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종남산(1)
15화. 종남산(1)
천하제일 복지(天下第一 福地).
종남산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작금의 종남파가 자리를 잡기 훨씬 이전부터,
종남산은 중원을 대표하는 산들 중 하나로 통해왔다.
도교를 대표하는 여덟 명의 신선 중,
종리권과 여동빈이 수련한 산으로도 유명했고.
온갖 영물과 영초가 서식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산 내부를 꽉 채우고 있는 선기(仙氣)와 천연의 진법들 때문에,
아직까지 인간에게 그 속살을 모두 내보이지 않은 미지의 산이기는 했지만.
또 험한 산세로 인해, 함부로 발을 들였다간
자칫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아니 사실 그런 곳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로운 곳이었다. 종남산은.
그리고 그런 종남산의 초입.
그곳에 종남파가 있었다.
종남파(終南派)의 대회당(大會堂).
십여 명의 종남파 도사들이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다.
“습격을 당한 아이들의 상태는 어떤가.”
산문을 지키던 삼대제자들 여럿이 마교의 습격으로 큰 화를 입은 까닭.
“빠르게 조치를 취한 덕분에, 생명에 지장이 있는 아이는 없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향후 대처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추격에 들어간 선발대로부터의 기별은 어떤가.”
습격 이후 마교도들은 종남산의 심처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향했다고 한다.
하여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 선발대를 보낸 상황.
“따로 없습니다. 다만 종남산의 선기(仙氣)가 근래 본 적 없을 만큼 강해져 전서구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허허. 무림맹에서 온 첩보도 전달해야 할 텐데.”
“첩보 말입니까?”
“그들이 마교의 호법인 색골음마의 부하들인 것 같다는 첩보가 방금 막 왔네.”
“네에? 그럼 어서 별동대를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게 아니어도 전서구가 제 역할을 못 하니 소식을 듣고자 보내긴 보내야 할 테지.”
“···.”
순간 대회당 내부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게 변했다.
사실 이들이 모인 진짜 이유는 이것이라 봐야 했다. 별동대를 보내야 할 것 같다는 것.
다만 누가 가느냐가 문제였다.
“운심 자네가 가는 건 어떤가.”
“저는, 몸이 안 좋아서. 사형께선 어떠십니까.”
“흠흠. 나는 지금 선기(仙氣)를 받으면, 단전이 견디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종남산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
누구는 선기를 더 이상 받아선 안 되는 처지라 그런 것이고.
또 누구는 외상을 입어 종남산의 험한 산세를 견디기 못하기 때문이며.
또 다른 누구는 그냥 가진 바 무공이 약해서.
혹은 겁이 많아서.
그런 상황이었다.
청진을 비롯해 나름 무공과 도력이 높은 도사들은, 이미 모두 선발대에 포함되어 진즉에 종남산의 심처로 향한 상황.
남아서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그저 그런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몇몇 제대로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이 종남파 경내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외부로 파견이 불가한 논외의 인물들.
“그럼 대체 누가 갑니까?”
“사실 운공, 그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눈치라, 일단 알겠다고 하기는 했는데···.”
“허허. 또 운공입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나마 현재 딱 한 명 움직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운공이었다.
비록 모종의 이유로 장문인으로부터 당분간 입산 금지령을 받은 운공이라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라도 꼭 들어가야 했다.
“비상 상황이니 장문인도 이해해주실 거네.”
“알겠습니다. 그럼 운공 하고 또 누가 갑니까. 이런저런 진법들 때문에 최소 한 명은 더 가야 할 텐데요.”
하여 대화의 방향은 일단 운공은 보내는 걸로 결정을 해둔 채, 누가 함께 가느냐로 변경이 되었다.
“운공이 그러더군. 금태산이란 표사와 함께 가면 될 것 같다고.”
“금태산이란 표사라 하면···.”
가진 바 무위도 충분할뿐더러.
근래에 마교도와 격전을 벌이기도 한 인물이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나?
그렇게 소개한 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리로 데리고 오겠다고 한 것.
다만 그 금태산이란 인물이 이들의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윽고 금태산에 대한 도사들의 견해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헌데 말입니다. 듣기론 청진 사숙께 술에 대한 건의를 한 것도 그 금태산이라는 청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금화표국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지 않습니까. 호부 아래 견자가 나온 것이죠.”
웅성웅성.
“사실 나름대로 알아보니, 그 금태산이란 청년. 호북에서는 아주 유명하답니다. 금화표국의 그 망나니 둘째. 그 청년이 그 청년이랍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어쩌다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허허! 얼마 전에 마교를 퇴치해 무림맹으로부터 포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럼 그건 거짓이었던 겁니까.”
“표사들이 애를 쓴 걸 테지요. 어쨌든. 이따 이곳에 오면,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단단히 일러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웅성웅성.
대략 이런 상황이라 하겠다.
그러나
금태산에게 단단히 일러두겠다는 이들의 바람이 이뤄질지 묻는다면, 글쎄?
···그 시각.
종남산의 심처로 향하는 출입문 인근.
대회당의 도사들이 자기들끼리 어떤 계획을 세우든 말든.
금태산과 운공은 이미 종남산의 심처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운공이 말했다.
“금형,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괜찮을 거야. 어차피 대회당인가 뭔가 하는 곳에 가봐야 좋은 말 못들을 것 같다고, 방금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하긴. 이런 식으로 골탕을 먹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군. 크크크. 어디 계속 기다려보라지.”
“어서 가기나 하지.”
참고로 운공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때 금태산의 눈빛은 꼭 무언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기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금태산과 운공의 신형은 선기를 머금은 안개 속으로 쏙 사라져버렸다.
***
종남파의 객당.
“소령 언니! 큰일 났어요. 표두님께서···.”
소령은 진희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 공자님께서 어쩌셨다고?”
금태산이 마교의 종남파 습격 사건과 엮여, 종남산의 심처로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운공 도사님과 함께···.”
소령의 입장에선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 상황.
‘그걸 왜 공자님이!’
문득
과거 매음굴에서 술을 마시다 혼절한 채, 업혀 오셨던 공자님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 공자님께서 잘못되시는 줄 알고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가.
절로 입술이 잘근잘근 깨물어졌다.
그때 밖에서 소령의 목소리를 들은 표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
장표사의 물음이었다.
소령은 이윽고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들 또한 소령만큼은 아니어도 깜짝 놀랐다.
“두 분이서만 가셨다고? 나머지 도사님들은?”
그들 또한 요 얼마간 금태산과의 표행을 수행하며, 나름 상당한 정이 든 상태.
하물며 근래 달라진 공자님의 모습에, 내심 짠한 감동을 느끼고 있던 상황 아닌가.
금태산의 행동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소령이 진희원에게 물었다.
“희원아, 두 분 들어가신 지 얼마나 됐어?”
“음, 대략 일 식경 정도요?”
“그래? 그럼 아직 멀리는 못 가셨겠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소령이 말을 하며 움직였다.
“저 잠시 종남파 도사님들 좀 뵙고 올게요.”
정신없이 객당 밖으로 나가는 소령.
“언니 같이 가요!”
그 뒤를 진희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따랐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표사들도 허둥지둥 소령의 뒤를 따라갔다.
“소령아, 같이 가!”
***
과거 천마신교 뇌옥에서 시체처럼 살아갈 당시.
강불해는 내게 종종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하곤 했었다.
“···당시 내가 종남산에서 청염단(淸炎丹)이란 영약을 어떻게 얻었는지 아나?”
그가 어떤 의도로 내게 그런 것들을 말했는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추측을 해보자면,
그의 얼굴이 가장 무방비하게 풀릴 때가 그때였으니.
일종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
혹은
어릴 적 매음굴에서 생활할 당시.
목각인형에 온갖 하소연을 하던 기녀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 그녀의 행동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뭐 지금 내겐 하등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강불해를 생각하니 괜히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듣기론, 그는 우연치 않게 한 장의 장보도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장보도에 적힌 내용이···.
종남산은 하늘나라에 닿아 있으며
이어진 산은 바닷가에 접해 있음이라.
흰 구름은 둘러보면 합해져 있고
푸른 안개는 보려들면 없어짐이다.
어둡고 맑음은 뭇 골짜기마다 다르니.
걷다보면 도달하는 곳이 무릉도원이라.
이랬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청염단은 그 무릉도원에서 구했다고 했다.
정확히는 무릉도원이라 칭해진 동굴 안에 있던 백골에서 구했다고 했다.
물론 당장 중요한 건 무릉도원이 아니었다.
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말이 있지 않은가.
뿌연 안개 속을 걸으며 나는 운공에게 물었다.
“운공 자네가 보기엔 우리 주변에 있는 안개의 색깔이 어떤가.”
“안개의 색깔?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그래?”
“선기(仙氣)가 짙기 때문인지,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아. 근데 그건 왜 묻나?”
“아니네.”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심처로 향하는 출입문 앞을 계속 기웃거리지 않았나.
남들은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이 몸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안개의 색이 점점 짙어지는 걸.
그리고 운공이 도움을 달라며, 심처 내부를 가리킨 순간.
얼핏 푸른빛으로 변하는 걸 목도했다.
이후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그저 짙게만 보였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흰 구름은 둘러보면 합해져 있고, 푸른 안개는 보려들면 없어짐이다. 이 문구는 아마 영약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시기를 가리킨 걸 테지.’
하물며 마침 마교의 흔적도 발견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도 아무 이유 없이 종남산에 왔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 년 후 강불해가 영약을 구했던 걸로 보아,
지금 종남산 안에 있는 마교도들은 끝내 청염단을 찾아내지 못할 테지만.
어쨌든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런데 금형, 자네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앞장 서는 건가?”
“허허. 내가 그랬나?”
아무래도 의욕이 너무 앞섰던 모양.
나는 자연스럽게 운공에게 길안내를 요청했고.
이에 운공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실 나도 당장은 금형과 별반 차이가 없네. 일단 바위나 나무에 표식이 나올 때까진 계속 걸어야 해.”
“표식?”
종남파 도사들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저걸 말하는 건가?”
나는 문득 부자연스럽게 부러진 나뭇가지를 하나 발견했다.
정확히는 박도로 베어낸 것과 같은 나뭇가지.
하여 그걸 가리키며 운공에게 물었다.
그런데.
‘···표정이.’
순간 운공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윽고 운공이 말했다.
“이건. 우리의 흔적이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