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화. 묘사문(1)
45화. 묘사문(1)
동태도관 별실.
“몸은 좀 괜찮은가.”
남궁벽이 물어왔다.
동태도관에 도착할 무렵,
마중을 나와 있던 남궁벽은 긴히 나눴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 몸을 이리로 이끌었다.
그의 말에 적당히 대답을 해주며, 앞에 놓여 있던 차로 입술을 축였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외상은 물론이고 내상까지 말끔히 나았습니다.”
“다행일세.”
그 또한 본인 앞에 놓여 있는 차를 홀짝였다.
머지않아 근처에 있던 시종이 남궁벽의 찻잔에 찻물을 추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소령이 생각났다.
‘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별실로 올 때, 도사들과 함께 객실로 향한 소령.
백미려를 몰래 살피고 싶다고 했었는데, 원하는 바는 잘 이뤘는지 모르겠다.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받게나.”
남궁벽이 품에서 작은 목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뚜껑에 무(武)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는 목함이었다.
상념에서 빠져나와 남궁벽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일종의 선물이네."
"선물 말입니까."
“무림맹 상급 무사들에게 해년마다 지급되는 요상단이지.”
뜻밖의 선물에 저도 몰래 눈이 커졌다.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값비싸 보이는 물건이군.’
아니나 다를까 남궁벽은 나름 귀한 물건이란 말을 덧붙였다.
원래는 외부인에게 건네선 안 되는 물건이지만, 특별히 내어주는 것이란 말도 함께였다.
“이번엔 운이 좋아 우리가 제때 도착했지만, 항상 그러리란 법은 없지 않나.”
좌호법 색골음마와의 전투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당시 남궁벽 또한 내 부상의 정도를 눈으로 확인했던 터라, 내심 마음이 쓰였던 모양.
뭐, 주는 물건. 마다할 필요는 없으니, 일단 고맙다 인사를 하곤 목함을 갈무리했다.
“사실 부대주급에게 지급되는 보갑도 건네주고 싶었으나, 이건 형평성에 너무 어긋나는 것 같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어쩔 수 없었네.”
부대주급에게 지급되는 보갑이라.
이후 그는 은근한 목소리로 무림맹 무사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놨다.
‘무림맹 가입을 권유하려 부른 건가.’
듣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대략 그런 의도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더 이야기가 오갔을까.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어 불렀다고 하더니···.’
눈치껏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이것 참. 내가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실없는 소리를 했나 보군.”
남궁벽 또한 내 의중을 눈치 챈 것인지, 재빠르게 화두를 전환했다.
반쯤 떨어졌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윽고 그는 품에서 주섬주섬 지도를 하나 꺼내들었다.
‘중원 전역을 포괄하는 지도인가.’
얼핏 보이기엔 그런 것 같았다.
그는 곧 그걸 탁상 위에 펼쳐놓았다.
“사실 마교와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자넬 부른 거네.”
아마 이제부터 본론인 모양.
이후 그는 지도의 군데군데를 손짓했다.
지도엔 빨간 점이 여럿 표시되어 있었다.
특히 감숙성과 청해성 인근에 유독 많이 모여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남궁벽이 답했다.
“이번에 생포한 마인들과 하오문도들을 심문하여 만든 지도일세.”
빨간 점은 천마신교의 마수가 뻗힌 곳을 표시한 거라 했다.
고개를 들어 잠시 그를 봤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지도를 보니,
유독 마교의 본산인 천산 근처에 빨간 점이 많아 보였다.
남궁벽은 이를 두고 마교의 세력도라 명명했다.
“세력도 말입니까.”
···헌데.
‘생각보다 훨씬 빨간 점이 많군.’
각 성마다 최소 한 개씩은 빨간 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남궁벽이 말했다.
“심문한 결과에 따르면, 근래 빠른 속도로 사파에 속하는 문파들이나 흑도 무뢰배들을 규합하고 있다더군.”
심지어 정사지간의 문파들도 몇몇 의심이 가는 곳이 있다고 했다.
물론 빨간 점이 찍힌 곳이라고 완전히 천마신교에 넘어간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하오문에서도 백미려처럼 우리 편에 서는 사람이 있지 않았나.
다른 문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했다.
‘불행 중 다행이군.’
남궁벽이 말을 이었다.
“아마 강시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고부터 급하게 추진한 것이 아닐까 싶네.”
음양굴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는 이야기.
하여 한동안 무림맹이 무척이나 바빠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며 그는 넌지시 정마대전이라는 단어도 언급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터질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자네 공이 있어 지도를 한 부 필사해 주고 싶긴 하나, 원칙적으로 이런 지도는 무림맹 간부들에게만 지급되는 것이라. 미안하지만 눈으로만 봐주게.”
무슨 말인가 잠깐 생각을 하니···.
‘아까 꺼냈던 보갑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인 것 같군.’
은근히 무림맹의 장점을 강조하는 모양.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알겠노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차피 다 외워서 상관없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간단한 교환이 끝나고 별실을 나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헌데. 그는 어떤 의도로 내게 이런 지도를 보여준 것일까.’
그렇지 않나.
이 몸이 무림맹 간부도 아니고.
달리 부탁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물론.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가장 큰 목적은 지속적인 협조를 요청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추후에 무언가 부탁을 할 수도 있지.’
어쩌면 비밀을 공유함으로 인해, 소속감을 만들어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물론 무림맹 가입을 은근히 독려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나 또한 천마신교에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기꺼울 따름이었다.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별실이 있는 내원을 나왔다.
하늘엔 해가 쨍하게 떠있었다.
‘당장 급한 일도 없으니, 소령한테나 가볼까?’
근처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도사에게 물어, 소령이 있을 객실을 향했다.
***
“혹 저와 함께 이곳에 온 여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객실에 있는 도사에게 물었다.
소령을 보기 위해 객실로 왔건만.
어디에서도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
‘백미려에게 갔나?’
멀리서만 지켜본다고 하더니, 말이라도 붙인 걸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백미려도 달리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것일까?
그때 도사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근처 시장에 가셨습니다.”
“시장 말입니까?”
헌데 이게 별안간 무슨 말일까.
대뜸 시장이라니.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니···.
“끼니 준비하는 걸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소령이 먼저 이야길 꺼냈습니까.”
“···사실 지금 숙수가 행방불명이 된 상태라.”
그때 별안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
‘숙수라.’
누굴 말하는지 대번 알 수 있었다.
아마 마인들에게 향로에 대한 정보를 발설한 그 숙수를 가리키는 것일 터.
‘결국 마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 같군.’
행방불명이라 표현을 하는 걸 보면, 시체도 수습하지 못한 모양.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도사가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모시는 분이 부상에서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끼니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던 참이라 잘됐다는 말씀도 함께 하셨습니다.”
모시는 분이라 하면 나를 가리키는 것일 터.
소령의 신분이 이 몸의 시비이니,
내 허락을 받지 않고 일을 시킨 것에 대한 일종의 변명일 테다.
“···그랬습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소령이 해준 끼니를 먹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군.’
꽤나 오랜 시간 떨어져 있지 않았나.
요 며칠은 그녀가 해준 음식 대신 객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고···.
물론 그녀는 더 이상 본인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어쩌면 조만간 시비의 일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소령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령이 올 때까지 도관이나 구경해볼까.’
천천히 경내를 거닐었다.
사실 이 또한 조만간 해야 할 일이긴 했다.
이곳은 모산파와 관련이 있는 곳 아닌가.
하물며 보옥이 보여준 환상 속의 도관으로 추정되는 곳 아닌가.
‘확실히 묘하군.’
분명 처음 보는 공간인데, 왜인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보옥 속의 기억이 스며든 까닭인 것 같았다.
걸음을 옮겨 동태도관의 산문으로 향했다.
동시에 품에서 보옥이 담긴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비단주머니 속 보옥은 이곳 동태현에 들어선 이후로 마치 변덕이라도 부리듯 오행의 기운을 제멋대로 흡수했다.
어느 땐 개미 눈곱만큼 흡수했다가, 또 어느 때는 폭포수만큼 흡수하는 모양새.
지금은 또 잠잠했다.
이윽고 도착한 동태도관의 산문.
고즈넉한 멋이 있는 산문이었다.
가만히 올려다봤다.
세월의 흔적을 고려할 때,
환상 속에서 봤던 도관은 이 도관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함께 봤던 산은 모산일 가능성이 농후.
그리고 그 말은···.
‘책과 부적, 깃발도 실제 있다는 걸 테지.’
환상 속에서 본 그 기물들도 실제 존재한다는 것일 터.
마인들이 이 보옥을 노린 걸 보면, 그들은 그 물건들도 노리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모산에 가면, 보다 명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길 때였다.
“공자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소령?”
“여기서 뭐하세요?”
시장에 갔던 소령이 도착한 모양.
“그냥.”
소령과 함께 장을 봐온 도사들이 내게 목례를 건넸다.
적당히 인사를 받았다.
이후 소령이 그러더라.
점심 맛있게 만들어드리겠다고.
기대하겠노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 도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엔 너무 바빠 보여, 차마 백미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어차피 서둘 필요는 없지.’
끼니부터 맛있게 먹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았다.
***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나란히 동태도관 경내를 거닐었다.
내가 물었다.
“루주는 봤어?”
“네, 봤어요.”
백미려가 식사자리에도 보이지 않기에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본 모양.
어땠느냐는 물음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일단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곧 소령이 말했다.
“근데 막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소령의 목소리가 왜인지 쓸쓸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소령을 봤다.
소령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바닥만 보며 걷고 있었다.
나 또한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봤다.
이윽고 다시 소령의 입이 열렸다.
“···그냥. 저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서요.”
나지막하게,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령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알 수 있었다.
소령은 지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얼핏 겁을 먹은 것처럼도 보였다.
대체 그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얼핏 짐작이 가는 것들이 몇 개 있긴 했다.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루주한테 네가 누군지는 밝혔어?”
이에 고개를 젓는 소령.
정말 먼발치에서 얼굴만 바라본 모양.
“무언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광현 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급히 밖으로 나가셨어요.”
“그래?”
어쩌면 이처럼 엇갈리는 상황에 마음이 시든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따로 자리를 만들어봐야 할까.’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먼발치에 광현이 보였다.
‘저긴 내게 주어진 객실일 텐데.’
두리번거리는 것이 꼭 이 몸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리고 그때였다.
모퉁이를 돌아 광현 옆에 나타난 한 명의 여인.
백미려.
그녀 또한 광현과 함께 이 몸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소령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소령의 어깨를 잠시 토닥여줬다.
이내 둘은 이 몸을 발견하더니, 곧장 이리로 오기 시작했다.
광현이 말했다.
“자네 혹시 지금 많이 바쁜가.”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슬쩍 주변을 살핀 광현이 말했다.
“혹시 사람 찾는 것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사람 말입니까.”
“···그. 숙수 있지 않나.”
이후 이어진 그의 말은 이랬다.
그 숙수의 아들이 사라졌다고.
단순한 가출로 볼 수도 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꺼림칙하다고.
“해서 루주한테 추적을 부탁했었네.”
그랬더니···.
백미려가 말을 받았다.
“흔적이 묘사문이라는 정사지간의 문파로 이어지더군요.”
순간 머릿속이 번쩍였다.
묘사문(猫蛇門).
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문파였다.
정확히는···.
‘아까 남궁벽이 보여준 지도에 있던 문파로군.’
마교의 손이 뻗친 건 아닐까 의심이 가는 문파 중 하나라 했다.
잠시 고민하다 그들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이후 백미려의 말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