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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26화 (26/133)

026화. 단서(3)

26화. 단서(3)

‘이곳에 있는 놈들은 다들 마졸 수준인 건가.’

일렁이는 횃불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마인들이 보인다.

기관진식을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와, 이곳에 도착한 상황.

이곳은 일전에 발견한 진법 속 창고와 상당히 흡사한 역할을 하는 곳인 것 같았다.

다만 그 크기가 훨씬 더 방대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마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철수 준비.

‘아마 음양굴 사건 때문에 아예 칠리하촌에서 발을 빼려는 것일 테지.’

도박장과 연결된 문이 아닌, 외부와 연결된 또 다른 출입문을 통해, 이곳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빼내고 있었다.

실제론 철수 준비도 거의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듣기론 이들은 뒤처리를 하기 위해 파견된 마지막 조라는 것 같았다.

'조금 아쉽네.'

때문인지 아쉽게도 척굉은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긴 너무 아쉬우니까.'

대신 이곳에서 운반 작업을 도우며, 그들의 일행인 척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보를 빼내고 있는 것.

그들 중 한 놈을 제압하고 놈으로 위장한 상황.

축골공을 익힌 놈을 기습적으로 죽이고 진법으로 시체를 숨긴 다음, 놈인 척 행동하는 것이다.

어차피 축골공을 익힌 놈이라, 본래의 얼굴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놈이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물론 수틀렸을 경우,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도 있었고···.’

한 번 해봄 직한 도박이었다.

실제로도 꽤 성과가 좋았고.

나는 그들 사이를 오가며,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우선 음양굴과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인가 대한 정보.

듣기론 이런 비슷한 짓을 다른 곳에서도 몇 번 했다는 것 같았다.

다만 이번처럼 직접 나서서 전부 몰살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참고로 기녀에 대한 건, 이들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다음으로 그 하얗고 끈끈한 액체.’

그게 무엇인지도 알아냈다.

강시를 만들 때 쓰는 정(精)이라던가.

운이 좋게도 마침 이곳에도 그 물건이 있어, 꽤나 자연스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거 뭐에 쓰는 물건이라고 했지? 내가 좀 쏟았는데.”

입이 좀 가벼워 보이는 놈이 있어, 놈의 옆에 붙어 연기를 좀 했다.

“뭐?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이게···.”

대략 이런 식?

놈은 상당히 독성이 강한 성분이라며 이 몸을 걱정하더라.

이 밖에도 몇 가지 정보들을 더 알아내긴 했다.

대표적으로 이들의 상관이 마교의 좌호법인 색골음마라는 것. 그들이 익힌 무공의 연원을 파악해 그걸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조금 불확실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척굉이란 놈 때문이었다.

척굉이라는 놈.

그놈이 음양굴에 약재를 대던 우두머리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놈은 나중에 강불해의 심복이 되는 놈이다.

그렇다면 색골음마에서 강불해에게로 이적을 했다는 건데···.

둘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한번 이것도 슬쩍 떠볼까?’

함께 짐을 나르고 있던 마인 하나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근데 좌호법님은 이번 일을 알고 계시나.”

그러자 아까부터 함께 다니던 비교적 입이 싼 마인이 대답했다.

“뭐? 이 새끼. 뭐 잘못 먹었어? 아까부터 왜 그래. 그분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많으신데. 이런 일까지 관여하실까.”

좌호법 산하인 건 맞는 모양.

“그래? 난 또 척굉이 보고했을까 했지.”

“척굉?”

그때였다.

‘설마 척굉이란 이름을 모르나?’

놈의 반응이 아까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미미하게 굳는 표정.

일부러 들고 있던 짐을 놓쳐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흘렸군. 좀 도와주겠나.”

“아, 잠깐. 기억났다. 척굉이 누구인지.”

놈이 근처에 있는 마인들을 보며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곤 각자 무기를 꺼내든다.

슬쩍 둘러보니, 근처에서 함께 짐을 나르던 놈들이 어느덧 자연스레 이 몸을 포위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놈이 말했다.

“에이. 난 또. 척굉이라고 해서 잠깐 헷갈렸네. 마졸들끼리는 원래 이름을 잘 안 부르거든. 숫자로 부르지.”

사실 이건 내가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당시 천마신교 뇌옥에 갇혀 있을 때, 마졸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척굉 또한 놈이 마졸일 때에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나는 능청을 떨며 비교적 포위가 헐거운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이 몸의 앞을 가로막는 뚱뚱한 마인 하나.

마침 놈이 입을 열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촤악-

놈의 몸과 머리 사이로 내 검이 지나갔다.

그게 신호가 되었다.

“이런 개 같은 새끼!”

“죽여!”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일단 다섯.’

방금 죽인 놈을 제외하고,

손에 비도를 쥔 놈이 하나 있었고.

검을 꺼내든 검수가 셋.

창을 들고 있는 창수가 하나였다.

우선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챙!

튕겨낸 비도가 허공으로 튀어 올라 핑그르르 돌았다.

동시에 전방과 좌우에서 찔러오는 놈들의 검.

챙!

좌측의 검을 막고, 훌쩍 뛰어올랐다.

방향은 방금 내게 검이 막힌 좌측의 검수.

슉- 슉-

발밑으로 지나가는 두 개의 검을 지지대 삼아, 한 번 더 훌쩍 뛰었다.

동시에 허공에서 핑그르 회전하고 있던 비도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몸을 비틀며 뒤쪽에 있던 창수를 향해 힘차게 뿌렸다.

푹!

놈은 내게 막 창을 내지르려던 자세 그대로 미간이 꿰뚫렸다.

쿵!

이윽고 허물어지는 놈.

착지를 하며 자세를 낮추고 왼쪽에 있던 검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놈의 오금을 베었다.

이윽고 뒤로 몸을 젖혀, 비도를 하나 피해냈다.

슈욱-

곧장 상체를 세우고 그 탄력을 추진력 삼아, 정면을 향해 보법을 밟았다.

내게 비도를 던진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슉-

재차 비도를 뿌리는 놈.

몸을 비틀며 흘려냈다.

제왕보(帝王步)를 밟아 순식간에 덮쳐들었다.

촤악-

피와 살점이 난무했다.

우르르 몰려드는 마인들.

한 마리의 철갑을 두른 거북이가 되어 몇 개의 검을 막아내고.

몇 개의 창두를 흘려낸 뒤.

상대적으로 방심하고 있던 비도술을 쓰는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악-

흡사 제왕 앞에 무릎을 꿇는 신하들처럼 놈들의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종횡무진.

순식간에 적잖은 마인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제 슬슬 빠져나가볼까?’

빠르게 탈출로를 고민했다.

미리 파악해둔 탈출로는 두 군데.

우선 도박장과 연결된 계단이 있었고.

뒤로는 칠리하촌 바깥의 평야와 연결된 땅굴이 있다.

위쪽은 기관진식으로 막혀 있고.

뒤쪽은 진법으로 가려져 있고.

상대적으로 거리는 뒤쪽이 훨씬 더 가까웠다.

허나.

‘그래도 위쪽이다.’

그냥 탈출만 하기는 아쉬웠다.

모처럼 마교도들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이 지하공간을 흡사 독처럼 사용할 생각이었다.

놈들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어 독에 불을 지펴, 모두 질식시켜 죽일 생각이었다.

위쪽을 향해 달리며 벽에 있던 횃불들을 모조리 쳐냈다.

화르륵-

등 뒤로 불길을 만들며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방해하는 놈들은 한 명의 야차처럼 모두 도륙했다.

어느덧 나와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는 마인들이 늘어났다.

“불 꺼!”

“으악!”

등 뒤로 불길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검을 교환했다.

챙. 촤악- 푹!

막고. 배고. 찌르고.

제왕보는 괜히 제왕보가 아니라, 이 몸의 앞에 다른 놈들이 위치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앞길을 막는 모든 적을 치워냈다.

마침내 계단을 올랐다.

도박장과 연결된 문이 있는 ‘그 공간’이 나왔다.

들어오기 전에 만약을 대비해 미리 진법을 설치하기도 한 공간.

‘마인 놈들 빠져나오려면 애를 좀 먹어야 할 거다.’

천마신기를 운용해 선기를 꺼냈다.

진법의 발현.

그리 복잡한 진법은 아니었다.

다만.

“뭐, 뭐야! 계단이 사라졌어!”

계단을 감췄다.

이후 유유히 도박장을 빠져나왔다.

“공자님!”

소령이 마침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함께 현장을 벗어났다.

***

도박장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을까.

다그닥. 다그닥.

“표두님, 곧 호북으로 진입합니다.”

“그래.”

나는 장표사의 말에 대답을 하며, 잠시 뒤를 돌아봤다.

섬서로 이어지는 너른 관도.

그곳을 보며, 문득 이번 표행 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참 여러 일이 있었지. 우선···.’

가장 최근에 있었던 도박장 사건.

그 일로 인해, 무림맹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다.

당분간 중원 전역에 있는 도박장과 기루들을 전수 조사할 계획이라나.

섬서성은 무림맹 본부가 있는 호북성과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아닌가.

종남산과 음양굴 사건만 해도 충격적인데.

코앞에서 한 차례 더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다들 군기가 바짝 든 것이다.

‘어쩌면 오랜 평화에 다들 안일해져 있던 걸지도 모르겠지.’

마지막 정마대전이 벌써 수십 년 전인 걸로 알고 있으니···.

‘더욱이 그 하얗고 끈끈한 액체가 강시를 만들 때 쓰는 정(精)이라고 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조만간 무림에 큰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다고.

‘그러고 보니···.’

내가 뇌옥에서 강불해에게 한 방 먹이고 반쯤 탈출에 성공했다가 죽은 날.

그날 내게 강불해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내 분명 대업을 완성할 때까지, 시키는 일만 잘하면 풀어주겠다 했거늘.”

당시엔 그저 놈이 천마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반역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놈은 더 큰 걸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놈은 이 중원을 날름 집어삼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놈이 내게 자랑했던 여러 영약이나 전투들 대부분이 정마대전을 위한 주춧돌이었던 것도 같았고···.

‘결국 영약이든 자잘한 전투들이든, 전부 마교의 상대적 전력을 강화시킨 것과 다름이 없는 일들이었으니까.’

물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이번 일을 꾸민 주체가 정확히 누구냐 하는 것.

그리고 전생의 이 몸에 대한 것들.

‘···이건 어쩌면 왜 기녀들이 납치되었는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러나저러나 둘 다 납치니까.’

나는 그렇게 금화표국으로 귀환하는 길,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했다.

“아, 표두님. 운공 도사님은 다시 종남파로 돌아가신 겁니까.”

“장문인이 급히 불렀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물론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사람도 얻었고.

일감도 얻었으며.

기연도 얻지 않았나.

우리는 빠르게 말을 몰았고.

마침내 물안개 가득한 어느 깜깜한 밤.

‘드디어 도착이군.’

금화표국이 있는 호북성 의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

표국에는 밤과 낮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밤은 필요했다.

표사와 쟁자수들도 사람이니 쉬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워낙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별다른 해단식 없이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해단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일정은 일단 다음날로 미뤄둔 것.

나 또한 곧장 청명각으로 향했다.

청명각에 도착한 뒤, 품에서 단단히 봉해진 작은 목함을 하나 꺼냈다.

불과 몇 시진 전, 진희원이 내게 건넨 목함.

‘이 안에 청염단(淸炎丹)이 들어있다라.’

저도 몰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드디어 완성 된 것.

진희원의 말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복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때를 자신에게 알려달라나?

‘같이 먹으면 좋은 약재들로 탕약을 만들어준다고 했지.’

하여 내일 해단식을 마친 뒤, 저녁쯤 복용할 것이라 미리 일러두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청염단이 든 목함을 품에 넣었다.

‘오랜만에 아수라파천권이나 점검을 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염단을 떠올린 계기가 아수라파천권 때문이었지 않나.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막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공자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내 거처 앞에서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는 소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표국에 도착하면 본인에 얽힌 비밀을 말해준다고 했었던가.

아마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싶었다.

‘소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볍게 산책 먼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밤은 길고 시간은 많았다.

무엇 하나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차분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물안개가 분위기 있고 좋네.”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 최대한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같이 걸을까.”

그렇게 우리는 뿌연 운무 사이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마침 오늘 또 만월이라,

뿌연 운무 사이에 갇힌 달빛이

서로의 흉금을 터놓기에 적합할 만큼 밝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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