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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24화 (24/133)

024화. 단서(1)

24화. 단서(1)

염화마인(炎火魔人) 척굉.

생각해보면,

놈은 이상하리만큼 이 몸한테 살갑게 굴었었다.

강불해의 여러 심복들 중 유일하게 그만 그랬다.

당시엔 그저 마음이 여린 놈이라 그런 줄 알았다.

듣기로 놈은 어릴 적에 큰 화재에 휘말려,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했었으니.

‘그 이후 살기 위해 천마신교에 투신했다고 했지.’

하여 고아인 내게 동질감을 느끼는구나 싶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천마신교에서 나를 납치하던 순간, 유일하게 그 자리에 있던 강불해의 심복이기도 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놈은 뇌옥 속의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이러다 금방 부자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흐흐흐.”

옆에서 들려온 어느 표사의 말이 상념을 깨웠다.

참고로 우리는 지금, 과거 음양굴이었던 곳에 좌판을 펼친 채, 손님을 받고 있었다.

정확히는 과거 음양굴의 고객이었던 놈들에게, 진희원이 만든 해독단을 팔고 있는 것.

천산음양곽이 들어간 춘약의 해독단 말이다.

무림맹에서 해독단의 유통 일체를 우리에게 맡긴 덕분이었다.

‘무림맹에서 판매 전권을 우리한테 넘긴 건, 이번 일을 해결한 것에 대한 나름의 보상일 테지.’

물론 직접 판매를 담당하는 건, 이 몸이 아닌 금화표국의 표사들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금화표국의 재정 형편도 한층 더 나아질 테다. 최소한 계약금을 못 구해 표물을 못 맡는 일은 사라질 터.

"너희가 고생이 많구나. 조금 더 힘 써다오."

이윽고 나는 표사들을 독려하곤, 음양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할 때였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장표사가 은근한 어조로 물어왔다.

“표두님, 그런데 전날 마인 놈들은 왜 이곳을 습격했던 거랍니까.”

사실 장표사만이 아니라, 다른 표사들도 전부 이걸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가 대표로 묻는 모양.

잠시 그들을 봤다.

분명 이들도 들을 자격이 있다.

다만.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지.'

어쩔 수 없었다.

하여 조금 불성실한 대답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대강 얼버무리기로 했다.

“마인들은 원래 그런 족속이다. 그러니 천벌을 받은 거지.”

대답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머릿속으로 전날 음양굴주와 나눈 대화들이 하나둘 부유하기 시작했다.

***

“그들이 왜 너희를 학살한 거지?”

당시 음양굴주는 피를 토하며 씹어뱉듯 말했었다.

“크크크. 돈에 눈이 멀어서 마인과 거래를 텄으니. 천벌을 받은 거지.”

어지간히도 원통했던 모양.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순 없겠나.”

“복수해줄 건가?”

“약속하지.”

음양굴주가 눈에 후회를 가득 담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 보자. 놈들이 나를 건너뛰고 우리 직원 몇몇과 내통을 하는 것 같길래. 그 직원들을 문책했더니. 이런 꼴이 되었지.”

“내통?”

“기녀들을 몰래 밖으로 빼돌리는 것 같더군. 쿨럭.”

“기녀들을?”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 기녀들은 전부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으니까.”

“···그렇군.”

꽤 유익한 정보였다.

지금은 이런 단서 하나하나가 소중한 시기 아닌가.

“궁금한 건 다 해결 되었나?”

“아직이다. 혹시 춘약이 독약이란 건 알고 있었나?”

“···독약이었나?”

“몰랐나 보군. 그럼 그 춘약과 함께 창고에 있던 하얀 끈끈한 액체의 정체도 모르겠군.”

이윽고 이어진 말에 따르면,

그들은 마인들에게 헐값에 춘약을 공급받고.

대신 그 하얀 액체를 중간에서 납품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정확히는 이따금씩 음양굴로 찾아오는 신원미상의 남자들에게 그 하얀 액체를 건네는 역할.

그게 그들과 마인이 나눈 거래의 전부라고 했다.

허나 아까 말했듯이, 갑자기 기녀들을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고. 그 이후···.

“우두머리가 누군지는 아나?”

“우두머리? 쿨럭. 글쎄. 놈이 우두머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 초옥을 관리하던 놈들의 대장이 누군지는 안다.”

“누구지?”

“보자. 얼굴에 안대를 하고 있었고···.”

이후 놈이 묘사한 인물이 척굉이었다.

화상으로 문드러진 얼굴에.

왼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는 놈.

워낙 특이한 몰골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간부들에게 물었을 때의 묘사도 비슷했으니.

아마 음양굴주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테다.

‘일단 척굉 그놈을 잡아야,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이놈을 잡아야만, 엉킨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당장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뿐.

‘다행이라면, 이 시점에선 아직 놈이 마졸에 불과할 것이란 건가.’

결국 어떻게든 놈의 꼬리를 잡는 게 중요했다.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야 했다.

이윽고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소령한테 놈들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부터 물어볼까.’

일종의 직감이었다.

맨 처음 마인들을 발견한 것이 소령이지 않는가.

‘혹시 놈들이 남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애초에 소령이 수상한 놈들이 음양굴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보고를 내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살아있는 음양굴주를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럼 이러한 정보는 아예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근데 소령은 어디 있는 거지?’

아까부터 소령이 보이지 않았던 것.

그게 문제였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령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희원 소저와 함께 있나?’

음양굴을 나와 진희원이 약을 만들고 있는 약방으로 향했다.

“진표사, 소령 못 봤나?”

“소령 언니요?”

헌데 그곳에도 소령이 없었다.

진희원과 진희원을 돕고 있는 무림맹 소속 약제사들만 있을 뿐.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소령 언니가 표두님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못 만났어요?”

“나한테 전할 말?”

‘대체 어딜 간 거지? 전할 말은 또 뭐야.’

그렇게 얼마나 더 찾아다녔을까.

“금태산 표두님! 여기 계셨군요.”

그때였다. 소령 대신 엄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

“음양굴에 계실 줄 알았는데, 안 계셔서 어찌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무림맹 섬서지부 소속 무사였다.

그가 내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총관님께서 찾으십니다. 표두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요.”

***

음양굴 근처의 작은 장원.

“드릴 것이 있어 이리 불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총관 언광율과의 대화는 꽤 의미가 있었다.

“제게 줄 것이요?”

언광율이 내게 건넨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림맹주의 초청장이고.

두 번째는 초상화 뭉치였다.

사실 당장 쓸모 있는 건 두 번째 것이었다.

‘내가 죽인 마인들의 얼굴이라.’

왜 음양굴에서 내가 죽인 마인들 있지 않은가.

당시 여러모로 훼손이 되었던 놈들의 수급을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원래 이런 건 외부인에게 건네주지 않는데,

본부에 보고를 했더니 맹주님께서 특별히 제공하라고 했다나.

대신 나중에 한 번 꼭 무림맹 본부를 들렀으면 한다고 했다.

‘어차피 금화표국도 호북성에 있고. 무림맹도 호북성에 있으니. 나중에 한 번 들러보면 될 테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분명 꽤 의미도 있었다.

허나 이상하게 답답했다.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장원을 나왔다.

아마 무언가 찝찝함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줄곧 걱정하던 게 있지 않는가.

'소령이 말도 없이 내 옆을 이리 오래 떠났던 적이 있던가.'

막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소령?”

마침내 소령을 마주할 수 있었다.

꼭 비루먹은 강아지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자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가 작심하듯 말했다.

역시 무언가 있나 보다.

***

우리는 우선 장소를 이동했다.

근처에 있는 작은 다루.

각자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잔씩 시켜놓은 상태.

다만.

소령의 얼굴이···.

‘세상 모든 수심을 한 군데에 박아 넣은 얼굴이 이럴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령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이번에 습격한 마인들이요. 만약 잔당이 남아 있다면 찾으러 가실 건가요?”

나는 우선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나 생각을 해봐야 했다.

‘설마 잔당을 찾은 건가.’

아마 이게 맞는 것 같았다.

표정을 보면 딱 그랬다.

저도 몰래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그런데 별안간 왜 이렇게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는 거지?’

다만 갑자기 왜 이렇게 심하게 걱정을 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렇지 않은가.

마인과 엮인 것이 이번 처음도 아니고.

애초에 이번 일을 기획할 때도 이처럼 걱정하진 않았다.

‘굉장히 위험한 무언가가 있는 건가.’

혹은 하오문이라는 본인의 연원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 건가.

아니 두 번째 것은 아마 아닐 테다.

이건 표국으로 돌아가면 밝히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은 당장 표국 밖에서는 밝히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소령의 표정이 저런 건, 이번 일에 꽤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나는 일단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게.”

망설이며 말을 끄는 소령.

“무슨 일인데. 말해봐.”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언가 작심한 듯한 얼굴을 한 소령이 말했다.

“사실.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역시나.

나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소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령이 차분히 입을 움직였다.

“맨 처음 놈들이 음양굴을 습격하러 들어갈 때 전서응을 날리는 걸 보고 거기에 빠르게 추종향을 묻혔거든요. 근데···.”

“근데?”

소령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안 가시면 안 될까요? 너무 위험해요.”

역시나 예상했던 그게 맞았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걸으며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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