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단서(2)
25화. 단서(2)
“안 가시면 안 될까요? 너무 위험해요.”
"일단 걸으며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볼까?"
다루를 나와 나란히 걸으며, 소령이 그러더라.
마인들이 사용하는 전서응에 추종향을 묻힌 건, 절반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고.
동시에 지금은 당시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만약 그때 추종향을 묻히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들의 본거지를 찾지 못했을 테니.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니냐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소령의 입장에선 추종향 따윈 무시하고 그냥 모른 척 묻어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또 성격상 불가능했을 테지.’
만약 알고도 보고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 몸을 기만하는 행동이라 생각했을 테니.
그러니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럼 무림맹에서 지원을 받아서 움직이는 건 어떨까요?”
그저 이렇게 묻는 것밖엔 없을 테다.
모퉁이를 돌며 대답했다.
“그러면 너무 늦지 않을까?”
“···늦어요?”
“마인들 또한 음양굴이 이렇게 된 걸 알게 됐을 텐데.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 종남파나 화산파의 도움을 구하는 건···.”
사실 그녀도 본인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다.
‘애초에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면, 이번 음양굴 습격도 우리끼리 진행하는 일은 없었겠지.’
다만 아까도 말했듯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일 테다.
물론 나 또한 그녀의 마음을 마냥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린 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령아.”
“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공자님.”
“위험할 일 없도록 조심해서 염탐할게.”
실제로도 무모한 행동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놈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알고 싶은 진실들도 있고.’
전생의 일들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물론 포함이었다.
이윽고 처량하게 고개를 떨어뜨리는 소령.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부드럽게 말했다.
“마저 안내해줄래?”
이후 소령은 길을 안내하며,
운공이나 표사들을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도 하더라.
“이런 일은 혼자 움직이는 게 나아.”
실제로 천마신교와 관련된 전생의 비밀을 캐내야 하기 때문에도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나았다.
“···혼자요?”
“사람이 많으면 괜히 의심만 사게 될 테니까.”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그럼 저는···.”
“소령도 적당한 곳에서 기다려줘.”
“네?”
“나 믿지?”
“···공자님.”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상정해야 하지 않겠나.
‘가령 들켜서 놈들과 추격전을 벌인다거나.’
그런 모든 경우를 고려했을 땐, 당연히 혼자 움직이는 게 나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한 상황.
음양굴이 칠리하촌의 동쪽 끝에 있었다면, 여긴 서쪽 끝.
어느덧 소령이 바짝 긴장을 하더라.
‘이 근처인 모양인데?’
주변을 쓱 둘러봤다.
정면에 도박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전생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물.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소령과 눈을 맞췄다.
잘게 떨리고 있는 소령의 눈동자.
‘맞아?’
입모양으로 물었다.
이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령.
다시 고개를 돌려 예의 그 도박장을 봤다.
꽤나 체격이 듬직한 장한 둘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둘은 달리 마인 같지는 않았다.
평범한 도박장 문지기 정도?
“소령아. 객잔에서 소면이나 먹고 갈까.”
“네? 아, 네···.”
우리는 도박장 맞은편에 있는 객잔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정보를 캐기 전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
동시에.
‘소령은 여기에 두고 움직여야지.’
소령을 떼어놓기 위함.
객잔으로 들어간 이후. 소령은 줄곧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 또한 내 의도를 짐작한 것이리라.
얼핏 보니,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더라.
우린 곧 창가 자리로 향했고.
점소이를 불러 소면을 시켰다.
소령은 그때까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야채볶음도 먹을래?”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식을 주문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그러곤 창문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마침 도박장으로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일단 그들이 하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봤다.
‘나 또한 머지않아, 저들처럼 들어가야 할 테니까.’
그들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
휘적휘적.
소령은 눈앞의 야채볶음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붉은색과 초록색 야채들이 뒤섞이는 것처럼, 그녀의 감정 또한 뒤죽박죽 섞여갔으니.
불안과 초조함이란 감정은 절로 그녀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어 비어있는 앞자리를 봤다.
‘···공자님.’
얼마 전까지 금태산이 앉아 있던 곳.
시선을 돌려 창문 밖을 봤다.
마인들의 소굴로 보이는 도박장.
그리고 금태산이 방금 들어간 곳.
‘제발 괜찮으셔야 할 텐데.’
물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들어가서 그저 어떤 곳인지만 둘러보고 나온다고 하셨다.
하물며 여태까지 도박장 안으로 마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출입도 없었다.
‘···어쩌면 마인들은 이미 이곳을 떠났을지도 몰라.’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금태산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목뒤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소령의 코끝을 타고 일전에 뿌려둔 추종향의 냄새가 스쳐갔기 때문.
전서응에 묻혔던 추종향의 냄새였다.
고로 저 사람은 전서응의 주인이거나.
전서응으로부터 쪽지를 전달받은 사람일 터.
괜히 속이 탔다.
‘···마인들이 떠난 게 아니었어.’
공자님이 안에 계신 그곳에. 여전히 마인들이 있다니.
그때였다.
‘헙!’
너무 빤히 쳐다본 것일까.
우연히 추종향 냄새를 물씬 풍기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소령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곧 터질 것처럼 뛰어댔다.
고개를 숙인 채, 추종향 냄새의 향방을 주시했다.
다행히 남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도박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니. 다행은 무슨!’
소령은 다시 고개를 들어 도박장을 봤다.
저 안에는 금태산이 있지 않나.
그런데 방금 마인이 안으로 들어간 것 아닌가.
다행일 리 없었다.
괜히 엉덩이를 들썩였다.
공자님은 분명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만약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만약 도박장 안에서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면?
우르르 사람들이 빠져나온다면?
그때도 자신은 이곳을 지킬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은 기다릴 테다.
소령은 자리에 앉아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
처음 도박장 내부로 들어왔을 땐.
혹시나 이 몸과 소령이 한 발 늦은 건 줄 알았다.
‘마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지.’
그저 평범한 노름꾼들만 가득했기 때문.
척굉은커녕 다른 마인들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어찌하면 좋을까.’
하여 골똘히 그런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득 구석에 있는 회색 벽이 눈에 밟힌 것은.
.
.
.
문이 달린 벽.
동시에 이곳에 있는 여러 문 중, 몇 안 되는 문지기가 있는 벽.
‘혹시 다들 저 안에 있는 건 아닐까.’
일종의 감이었다.
그리고 원래 감이라 하면,
타고난 통찰력과 눈썰미에서 비롯되는 것.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문지기가 있는 몇몇 개의 방 중에도, 특히 눈에 밟힌 방.
그리고 저 방을 지키는 문지기의 태도가 아무리 봐도 너무 수상했다.
다른 방과는 달리, 누가 근처로 오든 말든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
그런 태평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심기를 건드렸다.
하물며 여태 한 명의 사람도 들어가지 않은 방이었다.
이 도박장에도 여태 마인이 한 명 보이질 않았으니.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여태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건 아닐까.
애초에 마인만 들어가는 곳이니. 그런 것이라고.
심지어 다른 방들에선 미약하나마 사람소리가 새어나오는데.
저 방에서만은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여 일단 노름을 하던 중, 슬쩍 다른 노름꾼들에게 은근히 물어보기로 했다.
“자네, 저 방이 뭐하는 방인 줄 아나?”
“저기? 글쎄. 저긴 초대받은 손님들만 들어가는 방인 것 같은데?”
“초대받은 손님?”
“나도 잘 몰라. 다른 방들도 그러니. 저기도 그렇겠지.”
듣기론 이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들어가 봐야 할까.’
문득 그런 말이 떠올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어쩌면 저곳은 실제 호랑이 굴일지도 몰랐다.
‘물론 무모한 행동을 할 생각은 아니야.’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사냥꾼들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않나.
일단 그리로 향했다.
문지기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 물었다.
“이 방은 무얼 하는 방이오.”
문지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신경 끄쇼. 안쪽은 초대받은 손님만 들어올 수 있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문지기는 이내 내게 관심을 돌리고 제 할 일을 시작하더라.
그 또한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노름을 즐기기 시작한 것.
‘말은 저리 하지만, 내가 문을 열든 말든 크게 상관없는 걸까?’
그의 행동을 보면 영락없이 그랬다.
저런 상태라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모를 터.
어쩌면 문이 잠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문을 밀어보니 잠겨 있었다.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볼까.’
나 또한 그 문지기가 즐기고 있는 노름판에 끼어들었다.
“뭐요?”
“노름판에 노름하러 왔지, 무엇하러 왔겠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인내심이 빛을 발한 것인지.
마인 하나가 도박장에 나타났다.
특별한 외형적 특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모습은 그저 평범한 노름꾼과 같았다.
다만 그의 몸에서 마기가 느껴진다는 것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후 놈은 나와 문지기가 있는 방향으로 왔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정확히는 예의 그 문으로 왔다.
일단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놈은 급한 일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음양굴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건가.’
이후 연신 흘깃 놈이 하는 바를 관찰했다.
이윽고
드르륵-
소리가 나며 열리는 문.
헌데 그 모습에 절로 고개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잠겨 있던 문이 절로 열린 것.
문지기에게 물었다.
“자네가 열어준 건가?”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 별난 놈일세. 같이 노름하고 있었으면서.”
심지어 문지기로 보이던 놈은 단 한 번도 방금 그 마인에게 눈짓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열고 들어갔다는 것.
잠깐 고민을 했다.
아까 그 마인이 들어온 것이 기폭제였는지.
그 이후로 몇몇 마인이 더 들어왔다.
다들 별볼일 없는 무위를 가진 마인들이었지만.
어쨌든 이건 행운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됐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조금 더 놈들이 하는 모양을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다.’
어떤 방식으로 문을 여는 것인지 알아냈다.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이 문지기 놈과 어울릴 필요도 없었군.’
문지기가 노름판에 빠져있는 틈을 타.
드르륵-
문을 열고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을 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문에 손을 올린 채, 마기를 발출하면 되는 것.’
일종의 기관진식인 것 같았다.
이에 나는 천마신공을 운용했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눈앞의 깜깜한 계단을 봤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
다들 이리로 내려간 것 같았다.
‘어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만약 이리로 들어가면 일단 퇴로는 없다고 봐야 했다.
내 뒤로 다른 마인이 들어오면 뒤가 막히는 것일 테니.
그를 없애지 않는다면 돌아갈 수 없을 테다.
자칫 앞뒤로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앞쪽에 다른 탈출구가 있을지 모르나.
그런 불확실한 가능성에 기대할 순 없었다.
그러나.
‘저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들어온 보람도 없겠지.’
당연히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 지니고 있던 무기를 점검했다.
허리춤에 걸려있는 장검.
이것 하나뿐이지만, 일단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객관적으로 아까 내려왔던 마인들의 수준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것뿐.
마지막으로 이곳의 구조를 한 번 더 살폈다.
사람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계단.
그리고 공기의 흐름으로 보아, 이 계단을 내려가면 외부와 연결된 문이 하나 더 나올 것 같았다.
몇 가지 점검을 더 마치고.
만약을 대비한 몇 가지 진법도 설치했다.
‘그럼 호랑이를 잡으러 가볼까?’
이윽고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