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흉수(3)
31화. 흉수(3)
하얗고 끈끈한 액체를 발견한 이후.
곧장 맹주실로 향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얼핏 제갈세가와 마교가 손을 잡고 강시를 만들려 했던 걸로 보이는군.’
봉문을 한 것은 제갈세가 내에 있는 마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고.
순순히 자백을 한 것은 일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함일 수 있었다.
다만
‘마냥 이렇게 생각하기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저도 몰래 코웃음이 쳐졌다.
첫째로 그들은 왜 시체를 화장하지 않았냐는 것.
어차피 증거를 지우려면, 화장을 시키는 것이 더 현명했을 테니···.
물론 화장을 했다면 더욱 거센 반발에 부딪혔을 거고.
죄도 더 무거워졌을 테지만.
‘그럼에도 만약을 대비해 화장을 하는 것이 더 현명했을 테지.’
하물며 둘째로 왜 굳이 제갈세가 경내에서 일을 벌였냐는 것.
심지어 권사얼을 비롯한 총해무관 제자들은 죽은 여자아이가 제갈세가로 향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말 강시를 만들려고 했다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겠지.’
최소한 제갈세가 경내에서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테다.
더욱이 그의 신분은 무림맹의 군사.
그가 가진 직책이라면, 무림맹의 경계가 헐거운 곳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
제갈세가 경내가 아닌, 그런 곳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 보다 현명했을 테다.
마지막으로···.
‘만약 마교에서 무림맹 군사를 포섭했다면, 강불해가 내게 자랑하지 않았을 리 없지.’
굳이 자랑이 아니라도 그의 입을 통해 한 번이라도 언급이 있었어야 했다.
하물며 그는 종종 무림맹 군사 제갈천소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물론 마지막 단서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정보가 아니니 마냥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후 떠오른 추측의 근거 정도로는 충분히 삼을 만했다.
‘만약 제갈천소가 일부러 뇌옥에 갇힌 것이라면? 결국 마교와 한통속이 아니라면? 여전히 아군이라면?’
그들 나름대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기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선 나라는 변수를 충분히 고려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다.
하여 조금 과격하지만 이런 식의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이상 추측을 하기엔, 쥐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군.’
마침 맹주실에 도착해, 그곳 앞을 지키는 무인에게 맹주의 행방을 물었다.
“지하 뇌옥에서 군사님··· 아니. 제갈천소와 면담을 나누고 계십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약 정말 무언가 있다면,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터.
맹주실을 나왔다.
그들이 정말 아군이고.
달리 노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결국 지금은 그들의 장단에 어울려주는 것이 현명하려나?’
그리고 그들의 장단에 어울려주는 일은 시체를 운반하는 일일 테다.
일의 선후관계를 따졌을 때,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을 이대로 두는 것은 정파의 도의에 맞지 않는 일일 테니.
정확한 작전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어울려주기로 했다.
공과 사는 명확히 파악할 수 있으므로.
‘더욱이 그들 또한 나라는 변수가 등장해, 여러모로 골치를 앓았을 수 있으니까.’
이정도 수고로움은 감수해주기로 했다.
하물며 이번 일로 꼭 필요했던 은패도 얻지 않았나.
은패를 이용해 비고를 열람하는 건, 이번 시신 운반까지 마친 이후가 될 테지만.
여러모로 내 입장에선 수지맞는 장사였다.
이후 총해무관 무인들과 마차를 몰았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머지않아,
‘노림수가 이것이었나.’
제갈천소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공기가 무겁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묘한 직감을 느끼면,
그때 종종 이런 표현을 쓰곤 한다.
“공기가 무겁군.”
권사얼이 허리춤에 있던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나 또한 말을 몰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총해무관이 있는 곳은 호북성과 안휘성의 경계쯤인 영산(英山) 인근.
당연히 가는 길에 인적이 드문 곳도 종종 지나야 했다.
그리고 마침, 그런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는 중이었다.
“잠깐 이곳에서 쉬었다 갑시다.”
손을 들어 표행을 멈췄다.
말에서 내려 무기를 점검했다.
총해무관 제자들도 분위기가 묵직해진 것을 느낀 것인지.
나름대로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권사얼이 슬쩍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근처에 매복을 하고 있는 놈들이 있는 것 같네.”
그의 경지는 완숙한 절정.
당연히 이중 기감이 가장 많이 발달해있을 테다.
‘저 앞쪽에 풀들이 한 방향으로 뉘어있는 걸 보면···.’
사실 나 또한 대략 마인들의 매복을 눈치 채고 있던 상태.
동시에 쓴웃음이 나왔다.
제갈천소의 의중을 짐작한 것.
‘우리를 미끼로 쓴 걸까.’
마인들이 습격을 할 것이란 걸 확신했던 모양.
아마 그럴 것 같았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터.
‘다만 그런 확신을 어디에서 가졌냐는 것인데···.’
그때였다.
덜컹!
이질적인 소리가 귓가를 두들겼다.
덜컹! 덜컹!
곧이어 마차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시체를 실은 마차가···.
콰직-
마차 창문을 뚫고 나오는 푸르딩딩한 손.
손만 보고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 마차 안에 있는 건, 예의 그 시체뿐이니.
‘여자아이가 강시로 변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거군.’
그 강시를 회수하기 위해 마인들이 습격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던 것이고.
생각이 빠르게 정리됐다.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총해무관 제자들이 “가, 강시!”라고 소리치며 대경실색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적들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일 터.
아니나 다를까.
“습격이다!”
마침 등장하는 마인들.
수십의 마인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늘어뜨리고 이곳을 포위한 채 달려온다.
하나같이 흑의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달려오는 모습.
하물며 마차도 여전히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으니.
덜컹! 덜컹!
총해무관 무인들은 곧 하얗게 질색이 됐다.
‘그래도 강시의 무위는 뛰어나지 않은 것 같군.’
그나마 단박에 마차를 망가뜨리진 못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만약 실제 그녀가 튀어나와 총해무관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더욱 참혹했을 테니.
쐐액-
순간 귓가를 울리는 파공성.
고개를 젖혀 피해냈다.
콰직!
날아온 기다란 창이 마차의 벽면에 깃대처럼 박혔다.
태앵-
창간이 진동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고개를 돌렸다.
‘저들이 우두머린가.’
창이 날아온 곳엔 가면을 쓴 마인 둘이 있었다.
한 놈은 검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놈은 창을 쥐고 있었다.
무위는 대략 절정 정도.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일류 경지인가.’
총해무관의 무인들이 대부분 이류와 일류 사이를 오가는 걸 생각했을 때, 마냥 쉬운 상황은 아니라고 봐야 했다.
더욱이 총해무관 무인들은 지금 공황상태에 빠져 있지 않나.
그나마.
“내가 저 두 놈을 맡고 있겠네. 제자들을 부탁하네.”
권사얼이 제정신이라 다행이었다.
권사얼은 말을 하며 빠르게 튀어나갔다.
검을 뽑더니,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인들에게 거침없이 휘둘렀다.
꼭 부챗살 같이 펼쳐지는 검이 사방으로 마인들을 찔러갔다.
‘은퇴했다곤 하나. 괜히 맹호대 부대주가 아닌 건가.’
일단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검을 뽑았다.
일단 놈들의 목적이 마차 속의 강시로 추정이 되는 이상.
최소한 그건 빼앗겨선 안 됐다.
검을 휘둘렀다.
촤악-
마차 인근의 마인들을 갈랐다.
등이 쩍 벌어진 마인이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진다.
놈을 베고 옆에 있던 마인들을 향해, 몇 차례 더 검을 뿌렸다.
베고. 또 베고.
짚단처럼 쓰러지는 마인들.
그럼에도 그 수가 워낙 많았다.
혼자선 마차를 지키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
하여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무엇들 하는 것이오!”
우왕좌왕하고 있는 총해무관 무인들이 흠칫 놀란다.
“곧 무림맹의 지원이 올 테니. 조금만 버티면 될 것이오!”
내 말에 몇몇 얼굴을 붉힌다.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까보다 훨씬 능수능란하게 적들을 맞았다.
물론 그럼에도 밀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만 적들의 숫자를 줄여주면 해볼 만하겠어.’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권사얼 혼자 우두머리 두 놈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저 그가 분전해주길 기대해야지.’
검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화악-
화기(火氣)를 머금은 새빨간 검기가 손을 타고 검날을 휘감았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의 검기 중 가장 선명한 그것.
순간 마인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이 몸을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마인들.
‘나를 먼저 처리할 계획이겠지.’
가장 강한 적을 먼저 노리는 건, 당연한 일.
물론 내가 노리던 바이기도 했다.
이러면 최소한 마차를 망가뜨리려는 적들은 줄어들 테니.
‘마차와 강시를 노리는 마인들은 총해무관 무인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지.’
걸음을 옮겨 마차와 멀어졌다.
두어 걸음 움직인 뒤, 등 뒤로 검을 뿌렸다.
촤악-
대각선으로 그어진 검선에 마인의 핏방울이 흩날린다.
몰래 뒤로 접근해 기습을 하려던 모양.
계속 걸음을 옮겻다.
이어 옆으로 검을 늘어뜨리며 자세를 낮췄다.
쐐액-
머리 위로 스쳐가는 검풍.
그대로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놈의 복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푹!
방금 막 검풍을 날린 놈의 복부가 꿰뚫리고 놈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는다.
철퍽!
곧 마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제왕보(帝王步).
이번에 청명단을 흡수하고 얻은 화기(火氣)를 걸음걸음마다 흩뿌렸다.
몰아치는 열풍에 마인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승부는 그 찰나의 망설임이 갈랐다.
빠르게 검을 뿌렸다.
촤악- 촤악!
하늘로 치솟는 마인들의 머리통.
핑그르르-
‘최선의 경로로 최단 시간에 놈들을 처리한다.’
내공을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쓰는 무공 중엔,
아수라파천권처럼 내공에 부담을 주는 무공도 없었으니.
‘아수라파천권은 아껴뒀다 우두머리를 상대할 때 써야 할 테지.’
베고 찌르고 막고.
적들을 상대하며 슬쩍 권사얼을 봤다.
여전히 분전을 하고 있지만, 이제 조금 벅차 보인다.
얼핏 보이는 핏자국만 여러 개.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마인들의 숫자는 줄인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던 마인의 가슴에 붉은 혈선을 만들고.
곧장 제왕보를 밟아, 권사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콰앙-
후끈한 열풍의 소용돌이를 만들며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마졸들은 더 이상 내 앞길을 막지 않았다.
‘우두머리들이 상대할 거라 생각하는 걸 테지.’
애초에 내게 달려들었던 놈들 중 살아남은 놈도 몇 없긴 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총해무관의 무인들로도 감당이 가능할 터.
나는 곧장 달려들어 두 명의 마인 중 창을 든 놈에게 검을 휘둘렀다.
쐐액-
뒤로 훌쩍 물러나며 피해내는 창수.
놈은 곧 목표를 나로 바꿨다.
“비겁하게 2:1이 뭐냐.”
약간의 말로 놈의 신경을 긁었다.
‘대체 무림맹의 지원군은 언제 도착하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놈이 창을 찔러왔다.
쐐액-
흡사 한 마리의 뱀처럼 짓쳐드는 창두.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였다.
옆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며, 검으로 창두를 막아냈다.
챙! 채쟁- 챙!
‘주로 환(幻)의 묘리를 쓰는 놈인가.’
새까만 마기가 창두에서 어른거리며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나마 무게감은 덜한 편이어서 검으로도 막아낼 수 있었다.
다만.
‘검날이 버티질 못하는군.’
시간을 끌어 유리할 건 없었다.
놈의 창이 세로로 내리쳐온다.
그걸 피하며 그대로 놈을 향해 검을 투척했다.
쐐액-
순간 놈의 눈이 커다래진 것이 보였다.
‘물론 막아내겠지.’
역시나 창간으로 막아내는 놈.
채앵-
핑그르르- 돌며 놈의 시야를 방해하는 검.
놈은 자세가 무너진 까닭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아수라파천권(阿修羅破天拳) 멸화응취(滅火凝聚).
주먹을 그러쥐었다.
손에 화기를 응축했다.
두근.
극한의 화기를 머금은 오른손은 멸화(滅火)라는 새로운 피부를 입는다.
그 위로 화기를 머금은 영롱한 푸른색의 권기(拳氣)를 덧씌웠다.
그대로 제왕보를 밟았다.
슈욱-
정확히 놈의 앞에 도착한 뒤, 앞발에 무게를 실으며 보법을 멈췄다.
모래먼지가 일었고.
놈은 대각선으로 창을 그어왔다.
이에 나는 도리어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왼팔로 놈의 창대를 막아냈고.
콰직!
동시에 오른발로 바닥을 밀며, 놈의 가슴팍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쿵!
순간 세상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정확한 일격이었던 것.
살갗을 뭉개는 감촉이 느껴졌다.
놈의 갈비뼈가 투둑투둑 부러지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우두둑.
슈욱!
충격에 놈의 몸이 붕- 하고 날아갔다.
우당탕탕.
바닥을 나뒹군다.
마무리하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치이익-
놈이 화골산을 깨물었나 보다.
‘가급적이면 생포를 하는 게 제일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기엔 아직 일신의 무위가 충분치 않았다.
더욱이.
‘아직 한 명 남았지.’
권사얼과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마인을 봤다.
‘도망가는 건가.’
창수의 죽음을 눈치 채고 퇴각신호를 보낸 놈.
마인들과 함께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일단 권사얼의 상태를 살폈다.
‘아쉽지만 추격은 포기해야 하나.’
권사얼의 몸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 또한 방금 아수라파천권을 씀으로 인해, 내공이 거의 바닥난 상황.
아쉽지만, 보내야 했다.
물론.
‘그냥은 아니지.’
근처에 있던 버려진 검을 주어들었다.
그대로 놈을 향해 전심전력으로 투척.
쐐액-
아쉽게도 놈의 얼굴을 스쳐간다.
가면이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다.
잔뜩 뭉개진 얼굴.
‘놈도 축골공을 익히고 있나.’
얼핏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쐐액-
일순 광풍이 불더니.
놈의 무릎 아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파팍!
남궁벽이 나타나 놈의 마혈을 짚었다.
생포에 성공한 모습.
그리고.
“이, 이거. 늦어서 죄송합니다!”
허둥지둥 달려오는 군사 제갈천소가 보였다.
무림맹에서 방금 막 도착한 모양.
‘공교롭기도 하네.’
그래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마인 하나를 생포하지 않았나.
더욱이.
쿵! 쿵!
마차 안엔 여전히 강시가 존재했고.
우리는 일단 재빨리 전장을 수습한 뒤, 무림맹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알아볼 것이 많았다.
‘내 입장에서도 제갈천소와 대화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