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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9화 (9/133)

009화. 습격(1)

9화. 습격(1)

호북에서 섬서로 향하는 마차 안.

나는 잠시 이 몸의 형님인 금태강이 건넨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해독단과 검이라.’

하나는 몸을 보호하는 물품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지키는 물품.

‘어떤 의미가 있는 물품들일까.’

금태강은 이 물건들을 건네며,

이번 표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물건들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일종의 선문답인 것 같았다.

잠시 해답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여섯 살쯤 되었을 법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우리 표두님은 어떤 분이에요?”

진소원이란 여자아이였다.

진희원 진소원 자매 중 동생.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방금 아이가 말한 표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제 딴엔 작게 말하면 내 귀엔 안 들릴 줄 알았나 보다.

이에 옆에 있던 소령이 아이를 향해 속삭였다.

“음, 우리 공자님은 말이지.”

둘은 벌써 언니 동생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물론 소령은 진소원의 실제 언니 되는 진희원과도 금방 친해졌다.

다만 진희원은 지금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마차 한 편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을 뿐.

‘탈것에 의한 어지럼증이라고 했나?’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약재를 복용 후 숙면 중인 것 같았다.

‘생전에 부친께서 약방을 하셨다는 말은 사실인가 보네.’

참 특이한 자매인 것 같았다.

소령이 곧 아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꼭 내 얼굴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진소원.

나는 짐짓 마차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이후, 소령의 입이 열렸다.

“어디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주체적이고. 책임감 넘치고. 총명하고.

소령은 낯부끄러울 수 있는 소리를 침 한 번 삼키지 않고 술술술 뱉어냈다.

“또 얼마 전에는 흑구라는 왈패도 따끔하게 혼내주셨어. 얼마나 대단하셨는데.”

“우와! 아 맞다. 저 삼공자님? 그분이랑 다투셨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언니가 그날 담장너머로 몰래 봤대요.”

“그래? 나는 못 봤는데. 어땠다고 하셔?”

“막 빠바박! 움직여서 슈슈슉! 하셨대요.”

“빠바박? 슈슈슉?”

“아! 이거 언니가 비밀하라고 했는데···.”

차마 다시 마차 안쪽으로 시선을 돌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싫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조금 낯이 화끈거렸다.

창문 밖에는 말을 타고 있는 표사들이 있었다.

이 몸의 형님인 금태강이 붙여준 표사들.

나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 타는 법이나 관찰하자 생각했다.

‘박자 감각이 중요한가?’

명색이 표두가 되어서 말도 못 타면 안 되지 않겠는가.

비록 지금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습득하길 목표로 삼고 있었다.

내가 말을 타지 못한다고 하자, 그때 저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비웃음을 생각하면···.

“말 타기가 원래 쉬운 일은 아니죠.”

“공자님, 호위는 저희가 책임질 테니, 마차 안에서 푹 쉬십쇼.”

이런 식으로 말했었다.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윽고 아예 창문 밖으로 머리를 빼면, 이 몸의 동생인 금태천이 이끄는 표행단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조촐한 이쪽과는 달리, 그 규모가 적잖은 표행단.

듣기론 형주에서 만든 녹송석(綠松石) 공예품을 운송하는 것이라 했다.

‘거리가 꽤 벌어졌네.’

우리보다 한참 앞서나가고 있었다.

잠시 금태천을 떠올리니, 문득 코웃음이 쳐졌다.

표행을 출발하기 전, 국주인 금태강이 내게 전달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태천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더구나. 다른 건 몰라도 표행만큼은 자신이 너보다 나을 거라고.”

나를 숙적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속으로 저런 옹심을 키우고 있었을 줄이야.

가만히 금태천 무리를 바라봤다.

‘점점 더 멀어지네.’

어쩌면 지금도 나름대로 나와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공자님, 거리가 점점 벌어집니다. 저희도 속도를 올릴까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돌려 마차 한 쪽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진희원을 봤다.

아까 보니 속도가 올라가면 더욱 고생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네. 지금 속도를 유지해주게.”

진희원의 상태가 여기서 더 심각해지면, 자칫 여정에 지장이 생길지도 몰랐다.

딱히 변수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

하늘에 별이 총총 박힌 깜깜한 밤.

타닥- 타닥-

우리는 화톳불 앞에 모여 앉았다.

“힝. 삼공자님 나빠. 우릴 버리고 가버리셨어.”

“소원아, 그런 말 하면 못 써.”

불을 쪼이며 울상을 짓는 소원을 향해, 그의 언니 희원이 나지막이 꾸짖었다.

말을 하며 황급히 내 눈치를 보는 걸 보니, 혹여나 이 몸이 경을 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게 말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면, 기다려줄 줄 알았거늘.”

나는 혼잣말하듯 대꾸해주고 금태천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어지간히 멀리까지도 갔네.’

보통 밤이 되면 야영을 위해, 불을 피우기 마련.

그들도 당연히 불을 피웠고.

대략적으로나마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내일이면 더 벌어지겠지?’

이정도면 아예 따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공자님, 식사는 입에 맞으셨어요?”

그때 소령의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소령을 봤다.

질문은 소령이 했는데, 희원과 소령 둘이 나란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원은 어느새 불을 쪼이며 꾸벅꾸벅 졸고 있고···.

그들을 보며 대답했다.

“나쁘지 않았어.”

내 대답에 희원과 소령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오늘은 둘이 같이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 같다.

둘 중 언니인 소령이 전체적인 구상을 세우고.

희원이 지니고 있는 약재를 넣어 맛에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다행히 희원의 몸 상태는 아까 마차에서보다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진희원이 졸고 있는 동생을 안아, 마차 안으로 데려간 사이. 소령이 새끼손가락 절반 크기의 후박엿을 내밀었다.

“공자님, 후박엿이래요. 희원이가 아까 몰래 나눠주더라고요.”

혓바닥으로 살살 녹여먹으니 맛이 상당히 좋더라.

“후박엿은 특히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대요. 제가 마차에서 다리가 좀 저리다고 하니까 슬쩍 건네주는 거 있죠?”

“그럼 소령한테 처방해준 거잖아. 내가 먹어도 돼?”

“걱정 마세요. 저도 하나 먹었는데 말끔히 나았어요.”

“다행이네.”

잠시 휴식을 취했다.

화톳불이 약해진 것 같아, 장작을 더 넣으려고 하는데, 소령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근데 표사님들은 왜 따로 식사를 하신다고 한 걸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따로 식사를 하고 있는 표사들을 봤다.

“그러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유를 알았다.

‘그들과 나 사이에 벽을 만드는 걸 테지.’

그들은 나를 표두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저 모셔야 할 귀빈으로 생각하는 것.

심지어 부를 때도 표두라고 하는 대신, 꼭 공자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식사도 따로 하는 것이리라.

‘···이러다간 자칫 영약을 찾는 데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니, 충분히 일리 있었다.

만약 그들이 추후 내가 지시하는 일에 일일이 토라도 달면, 골치가 적잖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가서 말이라도 붙여볼까?’

일단 친분을 좀 쌓아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표사들에게 향했다.

“···아까 아침에 잠깐 들렀던 마을에서 들었는데, 약왕의 보물이 풀렸다고 하더구먼.”

그들은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약왕의 보물?’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어이쿠. 공자님 오셨습니까?”

표사 하나가 과장을 하며 엉덩이를 비켰다.

“나도 흥미가 있어서 왔네. 약왕의 보물이 무언가.”

잠시 서로서로 눈치를 보더니, 개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표사가 입을 열었다.

“아, 그건 말입니다.”

한창 호북성과 섬서성 인근에서 퍼져나가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은거했던 약왕이 죽으며, 그의 보물들이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다는 것.

“···호북성 무한에서 약왕의 유품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약왕과 오랜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무림맹 장로가 무림맹 인근 시전에서 우연히 그의 유품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나?

그래서 약왕의 고향으로 알려진 섬서성과 무림맹이 있는 호북성 인근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설마 강불해가 발견했던 백골의 정체가 약왕인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백골의 정체가 약왕이라면, 그의 품에 영약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욱이 강불해의 말에 따르면, 종남산 깊숙한 곳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했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그때까지 찾지 못한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다만 사파 마두들도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저희 표국이 위치한 곳이 호북성이다 보니 자칫 그들과 엮여 크게 화를 입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또한 납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일부터는 가급적 야영은 자제해야 하려나?’

자칫 습격이라도 당하면 이도저도 아닐 수 있었다.

만약 이번 표행마저 실패한다면, 금화표국은 단번에 망해버릴 테니까.

‘그럼 금화표국 직계란 신분이 단번에 망한 표국의 후손으로 바뀌는 건가.’

한창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애초 목적처럼 친분은 충분히 다질 수 있었다.

기연과 보물은 노소를 불문하고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지.’

차츰 이렇게 인식을 바꿔나가면 될 테다.

표사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고.

불침번을 정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불침번을 서지.”

다들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길래 솔선수범해서 나섰다.

“아이고! 아닙니다.”

처음엔 다들 아니라고 난리를 피웠지만,

내가 내 신분이 표두라는 걸 강조하자, 말이 쏙 들어갔다.

‘그래도 몇몇은 눈빛이 조금 더 호의적으로 변한 것 같군.’

화톳불에 장작을 더하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문득 허리춤에 있는 검이 손에 걸렸다.

출발 전 금태강에게 받은 검.

해독단과 함께 의미를 고민해보라며 건넨 검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아직 휘둘러보지도 않은 것 같네.’

새로운 무기에 적응도 할 겸, 보초를 서며 검을 좀 휘둘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가만히 검을 뽑았다.

채앵-

맑은 검명을 들으며 눈으로 검신을 훑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검신에 발간 화톳불이 영롱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만들며, 가만히 자세를 잡았다.

‘가볍게만 휘둘러보자.’

굳이 형(形)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허공을 향해 긴 검선을 만들었다.

쎄액-

횡으로 휘둘러 어둠을 갈랐다.

휙-

마침 근처에 나방이 있어 날카롭게 찔렀다.

쉬욱-

마무리는 세로배기.

차분히 칼집에 검을 갈무리했다.

‘평소랑 조금 느낌이 다른데?’

평소 연습하던 곳과 장소가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선물 받은 검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 사이 성취가 있던 것인지.

검선이 한결 매끄럽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반복했을 때일까.

문득 멀리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챙- 챙!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설마.’

분명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표사들을 깨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풀숲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세요!”

***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이는 일전에 내게 뒤통수를 맞았던 금태천의 시종이었다.

“···저녁에 산공독이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산공독은 내공을 흐트러뜨려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독.

구체적인 까닭은 모르지만, 내부에 간자가 숨어 있다 독을 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중독이 된 상황.

그때 습격자들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일단 몇몇 저녁을 굶으신 표사님들이 금태천 표두님과 함께 분전 중인데···.”

“태천이는 어떤가.”

“다, 다행히 해독단을 가지고 계셔서요.”

듣기론 해독단을 먹어 그나마 독을 중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봐야 해독까진 시간이 걸릴 테니, 온전한 힘을 내진 못하고 있을 테지만.

“일단 저를 비롯해 싸움을 못 하는 시종들이나 쟁자수들은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상태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공자님. 제발 저희 공자님 좀 살려주세요.”

적의 숫자는 대략 스물이라는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표사의 수가 열.

나까지 포함하면 열하나.

태천이 일행에서 독에 중독당하지 않은 사람이 대여섯 명.

빠르게 지원을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습격과 동시에 짐수레부터 뒤집어엎었다는 걸 보면, 아까 표사들이 말했던 약왕의 보물을 노린 마두들일지도 모르겠군.’

만약 표물 그 자체를 노린 놈들이었다면, 짐수레는 최대한 보존하려 했을 터.

영문은 모르지만, 그들은 표물 속에 약왕의 보물이 숨어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소령은 재빨리 모닥불을 끄고 있었다.

어느덧 무기를 챙긴 표사들이 본인들의 말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도 남는 말 하나를 골라 그 위에 훌쩍 올라탔다.

곧바로 표사들에게 말했다.

“가자.”

그런데 그때였다.

‘뭐지?’

한시가 바쁘거늘.

표사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대체 뭐하는 거지?”

곧 표사 중 한 명이 멋쩍은 얼굴로 물어왔다.

“···고, 공자님, 말 타실 줄 아셨습니까?”

뭔 소리를 하나 했네.

나는 그 표사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까 눈대중으로 배웠다.”

이윽고 말을 달려, 금태천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까까지 말을 안 듣던 표사들이 어물쩍 내 눈치를 보며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지않아 목적지에 도착했고. 곧장 검부터 휘둘렀다.

쎄액-

검이 지나간 자리 뒤로 핏방울이 별빛처럼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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