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1
귀환 마교관
661화(외전 34)
음악이 잠깐 멈췄다.
창무 도중 갑자기 끼어든 단리혁이 불쾌할 만도 했지만, 등등등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포권을 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악기가 연주됐다.
두 사람이 창무와 검무를 추기 시작하니, 악기 연주도 덩달아 빠른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음악이 점점 고음으로 치달으면서 두 사람의 움직임도 조금씩 격해져 갔다.
‘확실히 보통 이상의 수준은 되는군.’
땅. 따당.
두 사람의 창검이 악기 연주와 어울리면서 또 하나의 박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음악과 두 사람의 움직임만 보아도 절로 몸이 들썩일 만큼 흥겨운 공연이었다.
등등등의 움직임은 유연했다.
마치 창을 든 사람이 아니라, 연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음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릴 때면, 등등등의 창도 큰 원을 그리며 휘어졌고, 빠른 박자를 타며 튕기는 음률이 들려올 때면, 그에 맞춰 장창이 곧게 내질러 왔다.
따당! 따당! 땅땅!
정말이지 두 사람은 마치 미리 짜 맞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단리혁도 내심 인정했다.
‘그저 화려하기만 한 건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역시 너무 부드럽다. 이 정도의 가벼움으로는 어린 아이도 어렵지 않게 막아내겠어.’
움직임이 유연했지만, 창술은 유연함보다 강맹함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등등등의 창술은 마치 실전보다는 창무에 더 맞춰진 느낌이랄까?
마침 악기 연주가 조금씩 빠른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음악이 중반부로 흐르면서 딱딱 끊어지는 박자가 등장했고, 거기에 맞춰 단리혁의 검술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악이 점점 절정으로 향하자, 단리혁의 기세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쉭! 쉬쉬쉭!
확실히 단리혁의 검이 빨라졌다.
두 사람의 춤을 편하게 지켜보던 맹가숙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제 진짜군.’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부들과 사비란 역시도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한편 누구보다 단리혁의 기세가 바뀌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등등등이었다.
그는 창을 어지럽게 휘두르면서 빠르게 날아드는 검을 튕겨냈다.
따다다당!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어울려 주지. 그렇잖아도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는데.’
쉬쉬쉬쉭!
등등등이 재빠르게 창을 내질러 갔다.
사비란은 그 모습을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절정으로 치달리는 연주.
그에 맞춰 두 사람의 창검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젠 이따금씩 불꽃까지 터져 나왔다.
단리혁은 여전히 즐기는 듯 웃음을 머금었고, 등등등은 그때그때 표정이 급변하고 있었다.
마침 사비란 곁으로 등가휘가 다가왔다.
“이쯤에서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단리혁의 말대로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조금 더 지켜보자고.”
그때, 무뚝뚝한 음성이 불쑥 들렸다.
“말리는 게 좋을 거요.”
두 사람이 돌아보니, 적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대론 위험하니 말리는 게 좋겠소.”
사비란이 희미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단리혁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몰아붙이진 않을 거예요. 적당한 선에서 힘을 뺄 거예요.”
그러자 적비가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요? 위험한 건 저쪽이지.”
적비의 시선이 단리혁에게 향했다.
“보아하니 검술을 제대로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그 말을 들은 사비란이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서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두 사람의 창무와 검무는 절정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자면, 단리혁은 그야말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있었고, 등등등은 그 폭풍우를 헤치며 힘겹게 나는 나비 같았다.
한 수 한 수가 너무 아슬아슬해서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나비는 폭풍우를 무사히 지나쳤다.
악기 연주도 절정을 지나 종장으로 접어들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이제 나비는 더욱 유연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쉬따아앙!
맑은 금속성과 함께 단리혁의 검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헉!”
깜짝 놀란 단리혁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창을 피해 얼른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쑤아앙!
“헛!”
허리를 활처럼 휘며 젖힌 단리혁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
쒸아아앙, 쩌엉!
하늘로 치솟았던 금빛 창이 악기에서 마지막 음이 연주되는 것과 동시에 연회장 바닥을 내리찍었다.
공교롭게도 장창은 단리혁의 가랑이 사이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꽂혔다.
만약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더 깊이 날아들었다면, 단리혁의 소중한 그곳은….
‘고자가… 될 뻔 했잖아!’
단리혁이 퀭한 얼굴로 등등등을 보았다.
정말이지 마지막으로 기세를 올려 몰아칠 때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야 공격적으로 나오나 싶었는데 이미 끝나 버린 상황.
단리혁은 이 민망한 상황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훗, 역시 제법이군. 훌륭한 창무였소.”
말투가 자연스레 하오체로 바뀌었지만, 정작 단리혁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등등등이 빙그레 웃으며 답변했다.
“훌륭한 검무 덕분에 창무가 더욱 빛을 발한 듯하오.”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바요. 하하.”
단리혁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바닥에 박힌 창대를 쥐었다.
그리고 힘주어 뽑아…야 하는데?
‘음…?’
다시 힘을 주어 뽑으…려는데….
‘뭐야? 이게 왜 이리 안 뽑혀?’
단리혁이 어금니까지 꽉 깨물고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바닥에 박힌 창은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직접 잡아 보니, 창 자체가 엄청나게 무겁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뭔 창이 이렇게나…!’
그가 낑낑거리고 있을 때였다.
“비키시오. 내가 하겠소.”
불쑥 들려온 목소리.
단리혁이 돌아보니 덩치가 우람한 청년이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창대를 잡았다.
단리혁이 내심 조소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창대가 그리 쉽게….’
쑤욱!
‘…뽑히네?’
단리혁이 입을 척 벌리고 덩치를 보았다.
덩치는 등등등에게 창을 휙 던져 주고는 돌아섰다.
“만나서 반갑소. 일이 있어 연회에 조금 늦었소. 난 곡무성(谷武成)이라고 하오.”
그를 본 사비란이 빙그레 웃었다.
곡무성.
그는 곡보옥의 아들이었다.
곡보옥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과 혼인을 했는데, 다행히 그의 아들 역시 곡보옥을 닮아 태생적으로 힘이 장사였다.
상황이 요상하게 흐르자, 단리혁이 짐짓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핫핫핫! 사실 내가 궁을 들었다면 아마 이번 창무의 결과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소. 실은 내가 검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오.”
“궁사였소?”
등등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사비란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친구는 궁을 들지 않으니까 궁사라고 할 순 없죠.”
“무슨 소리! 난 궁사요.”
단리혁이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그가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내 주 무기는 궁이오.”
등등등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언젠가 그 궁으로 한 번 즐겨 봅시다.”
“좋소!”
단리혁과 등등등이 뜨거운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
다음날 오전.
사비란은 곧바로 천신무관에서 떠날 채비를 갖췄다.
추량과 그의 딸인 추소혜(秋小慧)가 볼일을 마치고 생각보다 일찍이 무관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반묘까지 함께 있었으니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천신무관 입구에서 추량은 사비란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보자마자 이별이라니, 너무 아쉽구나.”
사비란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날이 많으니 다시 뵙겠지요.”
“그래, 그렇겠지. 한데 저 녀석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추량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귀엽게 하품하는 반묘를 추소혜가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둘 모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저 빈 말이 아니었다.
반묘는 체액의 냄새를 쫓아 빠른 시간에 적진으로 데려다 줄 것이고, 추소혜는 반묘와 교감을 잘하는 데다 마나검과 마나방패까지 다룰 줄 아니 분명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부디 조심해라.”
“네, 사부님.”
사비란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그녀가 돌아서자, 천신무관 출신의 무인들이 나란히 도열했다.
지금만큼은 사비란도 진중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렀다.
“적비, 곡무성, 추소혜 등등.”
호명된 자들이 모두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데 등등등만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저어… 제 이름을 부를 땐 이왕이면 성도 꼭 같이 불러 주십쇼. 그냥 이름만 부르면 마치 ‘기타 등등’ 할 때 그런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 미안해요. 그럼 다시. 적비, 곡무성, 추소혜, 등등등!”
“예!”
“오늘부로 당신들은 백화단에 임시 소속되어서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단주님!”
네 사람이 동시에 소리쳐 대답했다.
반묘도 앙증맞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렇게 간단한 출정식을 가진 백화단이 마침내 천신무관을 떠났다.
길잡이인 반묘를 앞세운 채.
그리고 맹가숙은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관주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잘 해내겠지요?”
“그럴 걸세.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사비강 궁주님의 딸이니까.”
“그렇겠지요. 그리고 누구보다 훌륭한 내 아들도 있으니까.”
맹가숙이 빙그레 웃으며 돌아보았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등자경이었다.
“그렇지. 그러니 걱정 말게. 그런데 자네는 누구….”
“앗, 그만 하시라고요! 영감님마저 날 못 알아보면 우울하다고요!”
“허허허, 농담일세. 내가 자네를 왜 모르겠나? 역시 자넨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헐, 나처럼 매번 존재감 없이 지내 보십쇼. 그게 흥밋거리가 되는가?”
“그런가? 그나저나 정말 궁금해서 묻는데… 자네는 누군데 내 방에 있는 건가?”
“영감님!”
“허허허! 알았네,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말해 주게. 자네, 누군가?”
“영감님… 정녕… 진심입니까?”
등자경은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순간 맹가숙이 활짝 웃었다.
“아니. 자네 이름이 등자경이라는 걸 잊으면 내가 노망이 난 거겠지.”
“하아, 이게 재미있습니까?”
“재미없진 않아.”
“영감님은 정말 오래 사셔야 합니다! 벽에 똥칠 할 때까지요!”
“헐, 그러지 않기로 비란과 약속했는데.”
“깨세요! 그 똥칠 제가 닦아드립니다!”
“허허, 알겠네. 알겠어.”
“그러니 이제 그만 좀 놀리시고요.”
“그러지. 그나저나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쫌!”
“허허허!”
맹가숙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관주전에서 흘러나왔다.
**
그그긍… 쿠웅!
철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밀실에서 나온 사비강이 허공을 보며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처럼 애들 좀 불러야겠다.”
“심각합니까?”
홍염의 목소리.
사비강이 목을 우두둑 꺾고는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이것들이 생각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군. 백화단은?”
“지금쯤 천신무관을 나섰을 겁니다. 반묘가 있으니, 곧바로 적의 본진을 칠 겁니다.”
“잘 됐네. 우리도 준비하자.”
“존명!”
대답과 함께 허공에서 기척이 스르르 사라졌다.
“너희들이 그리는 그림… 완성되기도 전에 잔뜩 망쳐 주지.”
사비강의 입가에 모처럼 사악한 웃음이 떠올랐다.