
고개를 끄덕여줬다.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헌데. 너희는 왜 나를 탐내는 거지?”
“일단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라고 해두지.”
이건 상정했던 질문인지,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때문에 도리어 믿음이 가질 않았다.
“물론 천마신교 구성원 모두가 나나 좌호법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라.”
“눈에 불을 켜고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도 적지 않지. 예를 들어 부교주도 그렇고···.”
저도 몰래 눈이 뜨였다.
‘강불해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건가.’
주먹을 꾹 쥐었다.
어쩌면 홍택호에서 수로채를 박살낸 것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묘했다.
이후에도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혹시 천기에 대해 알고 있나?”
그녀는 곧 천인이 마신을 강림시켜 마도천하를 이룰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천인을 찾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고민 말고 자신들과 함께하자고 했다.
“말이 되질 않는군. 곧 천인이 마신을 강림시킬 건데, 천인을 찾고 있다라.”
“언제가 되었든, 천인은 운명적으로 마신을 불러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운명이라고?”
“그래, 운명. 다만 시기와 누구의 편에 서느냐의 차이일 뿐.”
신녀라고 예언이라도 하는 것일까.
빤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노라 대답했다.
물론 모든 말을 신뢰하진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 전생을 겪고도 덜컥 믿는다면 바보짓이었다.
“헌데.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증거를 내놓으라 했다.
일종의 정보를 유도한 것.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그녀를 봤다.
직접 증거를 대라는 의미였다.
그녀도 곧 내 의중을 파악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입을 오물거리며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당탕탕- 챙챙!
갑작스레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들.
흡사 밖에서 싸움이라도 난 모양새였다.
빠르게 놈을 봤다.
“설마 네가···.”
“이런. 벌써 방해를 시작한 건가.”
“방해?”
그녀가 한 짓은 아니라고 했다.
“부교주와 사이가 별로거든.”
저도 몰래 눈이 커졌다.
‘그럼 지금 밖에 부교주가 온 건가?’
다만 그건 아닐 거라고 했다.
곧 그녀의 미간에 골이 잡혔다.
그녀가 말했다.
“나를 어떻게 믿느냐고 했나.”
내가 진법을 깨뜨릴 것 같자 건네는 말이었다.
일단 싸움이 난 것 같으니, 참전을 해야 할 터.
사실 내가 아니어도 조만간 이 진법은 깨질 위기이긴 했다.
밖에 있던 남궁벽이 진법을 발견하고 내력을 흘려보내고 있었으니.
어차피 곧 깨질 진법. 일단 말이나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곧 그녀가 말했다.
“이거면 좋겠군. 혹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을 아느냐.”
“뭐라?”
“네게 정보를 하나 주지.”
“정보?”
“동호로 가라.”
저도 몰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대뜸 동호로 가라니, 그곳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그곳에 부교주의 심복이 있다.”
순간 저도 몰래 동공이 팽창했다.
잽싸게 그 의미를 물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그때였다.
“금화표국의 전 국주. 왜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말과 함께 검은 연기를 흩뿌리는 놈.
막 입을 열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 할 때였다.
“조만간 사람을 보내마.”
쏴아아-
검은 연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콰장창!
“자네 괜찮나?”
진법이 깨졌다.
고개를 돌리니 남궁벽이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까까지 신녀가 있던 곳을 봤다.
‘사라졌군.’
신녀가 깃들었던 묘사문 제자 놈은 한 줌 핏물이 되어 있었다.
이후 남궁벽과 함께 뇌옥을 나와 마인들을 맞았다.
적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저 소란을 일으킬 정도.
‘···정말 신녀를 방해하기 위해, 강불해가 보낸 마인들이었던 건가.’
심지어 나와 남궁벽이 참전을 했을 땐, 이미 퇴각을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맑게 갠 하늘 아래.
우리는 말을 몰아 산서성 대동현의 산채를 빠져나왔다.
다그닥. 다그닥.
얇게 깔린 구름들을 보며, 전날 신녀와 나눈 대화들을 상기했다.
세상을 함께 쥐자느니.
마신의 강림은 운명이라느니.
‘순 몽상가 같은 말뿐이군.’
물론.
‘쉬이 믿기지도 않고.’
어쩌면 이 몸을 단순히 이용하려 하는 걸지도 몰랐다.
실제로 마지막에 강불해의 이야기를 꺼낸 것만 해도 그랬다.
다만.
‘만약 강불해가 공통의 적이라면, 잠시 협조를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지.’
하물며 이 몸의 부모님이 죽은 이유가 강불해와 관련이 있다는 어투였지 않은가.
실제로 이 몸의 18번째 생일 날,
이 몸과 함께 동호에서 뱃놀이를 하다 괴인들의 습격을 받고 돌아가시지 않았나.
···정확히는 이 몸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시지 않았나.
절로 입술이 다물어졌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차분히 숨을 골랐다.
이런 걸 정말 운명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신녀는 분명 조만간 사람을 보낼 것이라 했다.
말을 몰며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상기했다.
크게 복잡하진 않았다.
강해지는 것.
일단 지금보단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최소한 보옥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색골음마와 싸울 때 냈던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조만간 있을 일들도 무리 없이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에 대한 방법도 있었다.
일례로 오늘 새벽.
무림맹 무사들 중 제갈세가 인물이 하나 찾아왔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군사님께서 향후 행선지를 여쭈셨습니다. 만약 표국으로 갈 것 같으면 미리 말씀을 달라고요.”
이곳 산서성을 벗어나면 어디로 향할 것이냐는 물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었다.
오랜만에 표국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리고 방금 무사가 건넨 말의 정확한 의미는
만약 금화표국이 있는 호북성으로 갈 거면, 제갈세가를 들려달라는 말일 터.
‘분명 가문의 귀인으로 모신다고 했던 말 때문일 테지.’
추측하기론 기관진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안달하는 것도 같았다.
자랑하던 기관진식이 나한테 깨지지 않았었나.
물론 겸사겸사 나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함도 있을 테다.
어쨌든 이 말에 대해 남궁벽이 이런 말을 얹었었다.
제갈세가엔 신병이기가 많다고.
그리고 제갈세가가 귀인으로 모신다는 말은 그런 보물들 중 하나를 내어준다는 말과도 같다고.
신병이기라 하면, 전설 속에 등장하는 보검이나 보갑들.
어쩌면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기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차라리 영약을 요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신병이기 대신 그와 버금가는 영약을 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기관진식에 대해 조언을 조금 주면, 거절할 것 같지도 않고.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문득 기연을 생각하니, 비단주머니에 넣어둔 깨진 보옥에 생각이 닿았다.
마찬가지로 보따리에 넣어둔 붓과 비단주머니에 함께 넣어둔 부적도.
‘그러고 보니, 부적을 만들기만 했지 실제로 붓의 공능을 살피진 못했었군.’
가는 길에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부적을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비단주머니를 꺼내 입구를 벌렸다.
헌데.
‘···부적이 어디간 거지?’
분명 깨진 보옥과 함께 넣어뒀거늘.
그때였다.
‘잠깐. 이게 뭐지?’
저도 몰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부적이 문제가 아니었다.
'보옥이 대체···.'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옥을 꺼냈다.
마른침을 삼키며 손바닥 위의 보옥을 봤다.
'···붙었어.'
보옥의 깨진 조각들이 얼기설기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