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화. 홍택호(3)
41화. 홍택호(3)
아직 동이 터오기까지 한참은 남은 야심한 밤.
홍택호 인근 평야에 일단의 소요가 일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웅성웅성.
야영장에 피워진 화톳불 사이로 소란스러움이 일렁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방금 막 도착한 권사얼 무리와 그가 데리고 온 도사들이 건넨 이야기들 때문.
비록 구체적인 사정은 다들 쉬쉬하고 있어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대략 드러난 상황만으로도 혼란이 일기엔 충분했다.
“수로채를 마인들이 점령하고 있다고?”
“강소성에 천마신교의 정예들이 와있단 건가.”
“이러면 행군의 진로를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이런 소란에 백미려와 해진 또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루주님, 어떡하죠? 도사님들께 듣기론 금태산 표두님이 밤새 수로채로 잠입하셨다나 봐요. 돌아오지도 않으셨고요.”
다만 그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바깥의 무인들과 조금 결이 달랐다.
해진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백미려가 대꾸했다.
“보옥도 여전히 지니고 계시겠지?”
“당연하죠!”
“우리가 판단 착오를 한 것 같구나. 그분께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당시엔 그게 맞았잖아요.”
실제 백미려가 금태산에게 보옥을 맡겼던 건,
그녀와 해진이 탈출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들이 탈출에 실패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금태산만은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결국 보옥이 철면야탑 진학주의 손에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정확히는 천마신교의 손에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지.’
사실 백미려는 진학주와 천마신교가 손을 잡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당시 금태산을 마주한 상황이 워낙 긴박해서 모른 척을 했을 뿐.
그 이후에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고···.
실제로 자신의 전 주인의 아버지인 남궁세가의 가주에겐 천마신교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물론 그분께도 보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참고로 보옥.
이 보옥에 대한 비밀은 사실 더 대단했다.
정확히는 지금 바깥에 있는 도사들과 엮인 이야기.
보옥은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백미려에게 맡긴 물건이었다.
헌데 상황을 보니, 금태산이 보옥을 지닌 채 범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았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어. 우리가 상시 표두님의 옆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최소한 보옥의 정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면 어땠을까.”
“처음 본 사람에게 흉금을 터놓을 수 없는 게 당연하죠.”
해진의 말에 백미려는 질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실수는 실수지. 맹주님을 만나러 가야겠구나.”
“맹주님을요?”
“모든 걸 말씀드린 뒤 도움을 청해야지. 금태산 표두님을 속히 구조하러 움직이자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
백미려의 얼굴이 죄책감에 물들었다.
비록 대의를 위한 선택이었다곤 하나, 내심 마음이 불편했던 그녀.
헌데 이런 일까지 닥치니···.
이후 해진은 그런 백미려를 위로하기 위해 몇 마디 말을 더 이었다.
“그래도 그것들 말고는 다 사실이잖아요. 이번 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루주님이 악몽을 꾸실 정도로 힘들어 하시는 것도 사실이고. 저희 기루의 기녀들이 하나둘 사라···.”
백미려가 해진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해진아. 나는 괜찮아. 잘못은 잘못이니까.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나름대로 책임을 질 생각이었어.”
“···루주님.”
백미려는 곧 맹주가 있는 막사로 향했다.
마침 회의가 한창인지, 막사 인근은 경계가 꽤나 삼엄했지만,
“꼭 맹주님을 만나서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에 맹주님과 함께 계시는 도사님들과도 엮인 이야기이고요.”
급한 사정이 있음을 전하며 통 사정을 하니, 어찌어찌 맹주와 마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침내 백미려는 맹주가 있는 막사를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백미려의 귓가를 때리는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있었으니···.
“자, 자네.”
금태산과 권사얼이 구출해낸 도사들이었다.
백미려와 보옥으로 엮인 도사들이기도 했다.
백미려가 씁쓰레한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미려의 말에 도사들이 안절부절못하더라.
남궁벽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인가 보군.”
순간 도사들이 헛기침을 하며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고.
그런 어색한 침묵 사이로 백미려가 입을 열었다.
“도사님들. 지금은 숨길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자네! 아, 아니. 그래도···.”
백미려는 도사들이 무어라 첨언을 하기 전에 남궁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이분들은 진학주의 뒤를 캐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분들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겠나.”
백미려의 말이 이어졌다.
“정확히는 진학주가 마교의 명령에 따라 어떤 물건을 찾고 있단 걸 알게 된 뒤, 저희 제남지부 또한 자체적으로 그 물건의 정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다 알게 된 분들입니다.”
정확히는 진학주에게 쫓기고 있던 도사들을 구출해낸 것이라 했다.
이후 적의 적은 동지라는 명목 아래, 협조를 하기 시작했다고.
그 이후 한참동안 관계를 이어오다 도사들이 천마신교에 쫓기게 된 정확한 원인을 듣게 되었고···.
“천마신교에서 도사님들이 지니고 있던 구시대의 유물을 노리고 있더군요. 그러나 도사님들은 그걸 지킬 힘이 없어보였습니다.”
하여 함께 궁리를 하던 중, 그 물건을 백미려가 대신 맡아주기로 했다고 했다.
“실제로 마교의 간부들이 강소성에 들이닥치고. 이에 도사님들이 수적들에게 납치를 당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일 테죠.”
최소한 천마신교에게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쉽게 말해 몰래 물건을 빼돌린 것.
그렇게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갔고.
남궁벽이 물었다.
“헌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 굳이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그게 이번 일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백미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에 대해 곧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에 도사들은 이 이상 말하면 안 된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입니다, 도사님들. 어찌된 연유인지, 마교에선 이미 물건이 저희에게 있다는 단서를 얻은 것 같습니다. 도사님들이 납치되어 있던 사이, 저희 또한 대대적인 습격을 받았거든요. 그러니 지금은 모든 것을 터놓고 도움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백미려의 단호한 말에 도사들은 저마다 그저 탄식을 할 뿐이었다.
곧 백미려의 입이 열렸고.
“···하여 제남지부에서 탈출하는 길에 금태산 표두님께 그 유물을 맡겼습니다.”
남궁벽과 일행의 눈은 시시각각 커다래졌다.
특히 도사들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다 못해···.
“잠깐. 그, 그럼. 물건이. 지금 수로채에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수로채에 있는 금태산 표두님이 지니고 계십니다.”
“그게 그 말 아닌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 상황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건 금태산 표두님밖엔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도사들의 얼굴이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남궁벽이 다급히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만약 금태산이 그 유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마교에 알려진다면?
자칫 금태산에게 상당한 위험이 닥칠 수도 있었다.
이후 일행은 순식간에 여장을 꾸렸고.
곧장 금태산이 있는 수로채를 향해 배를 몰았다.
***
사람을 가두는 공간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깥으로 소리가 쉬이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내가 몸을 숨긴 고문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바깥으로 소란이 새어나갈 일 없이, 마인을 죽일 수 있었지.’
나는 눈앞의 시체로 변한 마인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손수 죽인 마인.
아까 “거. 입 한 번 무겁네.” 라는 말을 하며 들어온 마인 있지 않는가.
대략 바닥에 기절해있던 도사의 고문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추측되는 마인.
비록 절정 정도의 무위를 가진 놈이라, 단박에 죽이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이곳이 고문실인 덕분에 바깥으로 소란이 퍼지지는 않았다.
잠시 시체를 보고 있노라니, 정신을 차린 도사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무림맹에서 구하러 와준 건가.”
나는 적당히 그렇다고 하며, 진법으로 방금 죽인 마인의 시체를 숨겼다.
동시에 마인을 죽이며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마인을 죽이기 직전 도사와 마인이 나눈 대화를.
내가 고문 도구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을 무렵.
손에 양동이를 든 마인이 문을 닫고 고문실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바닥에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던 도사를 향해, 양동이 속 물을 뿌렸다.
촤악-
이에 기절해있던 도인이 정신을 차렸고.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향로는 대체 어디에 숨긴 것이지?”
“쿨럭. 그걸 내가 말할 것 같나?”
“아까도 말했지만, 우린 이미 대강 짐작을 하고 있어.”
“···.”
“하오문 제남지부. 맞지?”
이후 도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마인은 몇 가지 유도심문을 해댔다.
“어차피 시간문제이긴 해. 다만 너도 알겠지만, 우리가 좌호법님보단 조금 빨리 찾았으면 해서 말이지.”
그래도 듣기론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것 같았다.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갔고.
“끝까지 말하지 않겠다면, 네 사제와 사질들을 데려와 한 명씩 죽이는 수밖에. 그럼 말할 마음이 좀 생기지 않겠어?”
결국 둘의 대화는 파국을 치달았다.
“감히! 천벌 받을 것들! 대체 왜 우리 선조들의 유물을 탐내는 것이냐!”
“나도 잘은 몰라.”
“무어라?”
“그저 천인(天人) 계획을 위해 강시를 만들려면, 그 향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
이후 놈은 도사에게 말한 것처럼, 갇혀있는 사제와 사질들을 데리러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고문실을 나가려 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죽였다.
놈이 말한 사제와 사질이란, 내가 권사얼과 총해무관에 딸려 보낸 그 도사들일 테니까.
어차피 천마신교 놈들을 영원히 속일 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최대한 늦게 발각되는 것이 좋았다.
막 진법으로 놈의 시체를 다 정리했을 때였다.
아직 얼굴에 피 딱지도 내려앉지 않은 도사가 내게 와 말했다.
“···혹. 우리 도관의 제자들을 구해줄 수 있겠나? 내 필히 보은을 하겠네.”
물론 이미 다 구한 뒤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을 전했다.
그러자 노인은 눈물마저 흘리더라.
‘···다만. 나 또한 노인에게 물어볼 게 좀 있을 것 같네.’
사실 노인과 마인의 대화를 듣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겼다.
“잠시 앉으시죠.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을 하며 슬쩍 품속에 있는 보옥을 더듬었다.
하오문 제남지부에서 백미려로부터 받은 보옥.
둘의 대화를 듣고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보옥이 이번 일을 일으킨 주된 원인일 테지.’
어쩐지 아무리 목숨과 같은 물건이라고 해도 이런 신령한 물건을 하오문 루주가 가지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오행의 기운을 품은 보옥 같은 건, 보통 도관에서 사용하는 물건.
당시엔 그래도 우연치 않게 구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냥 넘어갔지만.
방금 마인이 그러지 않았나.
‘분명 하오문 제남지부에 있다고 했지.’
그리고 이 말은 백미려 또한 당연히 엮였다는 말일 테다.
헌데 그런 물건을 두고 탈출을 한다?
‘이치에 맞지 않지.’
다만 이 보옥이 그 보물이라고 가정을 하면,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졌다.
‘비록 어째서 이걸 향로라고 부르는진 알 수 없지만.’
이윽고 내 맞은편에 예의 노인이 앉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뭔가.”
잠시 고민하다 노인에게 물었다.
“도사님. 오해하지 않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노인에게 묻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었다.
대체 이게 뭐길래 천마신교에서 이처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것인지에 대한 것.
심지어 방금 천인(天人)이란 말도 들었다.
과거 총해무관의 이설이란 아이를 구한 뒤, 그녀도 분명 그랬었다.
‘자신은 천인의 어미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했지.’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무척이나 궁금했다.
“물론이네.”
노인이 말했다.
이후 나는 노인에게 당신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선,
‘그 향로’의 정체에 대해 보다 면밀히 파악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물론 당장 내가 그 보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이후 한참의 설득 후에 그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모산에서 제사를 드릴 때 쓰던 향로라.’
이 보옥은 대략 모산파의 물건인 것 같았다.
이후 왜 향로가 보옥의 모양인지 알아내기 위해 몇 가지 유도 질문을 더 던졌을 때였다.
쿠구궁-
갑작스레 건물이 돌가루를 떨어뜨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건.’
순간 솜털이 일고.
가공할 수준의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로채로 상당한 수준의 마인이 도착한 모양.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