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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48화 (48/133)

048화. 현암표국(1)

48화. 현암표국(1)

현암표국(現巖镖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따랐다.

세 대의 마차와 십여 명의 표사와 쟁자수로 구성된 행렬.

잠시 지켜본 바에 따르면, 마차엔 항아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마 강시를 만들 때 쓰이는 하얀 액체가 내용물인 항아리들일 테지.’

광현의 말에 따르면, 현암표국은 강소성 동태현에 있는 작은 표국이라 했다.

지리적으론 동태도관과 묘사문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고.

“도사님, 혹시 달리 더 아는 것은 없으십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이에 나는 현암표국에 대한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고.

곧 광현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저기 국주가 성격이 아주 불같기로 유명하네.”

“그러면 상인들이 별로 안 좋아할 텐데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상인들하고 대판 싸웠다는 것 같더군.”

“상인들하고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나마 그때 같이 자리하고 있던 그 집 막내딸이 중재해서 큰 문제로 번지진 않았지만, 그 뒤로 이래저래 일감이 뚝 끊긴 것 같더군.”

때문에 지금은 재정형편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했다.

하여 고리대금에까지 손을 뻗었다나?

곧 광현은 씁쓰레한 목소리로 이런 말도 했다.

“어쩌면 마교에 투신하기로 한 것도 돈 때문일지도 모르지.”

광현은 아마 현암표국 또한 마교에 투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묘사문과 함께 하고 있으니, 그리 생각이 든 모양.

하물며 하얀 액체가 든 항아리도 옮기고 있었으니···.

잠시 그런 광현을 바라봤다.

‘이건 정정해줄 필요가 있겠군.’

난 현재 광현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

잠시 말을 고르다 대꾸해주었다.

“그건 아마 아닐 겁니다.”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도사님 말에 따르면, 저들은 돈이 궁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돈이 궁하다고 했으니,

표물이 무엇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덥석 맡은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더욱이.

“뿐만 아니라, 보면 한 무리라기엔 둘의 관계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의견도 계속 충돌하는 것 같고요.”

실제로 요 얼마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시도 때도 없이 행로에 참견하는 묘사문 장로들 때문에,

둘의 갈등의 골은 상당히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묘사문의 입장에선 백 번 조심해도 부족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사정을 모르는 현암표국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실력을 의심받는 것 같을 테니,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않겠는가.

물론 이 밖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묘사문 문도로 추정되는 인물들에게선 혈각대에서 쓰는 마공의 흔적이 느껴지는 반면···.’

현암표국의 무리에게선 전혀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심지어 몇몇은 도가 문파나 불가 문파의 정순한 내공심법을 익힌 것처럼도 보였다.

잠시 그렇게 광현과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생각 정리를 마친 나는 일행을 향해 작전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저들을 따라갈 겁니다.”

“미행을 하겠다는 말인가.”

“당장 저들을 습격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일 테니까요.”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는가.”

“저들의 행선지를 파악해야죠.”

“행선지를?”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묘사문은 분명 마교에 투신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어딘가에 있을 마교의 은신처를 찾아가는 걸 테고.

그걸 알아내겠다는 말.

“너무 위험하네.”

“그렇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지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문득 광현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꼭 얼마 전 좌호법과 싸운 뒤 부상을 입은 나를 바라볼 때의 표정과 같았다.

물론 그의 걱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안전책도 준비해둘 생각이고···.’

광현에게 말했다.

“하여 도사님은 지금부터 따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나만 따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도사님은 무림맹으로 가 이곳의 상황을 알리고 지원군을 이끌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광현을 무림맹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 그것.

일종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러면 충분할 테다.

“조심하게.”

“물론입니다.”

이윽고 광현이 떠나고.

우리는 계속 살금살금 현암표국의 뒤를 밟았다.

***

미행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을까.

우리는 강소성의 경계를 넘어, 하남성으로 진입했다.

‘오늘은 마을에서 묵어갈 생각인가 보군.’

현암표국의 뒤를 따라 도착한 어느 작은 객잔.

워낙 벽지에 있는 객잔인 까닭에 달리 이름도 없는 객잔이었다.

그곳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여행객인 척 국수를 먹고 있었다.

정확히는 국수를 먹는 척하며, 연신 현암표국과 묘사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낮에 한 차례 말다툼을 하는 것 같더군.’

하필 그때 거리를 꽤 벌린 상태라 듣질 못했다.

하여 혹시 다시 그때의 일이 회자될까 귀를 기울이는 것.

그때 문득 소령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공자님, 그런데요. 현암표국에게 직접 찾아가서 양해를 구한 다음에 목적지를 물어보면 안 될까요?”

잠시 이게 무슨 말일까 고민했다.

‘묘사문이 마인이니, 협조를 요청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인 것 같군.’

아마 객잔에 들어오기 전, 백미려와 나눈 대화 때문에 하는 말인 것도 같았다.

그때 나는 백미려에게 이런 물음을 했었다.

“혹시 하남성에 있는 하오문 지부를 통해 저들의 목적지를 알아보는 건 불가능하겠습니까.”

강소성은 얼마 전 색골음마 사건으로 인해, 하오문 지부가 흔적도 없이 와해되었다지만.

이곳은 그 전란의 영향이 비교적 덜 미친 곳이지 않는가.

혹시라도 이들의 목적지가 하남성의 어딘가라면, 하남성에 있는 하오문 지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한 말이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듣기론 하남성에 있는 하오문 지부는 백미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 했다.

더욱이.

“현재 하오문의 상황은 한 마디로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와 같습니다.”

이런 말도 했다.

진학주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루주들은 각자의 세력을 끌어 모아 너 나 할 것 없이, 공석이 된 하오문 문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어쨌든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후 저들의 목적지에 대해 몇 마디 말을 더 나눴고.

어쩌면 그곳에서 상당한 수준의 마인들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말을 나눴었다.

때문에 소령의 입장에선, 내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때부터 유독 표정이 우울했으니.’

그래서 이처럼 나름대로 해결책을 궁리한 것 같았다.

기특한 생각이었다.

다만.

“내 생각엔 힘들 것 같아.”

애석하지만, 썩 좋은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았다.

‘현암표국이 우리 말을 믿지 않을 땐, 꽤나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테니.’

현암표국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고객을 음해하는 꼴이지 않는가.

자칫 묘사문에게 우리가 한 말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목적지를 바꾸거나.’

몰래 전서구 같은 걸 날려 아군에게 위기를 알릴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현암표국에게 알린 목적지가 진짜 그들의 목적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소령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이후엔 차라리 장대비라도 내리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표행이 늦춰지면, 우리를 뒤쫓고 있을 무림맹과의 간격도 좁혀질 테니···.

그러던 그때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객잔 안에 일어난 갑작스런 소란.

고개를 돌려 소란이 난 곳을 봤다.

현암표국의 표두로 보이는 여자와 묘사문의 장로로 보이는 남자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처음 약조할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남성에 진입하면 중간 정산을 해주신다고요.”

“분명 그랬지. 근데 오는 길에 돈주머니를 분실한 걸 어떡하나.”

돈 문제 때문인 것 같았다.

계속 듣다 보니 아까 낮에 나눈 말다툼의 연장선인 것도 같았다.

묘사문의 장로로 보이는 마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까 낮에 그러지 않았나. 근처 마을에서 돈을 융통해보겠다고.”

“지금 여긴 마을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러니 주셔야죠.”

“근데 마을이 코딱지만 해 전장이 없는 걸 어떡하나.”

이후 몇 차례 더 고성이 오갔다.

“···그럼 다음 마을에선 주시는 겁니까.”

“그건. 그때 융통을 할 수 있으면···.”

애초에 계약을 중간에 한 번 돈을 정산하기로 했던 모양.

“저흰 장로님만 믿고 이 표행을 따라나선 거 아닙니까.”

“내 잘 알지.”

“저희 표국의 사정이 안 좋은 것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여기서 대금을 치루지 않는다면 저희도 쟁자수들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어집니다. 그럼 결국 그들은 떠날 테고요.”

“아니. 누가 떼어먹기라도 한다고 했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시금으로 주겠네. 그러면 되지 않나. 그러니 쟁자수들은 자네가 어떻게 잘 달래보게.”

“목적지까진 아직 한참은 남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없는 돈을 어떡하나!”

저도 몰래 코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런 광경을 꽤 많이 들어봤다.

“공자님, 저거 분명 돈을 떼먹으려고 그러는 거겠죠?”

소령 또한 오랜 기간 우리 표국의 시비로 있었던 까닭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저러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엔, 돌아가서 준다고 할 거예요.”

하물며 저들은 마인이지 않는가.

과연 목적지에 도착한 뒤, 저들을 살려둘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현암표국의 표두도 바보는 아닌지, 대략 그들의 의중을 짐작한 것 같았다.

이후 한참은 더 고성이 오가고.

결국.

“됐습니다! 돈 주실 때까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뭐라? 그럼 계약 위반 아닌가!”

“애초에 누가 먼저 계약을 위반했습니까.”

현암표국의 표두와 표사들은 1층 객잔에 묘사문 장로들만 남겨둔 채, 우르르 2층으로 올라갔다.

‘상황이 꽤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물론 재미있는 상황과는 별개로 이대로 표행이 와해되면, 자칫 묘사문 놈들의 행선지를 찾는 일엔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무림맹이 올 시간을 벌어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자칫 마교에 투신하려던 일이 아예 무산될 수도 있겠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마교에서 저들을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1층 객잔에 남은 묘사문 문도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장로님,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하필 이런 벽지에서 다투시다니요.”

당연히 저들 또한 다급한 모양.

“지금 자네도 나를 나무라는 건가?”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여긴 달리 다른 표국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흰 하루 빨리 움직여야 하고요.”

그러던 그때였다.

방금 묘사문 제자의 말을 듣고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으니···.

‘이거 잘하면···.’

잘하면 보다 쉽게 목적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백미려와 소령에게 속삭였다.

“잠깐 연기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

“연기 말입니까.”

차분히 작전을 설명했다.

“일단 제 부하인 척 해주시면 됩니다. 그 뒤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묘사문 문도들에게 향했다.

***

“상황이 많이 곤란하신 모양입니다.”

염소수염의 사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여기 책임자인 것 같으니.’

아까 현암표국의 표두와 말다툼을 했던 마인이기도 했다.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 보군.”

물론 이 또한 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죄송합니다. 꼭 남 일 같지 않아서.”

내 말에 염소수염의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남 일 같이 않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잽싸게 계획대로 말했다.

“하하. 저도 표국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지금 시비 걸로 온 건가?”

“아닙니다. 그저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이후 현암표국이 너무한 것 같다는 식의 말을 건넸다.

표행 중엔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현암표국의 행동은 상도에 어긋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그들의 편을 들어줬을까.

묘사문 일행의 눈동자에서 하나둘 경계심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계획대로군.'

어느덧 그들은 내 말에 푹 빠져 있었다.

하여 때를 보다 넌지시 말했다.

“···그래서 제가 도움을 좀 드릴까 해서 왔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목적을 꺼낼 차례.

옆에 있던 비교적 젊은 남자가 물어왔다.

“어떻게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꿀꺽. 남자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를 향해, 은밀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아까 듣기론 표행 계약이 깨진 것 같던데. 그 표행 제가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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