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화표국 천재 아들-2화 (2/133)

002화. 기연

2화. 기연

이름은 금태산.

호북성 의창에 있는 금화표국(金花镖局)의 이공자(二公子).

내가 새로이 얻게 된 이 몸의 신분이었다.

가족 관계는 아래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하나 있었고.

위로는 금화표국의 국주(局主)의 자리를 맡고 있는 형이 하나 있었다.

‘이 밖에 부친과 의형제 관계였던 숙부님이 한 분 계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신 상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자, 문득 코끝이 찡해졌다.

아마 기억을 고스란히 전달받으며, 그 기억 속에 묻어있던 감정 또한 빠짐없이 전달받은 탓이리라.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일종의 대가 같았다.

잠시 감정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방으로 찾아온 의원이 진맥을 시작했다.

“허허. 이것 참···.”

의원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에 의원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여인이 울상을 지었다.

“의원님이 보시기에, 저희 공자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여인의 이름은 소령. 내가 맨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울먹이며 기뻐하던 그 무공을 익힌 시비였다.

이에 의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에도 워낙 과음을 하셨던 탓에, 건강이 많이 상하신 상태였네. 그런데 이번에 쓰러지신 것도 과음으로 쓰러지신 것이니.”

의원은 슬쩍 내 눈치를 보곤 말을 이었다.

“흠흠. 깨어나신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네.”

소령은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았는지, 그 커다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기적이요?”

“그렇지. 이건 하늘이 도왔다고밖엔. 혈관의 모양도 내 평생 처음 보는 형태로 바뀌어 있고···.”

이어진 의원에 말에 소령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곤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이윽고 하는 말이 이 모든 것이 옆에서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란다.

“이보게. 그렇게 울면 내가 진맥을 하기가···.”

“죄송합니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공자님.”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나는 그 사이 나름대로 새로 얻은 몸을 살펴봤다.

‘확실히 쓰레기 같은 몸이야.’

특유의 눈썰미로 이 몸을 샅샅이 분석해본 결과.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이니···.’

표국의 이공자라는 놈이 무공은커녕 제대로 운동도 하지 않은 건 둘째로 치더라도.

오장육부 중엔 성한 곳이 더 적을 정도였다.

심지어 의원의 말처럼 혈관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혈관과 달랐다.

가뭄이 든 논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는 모습.

쉽게 말해 약과 술에 찌들어 죽기 일보직전의 몸이라고 봐야 했다.

하물며 그런 놈이 달포 전엔 향락동(享樂洞)이란 매음굴을 찾아 약과 술을 하다 혼절을 하기도 했다나?

이러니 죽지 않는 게 더 용한 일이었다.

‘아니, 아마 이 몸의 원 주인은 그때 죽었겠지.’

그리고 영문은 불명확하지만, 그때 자신의 혼백이 이 몸을 차지하게 된 것이리라.

참고로 원래 이 몸의 주인은 부모님을 여의고 그 충격에 못 이겨, 술에 절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몇몇 나쁜 친구들을 만나 약에 손을 대고, 이리저리 휩쓸려 이 지경에 처한 것 같고···.

‘그래도 그렇지.’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이 모습을 봤더라면,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괜히 내가 다 죄송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이윽고 의원이 말했다.

“당분간 정양하셔야 하네. 물론 힘드시겠지만, 술도 끊으셔야 하고.”

“···술을 끊으셔야 한다고요?”

슬쩍 내 눈치를 보는 소령.

그녀는 아마 내가 절대 술을 끊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쉽진 않겠지만, 꼭 그러셔야 해. 그래야 살 수 있네.”

마찬가지로 의원의 말투에서도 소령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 몸뚱이의 주인은 그간 주변에 어지간히도 믿음을 주지 못했나보네.’

하긴. 나라도 이들의 입장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왼손과 오른손을 보라.

금단현상으로 인한 수전증(手顫症)이 이정도란 건, 이미 중독 증세가 상당한 수준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중증의 중독 증세는 어지간한 의지로는 바로잡기 힘들 테고.

‘물론 어디까지나 원래의 몸 주인이라면 그랬을 거란 말이지만.’

나는 이내 양팔에 지그시 힘을 줬다.

수전증으로 인한 경련을 자제시키기 위함이었다.

단박에 경련이 멈추진 않았지만, 처음보단 한결 진동이 잦아드는 것이 보였다.

앞으론 이 몸이 내 몸일 텐데, 계속 이렇게 불편한 상태로 살아갈 순 없지 않는가.

‘충분히 할 만 해.’

그리고 그런 변화를 눈치 챈 것인지, 소령과 의원의 눈에 잠시 이채가 스쳐갔다.

놀람을 띠면서도 ‘정말 할 수 있을까?’란 식의 의구심을 품는 모양새였다.

“약방문을 적어주겠네.”

이윽고 의원은 기력을 북돋아주는 탕약을 알려주겠다며 소령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에 나는 침상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애써 생긴 새로운 기회가 무산되고 말 거야.’

살기 위해서였다.

의원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방금 자신이 깨달은 바에 따르면, 이 몸의 쇠약해진 심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영원한 안식을 위해 박동을 줄여가고 있었다.

당장 몸을 움직여 생기를 불어넣어야 했다.

양손과 마찬가지로 하체 또한 경련이 일고 있었지만,

어금니를 꾸욱 다문 채, 한 걸음 한 걸음 다리를 움직였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손의 경련을 멈추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구나.’

다리를 움직이니, 복근도 아파왔다.

어디 한 군데 호락호락한 곳이 없었다.

문득, 천마신교의 부교주 강불해의 얼굴이 떠올랐다.

복부의 통증이 그를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뿌드득- 이가 갈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처절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니, 역설적으로 오히려 기운이 났다.

분노를 밑거름 삼아, 심장이 드세게 두방망이질을 시작한 것이다.

전생의 그 비참한 삶도 견뎌온 자신 아닌가.

‘이 정도 고난쯤이야.’

충분히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했다.

무조건 그래야만 했다.

‘할 수 있을 거야.’

추후 천마신교에 복수를 하려고 해도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꼭 하고 싶었다.

전생과 현생의 기억을 조합해보면,

자신은 새로운 육신을 얻은 것도 모자라 시간까지 과거로 거슬러 온 상황.

그러니 놈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대략 매음굴에서 천마신교로 납치를 당하던 순간인가.’

하물며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있지 않는가.

‘충분히 할 수 있어.’

물론 마음에 걸리는 일도 존재하긴 했다.

대표적으로 이 시점의 원래 내 몸뚱어리의 행방이 그랬다.

‘다만 이건 아무래도 전생에 살던 매음굴 일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네.’

···여긴 호북이고 그곳은 섬서이니, 당장은 힘들 테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해도 지금 할 일은 명확했다.

우선적으로 건강부터 회복을 하는 것.

건강을 회복한 뒤엔, 심법을 운용해 단전을 만들 것이다.

단전을 만들어 내공을 쌓고 이 몸에 맞는 무공을 골라 수련할 테다.

그렇게 강해질 것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머릿속에 있는 여러 무공서들을 떠올렸다.

10년 동안 천마신교 뇌옥에서 읽어온, 온갖 무공서들.

‘기억이 그대로라서 천만다행이야.’

그중엔 당연히 절세의 무공도 여럿 있었다.

‘훼손된 천마신공의 운기법이라든지, 아수라파천권이라든지. 이 밖에도 많아.’

그중 하나를 익히면 될 것이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문득 앞으로의 성취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과연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문 채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윽고 하체의 경련도 한결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방 안을 거닐었다.

머지않아 해가 저물고 다시 날이 밝았다.

***

정신을 차린 뒤, 열흘이 흘렀다.

해가 하늘 꼭대기에 오른 오시(午時) 무렵.

산새들이 지저귀고. 하얀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금화표국 안가의 마당을 거닐었다.

안가란 일종의 은신처를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 표국의 경우엔 별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본가에서 술주정을 부리다 형님께 쫓겨난 탓이라고 알고 있었다.

물론 내 혼백이 들어오기 한참은 전의 일이었다.

그저 깨어난 지 열흘이 흘렀는데, 여태 기별이 한 번도 없는 걸로 보아, 어지간히도 밉보이고 있음을 유추할 뿐이었다.

하기야 술주정을 부려 표국을 난장판으로 만든 기억이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 번이니···.

“소령아, 형님이랑 아우는 잘 지내고 있대?”

“네? 그. 그. 그런 것 같더라고요. 다만 요즘 표국 상황이 조금 어려워진 것 같긴 한데···. 대공자님이, 아니 국주님이 잘 해결하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와, 그런데 오늘 날씨 엄청 좋네요?”

그들의 이야기만 꺼내면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그녀의 태도도 그런 내 처지에 대한 방증이라고 하겠다.

이곳에 오기 한참 전부터 집에선 이미 없는 가족 취급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다음엔, 본가로 직접 찾아가 봐야겠다.’

이왕 대형 표국의 이공자의 몸으로 깨어난 이상, 이 신분을 십분 이용할 생각이었다.

전생엔 죽기 직전에나 간신히 냄새를 맡아본 영약 같은 것도 좀 구경해볼 심산이었다.

그러니 가족들과 화해를 하는 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물론 안가라고 해도 그 크기가 어지간한 장원 못지않았다.

“한 바퀴만 더 돌아볼까?”

“공자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이 정돈 괜찮아.”

이처럼 장원을 달리는 것은 이전의 몸 상태론 어림도 없는 일.

술을 끊고 운동을 시작하니, 금세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애초에 타고난 근골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물며 이젠 수전증도 잦아들어, 스스로 젓가락질을 할 수도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아까 점심 땐 혼자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에 소령이 눈물을 짓기도 했다.

“공자님··· 저는 항상 공자님을 믿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코를 훌쩍였다.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다른 공자님들도 이런 공자님의 모습을 보면, 분명 다시 믿음을 보내실 거예요.”

젓가락질이 뭐라고.

그토록 감격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쉬운 일을 이 몸뚱이의 주인은 그간 왜 하지 않았는지.

아무리 수전증이 있어도 그렇지. 조금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이런 추세라면, 오늘 저녁 즈음엔 내공심법을 익혀도 될 것 같았다.

‘내공심법이라.’

괜히 입맛이 다셔졌다.

머릿속에 있는 여러 심법 중 어떤 것을 익히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살면서 이처럼 여유롭게 무공에 대해서 고민하던 때가 또 있던가.

“소령아, 슬슬 허기지네? 점심 준비해줄래?”

“네? 무, 물론이죠!”

어느덧 마당 한 편에서 빗자루질을 하던 소령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사실은 비질을 하는 척하며, 운동하는 내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후다닥 주방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 맞다. 공자님···.”

그러다 덜컥 걸음을 멈추고 쭈뼛거리는 소령.

슬슬 눈치를 보는 것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긴 모양새였다.

“···저기요.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술상을 준비하느냔 물음이겠지?’

요 열흘 동안 매일같이 들어온 질문이니까.

과거의 나는 술상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를 쳤다.

“나 정말 술은 됐다니까?”

“네?”

“이제 정말 안 마실 거야.”

“공자님···.”

소령은 감격어린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엄청 맛있는 요리 해드릴게요!”

열의를 불태우며 주방으로 향했다.

굉장히 산뜻해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

해가 떨어지고 대신 달이 차오른 고즈넉한 밤.

소령은 금태산의 방문 앞에 서서 멀뚱멀뚱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무얼 하시려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시는 걸까?’

몇 시진 전쯤 방에 들어가시기 전에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꼭 무공을 익힐 때 호법을 서달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물며 금화표국엔 가전무공 같은 게 없냐는 물음도 하셨다.

이에 “공자님도 어릴 적에 읽어보신 적 있으실 걸요?” 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벼락 맞으신 것처럼 흠칫 몸을 떠시더라.

이윽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났어.”였다.

‘분명 그 일은 공자님이 여섯 살 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신다는 걸까.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이것 말고도 알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긴 했다.

돌연 술을 끊으신 건 물론이요, 질색을 하시던 운동도 시작을 하신 것이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되셨어.’

옛날부터 죽다 살아나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누군들 이런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테다.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니, 절로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시각.

금태산도 마찬가지로 풋- 하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혈관이 이렇게 작용할 줄이야.”

저도 몰래 중얼거리며, 탱탱해진 피부를 봤다.

그저 단전을 만들었을 뿐인데,

몸도 함께 튼튼해지고 만 것이다.

아무래도 기연을 얻은 것 같다.

금태산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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