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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43화 (43/133)

043화. 보옥(2)

43화. 보옥(2)

웅성웅성.

“···자네. 괜찮나?”

귓가를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에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

‘권사얼 어르신인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봤다.

눈앞이 뿌연 상태라, 명확히 보이진 않지만 아마 그럴 것 같았다.

이후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들.

총해무관 제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도 있었고.

광현이란 도사의 목소리도 있었다.

상체를 일으켰다.

대략 침상 위에 뉘여 있던 것 같다.

뿌연 시야가 점차 본래의 그것으로 돌아오며, 정신 또한 또릿해졌다.

“괜찮습니다.”

권사얼에게 엷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이에 근처에서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대체로 천만다행이라거나.

선인들께서 보우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여기가 어딥니까.”

내 물음에 권사얼이 대답했다.

“수로채 채주실이네. 일단 달리 뉘일 곳이 없어 이리로 데려왔네.”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론 색골음마와의 싸움 이후,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몸은 어떤가.”

“생명엔 달리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른 주먹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네. 가슴도 함몰되어 있었고. 그러니 조심하게.”

“그랬습니까.”

실제로 내상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이후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헌데. 색골음마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도망쳤네.”

예상대로였다.

놈을 붙잡아두기엔 내 힘이 역부족이었다.

“지금 맹주님과 남궁세가 장로님들이 추격 중이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쨌든 천만다행이야. 당분간 자넨 아무 걱정 말고 몸을 정양하는 데에만 힘을 쓰게.”

“알겠습니다.”

이후 일행은 하나둘 채주실 밖으로 걸음을 했다.

아마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걸 테다.

“문 앞에 제자를 상주시킬 테니,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기별하게.”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문에는 새까만 여우 가죽이 걸려 있었다.

그게 꼭 색골음마의 부채를 떠올리게 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그녀와 마지막 손속을 나누던 순간이 떠올랐다.

***

각자의 주먹과 부채를 교환하던 그 순간.

쾅! 쨍그랑.

그런 소리와 함께.

우리는 뒤로 훨훨 날았다.

우당탕탕.

널려있던 고문도구들 사이에 파묻힌 채, 고개를 들었다.

흐느적흐느적. 자리에서 일어나는 색골음마가 보였다.

겨우 상체만 일으킬 수 있는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녀 또한 분명히 타격을 입었을 터.

실제로 그녀의 발밑엔 흘러내린 핏물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으니···.

다만.

‘순식간에 회복하고 있군.’

그녀가 익힌 채양보음의 공능인 것 같았다.

얼핏 손속을 나누며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몸속에 상당한 양의 양기를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는 채양보음으로 흡수한 양기였는데,

단전에 흡수하지 않고 달리 다른 곳에 모아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운이 그녀의 몸을 수복시키고 있는 것.

일종의 요상의 효능을 지닌 영약처럼 작용하는 것 같았다.

‘흡사 뱀이 본인보다 커다란 먹이를 삼킨 뒤, 천천히 소화를 시키는 것과도 비슷해 보이는군.’

다만 뱀과 그녀의 차이라면,

뱀은 삼킨 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먹이를 소화한다면.

그녀는 몸속에 흡수한 양기를 가둬둔 채, 본인이 필요한 순간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더불어 그녀는 그 기운을 본인이 원하는 형식으로 재조립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내 공격을 당하고도 정신을 잃지 않다니. 정말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구나.”

말을 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끈적끈적했다.

얼굴에 살짝 홍조까지 띄고 있었다.

“강제로라도 데려가고 싶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장 나를 납치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어렴풋이만 느껴지던 무림맹의 기운이 보다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너. 조만간 천산으로 와라. 내 최고의 대우를 해주지.”

머지않아 그녀는 새빨간 광풍과 함께, 홀연 자취를 감췄다.

이후 맹주 남궁벽의 기세가 눈앞을 스쳐갔다.

다른 정파의 무인들의 그것 또한 마찬가지.

동시에 점차 눈이 감겼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반쯤 눈이 감긴 순간이었다.

‘뭐지?’

갑작스레 눈앞을 가리는 뿌연 연기가 있었으니···.

마치 향연기와 같았다.

몽롱한 연기가 사방을 채웠다.

다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곧 눈앞이 먹먹해지더라.

세상이 뒤집히고.

희끗희끗한 광경이 빠르게 스쳐갔다.

‘···여긴?’

이윽고 뒤집힌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눈앞에 수염 허연 도사들이 나타났다.

‘누구지?’

그들은 온통 부적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침통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머지않아 침을 튀겨가며 회의를 시작하더라.

“···.”

다만 물에 잠긴 듯 그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표정으로 말미암아,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후 각자 책과 부적, 깃발 등을 하나씩 나눠가졌다.

‘잠깐. 저건?’

개중엔 무림맹 비고에서 보았던 죽간본도 있었다.

이후 다시 한 번 시야가 뒤집히더니, 눈앞에 상당한 경치가 펼쳐졌다.

온간 산천초목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흡사 종남산에 버금가는 경치였다.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았다.

이후 어느 도관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장면이 끊어졌다.

그리고 번쩍 정신을 차린 것.

‘정신을 차린 곳이 이곳 채주실이었지.’

몸을 움직여 침상에 걸터앉았다.

직감적으로 품에 있던 보옥을 더듬었다.

‘깨졌군.’

조심스레 밖으로 꺼냈다.

절반 정도가 깨진 상태였다.

아마 색골음마가 공격한 곳에 정확히 이 보옥이 있었던 모양.

어쩌면 이 보옥 덕분에. 그나마 이정도 부상만 입고 무사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인가.’

본능적으로 재차 방금 본 환상을 곱씹었다.

그 환상은 보옥이 깨진 덕분에 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정황상 그것 말곤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이게 뭐지?’

문득 깨진 보옥 사이에 작은 두루마리 같은 것이 보였다.

추측컨대 이 보옥 안에 봉인되어 있던 것.

조심스레 돌돌 두루마리를 펼쳤다.

빼곡하니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부적?’

막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화르르-

두루마리에 불이 붙었다.

공중으로 부적 속 글자들이 떠올랐다.

이윽고 창문 하나 없는 채주실에 바람이 불었다.

휘잉-

순간 흩어져버리는 그것.

흩날리는 재 가루를 보며,

방금 본 부적의 내용을 곱씹었다.

분명 뜻 모를 글자들.

그럼에도 왜인지.

그 모양은 정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하물며.

‘왜 이렇게 낯이 익은 거지?’

언젠가 봤던 글자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만간 환상 속에서 본 공간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동안은 채주실에서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색골음마의 공격에 적잖이 내상을 입었기 때문.

물론 그리 오래지 않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채양보음을 견식한 것이 도움이 됐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가 몸에 지니고 있던 양기들을 이용해 어떻게 상처를 수복하는지 살펴보지 않았나.

금귀방탄공과 적절히 어울려 사용을 하니, 요상결의 효능이 보다 더 나아졌다.

하루 이틀 그렇게 몸을 정양하는 사이,

이번 일에 엮인 여러 사람들이 다녀갔다.

백미려와 해진은 강소성에서 마인들을 추격하는데 힘을 보태느라, 아직 오지 못했지만.

도사들이 수차례 다녀갔다.

그들은 깨진 보옥의 모습에 탄식을 했다.

“이제 선조님들을 무슨 낯으로 뵈어야 할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아네.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오히려 우린 자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지.”

물론 그들은 이 몸을 탓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이야기를 했을까.

한참 울적해질 무렵, 광현이 말했다.

“차라리 잘됐네.”

“···장문인.”

“지키지 못할 보물은 없느니만 못하지.”

“···그건.”

“마인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근데 마인들은 왜 이 향로에 그토록 집착했던 걸까요.”

“낸들 알겠나. 천인과 연관이 있다는 것 같긴 한데. 그건 추후 군사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이후 광현이 그러더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간 뒤 도사들은 채주실을 나갔다.

얼마 후 나는 광현만 따로 불렀다.

“도사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보옥이 깨지며 보았던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함.

“마인들이 향로에 집착을 했던 건, 아마 다른 보구들의 행방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몇 마디 말을 더 꺼내자, 그가 그러더라.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우린 그 비밀을 지킬 힘이 없어.”

이번 일을 겪으며 완전히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는 보옥 또한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바다에 뿌리겠다는 말을 했다.

“그럼 그건 제가 지니고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이걸? 마음대로 하게. 어차피 더 이상 오행의 기운을 담지 못하게 된 것 같네만.”

“그래도 지니고 있고 싶습니다.”

이후 부적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고 했지만, 그 또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쩌면 마인들의 목적이 이것이었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 비밀을 지니고 있기엔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와의 대화가 완전 쓸모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자네가 봤다던 그 도관 말이네.”

“네, 도사님.”

“아마 우리 도관이 아닐까 싶어.”

“그 말씀은.”

“그 산은 모산이 아닐까 싶고.”

광현이 넌지시 이런 말을 했기 때문.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사실 우린 모산파와 연이 있거든.”

“이번 일이 끝나면 도사님들의 도관을 한 번 방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네.”

이후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을 무렵.

한 가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전서구를 받은 권사얼이 내게 와 말을 전해줬다.

“마인들을 패퇴시켰다고 하네.”

강소성에 있던 마인들을 몰아냈다는 것.

물론 강불해나 색골음마는 놓쳤다고 한다.

아쉽게도 진학주도 놓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마인들을 생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물며.

“마교에 협조를 하던 하오문도들도 상당수 생포했다는 것 같더군.”

마인들과 달리, 그들은 심문을 하면 꽤나 많은 정보를 뱉어낼 군상들이었다.

그러니 썩 나쁘진 않았다.

“제남지부장 백미려의 공이 컸다고 하더군.”

“그랬군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우리 또한 배를 띄워 강소성으로 향했다.

마인들을 패퇴시켰으니, 도사들을 그들의 도관에 데려다줘야 할 것.

‘겸사겸사 나 또한 도사들의 도관을 방문하면 좋을 테고.’

그렇게 배를 타고 강소성 고우현에 도착했다.

이윽고 선착장에 배를 대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공자님!”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이곳에선 들을 것이라 상상치도 못했던 목소리.

“소령?”

소령이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소령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

그렇지 않은가. 무림맹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제갈 군사님께서 바래다주셨어요.”

듣기론 내가 위험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안절부절못하다 제갈천소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 같았다.

옆에서 제갈천소가 맑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소령, 잠깐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할까?”

“따로요?”

백미려에 대한 이야기.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자리를 옮겼다.

잠시 말을 고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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