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음양굴(1)
20화. 음양굴(1)
돈두객잔(豚頭客棧)의 점소이 칠복이 손을 싹싹 문지르며 말했다.
“크크. 손님도 음양굴의 소문을 듣고 오셨군요. 확실히 끝내주는 곳입죠.”
그 이후, 그의 입을 통해 음양굴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풀어졌다.
나는 그 정보들을 묵묵히 들었다.
‘대체로 이 몸이 알고 있던 정보랑 같군.’
다만 딱 한 가지 기억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제가 어제도 갔다 왔는데 말입죠.”
‘역시 사라지지 않았어.’
여전히 음양굴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원래의 역사에 따르면, 이 시점에 음양굴은 진즉에 사라졌어야 한다.
천마신교는 이 몸을 납치함과 동시에 음양굴의 흔적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고 했으니까.
금태산의 몸으로 환생한 시점이 대략 천마신교가 이 몸을 납치하던 시점과 같으니···.
‘이것저것 확인을 좀 해봐야겠군.’
이윽고 칠복은 이 몸을 객잔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객잔 주인의 눈치를 보며 품에서 작은 목패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칠복이란 이름이 음각되어 있는 목패.
“···한번 구경하길 원하신다면, 특별히 제 목패를 빌려드릴 수도 있습죠.”
사실 점소이에게 건넨 돈은 정보료임과 동시에 소개비이기도 했다.
음양굴(陰陽窟)은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매음굴.
기존의 회원과 함께 출입을 하거나.
양도받은 목패를 보여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 칠복이라는 놈은 돈을 받고 본인의 목패를 빌려주기로 유명한 놈이었지.’
목패는 어차피 분실을 해도 한 번 회원으로 가입을 했다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으니.
물론 음양굴의 주인도 칠복의 이런 행태를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고 보면 되었다.
목패를 챙긴 채, 밖으로 나왔다.
“표두님, 먼저 도착해계셨군요.”
마침 소령과 일행도 도착을 한 상황.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말을 하곤, 적당히 쉬고 있으라 했다.
늦을지도 모르니 기다리지 말라는 말도 남겼다.
이후 걸음을 옮겨 대로로 나왔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이고. 장을 봐 오는 아낙들이 보였다.
누가 봐도 평범한 마을.
기억과 같은 길을, 기억과 같은 방법으로 걸었다.
당과 파는 노파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 음침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점점 공기가 무겁게 변해갔다.
대로변이 빛이라면, 이곳은 그 빛에 의해 생겨난 그림자.
곳곳에 약에 취한 사람들이 보였다.
껄렁한 자세로 먹잇감을 물색하는 흑도 왈패들도 보였고.
그 모든 추억을 지나쳐, 마침내 단란한 객잔 앞에 도착했다.
어떠한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작은 객잔.
물론 이는 눈속임에 불과했다.
실제로 이곳의 뒤편엔, 거대한 매음굴 조직이 있었으니까.
결국 이 객잔은 그 매음굴로 가는 일종의 검문소와 같은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곧 얍삽하게 생긴 노인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고.
품에서 목패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노인이 칠복이란 이름을 보고 피식 웃는다.
잠시 눈을 맞췄다.
그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딱히 안내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평범한 손님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마침내 너무도 익숙한 객잔의 뒷문 앞에 도착했다.
괜히 심장이 뛰었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손짓을 하곤, 다시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연 뒤,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음양굴(陰陽窟) 안으로 발을 들였다.
***
돈두객잔(豚頭客棧) 내부.
“크으. 술맛 좋구나!”
얼큰하게 취한 운공이 너스레를 떨었다.
“도사님, 한 잔 더 받으시죠.”
“어이구. 말 편하게 하세요, 장표사님. 제가 나이도 훨씬 어립니다.”
“아닙니다, 저는 이게 편해요.”
일행은 저녁식사 시간을 맞이하여, 객잔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소령과 진희원이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 운공을 비롯한 표사들이 식탁 서너 개를 붙인 채 앉아 있었다.
잠시 운공과 표사들을 보던 진희원이 고개를 돌려 소령에게 말했다.
“언니, 그런데요. 표두님은 어떻게 이런 객잔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이런 객잔?”
야채볶음을 먹고 있던 소령이 고개를 들어 진희원을 봤다.
진희원이 말했다.
“그렇잖아요. 식사도 맛있고. 방도 깨끗하고. 가격도 적당하고요. 그런데 손님이 많지 않은 걸 보면 유명한 곳은 아닌 것 같고.”
잠시 고민하던 소령이 말했다.
“글쎄. 친구 분들께 들은 게 아닐까?”
“친구 분들이요?”
“사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실제로 돈두객잔은 입지가 별로라 손님은 없었지만,
칠리하촌 사람들 사이에선 최고의 객잔으로 통했다.
물론 금태산도 그런 걸 모두 고려하여 이곳을 숙소로 정한 것.
어차피 목패야 이곳에서 묵든 묵지 않든, 점소이에게 돈만 건네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일행을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 봐야 했다.
내심 표두가 되어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그런 자세한 내막까진 몰랐다.
그저 그간 금태산이 보인 행보를 통해 추측을 할 뿐.
옆에 있던 장표사가 살짝 혀가 꼬부라진 채 말했다.
“어허! 뭘 그런 걸로 고민하고 그래? 원래 뛰어난 표두님들은, 이런 정보를 미리 쥐고 있다고 봐야지.”
“그래요?”
“그럼! 우리 표두님처럼 대단하신 분들은 원래 그런 거야.”
장표사의 말에 같이 있던 표사들이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대체로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식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얼마간 식사가 더 진행됐을까.
식탁 위의 접시들이 거의 빈 그릇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문득 운공이 말했다.
“근데, 금형은 대체 어딜 갔는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운공의 입장에선 별 생각 없이 꺼낸 혼잣말이었지만,
순간 모처럼 흥겨웠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다들 슬슬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늦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저녁 시간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을 줄은 몰랐던 것.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죠?”
진희원이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실제로 종남파에 있을 때도 이런 분위기에서 종남산으로 올라간 것 아니었나.
어느덧 다들 술잔을 내려놓고 서로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령이 작심한 듯 말했다.
“걱정 마. 공자님이 어떤 분이신데.”
“네?”
“저번에 종남산에서도 별일 없으셨잖아?”
소령이 차분한 눈빛으로 진희원을 봤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일행의 분위기가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당시의 일을 떠올린 것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종남산에서 내려오신 금태산 표두님.
이들에게 금태산은 더 이상 마냥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각자 여러 이유로 걱정은 되지만, 기다리라고 했으니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이라 하겠다.
믿음이 보다 짙어진 것이다.
운공이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럼. 금형이 얼마나 대단한 친군데.”
옆에 있던 표사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허허. 그렇습니까, 도사님?”
“맞습니다. 자리를 비우신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기다리라고 하셨으니 우린 그냥 기다리면 될 거예요.”
곧이어 다시 돈두객잔 내부에 즐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딱 이곳을 숙소로 정할 때, 금태산이 원했던 분위기이기도 했다.
***
음양굴 내부.
사실 금태산의 몸을 얻게 된 이후,
나는 알게 모르게 고민해왔던 것이 하나 있다.
‘만약 전생의 내가 여전히 살아 있으면 어떡하지?’
다만 당장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애써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하여 음양굴에 들어온 뒤,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혹시 천자하란 종업원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
“천자하란 종업원이요? 그런 사람 없을 텐데?”
기녀들에게 전생의 내 이름과 생김새를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은 것.
“저도 처음 들어봐요.”
“그래? 알겠어. 고맙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거야.’
한두 명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고.
꽤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으니.
심지어 꽤 낯이 익은 손님들에게도 물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내가 금태산의 몸을 차지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지.’
훼손된 천마신공의 각주에서 본 멸문한 모산파의 무공.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모산파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차라리 잘됐어.’
오늘 일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로써 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다만 그렇다고 전생의 내가 겪었던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당시의 일은 여전히 존재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상, 부정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음양굴을 나왔다.
잠시 바람을 쐬며 걸었다.
근처를 배회하며 기억들을 하나하나 비워나갔다.
물론 딱히 좋았던 기억은 없으니, 금방 비워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내가 떠올랐다.
‘걔는 잘 살고 있으려나?’
이 몸을 천마신교에 팔아먹었던 놈.
그놈이 생각난 것이다.
음양굴 안에 다시 들어갈까 하다, 그냥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걔는 어떻게 천마신교와 접점을 만들고 나를 팔았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강불해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허나 그는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음양굴은 자신들의 손으로 소멸을 시켰으니, 이젠 잊으라고 했던가.’
이곳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일까.
머지않아 살이 투실투실 오른 사내가 하나 밖으로 나왔다.
마침 기다리던 놈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그 뒤를 밟기로 했다.
놈은 굽이굽이 골목을 돌더니, 점점 더 음침한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쪽에 뭐가 있었지?’
마땅히 기억나는 것이 없는 걸 보니, 특별한 건 없을 테다.
그런데 놈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분주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이윽고 어느 작은 초옥 안으로 들어가는 놈.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폐허와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잠시 후 다시 밖으로 나와 음양굴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아까보다 후련해보였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나는 곧 아까 놈이 갔던 초옥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골목을 돌아, 마침내 그 앞에 도착했다.
‘근처에 아무도 없지?’
차분히 주변을 둘러봤다.
실제로 이상하리만큼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그 초옥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진법?’
문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여기 왜 진법이 있지?’
초옥 안에 진법이 있었던 것.
물론 종남산에서 봤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종남산에서 봤던 진법이 음양오행과 선기로 구성이 되는 진법이었다면.
‘···이건 마기(魔氣)로 구성을 한 건가?’
원리는 달라도 큰 틀은 비슷해보였다.
저도 몰래 마른침이 삼켜졌다.
‘해체하고 안에 뭐가 있나 확인해 볼까?’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법 안에서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왜 음양굴주가 저기에?’
한 명은 음양굴의 주인이었고.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것도 마교도와 함께 있는 거지?’
마공을 익힌 마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