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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665화 (665/670)

# 665

귀환 마교관

665화(외전 38)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 한 척.

갑판 위에는 사비강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는 섬 중심에서 하늘로 치솟은 붉은빛 기둥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침 그의 곁으로 다가온 총군사 구윤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자의 말대로 암천교는 이십오 년 전부터 태동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십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암천교주 철군악(鐵君岳)은 원래 명문 정파였던 승일문(昇日門) 문주였습니다. 마족이 침입했을 때만 해도 결사 항전의 자세로 싸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문파의 힘이 약해지자, 친마 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힘을 보강하게 됐고, 마족대전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권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본궁의 과거 청산이 시작되면서 위축되었겠군.”

사비강의 말에 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약 이십여 년 전부터 비밀리에 암천교를 조직하게 됩니다. 당시에 뿔뿔이 흩어져서 몸을 사리고 있던 친마 세력들이 승일문으로 암암리에 찾아들었고, 세력을 조금씩 확장하게 됩니다.”

“하면 그들이 마공석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지?”

“대략 십여 년 전부터인 걸로 파악됩니다. 단기간에 갑자기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고, 눈에 띄지 않게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 철군악이라….”

사비강의 시선이 저 멀리 붉은빛 기둥으로 향했다.

마침 선실에서 나온 한 여인이 나왔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뿜을 것만 같은 그녀는 바로 매설란이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야?”

매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사비강이 회귀를 했던 만큼, 강호의 여러 인물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로서는 생소한 이름일지라도 사비강은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다만….”

“다만?”

“저 짓을 철군악 스스로 결정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드는군.”

“저 짓이라면….”

“차원의 문을 여는 것. 마공석으로 차원의 문을 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그리고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전제해야 하고.”

“그 조건이 뭔데?”

“마계수가 살아 있어야 해.”

“마계수라면, 그 흑성을 이룬 나무 말하는 거지?”

“그래. 그리고 그 마계수를 관리하는 건 아들러지.”

“설마… 그는 분명히 죽었는데.”

매설란이 미간을 곱게 모은 채 중얼거렸다.

추량과 흑성 지하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분명 아들러를 죽였다.

당시 아들러는 심장을 관통당하고 목이 베였다.

하지만 기억난다.

죽여도, 죽여도 자꾸만 되살아나던 모습이.

그 때문인지 한동안 악몽도 자주 꾸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러가 어느새 촉수를 뻗으며 자신의 온몸을 휘어감는 꿈.

그렇게 가위에 눌린 채 꿈쩍을 못할 때면, 사비강이 도와주곤 했다.

무인이 가위에 눌린다면 이상하게 보일만도 하지만, 오히려 한 번 기혈이 뒤엉키게 되면 범인보다도 위험해진다.

‘왠지… 불길하네.’

매설란이 조금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붉은빛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사비강이 구윤을 돌아보며 물었다.

“철군악의 행적 중에서 특이 사항은 없었나?”

“딱히 조사된 건 없습니다. 일상에서는 그저 평범한 정파 수장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친마 이력을 숨기기 위해서 몇 군데 손을 쓰긴 했지만, 감안해 줄 수 있는 수준이었고요. 세력도 많이 위축되어 있었기에 백화단의 감시망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군.”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조금 걸리는 게 있습니다만, 큰 의미는 없어 보이는데….”

“뭐지?”

“대략 십여 년 전에 철군악이 강호기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감숙성 쪽으로 떠났는데, 기련산을 방문했을 거라는 후문이 있더군요.”

“기련산이라….”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그냥 넘어갈 만한 정보가 아니다.

기련산은 마족들의 흑성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했다.

만약 철군악이 기련산에서 어떤 계기를 가졌다면…?

물론, 마족대전이 끝난 후 멸마궁은 수십, 수백 차례 기련산을 탐색했다.

한 마디로 꺼진 불씨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수색한 것이다.

그때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련산은 넓다.

병풍처럼 이어진 산맥이다.

멸마궁이 모든 지역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살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아들러가 살아 있는 거라면… 이 모든 현상이 납득이 되긴 하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낫다.

구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혜수각에서 좀 더 철저히 조사를 했어야 하는 건데.”

혜수각주는 담우기였지만, 총군사인 그는 담우기의 직속상관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혜수각의 책임은 곧 자신의 책임이나 마찬가지.

하나 사비강이 그런 일로 깊이 따지고 들 성격은 아니었다.

“혜수각이라고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그만큼 놈들이 은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쫓아왔으니 늦지 않길 바라야겠지.”

그때였다.

무랑이 미간을 푹 찡그리더니 저만치 수면 아래를 응시했다.

“이 물도 오염이 된 모양일세.”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느끼고 있었소. 다들 조심하도록.”

“무슨…?”

구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츄아아아아아아!

물보라가 솟구쳐 오르면서 거대한 연체 괴물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

“우아앗!”

“이게 뭐야?”

갑판에 있던 무인들이 저마다 화들짝 놀라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꾸아아아아앙!

연체 괴물이 괴이한 괴성을 내지르면서 거대한 촉수를 내리쳤다.

콰자앙!

하지만 배가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몸을 날린 은갑대주(銀甲隊주) 염자량이 흑패도를 올려쳐 촉수를 막아낸 것이다.

그는 거뭇한 도신을 제외하면 전신이 은빛 갑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침 섭랑단주(燮浪團主) 자운룡과 금갑대주(黑龍隊主) 위검종도 선실에서 뛰쳐나와 연체 괴물을 보고는 명령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날아드는 촉수만 집중해라!”

“존명!”

무인들이 저마다 외치면서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촉수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들은 마족을 상대로 산전수전을 겪은 기성 무인들답게 침착하게 대응했다.

몇몇 무인들이 촉수에 휘감겨 끌려들어갈 것 같으면, 어김없이 매설란이 몸을 날려 촉수를 단칼에 잘라내 버리곤 했다.

진녹색 체액을 흘리면서 퍼덕거리는 촉수를 몇몇 무인들이 불덩이를 날려 태워 버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사비강이 난간으로 올라서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환영식치고는 소소하군.”

말을 마친 그가 베르타스를 휙 던져 올렸다.

다음 순간, 베르타스가 허공을 가르면서 그대로 수십 가닥의 촉수를 향해 뻗어 나갔다.

촤촤촤촤촤촤촤아악!

빛줄기 수십 개가 허공에 거미줄을 쳤다.

그와 동시에 녹색 체액이 비처럼 떨어졌다.

“독성이 있으니 방어해라!”

이번에는 염자량이 소리치자, 무인들이 저마다 실드와 호신강기를 펼쳐 몸을 보호했다.

치이익…! 치치익!

뀌아아아아아앙!

연체 괴물이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사비강이 미간을 푹 찡그리며 말했다.

“시끄럽다.”

그가 손을 휙 젓자, 허공에 머물러 있던 베르타스가 쏜살같이 수면 아래로 빠져들었다.

기다란 물결 파동을 꼬리처럼 이끌면서 날아간 베르타스가 그대로 연체 괴물의 급소를 관통했다.

푸우욱!

꾸아아아아앙!

연체 괴물의 전신이 수면 위로 한 번 들썩이더니 이내 녹색 체액을 잔뜩 토해내면서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츄아아!

수면 위로 치솟은 베르타스가 허공을 배회하더니 사비강의 손으로 착 돌아왔다.

촤아악!

사비강이 한 차례 검을 휘둘러 물기를 털어내고는 검집에 갈무리했다.

잠깐의 소동은 싱거우리만큼 빠르게 정리됐다.

무인들은 오랜만에 보게 된 사비강의 무공에 감탄한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무랑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란아가 고생 좀 하겠군.”

그러자 곁에 있던 매설란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란아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걸요? 지금쯤 웃으면서 싸우고 있을 거예요.”

**

“쳇! 죽겠네, 진짜.”

사비란이 혀를 차고는 연검을 휘둘렀다.

쉬쉬쉬쉬쉬이잉!

가느다란 연검이 물결치듯 날아가며 적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연검이 빛 꼬리를 이으며 날아갈 때마다 비명과 피가 치솟았다.

하지만 적은 끝이 없었다.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벌써 사상자가 서른이나 더 발생한 상황.

반면 이 사이비 교도들은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마침내 붉은빛 기둥을 쏘아올린 괴이한 나무를 발견했다.

사비란은 그게 다름 아닌 마계수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마계수가 빛을 계속해서 쏘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생긴 시커먼 구멍은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하면서 넓어지고 있었다.

저러다가 언젠간 저 시커먼 구멍이 찢어져 뭔가가 마구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쏟아져 내리는 것은 결코 반가운 것들이 아니리라.

하지만 마계수를 둘러 싼 무인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 마계수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저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구경만 할 수도 없는 상황.

“아, 정말 짜증나네!”

쉬리리릿! 서커컥!

“크아악!”

“아악!”

사비란의 검무에 다시 한 번 네댓 명이 비명과 함께 몸을 뒤집고 쓰러졌다.

한편 단리혁은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정신없이 시위를 잡아당겼다.

패애앵! 패패패애앵!

쏴아아앙! 쒸아아앙!

화살과 함께 궁기가 거침없이 사방을 향해 날아갔다.

“이것들이 짐승 떼보다 더 지독하네.”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야!”

등등등이 거침없이 창을 휘두르며 말했다.

단리혁이 활을 쏘면서 물러나다가 등등등과 등이 맞닿았다.

“그런데 넌 언제부터 반말한 거야?”

“그쪽이 먼저 말을 놓기에.”

말을 마친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섰다.

등등등은 그대로 장창을 횡으로 그었고, 단리혁은 몸을 옆으로 눕히면서 활을 쏘았다.

쒸따다다당!

쉬퍼엉!

금빛 장창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맞으면서 날아갔고, 단리혁의 붉은 궁기에 등등등에게 달려들던 무인들이 상당수 튕겨 나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자세를 다시 바로 잡은 두 사람이 서로를 힐끔거리고는 동시에 물었다.

“솔직히 나 노린 거지?”

곧 두 사람이 피식 웃어 버렸다.

단리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이만하면 우리도 합이 제법 잘 맞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뭐, 저 두 사람만큼은 아닐 지라도.”

등등등의 시선이 저만치 적들을 휩쓸어 가고 있는 석검영과 연설연에게 향했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완벽한 협공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슬낫과 연검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다 보니 합격술과 차륜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마치 하나의 무공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한편 정신없이 적을 베어 가던 사비란은 저만치 절벽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노인과 흑립인을 노려보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어. 저자들부터 먼저 해치워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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