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화표국 천재 아들-3화 (3/133)

003화. 전화위복

3화. 전화위복

기연을 얻기 몇 시진 전.

- 무학(武學)의 근본은 무엇인가?

- 무학은 흐르는 인간사와 같으니.

나는 훼손된 천마신공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무학의 무궁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말들.

흐른다는 것은 고여 있지 않다는 것일 테니.

그걸 휘두르는 사람에 따라, 어디로든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다는 말들.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뒷내용이···.’

지금 천마신공의 서두를 떠올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비로소 단전을 만들기 위함.

소령에게 호법을 부탁 한 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휘영청 달빛을 받으며 무공을 골랐다.

‘어떤 무공을 기반으로 단전을 만들면 좋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병약한 몸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무공은 무엇이 있을까.

특유의 오성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무공은 무엇이 있을까.

‘역시 천마신공이 좋겠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교의 절대자인 천마만이 익힐 수 있다는 무공. 천마신공.

이걸 배제하고 다른 무공을 선택하긴 쉽지 않았다.

천마신공은 여타의 무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이었으니까.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하겠다.

패도적인 힘으로 여러 무학들을 집어 삼키는 포식자의 무학.

배타적인 다른 무학들과는 달리, 이는 포식한 무학의 힘 또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무학이란 의미였다.

현재 이 육체에 가장 필요한 요상결(육체의 회복을 돕는 무공)을 비롯하여, 특유의 오성으로 익힌 다양한 무학들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무학이란 말도 되겠다.

비록 상당 부분이 훼손된 내용을 읽은 것이 전부였지만,

아니 오히려 훼손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무공이기도 했다.

나만의 천마신공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스스로 유추하여 구결을 채워 넣을 수 있을 테니까.

이로써 내가 필요한 방향으로 단전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오만할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너는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그리고 천마신공의 서두도 그것에 닿아있다고.

물론 실패할 수도 있었다.

허나 실패하면 그때 되돌려도 늦지 않았다.

결국 그 또한 모두 복(福)이 되어 돌아올 테니.

인생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내겐 항상 전화위복(轉禍爲福)이었으니.

무학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애초에 이 몸뚱이가 어떠한 무공도 익히지 않은 백짓장과 같은 몸뚱이였기 때문에, 최소한 주화입마의 가능성은 없어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하복부에 집중을 했다.

천마신공 운기법에 해당하는 구결을 외우며 천천히 심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쿠구구구- 쏴아아!

마침내 하복부에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근간을 이루는 대해(大海; 큰 바다)가 만들어졌다.

그 칠흑 같은 대해 안으로 먹잇감을 던져주듯 다른 무공의 구결들을 던져 넣었다.

툭. 툭.

매음굴에서 눈동냥으로 배워온 무공들을 던졌고.

천마신교의 뇌옥에서 읽어온 여러 마공들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이 몸의 오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금화표국의 가전무공인 금귀방탄공(金龜防彈功)을 던졌다.

금귀방탄공은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공으로 요상결의 효능도 겸하고 있었다.

이처럼 가지고 있는 모든 무공을 넣었다.

보다 넓은 기틀을 만들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무공을 넣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이윽고 천마신공이란 본류(本流)를 따라 여러 지류(支流)들이 생성되었다.

‘이제 거의 다 되었어.’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천마신공을 토대로 한 나만의 단전이 완성될 터.

때로는 바다와 같고.

때로는 강줄기와 같은, 그런 단전.

‘다 됐다.’

마침내 확인만 남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여 흐뭇하게 웃으며 눈을 뜨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눈이 뜨여지지 않지?’

당연히 뜨여져야 할 눈이 뜨여지질 않는다.

동시에.

투둑-

투두둑-

예상치 못한 소리가 귓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출처는 이 몸의 혈관들이었다.

말라비틀어졌던 혈관들이 천마신공을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정확히는 천마신공 속에 있는 금귀방탄공을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금귀방탄공에 요상결의 효능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세상 만물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

말라비틀어진 혈관이 본능적으로 금귀방탄공이 필요하단 걸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이를 당기는 것일 테다.

쩌저적-

칼로 생살을 가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쿠구궁!

이번엔 천마신공이 혈관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어디서 감히 내 것을 빼앗느냐고 호통치는 것 같았다.

쩌저적- 쿠구궁!

단전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점차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휘몰아쳤다.

인체라는 소우주(小宇宙)에서 전쟁이 일었다.

당기고. 밀고.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름이 달을 가리듯, 달이 구름을 삼키듯, 천마신공의 마기가 전신의 혈관들과 뒤엉켰을 때쯤이었다.

콧구멍을 통해 긴 날숨이 나왔다.

후-

마침내.

“단전과 혈관이 하나가 되었어.”

입이 열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금귀방탄공을 휘감은 천마신공이 혈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몸이 곧 단전이 되었고.

단전이 곧 몸이 되었다.

일단동체(一丹同體)라 하겠다.

이로써 말라비틀어졌던 혈관도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누구의 승리도 아니었다.

모두의 승리였다.

흐르는 물처럼 서로가 서로를 포용한 것이다.

머지않아 천마신공이 혈관 속 온갖 탁기들을 한 데로 모았다.

주로 주독(酒毒)과 각종 춘약(春藥)에서 비롯된 독기였다.

아마 그건 그동안 이 몸뚱이를 괴롭혀온 사특한 것들일 것이다.

이윽고 천마신공이 독기들을 포악하게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독기가 사라져갔다.

대신 천마신공이 들어찼다.

전신의 혈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생기를 주고받는다.

과거 무공 서적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

골격까지 변화한 건 아니었지만,

혈관이 변화했고.

그 혈관이 지나가는 모든 곳이 변화했다.

‘절반쯤의 환골탈태인 건가?’

두 눈에선 정광이 흘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그저 피부가 탱탱해지고.

보다 윤이 돌게 변한 정도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이로써 무공의 수발이 훨씬 자유로워진 것이다.

보다 무공을 펼치기에 적합한 몸으로 변화한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성취였다.

일단동체(一丹同體)와 반쯤 성공한 환골탈태(換骨奪胎).

아마 천마신공과 금귀방탄공, 그리고 술과 약에 찌들어 말라비틀어져버린 혈관의 조화이리라.

어느 것 하나 빠졌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어쩌면 운명이란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변화한 몸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무학은 흐르는 인간사와 같으니.

인간사는 매순간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갈 따름.

지금 이룬 성취 또한 어딘가에 있을 목적지를 향한 흐름 중 일부일 것이다.

물론 그 목적지가 어디일진,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여정의 결과물이 점점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향했다.

“공자님, 운동하시게요?”

본격적으로 내공을 사용해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소령아, 나 좀 도와줄래?”

해맑게 웃으며 소령에게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공을 연마해보려는데, 도움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

호북성 의창의 가장 음산한 귀퉁이.

세상에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고.

정파가 있다면 사파가 있듯.

번화한 항구도시인 의창에도 쥐 죽은 듯이 침울한 공간이 있다.

향락동(享樂洞)이란 이름의 매음굴.

그리고 그 공간에서 두 사내가 작당을 모의하고 있었다.

“흑구야, 요즘 가게 형편이 말이 아니다. 위에 올릴 상납금이 부족해.”

볼 살이 축 늘어진 사내가 손바닥으로 팡! 하고 식탁을 치며 말했다.

이에 식탁 위에 다리를 올린 채 손톱을 정리하고 있던 흑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후- 제가 얼마 전에 호구(虎口) 한 마리 물어왔지 않습니까. 그거면 충분할 텐데?”

얼마 전 데려왔던 금화표국의 둘째 아들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그날 그들은 하룻밤 만에 근 한 달치의 수입을 올렸다.

멍청한 놈이 술이든 약이든, 주면 주는 대로 족족 받아 처먹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지막엔 혼절을 했기에,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볼 살이 축 늘어진 사내가 말했다.

“인마. 다 내가 네들 먹여 살리려고 그러는 거야.”

흑구는 얼굴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저건 나름대로 비자금을 만들고 있다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그리고 비자금을 만들고 있다면, 이에 협조했을 때 돌아오는 돈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차례 혓바닥을 굴리곤 입을 열었다.

“돌려 말하지 맙시다. 호구 다시 물어오란 말이죠?”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티 났냐?”

흑구가 식탁에서 다리를 내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춤에 손을 찔러 넣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냉큼 물어올 테니까. 중개비나 넉넉히 준비해두쇼. 예쁜 애들도 알아서 잘 준비해두고. 난 이번에 들어온 앵앵이가 마음에 들더라.”

이윽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금태산이 머물고 있는 금화표국의 별장이었다.

***

소령에게 한 부탁은 다름이 아니었다.

“창고 좀 비워줄래?”

“창고요?”

일종의 수련할 공간의 확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무공들 중 신공절학에 해당하는 건 대부분이 천마신교에서 비롯된 것.

‘괜히 마공(魔功)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골치 아플 테니까.’

그저 몸짓을 보고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전생에 납치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가급적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 이곳의 창고가 그 크기가 굉장하여 연무장의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대련 상대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오문 계열의 무공을 익힌 소령에게 부탁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 뒀다.

무공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된 것 같기도 했고.

그녀 또한 무공을 익힌 것을 티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으니까.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매음굴에서 자라며, 그런 여인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특히 더 세심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소령은 그간의 모습을 되돌아 봤을 때, 내 편인 게 확실하니, 먼저 말하기 전까진 굳이 물을 필요가 없겠지.’

소령과 함께 창고를 치웠다.

창고를 치우는 일은 소령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혼자보단 둘이 더 빠를 터.

소령의 눈빛이 달라진 것이 약간의 오해가 생긴 것 같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을 뿐.

말끔히 청소를 했다.

한창 청소를 하던 중.

“이건 뭐지?”

문득, 구석에서 한 꾸러미의 서찰도 발견을 했다.

낡은 목함 안에 있는 서찰들.

수취인이 금태산인 걸 보면, 전부 자신에게 온 편지들이었다.

‘일부러 여기에 둔 건가?’

기억 속에도 없는 서찰 꾸러미.

호기심에 꾸러미를 풀어헤쳤다.

자연스레 내용들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 내가 술맛 좋은 기루 알아봤는데, 다음에 같이 가자.

- 돈 좀 빌려줄 수 있겠나.

- 너희 표국 표행 하는 데에 나 좀 넣어주면 안 될까?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다.

대체로 자신을 호구로 보고 돈이나 대리 청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몇몇 개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편지도 있었지만, 그 수가 워낙 적었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 놈의 몸뚱아리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

‘주변 관계도 언제 한번 정리를 해야겠네.’

몸속에 있던 주독과 춘약의 독기를 제거한 것처럼.

깔끔이 치워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미칠 뿐이니.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 꾸러미를 다시 상자 안으로 집어넣을 때였다.

문득 대문 밖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금태산 안에 있나?”

음색이 불쾌하다기 보단, 저 목소리를 듣고 떠오르는 감정이 불쾌하단 뜻이었다.

쿵쿵-

놈이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이 흑구였나?’

그 순간. 소령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어. 어. 공자님. 제가 나가서 해결할게요!”

벌떡 일어나 새빨간 얼굴로 말한다.

대체 뭘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인지.

괜히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떻게?”

“네? 주무시고 계신다고 할까요? 아니면 아직 몸이 편찮으시다고···.”

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종종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방금 본 서찰들을 따로 보관한 것도 소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내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까봐.

혹은 이들에게 휘둘릴까봐.

그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가만히 소령을 바라봤다.

‘마음은 고맙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윽고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내가 해결할게.”

소령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순 있었다.

하지만 마침 옛 은원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나.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

당황한 소령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휘영청 한 달빛이, 등 뒤로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끼이익-

그런 그림자를 등지며 창고의 문을 열었다.

이윽고 대문 밖에 있는 놈을 향해 말했다.

“어이. 흑구. 왔는가.”

이상하게 고운 말이 나오진 않았다.

아마 이 몸의 원 주인이 가진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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