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화. 보옥(3)
44화. 보옥(3)
홍택호(洪澤湖)는 표국이 있는 의창의 장강(長江)과는 조금 다른 멋이 있다.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그런지, 보다 깊고 어두워보였다.
그런 홍택호 인근을 소령과 나란히 걸었다.
“공자님, 몸은 괜찮으세요?”
그러하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당연하죠!”
나란히 걷던 소령이 돌연 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휙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 다 들었어요.”
나 또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무얼 다 들었다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 소령을 봤다.
이에 소령은 시선을 떨어뜨리며,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좌호법과 싸우다 크게 다치셨다고요. 손도 망가지고 가슴도 함몰되고···. 보통 사람이라면 몇 년은 요양해야 할 부상이었다고요.”
그걸 말하는 거였구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주었다.
소령은 시선만 올려 슬쩍 내 안색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이 몸의 손과 가슴팍을 한 차례씩 눈에 담았다.
우린 다시 홍택호 인근을 가만히 걸었다.
물가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코끝을 간질였다.
소령이 추운지 재채기를 했다.
잠시 얼굴을 붉힌 소령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따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슬쩍 소령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소령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그전에.
소령은 백미려에 대한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다시 하오문에서 일하고 싶어 할까?
분명 소령은 아직 한창때이긴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령은, 요즘 행복해?”
이에 고개를 갸웃하는 소령.
“행복이요?”
머지않아 살포시 웃으며 말을 잇는다.
“당연하죠. 사람들이 이제 다들 공자님 칭찬만 하잖아요. 표국에도 없어선 안 될 사람이 되셨고요. 무림맹 무사들 사이에서도 적린휘성이라고 엄청 유명해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 번 더 마른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아니. 나 말고 소령. 소령은 행복해?”
“저요? 저는 당연히···.”
이후 소령은 공자님이 행복하면 자신도 당연히 행복한 거라고 했다.
시비로 지낸 기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괜히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덜컥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려 소령을 봤다.
소령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소령을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소령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이윽고 소령을 향해, 백미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놓았다.
장강에서 흘러나와 바다로 가는 홍택호의 강물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
강소성 고우현에 있는 고즈넉한 다루.
나는 손님 하나 없는 그곳에서 조용히 차로 입술을 축였다.
잠시 깨진 보옥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머지않아 다루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천소. 그가 안으로 들어와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제갈천소가 입을 열었다.
“소령이란 여인과의 대화는 다 끝나셨습니까.”
일단 그러하다 대답해주었다.
참고로 소령은 여전히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내가 소령의 입장이어도 분명 그럴 테다.
하여 굳이 대답을 재촉하진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로 했다.
회상에서 빠져나와 제갈천소를 봤다.
제갈천소는 그 사이 내 손에 들린 깨진 보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시선을 주자, 그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혹시 그게 그 향로라는 물건입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보옥을 건넸다.
사실 지금 이 자리는 제갈천소가 문제의 향로를 보고 싶다고 하여 만들어진 것.
현재 보옥의 소유권이 내게 있음을 알아낸 제갈천소가 긴히 부탁을 한 상황이었다.
보옥을 유심히 살피는 제갈천소.
“확실히 말씀처럼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행의 기운을 끌어 모으는 성질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말을 하며 내게 다시 보옥을 돌려주는 제갈천소.
나는 그에게 건네받은 깨진 보옥을 비단 주머니에 고이 담은 뒤, 품에 넣었다.
그러곤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쌓이진 못하고 밑 빠진 독처럼 계속 흘러나가는 상태이지요.”
사실 오행의 기운을 다시 끌어 모으기 시작한 것도 이곳 고우현에 진입한 뒤부터였다.
“혹 특이사항이 생긴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노라 대답했다.
이후 몇 마디 말을 더 나눴다.
대개 이 몸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호북성으로 돌아가면, 맨 먼저 제갈세가부터 방문해달라고 했다.
일전에 귀인으로 모시기로 했던 약조.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시 대화의 화두는 얼마 전 있었던 좌호법과의 전투로 돌아갔다.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제갈천소에게 물었다.
“헌데. 좌호법이 그러더군요. 천기가 누설되었다고.”
은근하게 운을 뗐다.
이에 제갈천소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언가 있는 모양.
일단 알겠노라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제갈천소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기가 누설되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실제 역태극과 역천성이 떠올랐으니까요.”
말을 마치곤 곧 본인의 몫으로 놓인 차를 홀짝였다.
상당히 목이 타는 모양.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저흰 그들과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다르게 말입니까.”
“그들의 말처럼 해석하면 너무 암담하지 않습니까. 세상 만물을 이해할 수 있는 천마가 나타나 마신을 강림시킨다니.”
“잠깐. 그런데 천인이 아니라, 천마라고 하셨습니까.”
“아, 우선. 그들이 말하는 천인은 다음 대의 천마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짧게 설명해줬다.
외부에 알려진 천마신교의 교리에 따르면, 역사상 마신을 강림시킨 건 초대 천마가 유일하다고.
그러니 상징적인 의미에서 천인은 곧 천마일 거라고 했다.
이후 누설된 천기에 대한 무림맹 나름의 견해를 풀어놓았다.
“어쨌든. 저희는 이를 두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중원에서 다음 대의 천마를 찾는다는 건, 당대의 천마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요.”
만약 그가 건제하다면, 천인을 찾는 계획을 두고 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만약 천인이라는 것이 정말 천마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당대의 천마의 입장에선, 천인은 본인의 경쟁자가 아닌가.
심지어 자신의 자리를 찬탈하고 천마의 자리에 오를 경쟁자.
“···그러니 결국.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천인을 찾아낸다면, 그들은 구심점을 잃고 와해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말.
천기는 누설되었지만, 그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말이었다.
“천인을 먼저 찾아내면 무얼할 계획이십니까.”
“글쎄요. 그건 그자가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인지, 먼저 파악을 한 뒤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제갈세가다운 대답이었다.
세상 만물을 이해할 수 있는 이를 본인들의 역량으로 가늠한다라.
이후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갔다.
제갈천소의 여식이 혼기가 찼는데, 마땅한 혼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거나.
조만간 용봉대전이 있는데,
그곳에서 그리들 정분이 많이 난다는 식의 사사로운 이야기였다.
***
고우현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목적지인 동태현을 향해 배를 타고 이동했다.
쏴아- 쏴아-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풍경을 감상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잔잔한 수면을 바라봤다.
남궁벽과 백미려를 비롯한 무림맹 일행과는, 동태현에 있는 동태도관에서 만나기로 한 상황.
참고로 광현과 도사들이 적을 두고 있는 도관이 바로 동태도관이었다.
가만히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문득 근래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총해무관의 이설을 구출한 일부터 시작을 해, 하오문 제남지부에 엮였던 일.
그리고 마침내는 좌호법과 교전을 벌였던 일까지.
좌호법을 떠올리니, 그의 독문 무공인 채양보음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좌호법의 채양보음을 얼핏 본 뒤 나름의 깨달음을 얻지 않았나.
그걸 이용해 금귀방탄공이 지닌 요상결의 효능을 배가 시켰었다.
‘이를 다른 곳에도 활용할 순 없을까.’
그녀는 채양보음을 통해 얻은 양기를 이용해,
본인의 음기를 북돋아 이런저런 무공을 펼쳤었다.
상처를 수복하는 곳에만 쓴 것이 아니라, 공격과 경신법에도 활용을 했었다.
이 몸 또한 청염단을 먹은 뒤, 극양지체가 가지는 공능을 보유하게 되지 않았나.
당장 그녀가 품고 있는 양기만큼은 아니어도 남들보단 월등히 많은 양의 양기를 품고 있었다.
하물며 작금의 나 또한 양기를 화기로 전환해, 아수라파천권을 비롯한 무공들에 간간히 섞어 쓰고 있고···.
결이 크게 다르진 않아보였다.
그러니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도 응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소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사님, 도관까지는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슬쩍 소령을 봤다.
소령은 청초한 얼굴로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미려와의 만남 때문에 나름 긴장을 하는 것도 같았다.
배에 오르기 전, 소령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단. 한 번 보고 싶어요.”
일단 본인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멀리서 백미려를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워낙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백미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어쨌든 이래저래 심란한 것이리라.
그때 광현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겠나.”
긴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
표정을 보니 둘이서만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마침 난간에 나와 있는 것은 나와 광현, 소령뿐이었으니.
어쩌면 소령을 들여보냈으면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광현에게만 들릴 수 있게 이야기했다.
“괜찮습니다, 도사님. 소령은 제 사람입니다.”
말을 하고 보니 조금 서글픈 감정도 들었지만, 당장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광현이 말을 이었다.
“···그. 숙수 있지 않나.”
숙수?
그 말을 듣자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때 분명 색골음마가 내게 그랬었지. 어차피 너 또한 향로의 행방을 모르지 않느냐고.’
내가 광현인 척 분장을 하고 자결을 하겠노라 협박을 할 때,
색골음마가 내게 그러지 않았나. “나는 강불해 그 멍청이와 다르거든. 너희 도관에서 일하던 숙수가 그러더구나. 이미 빼돌렸다고.”라고.
아마 그 숙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말씀하시죠.”
“···그. 아직 무림맹에 그 이야기는 보고하지 않은 것 같네만.”
실제로 그랬다. 당장 보고라고 해봐야 전서구를 통해 남궁벽과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인 상황.
전서구에 이런 내용까지 구구절절 적진 않았다.
제갈천소에게도 따로 남궁벽에게 건넨 이야기 외의 것들은 말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광현이 말을 이었다.
“없었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나?”
저도 몰래 눈이 조금 커졌다.
없었던 일이라면 무얼 말하는 걸까.
설마 숙수의 이적행위를 묻어달라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그렇지 않나. 그 친구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이야기했겠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걸 테지.”
일단 더 말해보라는 식으로 광현을 봤다.
“도사가 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나. 양민들에겐 맹주나 천마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광현은 착 가라앉은 얼굴로 난간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강호의 평화도 본인들이 먼저 살고 봐야지.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한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게. 당장 내가 죽으면, 집에 있는 처자식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어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수 있겠나. 안 그런가.”
잠시 광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숙수가 그런 상황이었다는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광현.
“더하면 더하지 못하진 않네.”
그의 눈동자가 심오했다.
곧 그가 하는 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비단 그 숙수만을 말하는 게 아닐 테다.
앞으로 마인들과 싸우다 보면, 숙수와 같은 희생자가 숱하게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모든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일단 그 숙수에 한해서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그 숙수라는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인들이 심문을 마친 뒤, 죽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장 내가 그를 고발해 죄를 묻진 않을 생각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동태현에 접어들었다.
“맹주님께서 도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착장에서 만난 무림맹 무사가 전한 말이었다.
남궁벽과 백미려 등은 먼저 동태도관에 도착해 있다고 했다.
소령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은 것 같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이후 우리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그들이 있는 동태도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