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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표국 천재 아들-1화 (1/133)

001화. 환생

1화. 환생

하늘이 내린 오성(悟性).

사람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一)을 배우면 백(百)을 깨달을 수 있었고.

부분(部分)을 보면, 전체(全體)를 유추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타인이 펼치는 무공의 편린(片鱗)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진체(眞體)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내겐 무공의 구결을 가지고 노는 것이,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잠을 청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고.

그 모든 것을 숨 쉬는 것처럼 저절로 이루어냈다.

누군들 이런 재능을 알았다면, 100번 탐내고도 남았을 정도.

비록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매음굴에 팔려와 온갖 험한 일을 겪으며 자라왔지만.

이 가공할 재능 덕분에 최악은 아니었다.

최소한 꿈은 꿀 수 있었으니, 오히려 좋았다고 하겠다.

매음굴이란 곳의 특성상, 약과 여자에 취한 무림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을 했고.

나는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

눈동냥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다.

무공을 익혀 이 지옥 같은 매음굴을 탈출하고 싶었다.

밥 먹을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했고.

밤잠을 줄여가며 몰래 무공을 수련했다.

몇몇 내 의도를 눈치 챈 또래들이 독한 놈이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오직 자유를 쟁취하고 말겠다는 일념밖엔 없었으니까.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씩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긴 했다.

매음굴에 와 깽판을 치는 명문가의 자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들 대신 내가 그들의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만약 그랬다면,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며 사는 것도 꿈이 아닐 텐데.’

이런 상상은 스스로 비참해질 뿐이라, 최대한 자제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 비참함을 밑거름 삼아 점점 더 탐욕스럽게 무공을 익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나름대로 이 매음굴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 싶을 때쯤이었다.

“네놈이 그렇게 머리가 좋다지? 조용히 따라온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너에게 교(敎)를 위해 충성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원래도 불행하던 내 인생에, 더욱 커다란 불행이 닥친 것은.

납치를 당한 것이다.

평소 내 재능에 질투를 하던 식구 중 한 명이, 내 재능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팔아먹었다고 한다.

‘그것도 하필 천마신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의 뜻을 너무 늦게 알게 된 탓이리라.

어쩌면 매음굴 밖의 세상에 대해 너무도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천마신교 놈들은 내 정보를 팔아먹은 놈을 비롯한 그 매음굴의 모두를 죽였다고 한다.

아마 본인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록도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이후 나는 그들의 뇌옥에 갇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살았다.

애써 익힌 내공을 금제당한 채, 하루 종일 놈들을 위해 무공서를 분석하는 작업만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어느 차가운 뇌옥 안.

머리를 산발한 노인이 내 목을 틀어쥐며 말했다.

“그새를 못 견디고 이 사달을 내는가?”

노인의 정체는 천마신교의 부교주 시산혈귀(屍山血鬼) 강불해.

소싯적 권법과 조법을 수련한다는 명목으로, 무림에 커다란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친놈이었다.

심지어는 산사람을 달여 영약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도는 천하의 악적이었다.

그런 놈이 누런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내 등 뒤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뇌옥을 탈출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보이는 구덩이.

“뇌옥 안에 구덩이를 파다니···. 내 분명 대업을 완성할 때까지, 시키는 일만 잘하면 풀어주겠다 했거늘.”

나는 그런 놈을 향해 피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넌 날 살려줄 생각이 없었잖아.”

“왜 그렇게 생각했지?”

“너 같은 멍청이가 아니라면, 누군들 알 수 있었을 거다.”

“뭐라?”

놈을 향해 핏발 선 눈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봐라. 네가 나를 살려둘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네가 익히는 무공은 분석해달라고 하지 않았겠지. 그건 후환만 남기는 일일 테니까.”

실소를 흘리며, 놈이 분석하라며 건넸던 무공서들을 떠올렸다.

전대(前代) 사파 고수들의 것이라며 건넸던 여러 무공서.

‘그런데 그게 사실은 본인이 익히고 있는 무공들이었지. 그걸 분석하고 보완하라고 시킨 거였어.’

순간 놈이 헛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내 네놈 앞에서 무공을 펼친 적이 없을 터인데···.”

놈은 내 오성(悟性)을 얕잡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타인의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졌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이윽고 놈의 얼굴이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흉하게 일그러졌다.

“실로 무서운 재능이군.”

“별말씀을.”

잠시 서로를 노려봤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영특한 놈이 저런 형편없는 구덩이로 이 뇌옥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니. 쯧쯧.”

놈은 비웃음을 흘리며, 내 등 뒤에 있는 예의 그 커다란 구덩이를 턱짓했다.

물론 이에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놈을 마주 비웃어줬다.

내가 준비한 ‘진짜 탈출구’는 저 구덩이가 아니었으니까.

“평생 2인자로 썩을 너 같은 놈이, 천마의 자리를 탐내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것만 할까.”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놈의 단전 부근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내 놈의 이마에서 울긋불긋 핏대가 서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단전에서 내공이 역류하여 주화입마가 온 흔적이었다.

“···이게, 대체!”

놈은 곧 바닥에 주저앉아 핏물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놈을 향해 이죽 웃어주었다.

“내공이 역류했나 봐? 이게 내가 10년 동안 준비한 거다. 이 멍청한 놈아. 저 구덩이는 눈속임이고.”

“···뭐라?”

나는 놈을 가만히 바라봤다.

‘예상대로야.’

내게 무공서를 분석시키는 이유가, 전부 본인이 익히기 위함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아주 교묘하게 무공 구결 속에 함정을 만들었다.

‘12성 대성을 이루는 순간, 주화입마에 빠지게 설계했지.’

이후 때를 기다렸다.

놈이 그 함정을 밟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놈이 그 함정을 밟은 걸 확인했다.

함정을 밟았으니, 약간의 감정적 동요만 만들어도 내공이 역류할 터.

이런저런 말들로 자극을 했다.

일부러 구덩이를 노출해, 놈이 뇌옥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 모든 건, 장장 10년을 준비한 계책이었다.

“혹시 자업자득이란 말 아나?”

나는 바닥에서 발광을 하고 있는 놈을 한차례 걷어차곤, 이내 뇌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놈 외의 다른 마교도들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내가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해왔다.

내 재능을 고스란히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얼마 전부턴 외부에 공개되어선 안 될 천마의 무공들마저 슬쩍 가져와, 내게 분석을 요청했을 정도이니···.

가령 놈이 얼마 전부터 익히기 시작한 아수라파천권이라든지.

상당 부분이 훼손된 천마신공의 운기법이라든지.

‘늙은이 욕심이 과했어.’

뇌옥을 빠져나와 복도를 내달렸다.

근처에서 경계를 서던 간수를 제압하고 옷을 빼앗아 입었다.

내공이 금제당한 상태였지만, 10년 동안 조금씩 그 금제를 헐겁게 만든 덕분에 약간의 무공은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철저히 그들의 사람인 척 행동을 하며 천마신교의 교내를 거닐었다.

마침내 눈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천마신교가 위치한 천산(天山)을 빠져나가는 문.

폐천문(閉天門)

가슴속에서 웅장한 무언가가 용솟음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막 그렇게 문을 향해 첫발을 뗄 때였다.

쿠구구구-

탈출한 뇌옥 쪽에서 불길한 굉음이 들려왔다.

이내 느껴지는 사특한 기운.

‘설마··· 놈이 주화입마를 극복한 건가? 어떻게?’

화악-

순간 뜨끈한 열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복부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크크크.”

눈앞에 놈이 있었다.

뇌옥에서 내게 한 방 먹었던 그 멍청한 놈.

나를 이용해, 천마의 자리를 탐내던 그 탐욕스러운 놈.

놈의 손이 내 복부를 꿰뚫고 있었다.

뇌옥에서 이곳까지 단박에 주파(走破)한 뒤 곧장 공격부터 한 것 같았다.

놈의 눈알엔 스산한 살기가 그득했다.

“하마터면 정말 죽을 뻔했구나.”

놈이 코앞에서 말했다.

입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문득 청량한 향기가 섞여있었다.

놈이 계속 말했다.

“지니고 있던 영약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

청량한 향기의 정체였다.

놈은 얼마 전 인근의 대형 상단을 습격하고 빼앗은 것이라 했다.

원래 자신과 같은 고수들은, 여벌의 목숨으로 이런 영약을 하나쯤은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젠장.’

간단하게 말해, 주화입마를 영약으로 바로잡았단 얘기였다.

울컥 핏물이 치솟았다.

‘그게 가능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

지식의 한계였다.

아니, 출생의 한계였다.

영약이란 걸 여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고개를 돌려 막 넘어가려던 커다란 문을 봤다.

‘이제 정말 한 발자국만 남았는데···.’

억울했다.

가슴이 미어질 만큼 화가 났다.

이윽고는 스스로의 삶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왜.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처럼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갔다.

핏발 선 눈으로 놈을 바라봤다.

이대로 죽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별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놈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것뿐이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내 기필코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부릅뜬 채 마지막까지 놈을 노려봤다.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문득 과거 천마신교에 납치를 당하던 순간의 기억이 꿈처럼 펼쳐졌다.

이번엔 납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죽임을 당했다.

젠장.

꿈에서마저 이토록 비참하다니.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절로 눈이 감기고.

의식은 점점 흐릿해져갔다.

···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공자님!”

문득 다시 세상이 밝아졌다.

***

몽롱한 정신 사이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공자님, 정신이 좀 드세요?”

굉장히 밝은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었다.

밝은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뉘어져 있었다.

‘여긴 대체···.’

여인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공자님, 얼른 의원을 불러올게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누워 계세요!”

“잠깐만 여기는 대체···.”

여인을 향해 말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찌나 발이 빠른지,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버렸다.

얼핏 무공을 익힌 여인인 것 같았다.

‘하오문 계통인가? 근육의 형태를 보니, 근래엔 무공 수련보단 허드렛일을 더 많이 한 것 같긴 하지만···.’

무공을 익힌 시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상체를 일으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목숨은 붙어있는 것 같으니, 상황 파악이 먼저였다.

‘상당히 사치스러운 방이네.’

넓은 방 안엔 금과 은으로 된 장식품이 한가득이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 또한 휘황찬란한 비단옷이었다.

어렸을 때, 매음굴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런 비단을 촉금(蜀錦)이라고 했던가?’

듣기론 아무나 입을 수 있는 비단이 아니라고 했다.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으면, 입을 수 없다고 들었다.

‘···근처에 주판이 있는 걸 보면, 성급(城級) 상단이나 표국에서 나를 치료한 건가?’

꾸르르륵-

순간 타들어갈 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습관적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문득 구멍이 뚫렸어야 할 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을 터인데···.

근원적인 의문이 밀려왔다.

어쩌다 이런 곳에서, 이런 옷을 입고 눈을 뜨게 된 것일까.

벽에 걸려 있는 동경이 보였다.

‘어?’

그리고 그 순간.

깜짝 놀랐다.

동경에 비친 낯선 이의 모습.

‘이건 내 몸이 아닌데?’

그러고 보니, 배를 쓰다듬은 손도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당연히 쓰다듬은 배도 낯선 이의 것이었고.

이리저리 손발을 움직여보았다.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습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맥박을 보니, 일단 꿈을 꾸는 건 아닌 것 같고···.’

이내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윽. 이건···.’

이 몸의 원래 주인의 기억이, 폭풍우처럼 몰아친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금의 상황이 대강이나마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번뜩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영혼만 옮겨온 것이구나.”

천마신교의 뇌옥에 있을 때, 멸문한 모산파의 무공 중 이런 비슷한 효험을 내는 무공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다.

훼손된 천마신공의 각주에서였다.

아마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까 여인의 무공의 연원을 파악한 걸 보면, 오성(悟性)은 그대로인 것 같고···.’

매음굴과 뇌옥에서의 생활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기억도 그대로였다.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운(天運)이 따랐구나.’

아무래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그것도 전생의 기억과 오성(悟性)을 고스란히 보유한 채로.

새로운 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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