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6
귀환 마교관
666화(외전 39)
위이이이잉.
귀혼도가 공명했다.
등가휘는 그야말로 춤을 추듯 몸을 놀렸다.
귀혼도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마계수 인근에 다다랐을 때부터였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공명이 심해질수록 등가휘는 단전에서부터 공력이 거세게 솟구쳐 오르는 것만 같았다.
등가휘는 처음으로 칼을 휘두르는 게 신명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물론, 악인을 처벌할 때의 통쾌함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힘들었다.
그는 늘 칼을 들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길부터 모색했다.
그렇다고 무공 수련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수련 자체를 즐겼을 뿐이었다.
실전은 늘 고생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강호는 특히 더 그렇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달라!’
흥분이 전신을 휘어 감는다.
귀혼도의 칼끝에서부터 짜릿한 감촉이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기분이다.
귀혼도는 마계수와 가까워질수록 공명했는데, 이는 적의 기운이 강성할수록 마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귀혼도의 특성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귀혼도는 등가휘의 내공과도 공명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쒸에엑! 촤촤악!
빛줄기가 그어질 때마다 핏물과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예전 같았으면 진작 지쳤으리라.
이만한 적들을 상대하자면 벌써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그저 즐겁다.
귀혼도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마냥 짜릿하기만 하다.
넘쳐나는 적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베어야 할 적이 많다는 사실에 오히려 흥분이 앞선다.
촤아아악! 촤악!
핏물이 튈 때마다 귀혼도는 격렬하게 몸을 떨었고, 등가휘는 심장이 터질 듯했다.
공력은 빠르게 회전했다.
그만큼 손발도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귀혼도가 그의 손을 잡고 아무렇게나 이끄는 듯했다.
한데 그 이끌림이 가히 싫지 않다.
즐겁다!
통쾌하다!
짜릿하다!
마침내 등가휘의 입에서 쾌감에 젖은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키하앗!”
촤아악!
“크아악!”
도신을 따라 그어진 빛줄기, 그 뒤를 잇는 적의 비명과 핏물!
온몸이 녹아 버릴 듯한 쾌감이 전신을 휘어 감는다.
“크크크!”
등가휘는 입매를 히죽 찢으며 서늘한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몸을 날렸다.
쉭! 쉭쉭쉭!
칼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도법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평소에 비해 강맹한 공격을 펼치고는 있었지만, 어딘지 동작이 과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치지 않았다.
수많은 도검이 그의 몸을 긋고 지나가기도 했다.
동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빈틈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잘한 상처에서 아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몸이 베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이 순간을 즐겼다.
다시 검신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느려! 느리다! 흐하하!’
등가휘는 몸을 휘청 젖히고는 자신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검신을 보았다.
그렇게 간발의 차이로 피한 이유는, 딱 그만큼이면 충분하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검신이 스쳐 지나간 다음 순간, 등가휘는 곧장 몸을 일으켜 귀혼도를 대각선으로 베어 올렸다.
츄아아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적의 상반신이 대각선으로 잘려 나갔다.
츄아아아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등가휘의 몸이 흠뻑 젖었다.
온몸에 뜨끈한 혈액이 묻자, 등가휘는 히죽 웃어 버리고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비릿한 피 맛.
마침 또 다른 적이 이번에는 대도를 휘둘러 왔다.
파바밧!
등가휘는 표범처럼 달려들어 적의 품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크이익!”
적이 비명에 가까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대도를 수직으로 내려쳤다.
하지만 대도는 등가휘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는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신 귀혼도가 그의 심장에 그대로 쑤셔 박혔다.
푸욱!
“커어억!”
그가 눈을 부릅떴다.
눈알이 튀어 나올 듯했다.
그는 눈앞에서 히죽 웃으며 선 혈귀를 보았다.
그 혈귀가 바로 등가휘였다.
등가휘가 왼손을 들어 사내의 안면을 콱 움켜쥐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았다.
꽈다앙!
심장이 뚫린 사내는 결국 머리가 터져 즉사했다.
“하악!”
등가휘가 거친 숨을 쉬고 돌아서는데.
“등 부단주! 엄호해 줘야겠어!”
마침 사비란이 나타나서 불렀다.
하지만 귀혼도와 지나친 공명 속에서 이성을 잃어 가는 등가휘는 상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먹잇감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자.
“등 부단주!”
사비란이 얼른 달려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찰나.
휘리릭!
순식간에 돌아선 등가휘가 그대로 귀혼도를 횡으로 그었다.
쩌어엉!
휘링, 휘링…!
귀혼도와 연검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검기를 입힌 연검이 마구 휘청거렸다.
등가휘는 미간을 팍 구기고는 자신을 방해한 사비란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짜아악!
그의 뺨이 휙 돌아갔다.
정말이지 이대로 턱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렬한 손찌검이었다.
사비란이 손바닥에 공력을 싫었기 때문이다.
얼핏 그저 뺨을 때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적당히 공력을 실어 일장을 날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등가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지금 내가 무슨…?’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가 멍한 시선으로 손에 들린 귀혼도를 내려다보았다.
귀혼도는 계속해서 자극을 보내 왔다.
녀석이 공명을 울릴 때마다 심장이 계속해서 뛰었다.
그제야 등가휘는 자신이 귀혼도에 취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사비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이만한 게 다행이지.”
사비란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멀리서 봤을 때, 등가휘가 폭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지금도 딱히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엄호를 맡기려고 온 것이었다.
한데 그가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입매는 비틀려 있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 역시 굉장히 사이했다.
그때 눈치 챘다.
이대로 두면 등가휘가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그녀는 과거에 베르타스를 멋대로 쥐었다가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마계에서 건너 온 이 신병이기들이 마냥 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조금 전 등가휘처럼 광기에 젖어서 이성을 잃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만한 건 천만 다행이었다.
“이렇게 싸우면 끝이 없어. 머리부터 쳐야겠어.”
사비란이 고개를 들어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흑립인과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많은 적들을 한 번에 흔들 방법은 역시 머리를 치는 것이 유일하리라.
물론 아직까지는 백화단이 잘 싸우고 있다.
하지만 적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일당백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십당천은?
비율상 같을 지라도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된다.
“엄호하겠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등가휘가 마침 달려들던 적을 단칼에 베어냈다.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왕이면 엄호할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난감하다.
만약 단리혁이 전장 밖에 있었더라면, 그에게 엄호를 부탁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단리혁은 전장 안으로 들어와 버린 상황.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엄호를 받으며 싸워야 한다.
이런 것도 역시 경험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이런 큰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이런 생소한 현상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단리혁과 몇몇 무인들을 후방에서 따라오게 했으리라.
‘뭐, 이러면서 배워 가는 거지.’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후회보다는 반성을.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마침 그의 시선에 적비가 들어왔다.
그는 등가휘만큼이나 잘 싸우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
거기에 독공이 더해지니 다수의 적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그가 독공을 사용한다는 것을 눈치 챈 적들이 쉽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한 탓이었다.
마침 등가휘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적비를 보며 말했다.
“저자면 충분하겠군요.”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경공을 펼쳐서 절벽 위로 오를 테니까, 달리는 동안만 엄호하면 돼.”
“경공으로 저기까지 오를 수 있을까요?”
절벽이 까마득할 정도로 높진 않았다.
그렇다고 허공답보를 펼쳐서 도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비란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 미리 곡무성과 추소혜에게도 말해뒀어.”
“아, 그 버프라는 것.”
“그래. 반묘의 그걸 사용할 거야.”
버프라는 단어가 중원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사비강으로부터 들어서 그 뜻은 대략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힘을 더해 준다는 뜻.
반묘가 영물인 진짜 이유다.
곡무성은 도약을 하는 시점에 사비란을 던져 올려 주는 역할을 하리라.
그의 완력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저와 적비만 제 역할을 하면 되겠군요.”
대화를 마친 사비란과 등가휘는 적을 베어 가며 적비에게 향했다.
자초지종의 계략을 들은 적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엄호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바로 가지!”
사비란은 절벽 위를 노려보다가 일순 몸을 날렸다.
팟!
파바밧!
동시에 등가휘와 적비가 그녀 옆을 나란히 달리면서 길을 열었다.
촤촤촤악!
두 사람의 도검이 마구 빛살을 터뜨렸다.
적의 비명과 피가 주변 가득 터져 나왔다.
“곡무성, 준비!”
그녀가 소리치자, 마침 적의 머리통을 박살내던 곡무성이 한쪽 무릎을 굽히고는 양손을 모았다.
“오십쇼!”
타앗!
마침내 사비란이 그의 손바닥을 밟는 순간.
“이여어업!”
곡무성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온힘을 다해 사비란을 던져 올렸다.
반묘의 버프를 받았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힘이 터져 나왔다.
슈우우욱!
사비란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그녀가 허공답보를 펼쳤다.
동시에 플라이 마법도 함께 응용했다.
만약 순수한 무공만 사용했다면, 저 절벽으로 오르는 게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마법을 함께 사용하니 그녀의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기다려라!’
사비란이 이를 악물고 솟구쳐 오르는데.
타앗!
순간 사비란이 눈을 크게 떴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흑립인이 돌연 몸을 던지면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치잇!”
사비란이 혀를 차고는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면서 연검을 올려쳤다.
그와 동시에 흑립인이 떨어지는 가속을 이용해서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허공에서 기파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파동이 퍼져 나갔다.
슈우우욱, 꽈다앙!
튕겨 나간 사비란이 혜성처럼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