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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12화 (12/133)

012화. 종남(2)

12화. 종남(2)

“내 분명 손님과 대화 중이라 했거늘. 어찌 이리 부주의한가.”

청진이 문 밖을 향해 엄하게 꾸짖었다.

그러더니 슬쩍 내 눈치를 보곤 입을 열더라.

“미안하네. 접객당을 담당하는 시동이 얼마 전에 바뀌는 바람에.”

운공도 적잖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그녀의 방문은 이들에게도 예기치 못한 일인 것 같았다.

청진은 연신 문간을 흘깃거렸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나누던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청진이 말했다.

“미안하네만, 오늘 하다만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했으면 하네.”

나는 청진의 말에 일단 알겠노라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처럼 온 신경이 저쪽으로 쏠려 있으면,

당장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터.

청진을 설득하여, 종남파에 정기적으로 술을 공급하는 표행을 따내고.

그걸 명목으로 산길을 이용하며, 틈틈이 종남산을 수색할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내 신경도 반쯤은 문 밖에 있는 진희원에게 옮겨간 상태이고.

‘그나저나 진희원과 약왕이라.’

그녀는 분명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를 친척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와야 한다고 했다.

겸사겸사 동생인 진소원도 종후무관이란 곳에 맡기고.

그런데 돌연 약왕의 자제라니.

‘그렇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약왕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맞을 것이다.

넌지시 청진을 향해 말했다.

“괜찮습니다. 헌데 약왕님의 자제분이라면···.”

“못 들은 걸로 해줬으면 좋겠네.”

짐짓 단호한 얼굴을 하는 청진.

하기야.

정말 진희원이 약왕의 자제라면, 이는 무림의 특급 기밀일 터였다.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약왕에겐 처자식이 없었으니까.

“···금형. 미안하게 됐네.”

종남신성 운공이 다가와 내게 나지막이 입을 움직였다.

갑작스레 대화가 끊긴 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네. 자네가 잘못한 일도 아니지 않나.”

“그래도. 자칫 대화가 기약 없이 미뤄질 수도 있지 않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솔직히 아무런 아쉬움도 없느냐 물으면, 당연히 아니었다.

지금 청진은 내 말에 적잖이 호기심을 가지게 된 상태 아닌가.

그러나 나중에도 마찬가지일 거란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청진은 아예 나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을 수도 있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냥 물러났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넌지시 운공을 향해 말했다.

“진희원 소저께 안부나 전해주게.”

그러면서 청진을 향해 몸을 돌려 가볍게 인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사를 하는 척 청진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진희원 소저라는 말 때문이겠지.’

청진은 눈을 부릅뜬 채 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여 나는 그를 향해, 한 마디 말을 덧붙여 주었다.

“소저께서 종남산으로 오실 때, 이용한 표국이 저희 표국이었습니다.”

이윽고 청진의 눈에 이채가 띄기 시작했다.

단춧구멍 만하던 눈이 순식간에 잘 익은 대추 만해졌다.

하물며 입가에 가벼운 웃음기를 띤 걸 보니, 내심 안심을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잠시 입맛을 다시던 청진이 말했다.

“그럼 그 아이가 오늘 이곳에 올 것이란 것도 미리 알고 있었는가.”

“아닙니다. 그건 저도 몰랐습니다. 제 임무는 어디까지나 소저를 종남산까지 바래다주는 것이었으니까요.”

“허허. 그렇구먼. 자네가 몸담고 있는 표국의 이름이 뭐였지?”

“금화표국입니다.”

“···금화표국이라. 잠깐. 금화표국? 설마 얼마 전에 마교도를 척결한 일행이···.”

“저희가 맞습니다.”

“허허. 정말 큰일을 하였구먼. 큰일을 하였어! 내 나중에 따로 보답을 하겠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요.”

“이렇게 바른 청년이 있나. 그래도 보답은 내 성의이니 사양 말게.”

이윽고 그의 얼굴은 점점 더 따스하게 풀어져갔다.

그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하는 것과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 조만간 기별하겠네. 운공아, 잠시 네가 손님을 모시거라.”

청진의 말에 운공은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청진을 향해, 입가에 진한 미소를 만들며, 손바닥으로 주먹을 감싸는 포권 인사를 취했다.

“그럼 말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접객당을 나오는 길.

나는 자연스레 진희원을 스쳐갔다.

“소저, 또 뵙습니다.”

슬쩍 표정을 살펴보니, 얼굴에 미안함이 한 가득이더라.

“제가 일부러 속이려고 그랬던 건 절대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를 향해 가만히 웃어주었다.

‘어쩔 수 없었겠지.’

사실 누군들 그녀와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경계심 없이 이곳저곳에 본인의 정체에 대해 말을 하고 다녔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십중팔구 납치를 당하거나.

더욱 심한 꼴을 당했을 테다.

하여 나는 그저 맑게 웃으며 물었다.

“달포 남짓 뒤에 종후무관 앞에서 뵙기로 한 건,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겁니까.”

그러자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후 그녀는 무어라 변명을 더 하려고 하는 것도 같았지만,

이어진 청진 도사의 부름에 미처 말을 뱉어내진 못했다.

이후 나는 운공을 따라, 종남파 경내를 거닐었다.

듣기론 나와 함께 온 소령과 표사들도 나름대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게 될 것이라 하더라.

***

종남파 취선루.

물안개가 자욱한 정자 위에서 우리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진희원과 청진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진 까닭.

꼴꼴꼴꼴-

종남신성 운공이 도향주(桃香酒)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말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는 무언가?”

“두 번째 이유?”

아마 청진과의 대화에서 내가 말한 ‘종남파에 술을 들여야 하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종남파의 기개와 관련이 있다고 했으니.

두 번째 답변이 궁금한 모양.

나는 바둑판 위에 바둑알을 올리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네.”

그러자 운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됐네. 어차피 나중에 듣게 될 거.”

나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두 번째 이유라.’

사실 두 번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종남신성 운공과 관련이 있는 이유.

‘···내가 본 운공은 술을 마시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지.’

그러면서 동시에 그 죄책감에 시달리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어쩌면 종남신성이라 불릴 정도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이기 때문에 갖게 된 고충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자극이 필요한 것이리라.

‘쉽게 말해 세상이 재미가 없는 것이겠지.’

그래서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것일 터.

그리고 이는 종남파의 입장에선 큰 손실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히 술을 끊게 하고 싶을 터.

‘역설적으로 술을 마시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면, 술을 끊을 수밖에 없겠지.’

결국 경내로 술을 반입하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후, 종남신성의 흥미를 다른 방향으로 잘 돌릴 수만 있다면,

종남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터였다.

‘종남파에서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테지.’

이 몸 또한 술에 절어 방탕한 생활을 해보았지 않았나.

전생엔 매음굴에서 술과 약에 취해 망가지는 사람을 숱하게 보아왔고.

세상엔 술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상당했다.

사실 이 몸도 그다지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가만히 운공을 향해 말했다.

“종남파의 미래와 관련이 있는 일이네.”

“우리의 미래?”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운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운공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대체 손에 쥔 바둑알은 언제 판에 올려놓을 생각인가?”

그러자 그가 바둑판 위에 있는 바둑알들을 마구 손으로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됐네! 바둑은 이제 그만 두지.”

그가 술을 꼴꼴꼴 마시며 말했다.

“금형. 우리 솔직해지자고. 바둑 오늘 처음 배웠다는 거 거짓말이지?”

그의 눈초리가 상당히 게슴츠레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고개만 저어줬다.

물론 실제로도 처음 두는 것이 맞았다.

그저 운공이 하는 모양을 유심히 살피니, 규칙이 보였다.

그의 습관이 보였고.

그 이후엔 연전연승을 하고 있었다.

“됐네. 우리 내기나 하나 하지.”

“내기?”

그가 뚜벅뚜벅 취선루의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혹시 지도 비무라고 아나?”

듣기론 일반적인 비무와 달리 특별한 규칙을 정한 뒤 하는 비무라 했다.

“규칙은 간단하네. 금형은 어떻게든 나를 건드리면 되는 거야.”

“자네를 건드리면 된다고? 달리 다른 제약은 없는 건가?”

“글쎄. 제약이라면 무얼 말하는 건가?”

“대략 몇 수 안에 끝내야 한다든지. 이런 것 말이네.”

“딱히 상관없을 걸세. 금형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알아서 포기하면 되네.”

그는 자신은 딱 이류 수준의 내공만 사용한다고 했다.

내 무공의 수위가 그 정도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몸을 상당히 얕잡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어 운공이 말했다.

“내가 이기면 금형은 아까 그 두 번째 이유를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줘야 하네.”

그게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

“좋네.”

“···그리고 바둑도 처음 두는 게 아니라고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어쩌면 이게 자존심이 상해서 이 지도 비무를 제안한 걸지도 모르겠다.

‘표정을 보니 아마 그게 맞을 것 같군.’

어쨌든 이 또한 괜찮은 경험인 것 같았다.

“바둑은 정말 처음 두는 게 맞다니깐 그러네.”

“됐어. 준비나 하지.”

운공은 고개를 저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나는 그를 향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아직 안 정한 게 있지 않나?”

“안 정한 거?”

“내가 이기면 자네는 뭘 해주나?”

운공의 눈이 잠깐 커다래지더니, 이윽고 입가에 긴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금형은 고수와 비무를 해본 적이 없나 보군.”

잠시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그가 말했다.

“금형이 이기면, 금형 부탁대로 종남산 안을 구경시켜주겠네.”

사실 아까 운공에게 취선루 대신, 종남산 안쪽을 구경시켜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추후 정기적으로 술을 공급하는 표행을 따내게 되면, 어차피 출입증이 주어지니 자연스레 종남산 이곳저곳을 살펴볼 수 있게 될 테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더 빨리 수색을 시작하면 좋지 않겠는가.

물론 명목은 중원 최고의 명산인 종남산을 구경해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랬더니 운공은 산세가 험해 위험하다며 극구 사양을 하더라.

나한테 보법이나 경신법을 익힌 것이 있느냐 물어보더니, 달리 없다고 하자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정말 보법이나 경신법을 하루 빨리 익히긴 익혀야 하나?’

생각해보니 그랬다.

저번에 축골공을 익힌 마교의 졸개와 싸울 때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았나.

비록 마지막엔 비도술을 이용해 놈을 무찔렀지만,

만약 놈보다 내 경신법이 뛰어났다면, 훨씬 빠르게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을 테다.

‘적당한 경신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이윽고 운공이 말했다.

“나를 건드릴 수 있을 정도면, 종남산의 가파른 지형도 어려움 없이 넘어 다닐 수 있을 걸세.”

말을 들어 보니 일종의 자격시험과 비슷한 맥락인 것도 같았다.

‘근데 표정을 보니 내가 절대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군.’

잠시 고민을 했다.

어느 정도까지 실력을 드러내야 할까.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근데 자네도 공격을 하는 건가?”

이에 운공이 대답했다.

“아니네. 나는 주로 경신법과 보법을 사용해 금형을 피해 다닐 거야.”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 참에 보법이나 경신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예전에 얼핏 종남파의 경신법이 상당히 고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심지어 정종의 무학을 제대로 견식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어쩌면 예상치도 못한 좋은 기회를 얻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지.”

말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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